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대남 편집위원
촛불과 태극기의 함성속에 얼룩진 지난 한해가 저물고 적색 기운을 상징한다는 붉은 닭의 해, 정유년(丁酉年)을 맞으며 우리네 삶과 관련된 세간에 나도는 온 갖 풍자들이 필자의 뇌리를 스친다. 
요즘 세상에 우선 '나'를 두고서도, "남을 속이는 사람보다 더 나쁜 사람은 나를 속이는 사람이고, 남을 믿지 못하는 사람보다 더 불쌍한 사람은 나를 믿지 못하는 사람이며, 남의 위로를 받지 못하는 사람보다 더 슬픈 사람은 나를 위로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자탄하는 목소리가 폐부를 찌른다.
 
노동과 근로의 불공평 댓가를 수저타령만 하는 젊은이들에 대한 경종으로  "새는 가벼워서 공중에 뜨는 게 아니다. 날개짓을 하기 때문에 뜨는 것이다. 치타는 다리가 길어서 빨리  달리는 게 아니라 있는 힘을 다해 달리기 때문에 빨리 달리는 것"이라고 따끔히 일침을 놓는 말도 유행한다.
특히 소모성 논쟁과 싸움만 일삼는 정국을 보고 "싸움을 하면 옷의 단추만 떨어지는 게 아니라 자신의 인격도 떨어지고, 싸움을 하면 자신의 몸에 상처만 남는 게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도 상처가 남고 자기의 힘뿐만 아니라 시간도 소비되고, 증오만 남는 게 아니라 후회도 남는다"고 나무라기도 한다.
 
그리고 "개가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면 고양이는 꼬리를 내리고, 개가 꼬리를 내리면 고양이가 이빨을 드러내고 덤벼들 듯, 내 마음이 용기를 내어 몽둥이를 들면 세상은 꼬리를 내리고, 내 마음이 꼬리를 내리면 세상은 몽둥이를 들고 내게 덤비는 게 요즘 세상"이라고 개탄한다.
또 "과묵한 남자가 하는 말은 가뭄 뒤의 비와 같고 수다쟁이 여자가 하는 말은 장마 뒤의 비와 같다", "인기없는 연예인이 불쌍하고, 밑천없는 장사꾼이 불쌍하고, 사랑없는 부부가 불쌍하고, 갈 곳 없는 노인이 불쌍하고 인정없는 부자가 불쌍하며 특히 용기없는 젊은이가 불쌍하다"고 꼬집고 있다.

요즘 "개같다!" 는 말도 인격비하 보다 한밤에 옆집 개가 짖으니 잠자던 이웃 개들이 까닭도 모른 채 그냥 따라 짖기 경쟁을 하는 무리를 일컫는 뜻으로 바뀌었다는 말을 듣고 "太陽에 바래면 歷史가 되고 月光에 물들면 神話가 된다" 던 '나림(那林), 이병주(李炳注/1921~1992)'선생의 글이 문득 생각난다.
와세다대(早稻田大)를 거쳐 메이지대(明治大)를 졸업후 교육계와 언론계에 종사했다. 늦은 나이 44세에 첫 작품 '소설.알렉산드리아'로 문단 데뷔, 작가의 길에 접어들어 '지리산(智異山)'과 '산하(山河)'에 이르기까지 중장편 80여 작품을 남겼고 진주농대와 해인대 교수, 외국어대와 이화여대 강사, 그리고 국제신보 편집국장.주필도 역임했으며 5.16 필화사건으로 옥고도 치렀다.
 
'이병주,우리의 역사를 위한 변명'저서 <대통령들의 초상>에서 이승만(李承晩), 박정희(朴正熙), 전두환(全斗煥) 세 대통령을 나란히 그렸다. 저서 내용보다  긍정적 대통령관이 필자를 감동시킨 기억이 새롭다. '역사는 과학을 동경한다'는 제하의 플로로그에서 이는 일체의 역사 현장을 과학적으로 이론 정연하게 풀이하고 기록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소망이 담긴 말이라고 했다.
그러나 아마 동경으로 끝나고 그 소망은 끝끝애 불모(不毛)인 채 남은 것은, 코르시카 출신의 나폴레옹이 수많은 본국인을 제치고 어떻게 프랑스의 황제가 될 수 있었을까 하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풀이하고 기록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나폴레옹적 현상만이 아니고 대소를 막론하고 역사현상이란 착잡다기한 인과의 축적으로서 나타나는 것이어서 어떤 변증법, 어떤 과학적 방법으로서도 기껏 해명의 근사점에 접근할 수 있을 정도로서 끝난다고 했다. 근사한 해명은 완전한 해명이 아니며 과학적 해명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일종의 오만이거나 특정한 정치적 의도를 노출한 것이 된다고 밝혔다.
"세 대통령을 병치해 놓고 말하고저 하는 것은 좋으나 궂으나 그분들이 한때 우리의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이다. 만일 그들이 어느 조작된 통념 그대로 나쁜 대통령이었다면 우리는 불행한 국민"이라 했다.
 
플로로그는 이어 "그분들이 통치한 세월은 암흑의 나날이다. 그런 나날을 꿈쩍도 못하고 살아 왔다면 그 사실만으로 우리 민족은 수치스러운 존재일 뿐이다. 과연 해방 후의 우리의 시간, 즉 세 분 대통령 치하에서 살았던 세월이  민족의 역사에 암흑가로  기록되어야  하는가. 해방 이후 이날까지 살아 온 우리 민족이 과연 비굴하고 무의지하고 수치스러운 국민이었던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고 결론, 필자가 자주 듣고 익혀 인용하는 바로 그,   "역사는 절차를 생략하지 않는다"는 사고처럼 묻혀버린 역사에 대해서는 비교적 관대하게 기술했던 것 같아 태양에 바래면 역사가 되는 의미를 터득했다.
 
이 대통령은 살아생전 극단한 영욕 속에 있었고 권력욕에 눈이 어두운 친미 사대주의 취급은 황당한 욕설이며 한국을 위해 미국을 이용한 사람이지, 미국을 위해서 한국을 이용한 사람도 아니며, 한국의 이익을 위해선 미국에 대해 촌보의 양보도 없었던 사람이라고 평했다.
공을 높이고 과는 후에 따지기로 하자며 '서른에 고향 떠나 일흔에 돌아왔다(三十離鄕七十歸). 구주, 북미 떠돌던 일들이 꿈속에 서렸다(歐西美北夢依依), 제집 돌아온 오늘 되레 손님같은 느낌에(在家今日還如客), 가는 곳마다 마중은 나와도 낯익은 얼굴은 귀하다(到處逢迎舊面稀)'고 읊었다고 회고했다. 
 
박 대통령에 대해선 '탓 할 것이 있다면 그건 운명이다'란 내면 표지를 시작으로 새재(鳥嶺)의 험준한 산자락 속에 안겨있는 후미진 소읍 문경 보통학교 교사 시절, 그의 하숙방에  나폴레옹 초상화 사진이 걸려 있었다고 한 제자의 회고담을 인용하며 K신문 편집국장 겸 주필시절 박정희 소장을 첨 봤단 얘기는 필자가 부산 고교시절 공설운동장 행사와 향우회에서 본 기억과 때를 같이 한다.
그의 일체를 부정하더라도 경제정책에 관해서만은 괄호 속에 묶어서라도 긍정하고픈 마음이 간절했고 공과 죄로서 따질 문제의 대상이 아니라 문제로 해야 할 것은 '박정희에 있어서의 죄와 벌'이라 했다.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어떤 사상(事像)에나 있게 마련인 '진실'을  쉽게 파악할 수 없는 것은 우리가 지닌 견식의 한계, 이해타산에 따른 왜곡된 시각, 그리고 감정적인 경사 때문이며  전 대통령 경우도 예외일 수 없고 물가안정 업적 외에 그의 진실은 평화적 정부 이양을 완수한 최초의 대통령이며 재임시의 잘못으로 지적된 일에 대해 경건하게 국민 앞에 사과한 최초의 대통령이라고 피력했다.
한이 많아 글을 쓴다던 나림은 두번이나 백담사를 찾아간 심정도 기록으로 남겼고 '92년 타계 전까지 이.박.전 세 대통령과 두루 친교했고 고향 하동에 문학관, 섬진강의 시비가 그를 영원히 기리고 있다.
 
 '대통령의 초상' 에필로그에서는 200여년 전 미국을 건국한 조상들이 대통령제를 만들었을 때 유럽의 궁정 정치인들은  철딱서니 없는 미국인들이 엉뚱한 실험을 하려고 하는데 과연 얼마 동안이나 계속될 것인지 지켜보잔 심사였다고 했다. 강력한 대통령이라면 국민의 의사니 헌법이니 하는 것 따위를 무시하고 종신집권을 서두를 것이고 약한 대통령이 등장한다면 혁명 사태를 일으켜 임기 전에 축출하고 말 것이란 짐작은 빗나갔다는 것. 미국이 창출한 위대한 정치문화, 대통령제와 정당정치는 반석위에 섰고 당서기니 서기장이니 하던 소련마저  대통령제로 바뀌고 황제, 군주, 국왕도 대통령제 앞에선 빛 바랜 이름이 되고 만 것이다. 

그리고 나림은 이런 기록을 남겼다. 1974년 9월8일, 워싱턴의 조용한 아침이었다. 교회에서 백악관으로 돌아온 포드 대통령은 당직중인 몇몇 신문기자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는 폭탄선언을 내렸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소추 대상이던 전직 대통령 닉슨에 대한 무조건 사면을 성명한 것이다. 그가 한 결정은 당 지도자들, 국회의원들, 심지어 워터게이트 사건을 맡은 담당 검사들과도 사전 논의없이 내려진 것이었다. 공보비서의 즉각 사임, 상하 양원과 언론의 빗발치는 비난의 화살에도 ​포드는 의연하게 닉슨을 옹호했다. 그래서 '역시 미국은 위대한 미국일까? 저러고도 과연 미국일까?' 다.   
 
 <서대남(徐大男)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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