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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의 불편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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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11.10  20:4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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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물은 시대정신이 담긴 그릇이다. 1961년 10월 착공해 이듬해 12월 모습을 드러낸 6개동 450가구의 마포아파트는 광복 후 최초의 단지형 아파트였다. 주거문화의 혁명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자, '조국 근대화'를 내건 산업화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상징이었다.

"인구의 과도한 도시 집중화는 주택난과 택지가격의 앙등을 초래하는 것이 오늘의 필연적인 추세인 만큼 앞으로 공간을 이용하는 고층아파트 건립이 절대적으로 요청되는 바입니다." 마포아파트 준공식에 참석한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의 식사(式辭)가 말해주 듯, 당시 정부는 주택문제를 풀 돌파구를 아파트에서 찾았다.
그러나 둘러친 외벽 안에 도로는 물론 놀이터와 공원을 갖춘 단지형 아파트는 입주 초 열 집에 아홉 집이 빌 정도로 인기가 없었다. 근대적인 겉모습과 달리 계단으로 오르내려야 했고 연탄가스 중독 위험이 도사리고 있던 9평에서 16평 남짓 작은 아파트가 '콘크리트로 지은 판자촌'으로 비쳤던 까닭이었다.

하지만 매년 50만 명이 넘는 이농(離農) 인구의 무작정 상경으로 아무리 집을 지어대도 모자랐던 1960년대 이후 서울의 주택난을 풀 묘수는 아파트밖에 없었다.
33명의 목숨을 앗아간 와우아파트 붕괴 참사(1970년)에도 불구하고, 이촌동·압구정동·잠실 등 한강 남북을 가르는 강변에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솟아난 아파트는 대단지화와 고급화에 힘입어 1980년대 말 상계동과 목동까지 세를 넓혔다.

근대화된 주거의 대명사로 등극해 선호도에서 단독주택을 압도한 아파트는 1990년대 이후 경기도 분당과 일산 등 신도시는 물론 전국의 읍면 지역까지 뿌리를 뻗치기 시작해 '아파트 공화국'의 도래를 알렸다. 도시 주변 벼가 자라던 논과 채마밭이 성냥갑 같은 콘크리트 구조물의 밀림으로 변한 2010년 처음으로 거주가구 수에서 아파트(41.1%)가 단독주택(37.2%)을 제치는 신기원을 열었다.

그러나 '집 가진 가난뱅이'라는 뜻의 '하우스 푸어(house poor)'라는 신조어가 상징하듯, 한때 사회적 지위의 과시적 상징이자 부(富)의 축적 수단이었던 아파트는 지금은 팔고 싶어도 팔리지 않는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이제 우리의 눈에 아파트는 일상화된 목욕문화, 가사노동 경감, 자산가치의 상승, 인터넷 강국이란 선물을 안겨 준 반면 이웃과의 단절, 양도차익을 노린 투기 열풍, 턱없이 짧은 집 수명으로 인한 환경파괴라는 값비싼 대가도 치르게 한 두 얼굴의 야누스로 비친다.

놀이공원에서 롤러코스트를 타면 출발해서 돌아올 때까지 3단계로 비명이 달라진다. 출발점에서 정점까지는 사람들이 “아아아...”하고 가느다란 비명을 지른다. 정점에 멈추면 “어으윽...”하고 여기저기서 신음을 삼키다.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자지러지는 건 그 다음이다. “아아아 아아악!” 롤러코스트가 정점에서 바닥으로 몸을 틀며 메다꽂는 바람에 모두 사람이 혼비백산한다. 나는 우리나라 집값이 꼭 롤러코스트 같다고 생각한다.

IMF 외환위기 후 첫 10년 동안 우리나라 집값은 숨 가쁘게 솟구쳤다. 아무 이유 없이 한 달 만에 1억 원씩 오른 집이 서울 강남에 수두룩했다. 집값이 정점을 찍은 건 2008년이다. 그 뒤 5년째 우리나라 집값은 롤러코스트처럼 떨어져 내리는 중이다. 그럼 이다음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지금 오가는 논의는 다양하지만 그 밑에는 하나같이 ‘집값이 떨어지는 건 큰일’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정말 그런지 나는 가끔 의문이 든다.
IMF외환위기 이후 부모의 재력이 사교육 격차를 낳고, 사교육 격차가 학력 격차로 증폭되다가 대학 졸업 후에는 취업 격차로 연결되는 현상이 굳어졌다. 간신히 취업을 해도 ‘집값’이라는 거대한 진입 장벽이 다시 한 번 젊은이를 주저앉힌다.

부모 세대 중에는 가진 거라곤 평생 걸려 구입한 집 한 채가 전부인 사람이 많다. 앞으로 집값이 더 떨어질 거라고 생각하면 당연히 괴로울 것이다. 하지만 그 반대 가정도 해봐야 한다. 집값이 영영 안 떨어진다고 치자. 그럼 지금 중. 고등학교 다니는 아이들,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들은 이다음에 어떻게 자기 살림을 꾸려야 하나? ‘반값 신혼집’이라도 뿌려야 하나?

우리는 모두 ‘내가 집 살 때까지는 집값이 안 뛰다가 내가 산 다음에는 쑥쑥 올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렇게 오른 집을 피눈물 흘리며 구입해야하는 ‘다음 손님’이 바로 우리 아이들이다.

집값이 롤러코스트처럼 곤두박질치는 것도 재앙이지만 그 반대도 재앙이다. 노인이 늘고 젊은이가 줄어드는데 영영 지금 가격이 유지될 리 없다. 설사 유지된다 한들 그건 그것대로 다음 세대에 큰 민폐다.

집값이 떨어졌다는 지금도 우리나라 소득대비 주택 가격(PIR)은 뉴욕. 도쿄. 런던보다 훨씬 더 높다. 17세기 초반 네덜란드에서 ‘튤립 투기’가 불길처럼 일어나 명품 튤립 한 뿌리에 저택 한 채 값이 왔다 갔다 한 적이 있다. 그 열풍이 꺼졌을 때 네덜란드 전체가 휘청거렸다. 안 꺼졌으면 더 끔찍했을 것이다.
[수필가 / 이경순 전 KMI 연구위원]

※ 본 원고 내용은 본지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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