중국 정치인들은 시(詩)나 성어(成語)를 쓰기 좋아한다. 때로는 풀어 이야기하는 것보다 함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시와 성어를 이용하는 게 훨씬 더 효과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에 맞춰 지난 6월 한․중 정상회담 중에도 박근혜 대통령은 여러 가지 시와 성어를 인용해 양국 간에 큰 화제를 낳았다.
박 대통령이 시의적절한 말을 준비했다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한·중 관계 발전에 포인트를 맞췄다. 우선 우리 측에선 6월 박 대통령의 방중을 ‘심신지려(心信之旅)’라는 ‘마음과 믿음을 쌓아가는 여정’이라는 뜻의 새로운 조어(造語)다.
방중 첫날 박 대통령은 북핵 문제를 겨냥해 공자의 말을 인용했다. “처음엔 사람의 말을 듣고 행실을 믿었으나 이젠 말을 듣고도 행실을 살핀다(始吾於人也 聽其言而信其行 今吾於人也 聽其言而觀其行)”. 북한의 진정성 있는 행동을 촉구한 것이다.
둘째 날 박 대통령은 한·중 비즈니스 포럼에서의 연설 도중 중국에서 ‘장사를 하려면 먼저 친구가 되라(先做朋友 後做生意)’를 중국어로 말해 박수를 받았다. 셋째 날 칭화대학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한 연설에선 관자(管子)의 말을 중국어로 인용해 주목을 끌었다. 바로 “한 해의 계획으론 곡식을 심는 것보다 나은 게 없고(一年之計 莫如樹谷) 십 년의 계획으론 나무를 심는 것보다 나은 게 없다(十年之計 莫如樹木). 백년의 계획으론 사람을 심는 것보다 나은 게 없다(百年之計 莫如樹人)”는 대목.
이에 반해 시진핑 주석은 한·중 양국의 돈독함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최치원의 시 범해(泛海)에 나오는 “푸른 바다에 배를 띄우니 긴 바람이 만리를 통하네(掛席浮滄海 長風萬里通)”를 인용했다. 또 시진핑은 한·중 관계 발전을 기원하는 의미의 시구가 담긴 서예작품을 박 대통령에게 선물했다. 작품은 당(唐)대의 시인 왕지환(王之渙)이 쓴 ‘관작루에 올라(登觀雀樓)’다. ‘해는 서쪽으로 기울고 황하는 바다로 흐른다. 천리를 내다보려는 자는 한 계단 더 오르라(白日依山盡 黃河入海流 欲窮千里目 更上一層樓)’.
지난 10월 APEC 정상회의 때 우리 국민들은 朴대통령이 나란히 앉은 아베와는 눈길 한번 안 마주치면서 시진핑엔 '한 계단 더 오르라(更上一層樓)'는 시(詩)귀를 인용하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언론 매체를 통해 접했다.
특히 이 자리에서 "북핵 보유를 반대하며 북한의 추가적 핵실험을 결연히 반대한다"는 시 주석의 분명한 발언을 끌어낸 것은 대북문제에 있어 한․중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공통된 입장을 견지하고 있음을 재차 확인했다는 평가다.
한·중 양국의 발전이 한 단계 더 성숙되기를 기원하는 한국인의 바람이다. 두 나라가 영원히 이웃해 살 수밖에 없는 운명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따라 ‘등관작루(登觀雀樓)’가 ‘미국의 거대한 국력(白日)은 중국(山)에 가려져 점차 쇠퇴하며/이제 중국(황하)은 21세기(海)를 선도하는 것을/수천여 년의 역사를 궁리해 보면/한 단계 높아진 안목으로 이 흐름을 알게 되리라’로 읽히는 것을 어찌하랴.
[수필가 백암 / 이경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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