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인현 교수
‘한진해운 사태’가 발생한 지 1년이 지났다. 한진해운의 연간 매출 8조원은 사라졌고, 우리 수출입화물의 ‘고속도로’ 역할을 하던 국적 정기상선대는 더 이상 유럽과 미국 동부에는 다니지 않게 됐다.

아이러니컬하게도 2011년과 2013년 법정관리에 들어갔던 대한해운과 팬오션은 모두 회생절차에서 살아나 순항하고 있다. 재정상태가 나빠 법정관리에 들어간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대한해운과 팬오션은 살아남았고 한진해운은 파산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들 두 회사는 부정기선사이고 한진해운은 정기선사란 점에서 다르다. 정기선사는 복잡한 물류네트워크를 가지기 때문에 영업구조가 단순한 부정기선사와는 달리 회생절차가 개시되면 아주 큰 손해가 발생한다. 이에 대한 이해와 대비가 부족했던 것이 이런 큰 차이를 낳았다.

한진해운이 지난해 8월31일 회생절차를 신청하자 하역회사들이 밀린 하역비, 터미널 운영비, 컨테이너 박스 처리비 등의 현금지급을 요구하면서 한진해운 화물의 하역작업이 이뤄지지 않았다. 또 선박이 가압류되지 않도록 다른 항구로 선박을 이동시켜 화물을 내려둠으로써 원래 장소로 이동해야 하는 비용도 발생하게 됐다. 이로 인해 수조원의 클레임이 발생하게 됐다. 지연손해는 배상받기가 쉽지 않지만 시장에서는 한진해운의 부채가 회생절차 신청 시보다 몇 배가 늘어난 것으로 이해됐다. 이런 인식은 한진해운을 인수할 회사가 나타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한진해운은 2016년 6월 말 부채가 6조원 정도로 보고됐는데 회생절차를 거치면서 30조원으로 불어난 채로 채권신고가 됐다. 회생절차 개시 결정 이후에 빚이 4~5배 늘어나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정기선해운은 사전에 잘 준비하지 않으면 회생절차에서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발생한다는 교훈을 던져준 것이다. 우리는 또 다른 정기선사였던 조양상선이 2001년 파산한 사건에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한 채, 세계 7위의 한진해운을 잃고 말았다.

한진해운 사태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는가. 먼저, 개별 정기선사들은 법원의 회생절차개시 결정 이후 외국항만에 입항한 자사 선박이 가압류되지 않도록 압류금지명령(스테이 오더)을 신청할 준비를 해야 한다. 둘째, 화물이 제대로 화주의 손에 들어가도록 하역비, 항만사용료 등 현금을 준비해두고 있어야 한다. 셋째, 다른 항구에 화물을 하역하는 경우 안전한 이동을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와 업계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 먼저, 정기선해운은 우리나라 수출입을 위한 바다의 고속도로이기 때문에 공익적인 성격을 띠므로 엄중한 보호조치가 필요하다는 점에 인식을 같이해야 한다.
정기선해운사가 회생절차를 신청하는 등의 경우에 대비해 ‘정기선 정상화 민간비상기금’을 마련하고, 물류 지연 등으로 인한 불필요한 채무가 발생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이렇게 선제적으로 대응했더라면 한진해운의 채무는 회생절차 기간에 그렇게 크게 늘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한진해운의 물류망, 즉 대한민국의 수출입 고속도로가 망가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본 칼럼은 한국경제신문 9월 16일자에도 게재된 내용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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