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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에 흐르는 ‘도산괴담(倒産怪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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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10.27  22:2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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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때는 광우병 괴담과 FTA 괴담이 발목을 잡더니 박근혜 정부 들어서 는 청계천 물길 따라 ‘기업도산’ 괴담이 일고 있다. 앞에 두 괴담이 근거나 이론도 없는 애들 말장난 이었다면 청계천 괴담은 풍수(風水)를 배경에 깔고 있다.

1985년과 1999년 각각 국제그룹과 대우그룹이 분해됐을 때, 두 그룹의 본사가 있던 서울 용산과 서울역 주변의 풍수가 입방아에 올랐다. 역사적으로 외세의 군사 주둔지였던 용산은 지기(地氣)가 강해 국제그룹이 결국 군사정권의 칼을 맞았다는 괴담, 서울역 동쪽 지역은 지형상 건물이 해가지는 서쪽을 향하는 형상이라 대우그룹도 결국 낙조(落照)할 수밖에 없었다는 괴담이다. 이런 괴담은 같은 지역에 있는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경제계를 휘돌아 '용산 잔혹사(史)', '서울역 잔혹사'라는 스토리까지 만들어냈다. 서울역 주변에 본사를 둔 CJ그룹 총수가 구속되고 STX그룹이 법정관리에 들어갔을 때도 그랬다.

이번엔 비슷한 풍설이 서울 청계천을 두고 솔솔 나오고 있다. 청계천 변에 본사를 둔 SK와 한화가 총수 구속으로 어려움을 겪고 작년 본사를 청계천 변으로 옮긴 동양그룹이 자금난으로 공중분해 위기에 몰리자, "청계천 역시 기업하기 어려운 풍수가 아니냐"는 것이다. 호사가들은 워크아웃 중인 금호아시아나 그룹과 총수 모자(母子)가 함께 구속된 태광그룹(흥국생명)의 불운도 괴담에 함께 엮는다. 두 사옥이 있는 신문로는 청계천의 상류인 백운동천(川)이 흐르던 곳이다. 일제 강점기와 1970년대를 거치며 복개됐지만 수맥(水脈)이 살아있다면 똑같이 불길한 기운을 받는다는 것이다.

청계천 풍수를 둘러싼 괴담은 청계천 복원의 방식과 관련돼 있다. "하류의 한강물을 상류로 끌어올려 흘리는 방식이기 때문에 물길이 자연을 역류하고 있다. 그래서 불길한 풍수"라는 주장이다. 한 환경운동가는 이를 두고 "한강물을 거꾸로 올려 물을 흐르게 하니 혈류를 역류시키는 꼴이라 경제가 시들며 망할 도리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혹여 이명박 대통령을 겨냥한 말은 아닐까.

"청계천의 맑은 물이 풍수의 길한 기운을 만든다"는 사고는 도성(都城)의 풍수를 매우 중시한 조선조 때부터 이어졌다. 그래서 왕조는 서슴없이 물길에 손을 댔다. 고려시대까지 이름 없는 자연하천이었던 청계천이 명당수로 자리한 것은 조선 개국 이후였다. 명당수란 왕조가 그 기운을 밝게 하기 위해 궁궐 가까이 둔 물길이다. 경복궁 서북의 백운동에서 발원해 서울의 도심부를 관통하며 중랑천에 이르는 13.7㎞의 청계천은 그 입지 때문에 조선시대 '내명당(內明堂)'으로 불렸다. 조선시대 한강은 '외명당(外明堂)'으로 자리했다.

조선조는 내명당에 맑은 물이 흐르도록 청계천을 깊고 넓게 팠다. 대표적인 공사는 태종과 영조 때였다. 태종 11년(1411년) 조선조는 5만2800명을 동원해 청계천을 정비하는 대규모 공사를 벌였다. 영조 때인 1760년엔 57일간 21만 명을 동원해 개천 폭을 넓히고 석축을 쌓고 수로를 직선화했다. 이것이 현재 청계천 수로의 원형이다. 예부터 청계천의 풍수는 그곳에 사는 사람과 친해지기 위해 자연 그대로가 아니라 인위적으로 조성된 것이다.

청계천(淸溪川)은 일제가 붙인 미명(美名)처럼 항시 맑은 물이 흘렀을까? 그렇지 않았다. 태종이 자연하천을 넓혀 판 인공 배수로였기에 '개천(開川)'이라 명명했지만, 만든 직후부터 장마철이면 흙탕물이 집과 사람을 삼키곤 했다. 그럼에도 세종 이후 200년간 준설은 없었다. 광교(廣橋) 아래 모든 물길이 메워져 버린 영조 때에야 천변(川邊)에 석축(石築)을 쌓고 토사를 퍼냈으며, 표석을 세워 준설의 기준점을 세웠다. "공경대부와 서민을 막론하고 개천이 막히지 않고 잘 흐르게 해야 한다"는 영조의 당부는 1908년까지 지켜졌다. 그러나 일제는 1918년까지 2, 3년 주기로 행해진 준천(濬川)을 하지 않았고, 빈민들이 모여들면서 청계천은 시궁창이 되고 말았다. "떼를 지어 빨래하는 것을 볼 때 마음이 불쾌하다. 걸레를 빨아도 더러운 물에 의복을 빠니 이 얼마나 비위생적이냐"라고 개탄한 1928년 1월 20일자 동아일보 보도는 시대를 증언한다.

청계천 변은 2005년 청계천 복원 이후 서울의 새로운 비즈니스센터로 변모했다. 50대 그룹 중 6곳이 이곳에 본사를 두고 있다. 청계천 북쪽보다 남쪽이 집중적으로 개발돼 대기업의 건물 상당수는 청계천을 북쪽에 두고 자리하고 있다. 이런 모양으로 진행된 청계천 개발은 용산 개발과 맞물리면서 "앞으로 서울의 빈부를 가르는 말은 '강남·강북'이 아니라 '천남(川南)·천북(川北)'이 될 것"이란 이야기도 한때 돌았다. 청계천을 사이에 두고 '천북'은 권력(청와대), '천남'은 자본의 센터로 마주하게 된 것이다.

우연일까. 조선시대에도 청계천은 도성 내부를 권력과 재력으로 거의 정확하게 양분했다. 청계천 북쪽으로는 궁궐과 종묘사직, 주요 관청이 들어섰고 남쪽으로는 중인과 하층민의 민가와 상업 지대가 들어섰다. 계급적으로는 천북은 권력을 쥔 양반들이, 천남은 몰락한 양반이나 기술관료·장인·역관·상인들의 터전이 됐다.

지금 2013년은 한국 경제가 위기를 또 하나 맞고 있다. 그룹 반열에 올라 있는 대기업이 하나씩 무너지고 있다. 웅진. STX. 동양그룹이 차례로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샐러리맨 신화 중 하나였던 박병엽 부회장의 팬택도 적자를 견디지 못하고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또 다른 중견 대기업들이 다음 타자로 아웃될 처지에 있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는다. 이런 사실의 ‘부도 도미노’는 1977년에도 겪은 적이 있다. 당시 한보철강, 삼미, 진로, 대농, 기아, 해태 등이 연속적으로 무너지면서 그해 말 한국은 IMF(국제통화기금)에 치욕적인 구제 금융을 신청했다.

1997년의 부도가 성장시대에 취해 대기업이 과다한 차입과 방만한 경영을 한 탓이라면, 올해 진행되고 있는 대기업의 몰락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은 기업들이 백기를 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STX와 팬택은 조선. 휴대폰 등에서 중국의 저가 공세를 견디지 못했고, 웅진과 동양은 글로벌 시장에서 비즈니스 모델을 발견하지 못하고 국내의 과잉 업종에 뛰어들었다가 넘어진 경우다.

경제 전문가 가운데는 지금이 외환위기 때보다 더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외환위기 당시에는 보이지 않았던 중국 변수가 현실화 됐다는 의견이다. 외환위기 직후에는 아직 중국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글로벌 무대에 등장하지 않아서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지만, 지금 우리 대기업들은 무섭게 치받고 올라오는 중국 기업들에 막혀 곳곳에서 좌초하고 있다.

한 마디로 말해 지금 한국 경제는 풍수(風水) 때문이 아니라 ‘뜨거운 냄비 속의 개구리’ 신세인데 위기의식조차 없다는데 문제가 있다.
[수필가 / 이경순 전 KMI 연구위원]

※ 본 원고 내용은 본지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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