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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대형 해운사, 삼성전자를 꿈꾸다(?)반도체 시장 데자뷰, 최근 해운시장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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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4.12  15:3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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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시장의 데자뷰, 최근 해운시장의 모습이라는 지적이 나와 주목된다. 2000년대 후반 이후 선두권 반도체 업체들은 설비투자와 기술개발 경쟁으로 치킨게임에 나서면서 한계기업들을 압박했다. 결국 많은 중소업체들이 시장에서 퇴출됐고, 살아남은 3개 업체(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가 시장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시장 확대의 과실을 오롯이 누리고 있다. 컨테이너 정기선 시장에서도 치열한 치킨게임과 과점화 추세가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선사들의 합종연횡으로, 2000년 35%에 불과했던 상위 5개사 시장점유율은 2017년 62%까지 상승했고, 3대 얼라이언스(2M, OCEAN, THE Alliance)의 점유율은 84%에 달하고 있다. 시장은 대형선사와 대형 얼라이언스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반도체 산업이 걸어온 길은 대형 컨테이너 정기선사들이 그리는 큰 그림이며, ‘가고 싶은 길’이다. 대형선사들은 해운업계의 삼성전자가 되기를 꿈꾸고 있을 지도 모른다고 한국기업평가는 밝혔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컨테이너 선사들은 과거에도 대형선 발주와 M&A로 꾸준히 성장해 왔지만 최근에는 대형화, 과점화 추세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2010년대 초반부터 촉발된 해운 시장의 치킨게임1은 많은 선사들에게 큰 상처를 남겼고, 선사간 양극화를 심화시켰다. 한진해운은 시장에서 거칠게 퇴출됐고, 살아남은 선사들은 대형 해운사의 그늘에 들어가거나 조인트벤처 등으로 부족한 역량을 보완하고 있다. 이런 합종연횡의 결과, 상위선사들의 시장지배력은 계속 상승하고 있다.

   
 
2000년 35%에 불과했던 상위 5개사 점유율(선복량 기준, Clarkson)은 2017년 62%까지 상승했고, 3대 얼라이언스(2M, OCEAN, THE Alliance)의 점유율은 84%로 시장은 대형선사와 대형 얼라이언스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얼라이언스에 편입되지 못하면 세계 주요 항로에서 더 이상 생존이 어렵게 되었다. 경쟁의 파고 속에서 주요 해운사들의 영업실적은 어느 산업보다도 크게 출렁거렸다. 업계 최상위권인 Maersk와 CMA CGM의 영업실적도 오르내리기를 반복했고, 비용 구조가 열위한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영업실적은 더욱 크게 널뛰었다.

이러한 경쟁 과정은 과거 연출되었던 반도체시장의 치킨게임을 연상시킨다.
2000년대 후반 이후 반도체 시장에선 경제‧경영 수업의 단골 소재가 되는 전형적인 치킨게임이 전개됐다. 2006년 DRAM 시장의 호황으로 유동성이 풍부해지자 많은 반도체 업체들이 공격적인 투자를 감행했다. 규모의 경제가 중요한 산업에서 각자 시설 확충을 위한 경쟁을 개시한 것이다. 하지만 2007년 과잉 공급으로 DRAM 가격이 폭락하면서 대다수 업체의 실적이 급락하였다. DRAM 시장에서 세계 3위까지 오른 독일의 키몬다는 PC 생산 감소로 인한 수요 위축과 금융위기에 따른 가격 하락을 견디지 못하고 2009년 파산신청했다.
반도체 업체들의 설비투자가 감소하면서 2009년 이후 시장은 회복되는 듯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계속해서 기술개발과 설비투자를 진행하며 한계기업들을 압박했다. 2012년에는 일본의 엘피다가 엔화강세와 가격하락을 버티지 못하고 파산하면서 마이크론에 인수됐다.
이러한 과정에 반도체 시장에서도 다양한 동맹관계가 시도되기도 했다. 독일의 키몬다와 대만 난야, 윈드본드가 동맹이 되고, 일본의 엘피다와 대만 파워칩이 제휴했다. 하이닉스와 프로모스가 함께 손을 잡기도 했다. 치열한 경쟁 환경은 기업들의 합종연횡을 부추겼다. 하지만 결국 많은 중소 반도체 기업이 시장에서 퇴출되거나 M&A를 통해 흡수되었다. 1990년대 상위 10개 업체가 80%의 시장점유율을 보였으나 최근에는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단 3개 업체(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가 시장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치열한 치킨게임이 마무리된 반도체 산업은 최근 과점화된 시장에서 호황을 맞이하였고, 승자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확고한 과점 지위 하에서 시장 확대의 과실을 오롯이 누리고 있는 것이다.
대형 컨테이너 정기선사들도 이런 반도체 산업의 변화를 큰 그림으로 치킨게임의 승자들이 걸어온 길을 따라가고 싶을 것이다. 모두들 해운업계의 삼성전자가 되기를 꿈꾸고 있을 지도 모른다.

컨테이너 정기선 시장에서 과점화의 방향성은 명확하다. 개별 기업 단위에서 생존과 성장을 위해 선박을 대형화하고 선대를 확장하는 모습은 뚜렷하다. 이와 함께 수출입 규모가 큰 주요국들은 국가 경제의 기반인 자국의 해운 서비스를 지키기 위해 항시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보란듯이 보조금과 금융지원을 제공하고 있으며, 유럽 각국도 물심양면으로 지급보증이나 금융차입을 지원해왔다. 일본의 경우에도 저리에 차입을 지원했다.

세계 각국은 국가 단위의 지원으로 기업들의 대형화 의지를 지지하면서 해운 시장이 자국선사를 중심으로 안정화되기를 바라고 있다. 국가 경제에 있어 그 필요성을 강조하며, 주요 수출국들은 각기 대형 국적해운사를 보유하고 얼라이언스를 통해 세계 무역 지도를 완성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대형 국적해운사를 보유하고 있지 않지만, 세계 시장에서 갖는 경제적/정치적인 힘을 기초로 자체적인 수출입 물량과 반독점규제를 통해 안정적인 해운 서비스를 확보하고 있다.

다만 과점화 경쟁이 끝나고 시장이 안정화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남아 있다. 보다 큰 영향력을 원하는 국가들이 있고, 생존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기업들도 있다.

중국은 일대일로 정책의 연장선에서 COSCO를 전면에 내세워 해운업 패권 강화에 나서고 있다. 중국 국영선사인 COSCO는 먼저 중국 내 해운사인 China Shipping을 합병했고, 홍콩의 OOCL도 인수하면서 세계 3위 자리를 노리고 있다. 또한 대형선 발주를 통한 선대 확장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2017년말 기준 발주 잔량은 50만 TEU로 전체 선복량 182만 TEU 대비 27%의 높은 잔량을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항만 터미널 관련 투자에도 적극적이다. 2017년 Abu Dhabi(UAE), Noatum Port(Spain), Zeebrugge(Belgium)에 투자하는 등 전세계 35개항 179개 선석을 확보하고 있다.

2018년 4월에는 소속된 OCEAN 얼라이언스에서 “DAY TWO” 서비스를 개시하면서 선대 및 서비스 확장을 발표했다. 이는 2011년 Maersk가 내세웠던 데일리 머스크(Daily Maersk)를 연상시킨다. 당시 Maersk는 유럽 노선에 대규모 선대를 투입하며 점유율 경쟁을 촉발했고, 결국 동서항로의 운임하락을 가져왔다.

이런 다양한 투자와 전략을 실행하기 위해 COSCO는 2017년 10월 약 20억달러(RMB 12.9 billion) 규모의 증자(A-shares) 계획을 발표했고, 정부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풍부한 자국 해상물동량과 중국 정부의 강력한 정책적 지원을 기반으로 공격적인 전략을 펼치며 시장 지배력 강화를 그리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다른 주요 해운사들의 야망도 만만치 않다. CMA CGM도 시장점유율을 확대하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투자를 계속하고 있다. APL인수에 이어 COSCO 및 Evergreen과 OCEAN얼라이언스를 결성했을 뿐만 아니라 2017년에는 남태평양군도를 운항하는 SOFRANA, 브라질 내항 운항사인 Mercosul을 인수했다. 최근까지 초대형선박 투자도 이어가고 있다. 2017년 총 9척(약 14억달러)의 22,000TEU급 컨테이너선을 발주했는데 이는 현재 보유 선복량의 8% 규모이다. 그 외 발주 선박까지 포함한 발주잔량은 선복량의 11%(2018년 3월말 기준, Alphaliner)이다. 또한 PSA(Port of Singapore Authority)와의 조인트벤처를 통해 동서항로의 주요 거점인 싱가포르에 4선석 규모의 터미널을 확보하였으며, 중국기업과의 컨소시엄으로 카메룬 크리비(Kribi) 컨테이너 터미널에도 투자했다.

CMA CGM의 이러한 노력들은 가시적인 성과로 나타나고 있다. 2016년 하반기 이후 실적이 개선되면서 2017년 들어서는 세계 1위 선사인 Maersk 보다도 앞선 영업실적을 보여주고 있다. CMA CGM은 미주노선에 초대형 선박을 선제적으로 배치하였을 뿐 아니라, 미주노선에 강점이 있는 APL을 인수하고, COSCO와 얼라이언스를 결성하면서 태평양 시장에서 점유율이 상승했다. Back Haul 소석률도 개선된 것으로 파악된다. 이런 다양한 투자와 미주노선을 공략한 전략이 성공적이었다고 판단된다.

Maersk는 컨테이너 정기선 중심으로 사업을 개편하여 물류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2017년 사업 개편을 발표하며, 물류 부문에 역량을 집중하기 위해 에너지부문은 매각한다고 밝혔다. Maersk Oil은 Total 사로 74.5억달러에 매각하고 Maersk Tankers도 11.7억 달러에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Maersk의 에너지부문은 Maersk Oil과 Drilling, Supply Service, Tankers를 포함, 2016년 기준 그룹의 매출 중 24%, EBITDA는 63%를 차지하는 중요한 사업부문이었다.

Maersk는 정기선 사업과 관련하여 추가적인 투자는 자제하겠다는 신호를 지속적으로 보내고 있다. 최근 발주 잔량은 20,568TEU 6척 포함 총 20척, 2017년말 기준 보유선복 대비 7.2% 수준으로 산업평균 발주잔량 12.7% 대비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최근 실적 발표 시에도 더 이상 선박 대형화의 실익이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오히려 터미널 운영이나 내륙운송(트럭킹) 등 물류 시스템 통합을 통해 수익성을 개선할 것이라고 밝히며, 사업 전략의 변화를 강조하고 있다. 전세계 74개 터미널을 운영하는 세계 4위 운영사인 Maersk는 자회사 APM Terminals을 통해 2020년까지 이탈리아, 중미, 아프리카 등 5개 프로젝트를 추가로 진행하면서 터미널 부문 강화를 계획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Maersk의 영업실적을 보면 2016년 말 이후 수익성이 크게 낮아진 모습이다. 2017년에는 경쟁사 평균보다 낮은 수준에 머무르면서, 경쟁사 대비 5%의 EBIT 마진 갭을 유지하겠다는 경영 목표에서 멀어지고 있다. 선대 확장 등 무리한 경쟁을 자제하고자 하는 전략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으나, 최근의 실적 저하는 전략 수정을 고민하게 만들 수 있다. 에너지 사업 매각은 물류 사업에 집중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기도 하지만, 차후 경쟁 환경에서 물러서지 못하게 하는 배수진의 성격도 지니고 있다. 에너지 사업 매각을 통해 확보한 자금은 언제든지 전략을 변경하여 공격적인 투자에 나설 수 있는 실탄이 될 것으로 보인다.

MSC도 시장 내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2017년 국내 조선소에 발주한 선박(삼성중공업 6척, 대우조선해양 5척)의 경우 22,000TEU급으로 알려졌으나, 이후 설계 변경을 통해 24,000TEU급(23,356TEU, Megamax24)으로 변경됐다는 뉴스도 전해지고 있다. 18,000TEU 선박으로 촉발된 초대형선 경쟁은 20,000TEU, 22,000TEU를 넘어 24,000TEU급으로까지 확대된 것이다.

그 외 세계 주요 국가의 해운사들도 자국의 수출 산업과 해운업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일본 해운사들의 경우 침몰하는 컨테이너 부문의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 3대 선사(MOL, K Line, NYK)의 컨테이너 부문을 통합(ONE)하고 있으며, 대만 정부는 2016년 자국의 해운업계(Yang Ming, Evergreen)를 위해 신용 한도, 우대 금리 등 19억달러의 지원 패키지를 승인했다.

해운 시장의 중심에 서기 위한 경쟁은 계속되고 있다. 선박 대형화, M&A, 물류시스템 통합 등 가능한 모든 전략들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에는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송장 암호화/보안 이슈, 화주와 직접 연계된 운송 시스템 구축 등 기존 해운의 범위를 넘어서는 노력들도 시도되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가깝게 다가오는 위험 요인은 새로운 초대형선의 도입이다. 현재 컨테이너선 발주잔량은 268만TEU로, 전세계 선복량의 12.7%(2018년 3월말)이다. 이 중 47%가 초대형선박(15,000TEU이상, 126만TEU)으로 매우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지금 발주된 초대형선박들이 대거 인도되는 2019년을 전후로 또 한번의 고비가 올 수 있다. 새로운 선박의 소석률을 높이고, 점유율을 선점하기 위해 운임 경쟁에 나설 유인이 높아진다. 주도권 싸움이 시작되는 시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대형선사들은 아직 더 확장할 여지가 남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반도체 시장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격한 경쟁이 가져오는 불황은 한계 기업을 몰아낼 것이고, 남은 기업의 시장 지배력은 보다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추가적인 경쟁으로 얻을 수 있는 파이가 크게 줄어들 때까지 게임은 계속될 것이다. 게임의 승자는 확실한 시장 점유율을 가져가고, 나머지는 점차 해운시장의 중심에서 멀어진다. 최종적으로 3~4개 정도의 대형선사만 남을 수도 있다.

다소 험난하긴 하지만 이 길의 끝은 멀지 않아 보인다. 해운사들은 지금 그 끝에 놓인 북극성을 바라보며 나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 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반도체와 같은 호황이 기다리고 있을까?

과점화의 여정의 끝에는 분명 안정된 시장이 찾아올 것이다. 철강, 항공운송 등의 행로가 그러했고, 지금 반도체 시장도 그렇다. 현재 반도체 시장은 신데렐라 이야기의 결말만큼이나 가장 이상적인 결말일 것이다.
반도체산업의 경우 과점화에 따른 경쟁구조의 변화와 모바일 및 서버 등 수요 시장의 확대,  경기 회복에 따른 수요 증가, 기술 개발 속도의 저하와 신공정 도입의 수율 문제로 인한 공급 부족 등 최근 산업 및 시장의 구조적인 변화에 따라 공급자에 우호적인 환경이 펼쳐졌다. 하지만 최근의 환경 변화뿐 아니라 자본력, 미세공정 기술을 통한 가격경쟁력이라는 산업의 특성 또한 승자독식의 구조를 만드는 주요한 요인이 되었다. 결국 산업의 특징과 환경 변화가 만나 살아남은 자들에게 가장 이상적인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하지만 해운시장의 결말이 반도체 시장의 그것과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컨테이너 정기선 산업에는 반도체 산업과는 다른 특징들이 있다.

컨테이너 정기선 산업은 반도체 산업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낮은 진입장벽을 가지고 있다. 선박 1척으로도 사업이 가능한(영업 능력과 사업 경험이 있다면) 벌크선 산업과 비교하면 컨테이너 정기선 산업의 진입장벽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이 사실이다. 정기선 항로를 유지할 수 있는 일정 규모 이상의 선대가 갖추어져야 하며, 선복을 꾸준히 채울 수 있는 고정 거래처도 확보돼야 한다. 또 분산된 화주와 화물을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도 갖추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진입장벽이 반도체 산업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다.
컨테이너선 산업의 경우에는 자금력을 갖춘다면 선대는 짧은 시간에 갖출 수 있고, 시스템 및 거래처는 기존 산업 내 인력을 통해 빠르게 습득, 학습할 수 있다. 최근 SM상선의 시장 진입은 이러한 사례이다.

한편 해운업과 반도체 산업의 가장 큰 차이점은 비용 경쟁의 방식이다. 두 산업 모두 범용화되고, 차별화가 어려운 상품 또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 가격(비용)이 무엇보다 중요한 경쟁 요인이다. 반도체의 경우 규모의 경제를 위한 생산시설 증설과 R&D 투자를 통해 원가경쟁력 제고를 도모한다. 미세공정 개발과 양산 기술, 수율 향상 등 기술 진보는 원가 절감 차원에서 가장 중요한 경쟁력이다. 생산시설 투자를 위한 자본력뿐 아니라 이런 신기술 개발 비용의 증가는 동태적으로 높이 쌓여가는 진입장벽이 된다.
반면, 해운업에서 원가 절감 방안은 제한적이다. 컨테이너 해운업의 원가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터미널비용, 선박비용, 연료비 등을 절감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들이 시도되고 있는데, 최근 해운사들이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한 전략은 초대형선 도입을 통한 선박비용(고정비)의 절감이다. 이는 선박 대형화로 인한 과잉 공급과 소석률 확보를 위한 가격 인하를 가져와 스스로를 옥죄는 자충수가 됐다. 특히 초대형선은 선박 발주를 통해 타 선사가 쉽게 따라 할 수 있기에 강력한 진입장벽이 되지 못한다.
선박비용 외에 연료비나 터미널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저속운항, 물류 시스템 통합 등 다양한 방안들도 실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방안들도 모든 선사가 비슷한 전략을 구사하면서 차별화된 경쟁력이 되지 못하고 있다.

공급조절을 어렵게 하는 요인들이 있다. 경쟁적인 후방산업: 해운사에 선박을 공급하는 후방산업인 조선업은 2000년대 중반 생산능력이 급격히 확대됐다. 최근 업황 침체로 생산능력이 다소 감소했으나 여전히 경쟁적으로 선박 수주에 나서고 있다. 또 용선시장에서의 선박 확보도 용이하다. 반도체와 같이 생산기술을 독점적으로 보유한 것이 아니기에 해운 시장에는 상시적으로 공급이 대기하고 있다.
한진해운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해운업체는 부도 등으로 퇴출되더라도 운영 선박들은 대부분 다른 해운사에 매각되거나 리스사에 회수되어 다시 시장에 재흡수된다. 범용성을 지닌 선박이라는 자산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에 산업 내 구조조정을 통한 공급조절 능력이 약하다.
일반적으로 해운산업은 각 국가의 수출입 무역을 책임지는 기간산업으로 분류된다. 또한 유사시 선박 활용을 위해 안보의 시각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산업의 중요성으로 인해 일부 국가에서는 공기업의 형태로 존재하기도 하고, 많은 경우 보조금과 같은 정부지원을 받고 있다. 또한 무역 안정화를 위해 각국 정부에서 해운 독과점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이런 정부의 높은 관심과 관여는 한계기업의 퇴출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최근 반도체는 PC 뿐만 아니라 모바일과 서버로 수요시장이 확대되었다. 스마트폰 저변 확대와 빅데이터, 클라우드 서비스의 성장 등 새로운 기술의 확장은 반도체 산업의 호황을 이끌고 있다. 전방산업이 뚜렷한 가운데 이들 산업의 고도화와 성장의 효과가 직접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반면 해운의 경우, 특정 산업보다는 경제전반에 분산된 수요를 가지고 있다. 이에 따라 수요성장률은 경제성장률 수준(GDP승수=1)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00년대 중반, 슈퍼사이클이라 불릴 만큼 과도한 투기적 수요가 해운산업을 흔들어 놓기도 하였으나, 이후 공급 확대와 수요 안정화로 인해 더 이상 강한 수요 견인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게 되었다. 최근 경기 회복에 따라 성장률이 일부 개선되고 있으나 해운 수요가 과거와 같이 급격히 성장하지는 못할 것이다.

경쟁방식, 공급측면의 차이와 수요시장의 차이는 해운산업이 반도체 산업과는 구조적으로 차이가 있음을 보여준다. 경쟁력 차별화의 어려움, 제한적인 공급 조절 능력, 약한 수요 성장 등 해운 산업이 가진 한계점들이 있다. 비록 치킨게임, M&A 등 지나온 경로가 비슷하더라도 해운산업 과점화의 결말은 반도체 시장과 같은 극적인 해피엔딩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시장을 완전히 통제하거나 장악하기 어렵더라도 과점화가 성숙된 이후에는 일정수준 시장 조정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소수만이 남은 플레이어(Player)는 보다 합리적인 경쟁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시장점유율 경쟁 자제, 이익극대화(Profit Maximization) 등을 공표하고 경쟁사와 경쟁의 선을 지키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 반도체 시장에서도 이런 노력들이 유효하게 작용하고 있으며, 앞으로 해운사들도 이런 행보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소수의 정기선사만이 남은 시장에서는 서로의 전략에 대한 이해와 견제 가능성이 높아지고 보다 효율적인 전략의 구사가 가능해질 것이다. 수요 변화에 따라 선복량 공급도 일정수준 통제할 수 있을 것이며, 더 이상 치킨게임으로 내달리지 않을 것이다. 장기적으로 시장이 안정화되면, 해운시장의 한계로 인해 대규모 초과이윤을 기대하지는 못하더라도 실적 변동성은 크게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이런 전망은 시장의 중심에 선 글로벌 해운사들의 이야기이다. 여기에 한국 해운사들이 끼어들 틈은 보이지 않는다. 한진해운 사태 이후 한국 해운업의 경쟁력은 크게 약화되었다. 실적 회복은 지연되고, 우려는 지속되고 있다.
한국과 같이 무역이 국가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나라에서 해운업의 중요성은 명확하다. 하지만 한국 해운은 현재 신뢰성의 위기에 놓여있다. 해운의 위기 상황에서 강력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한기평은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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