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선사 가는 길, 현 시점 한국선사 갈 수 없는 길(?!)

 
글로벌 해운시장 과점화의 흐름 속에 한국 해운의 자리는 없다는 지적이다. 경쟁자들이 빠르게 영향력을 확대하는 동안 한국 해운은 여전히 신뢰성의 위기에 갇혀 있다는 것이다. 한진해운 사태와 현대상선의 위기를 거치며 한국 해운의 평판자본은 크게 유실됐고, 시장에는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가 작동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운임 상승에도 불구하고 국적선사의 실적 회복은 더딘 상태다. 과점화의 과실을 향해 가고 있는 대형선사들의 길은, 현 시점에서 한국 선사들이 ‘갈 수 없는 길’이라는 것. 앞으로 더 험난한 경쟁에 직면할 한국 해운은 어떠한 길을 가야만 할까?

 
한국기업평가(김종훈 선임연구원, 서강민 책임연구원, 김봉균 평가전문위원)에 따르면 정부는 ‘통합’에서 해법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4월 5일 발표한 “해운재건 5개년 계획”에서 정부는 개별산업이 아닌 선사-화주-항만-조선 등 유관산업 네트워크를 아우르는 통합적 관점에서 종합적인 지원계획을 밝히고 있다. 특히 눈이 가는 것은 선사간 협력 확대를 통한 해운 경영혁신 방안으로, 사실상 국내 컨테이너 정기선사들의 통합 구상으로 읽힌다. 아직까지 통합의 형식, 주체 등 세부사항이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장금상선과 흥아해운의 정기선 부문 통합 합의로 정부의 통합 구상은 이미 시작됐다.
컨테이너선사 통합은 현 시점에서 합리적 대안이자 변화의 첫걸음이라는 지적이. 약화된 현재의 경쟁력으론 다가올 경쟁환경을 감당하기 어렵다. 통합을 통한 경쟁력 강화와 비용구조 개선이 필요한 이유다. 다수 선사들의 참여를 통해 성공적인 통합이 이루어진다면 적어도 아시아 시장에선 선두 주자와 겨뤄볼 수 있는 유의미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다는 분석이다. 다만 개별선사 입장에서 통합이 갖는 당장의 유인은 크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정부는 존속법인에 대한 인센티브를 마련해 선사들의 참여를 유도해야 하며, 통합선사에 대해서도 자본성격의 장기자금 지원을 포함한 적극적 지원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연이은 대형 M&A 성사, 글로벌 얼라이언스 전면 재편 등 최근 수년간 세계 컨테이너 해운시장은 숨가쁜 변화의 시기를 지나왔다. 그 격변 가운데 국내 최대선사 한진해운의 추락이 있었다. 해운업 역사상 유례없는 대형선사의 파산은 전세계 해운업에 큰 파장을 불러왔다. 컨테이너선 시장은 물류대란을 겪었고, 글로벌 얼라이언스 체계가 완전히 개편되는 시발점이 됐다. 현대상선은 다행히도 위기를 넘길 수 있었지만 한국 해운은 큰 대가를 치러야 했다. 한때 세계 5위의 해운강국으로 자리했던 한국 해운의 위상은 크게 위축되었고, 강점을 보였던 미주항로에서 한국 선사의 점유율은 크게 하락했다.

 
지난 4월 1일 일본 3사 통합법인 ONE의 사업개시와 6월로 예상되는 COSCO의 OOCL 인수에 따라 컨테이너 정기선 시장은 7개 대형선사가 주도하는 시장으로 재편될 것으로 전망된다. 새롭게 재편되는 시장이 과거와 가장 차별화되는 점은 선대 규모다. 선두에 선 7개 대형선사는 최소 100만TEU, 평균 230만TEU의 선대를 확보했다. 불과 2년 전 2016년 3월, 16개 얼라이언스 플레이어들의 평균 선대 규모가 97만TEU에 불과했다는 것을 고려하면 그 변화의 속도를 짐작해 볼 수 있다.
같은 기간 국내 원양선사의 선대 규모는 2016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2016년 3월 101만TEU → 2018년 3월 39만TEU)에 머물러 있다. 제1 국적선사로 올라선 현대상선의 선대 규모는 전략적 협력 관계에 있는 Maersk, MSC 선대의 1/10에 불과하며, 얼라이언스 참여선사 중 가장 작은 대만 Yang Ming에 비해서도 절반 수준이다. 피더선사인 PIL(38만 TEU), Wan Hai(24만 TEU) 등과의 비교가 보다 적절할 만큼 국내 원양선사의 위상은 추락했다.

얼라이언스에서의 영향력도 약화됐다. 2016년 현대상선과 2M 간의 전략적 협력 약정(Maersk/MSC/HMM Strategic Cooperation Agreement)은 통상적인 얼라이언스 약정에 비해 제한적인 조건들로 인해 비판에 부딪혔지만, 채권단 공동관리하의 심각한 위기 국면에서 대등한 협상은 애초에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2M+HMM 약정은 공동운항(혹은 선박공유; Vessel Sharing Agreement)이 아닌 선복교환(Slot Exchange)과 선복매입(Slot Charter)으로 협력범위가 제한적이다. 또 협력 기간이 3년(1년 반~2년 이후 탈퇴 가능)으로 짧으며 일부 비대칭적인 조항이 있다는 점 등에서 통상적인 얼라이언스와는 다른 성격을 갖고 있다.
반면 3대 얼라이언스들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한 결속력을 바탕으로 장기 협력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Maersk와 MSC는 최소 10년의 장기 협력을 공식화하며 결합에 대한 강한 의지를 피력했다. OCEAN 얼라이언스의 경우, COSCO로 대표되는 중국계 선사들과 글로벌 3위 선사 CMA CGM의 합류로 동서항로, 특히 미주항로의 강자로 부상했다. 독일과 일본, 대만 선사가 모인 THE 얼라이언스는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미흡하나 위험준비금(Contingency Fund)를 공동 조성해 재무적 약점을 보완하는 등 독자적인 협력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이들 얼라이언스에 비해 결속력이 낮고 협력범위가 제한적인 2M+HMM 약정은, 현대상선이 정상적인 얼라이언스 플레이어로서 기능하고 성장하기 어렵게 하고 있다.

2016년 한진해운 사태가 야기한 물류대란은 해운시장 구성원 모두의 기억에 뚜렷이 각인돼 있다. 전세계에 흩어진 100여 척의 배가 억류되면서 140억달러가 넘는 화물도 함께 발이 묶였다. 화물들을 되찾는 데 수개월이 소요됐고 정확한 피해규모를 집계하기 어려웠다. 비단 한진해운의 화주뿐 아니라 얼라이언스(당시 CKYHE) 파트너들의 화주들도 피해를 입었고 용선계약을 맺은 선주사, 연계된 항만터미널, 채권금융기관을 포함해 업계 전반에 엄청난 혼란이 초래됐다.
이러한 경험으로 한국 해운은 시장의 평판자본을 크게 잃었다. 2016년 2M과 현대상선의 선복교환/매입 합의가 이루어지자 화주들은 자기 화물을 현대상선 배에 싣는 것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고, Maersk는 화주들의 불안을 가라앉히기 위해 동의 표명(“with customers’ express agreement”) 없이는 현대상선 배에 화물을 싣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보내야 했다고 한다. 계약의 신의성실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해운업계에서 현대상선의 용선료 재협상 또한 선사의 평판을 현저히 훼손했다.
시장에는 여전히 Korea Discount가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견조한 수요에 기반한 시장 회복에도 불구하고 국내 원양선사의 수익성 회복은 지연되고 있다. 거래처와의 신뢰관계와 업계 내 평판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한 해운업계에서, 한국 선사들에 대한 시장의 신뢰 부재는 선사들의 근원적인 사업경쟁력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평판은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지만 이를 복구하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따른다. 한국 해운의 위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컨테이너 정기선 시장의 과점화는 향후에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대형 매물들을 인수합병하며 덩치를 키운 상위 선사들은, 앞으로도 니치마켓 플레이어 인수를 비롯해 적극적으로 M&A 기회를 노리며 추가적인 경쟁력 확보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과점화의 전쟁에서 끝까지 살아남은 소수의 선사들은 해운시장을 배회하는 변동성이라는 유령에서 벗어나 보다 안정화된 시장의 과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현 시점에서 이는 한국 선사들이 ‘갈 수 없는 길’이다. 제 살을 깎아가며 위기를 모면한 원양선사는 아직 정상화되지 못하고 있다. 근해선사들은 악화되어가는 시장환경에 직면하여 힘겨운 각개전투를 이어가는 상황이다. 계속된 시장 과점화의 흐름 속에서 한국 선사들은 한층 더 험난한 경쟁 환경에 직면할 것이고 보다 치열하게 생존전략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한국 해운은 어떠한 대비를 해나가야 할까? 한국 해운은 어떠한 길을 가야만 할까?

정부의 5개년 계획 공표는 국내 선사들에 돌파구를 마련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해운업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지원의지를 나타내는 시그널로 작용, 시장의 의구심을 일부 불식시키고 신뢰 문제를 완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일회적 조치에 그치지 않고 최소 5개년 간의 계획을 공언함으로써, 당분간 정부의 일관되고 지속적인 정책적 지원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특히나 주목해야 할 조치는 한국해운연합(KSP; Korea Shipping Partnership)을 통한 선사 간 협력 확대 방안이다. 2017년 8월, 14개 국적 컨테이너선사의 참여로 출범한 한국해운연합은 현재까지 3개 아시아역내 항로의 조정을 통해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 그리고 지난 4월 3일에는 2단계 구조 혁신의 일환으로 장금상선과 흥아해운의 컨테이너 정기선 부문 통합을 발표했다. 이번 통합 구상에 핵심적 역할을 한 정부는 향후에도 추가지원을 통해 다른 선사들의 통합법인 참여를 유도할 것으로 보인다.

통합의 형식, 주체 등 세부사항은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통합의 방향과 변화를 향한 첫걸음은 환영할 만하다는 것. 한국해운의 약화된 현재의 경쟁력으로는 다가올 경쟁환경을 감당하기 어렵다. 때문에 비용 구조의 개선이 반드시 필요하고, 통합은 국내 선사들의 수익성 개선과 경쟁력 회복을 위한 변화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 통합법인 출범을 통해 다수 선사 간의 경쟁으로 하락한 운임을 일정 수준 회복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영업망 및 선대 확장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교섭력 강화에 따른 유류비터미널비 절감, 물류시스템 결합과 관리부서 통합으로 인한 운영비용 감소, 중복항로 효율화 등을 통해 원가 절감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통합을 추진 중인 국내 근해 정기선사들은 아시아역내에서 비교적 양호한 사업경쟁력을 갖고 있으나, 최근 시장환경은 결코 우호적이지 않다. 다수의 중소선사들이 경쟁하는 가운데 글로벌 선사들이 아시아역내 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하면서 경쟁이 격화되었다. 대형선의 캐스케이딩(전환배치)으로 수급불균형은 더욱 확대되고 있다.

한일, 한중항로를 운항하는 선사들은 상대적으로 실적이 양호하다. 이들 항로는 ‘관리항로’로서 제도적인 공급조절 기제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일항로는 선적상한제(Ceiling제)를 통해 월별 선적량을 제한하고 있으며, 한중항로는 양국 합의로 항권을 부여 받은 특정선사만 운항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들 항로도 최근 시장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다. 한일항로는 ONE의 시장진입에 대한 잠재적 리스크가 커진 상황이며, 한중항로는 최근 항로 개방 이슈가 붉어지고 중국 국영선사의 물동량이 크게 확대되고 있다.
지난 1월 한중해운회담에서 양국은 한중항로의 점진적 개방을 위한 방안 마련과 추후 논의를 합의했다. 세계 유일의 폐쇄항로인 한중항로가 언제까지고 개방의 흐름을 비껴갈 수는 없을 것이다. 향후 점진적인 개방 과정에서 경쟁력과 자본력에서 우위에 있는 중국 선사들이 영향력을 확대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중국 정부의 항로 개방 움직임은 아시아역내에서 지분을 빠르게 확대해 가고 있는 중국 국영선사 COSCO의 움직임과 괘를 같이한다. COSCO의 아시아역내 컨테이너 물동량은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2016년 COSCO는 또 다른 국영선사인 CSCL과의 합병을 통해 영향력을 확대했고, 이후에도 강화된 경쟁력을 바탕으로 물동량을 빠르게 흡수하고 있다.

현재 통합법인 참여가 예정된 흥아해운과 장금상선의 합계 운용선복(약 8만 TEU; Clarksons 2017년말 기준)은 아시아역내 선복 점유율 4.0% 규모이다. 아시아역내 항로의 독보적인 플레이어로 성장한 COSCO(16.6%)와 Maersk의 자회사인 MCC Transport(6.4%) 등 상위선사들 의 점유율을 고려하면 충분하다고 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대만의 Evergreen과 Wan Hai도 아시아역내 시장에서의 지위가 상당하다.
만약 두 선사에 그치지 않고 다수 선사들의 참여를 통해 성공적인 통합이 이루어진다면 적어도 아시아 시장에서는 선두주자와 겨뤄볼 수 있는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원양선사들의 아시아역내 선복과 근해선사들의 선복 규모(8개 선사)를 합산해 보면, 아시아역내 점유율을 13.5% 수준까지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한국기업평가 추산). 노선조정 과정에서 규모가 일부 축소될 수 있으며 단순히 규모의 확대가 경쟁력을 대변하지는 않지만, 규모 면에서 아시아역내 주요 선사들과 어깨를 겨룰 수 있는 유의미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지난 4월 1일 본격적인 운항을 개시한 일본 ONE의 통합 과정은 하나의 좋은 선례로서 국내 선사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본의 3대 해운선사인 NYK, MOL, K-Line은 2017년 이전 얼라이언스 체제에서는 서로 다른 얼라이언스에서 경쟁관계에 있었다. NYK와 MOL은 현대상선, 하파그로이드 등과 함께 G6 얼라이언스에 포함되어 있었고, K-Line은 한진해운, COSCO 등과 CKYHE 얼라이언스를 구성하고 있었다.
2016년 급격한 시황 악화로 손실이 크게 확대되는 가운데 3개 선사는 컨테이너 정기선 부문 통합에 전격 합의했다. 2016년 8월의 한진해운 사태는 이들 일본 선사들에 큰 경종을 울리는 사건이었고, 불과 2개월만인 2016년 10월, 3사는 선제적인 통합 합의를 이루어냈다. 이후 1년 5개월 간의 통합 준비는 선사 간 큰 마찰 없이 원활하게 진행됐고 3사는 통합에 성공했다.
한 세기에 달하는 긴 업력에 걸쳐 경쟁해온 세 민영선사의 통합 합의는 해운사에 전례 없는 결정이었다. 우세한 선사가 다른 선사를 합병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호혜적이고 대등한 조건 하에 완전히 새로운 통합을 이루어낸 첫 사례로서 평가되었다. 무엇보다도 합의를 성공적으로 이행해나간 부분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통합법인 ONE은 세계 6위의 대형 선사로 발돋움했다. 선대 규모 확대로 시장지위가 강화될 것이고, 터미널 네트워크 통합과 규모의 경제 확보를 통해 원가경쟁력이 제고될 것이다. ONE은 통합을 통해 연간 약 1,100억엔의 시너지 효과를 얻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3사 간의 적극적인 노선 조정을 통해 항로 효율화도 진행되었다. 이미 2017년 4월 공동운항을 시작한 THE Alliance 결성 과정에서 3사 간의 일차적인 노선 조정이 이루어졌으며, 금번 통합을 통해 아시아역내와 남북 항로 등에서 약 45개의 노선이 추가 조정되는 효과가 발생했다. 노선 조정으로 인해 단기적으로는 일부 화주 이탈이 발생할 수 있겠으나, 3사 간의 운임 경쟁 완화와 운영효율화로 수익성 제고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ONE의 통합이 비교적 순탄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던 데에는 3사 사업구조의 특성이 크게 작용했다. 컨테이너 부문 외에도 벌크전용선, 가스선, 자동차운반선 등 수익구조가 안정적인 사업 부문을 다수 보유하고 있어, 3사는 컨테이너선 사업 분리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절반이 넘는 사업규모를 유지할 수 있었다. 세 선사의 사업규모도 대체로 유사한 수준이었다.
시기적으로도 여러 요인들이 적절히 맞아 떨어졌다. 3사가 모두 계속된 영업실적 저하에 시달리고 시장지위가 약화되면서 서로의 힘을 합칠 유인이 커져가는 시점이었다. COSCO와 CMA CGM 등이 OCEAN 얼라이언스를 구성하면서 기존의 얼라이언스가 와해돼 3개 선사가 같은 THE 얼라이언스에 합류하게 된 것도 통합과정을 간단하게 만드는 요인이었다. 조직 간의 교류가 있었기 때문에 인적 통합에서도 비교적 원활한 측면이 있었다.
국내 선사들의 경우, 일본 3사와 달리 통합의 길이 평탄치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선사별로 집중하는 노선이 다르고 사업규모와 실적이 달라 이해타산이 서로 맞지 않을 수 있다. 컨테이너 정기선 중심의 단순한 사업구조를 갖고 있어, 컨테이너 사업 분리가 각 회사에 미치는 영향도 지대하다. 오너십(Ownership)이 강한 국내 선사들의 특성상, 이러한 변화를 수용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일 것이다.
한국 해운의 관점에서 볼 때, 통합의 필요성은 인정된다. 그러나 개별 선사의 관점에서 통합에 따른 희생을 만회해 줄 인센티브는 크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근해 중견선사 중 특정 노선의 강자로 자리매김해 상대적으로 양호한 실적을 보이고 있는 고려해운이나 장금상선 등의 이해관계는 다를 수 있다는 것.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존속법인에 대한 정책금융 차원의 자금지원, 금리 인하 등 사업규모가 축소되는 참여선사들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방안이 필요하다. 통합선사에 대해서도 자금지원을 포함한 적극적인 지원방안이 모색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단기자금 지원의 형태보다는, 직접적인 지분 참여나 전환사채 인수 등 자본성을 띠는 장기자금의 투입이 통합법인의 신인도 제고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해운산업의 흐름을 고려할 때, 일련의 통합 과정은 신속하게 진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가 그 과정의 후원자이자 감시자로서 적극적인 역할수행을 해야만 결코 녹록치 않은 통합의 길을 완주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이스라엘 ZIM, 고강도 구조조정 등 체질 개선 통해 반전을 이루어내다.  지난 3월, 선사들의 결산발표 소식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스라엘 선사 ZIM의 실적은 눈길을 끌었다. 불과 수 년 전, 거듭된 손실로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해야 했던 ZIM은 2017년 글로벌 원양 정기선 시장에서 CMA CGM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영업수익성(영업이익률 4.5%)을 기록했다. 사상 최악의 시황 악화로 업계 전체가 어려움에 봉착했던 2016년에도 ZIM은 손실을 최소화(영업이익률 -2.1%)하며 업계 평균을 상회하는 수익성을 시현했다.

ZIM의 구조조정은 매우 강도 높고 광범위한 것이었다.  대주주인 Israel Corporation은 지분율 감소(99.7%→32%)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유상증자(2억달러)를 통해 유동성을 지원하고 credit line(5천만달러)을 제공하는 등 회사 회생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다. 관련 채권자들도 대부분 채무재조정에 참여했고 사채권자들과 선박금융 채권자들의 출자전환 비율은 50%를 넘길 정도로 높았다. 가장 많은 금액의 채권을 보유했던 용선주(선주사)들은 전체 용선료 13억 달러 중 45%인 5.8억달러를 출자전환했다.
총 14억 달러 규모의 출자전환을 통해 회사의 재무구조는 크게 개선됐고 이자부담이 경감되었다. 용선료 조정의 경우, 재무부담 완화와 더불어 영업비용을 현저하게 절감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무엇보다 회사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인력 구조조정을 통해 관리비용을 절감하고 각종 비용효율화 프로그램을 도입해 자체 실적을 개선하였다. 영업적으로는 경쟁력이 다소 떨어졌던 아시아-북유럽 항로를 철수하고 지중해 등 경쟁력을 갖춘 항로를 중심으로 항로네트워크의 선택과 집중을 이루어냈다. 이후 ZIM은 “단기간 내 수익을 내는 회사로 전환하겠다(a view to achieving profitability in the near future)”는 구조조정 당시의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하고 있다.

선사들의 체질 개선은 해운 재건의 전제조건이다  ZIM의 사례가 국내 선사들에 시사하는 바는 크다. 과점화의 흐름 속에서 생존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통합과 더불어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체질 개선을 통해 수익구조의 안정화가 이루어지고 재무적인 건전성이 높아져야만, 정책적인 지원과 성장을 위한 사업계획이 원활히 진행될 수 있다.

① 비용구조 개선
ZIM의 구조조정 사례는 국내 대표 원양선사로 올라선 현대상선과도 비교해 볼 수 있다.3 ZIM은 강도 높고 성공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곧바로 흑자전환에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반면, 2013년부터 2016년까지 구조조정을 진행했던 현대상선의 경우 그 성과가 여전히 발현되지 못하고 있다.
현대상선의 구조조정은 비용구조의 개선보다는 최대한의 현금유입을 통한 유동성 위기 극복과 재무구조 개선에 방점을 찍고 있었다. 벌크전용선 사업부, LNG 사업부 등 Cash Cow 사업 부문이 매각되고 핵심 전용터미널인 현대부산신항만이 매각된 것은 단기적인 현금유입을 극대화하기 위한 구조조정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2016년 자율협약하의 채무재조정도 기대했던 수준에 미치지 못하였다. 금융기관 차입금과 회사채의 경우 각각 28%, 59% 수준(2016년 6월말 별도기준 차입금 규모 대비)의 출자전환이 있었으나, 선박금융의 경우 일부 상환유예만 이루어졌을 뿐 출자전환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특히 용선료 재협상의 경우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했다. 향후 약 3.5년간(2019년까지) 지급예정인 용선료 2.5조원 중 2,900억원(약 12%)을 출자전환했고 1,600억원(약 6%)에 대해서는 49~96개월 만기의 채권을 발행했다. 3.5년내 도래하는 용선료만을 재협상 대상으로 하였고, 용선료 규모 대비 출자전환 비중이 낮음에 따라 실질적인 채무 면제 및 비용 절감 효과가 예상보다 크지 않았다.
구조조정에도 불구하고 현대상선의 영업적자가 지속되고 있는 원인 중 하나는, 이처럼 고용선료 부담이 제대로 해소되지 못하고 핵심 영업자산을 매각함에 따라 본원적 수익구조의 개선이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산 매각과 유상증자 등을 통해 유동성을 확보하고 재무구조는 개선되었으나, 수익구조와 사업경쟁력 측면에서는 경쟁력을 제고하지 못했다.

채무재조정과 사업부 매각이라는 열차가 떠나간 지금, 수익성 회복이라는 과제 해결을 위해서는 기타 비용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통해 추가적인 원가절감 요인들을 찾아내고 효율화해야 한다. 운영비, 인건비 등 기타 관리비용들에 대한 체계적인 비용효율화 작업은 그 첫 단추가 될 것이다. 또 가능하다면 터미널 하역 요율, 육상운송 요율, 보험료 등 주요 운항원가에 대한 협상에 회사의 역량을 집중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정부와의 기민한 소통과 협력이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지속적인 비용구조 개선 노력을 통해 안정적인 영업현금흐름을 확보해야만 정상적인 사업계획과 성장을 위한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
국내 근해선사들 또한 통합을 통해 비용구조의 효율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통합으로 갖추어진 기초 체격은 경쟁을 위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일 뿐, 그 자체로서 시장에서의 경쟁 우위를 담보할 수는 없다. 국내 선사 통합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궁극적인 효과는, 비용구조 효율화를 통해 가볍고 유연한 조직으로의 체질 개선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물류시스템 결합과 관리부서 통합을 통해 비효율을 제거하고 운영비, 인건비 등 제반 관리비용을 절감해야 한다. 중복항로에 대한 적극적인 조정작업도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② 투명한 신용도 관리와 재무건전성 제고
한진해운 사태 이후 화주들은 선사들의 재무상태표를 더욱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IHS Markit의 조사자료에 따르면, 화주들의 선사 선택 시 운임과 선복확보 용이성 다음으로 중요한 항목이 바로 선사의 재무건전성이다. 특히 그 기준은 한국 선사들에게 더욱 엄격히 적용된다. 재무적 위기가 재발될 수 있다는 화주들의 경계와 불안감은 한국 선사들이 제대로 된 운임협상을 진행할 수 없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글로벌 선사들은 회사의 구체적인 재무관리 계획과 목표를 공개하고 이를 준수해나가면서 시장의 우려를 덜어내고 있다. Maersk(S&P 기준 BBB(Credit Watch Negative))는 최근 투자등급 (Investment Grade) 유지 의지를 공개적으로 표명하고 이를 위해 배당성향을 하향조정하는 등 공개적인 신용도 관리와 그에 합당한 조치들을 실행에 옮긴 바 있다. Hapag-Lloyd도 Analyst Event를 통해 자체적인 재무지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통제된 재무관리 계획 하에서 재무건전성을 제고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해운선사의 신용도 관리는 단순히 금융조달 비용을 낮추는 것만 아니라 투자자와 화주들에 대한 신뢰 제고 측면에서도 기여하는 바가 크다. 선주사와의 용선료 계약, 화주와의 운임 계약 등 주 영업활동에서 거래처와의 협상력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보다 구체적이고 투명한 재무비율 가이드라인을 대외적으로 공표(public release)하고 긴밀히 관리하면서, 시장과의 소통을 강화하고 중장기적으로 대외신인도를 강화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③ 전략적 영업망에 대한 선택과 집중
시장 확대에 앞서 우선, 강점을 지닌 시장을 기반으로 영업망(network)을 강화해야 한다. 한진해운 퇴출 이후 미주와 아시아 시장에서 국내 선사의 경쟁력은 크게 약화됐다. 먼저 이들 시장에서 무너진 영업망을 복원하고 점유율을 회복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글로벌 선사들이 오랜 영업관계와 견고한 서비스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전통적으로 높은 진입장벽을 구축하고 있는 시장에서의 싸움은, 리스크 확대로 이어지는 것이 불가피하다. 강점 지닌 시장에 대한 선택과 집중이 선대 운영효율 측면이나 얼라이언스 내 입지 측면에서 더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또한 전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 중인 동남아 시장은 우리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 최근 동남아 시장을 두고 중국과 대만 등 대형선사들의 경쟁이 격화되고 있지만, 유럽이나 미주의 전통적 시장과 같이 공고한 네트워크는 아직 구축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계속하여 새로운 수요가 생겨나고 있다. 통합선사를 통해 중국과 대만에 뒤쳐지지 않는 경쟁력을 확보하여 동남아 시장의 화주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통합선사의 동남아 화물 유치는 국내 원양선사를 통해 북미항로로 연결되는 교두보가 될 수 있을 것이며, 유럽항로에서도 동남아 물량의 확보가 앞으로 더욱 중요한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정부 정책은 사업경쟁력 제고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2013년 도입된 회사채 신속인수제는 회사채 만기가 집중되어 유동성 애로를 겪는 기업에 대하여 산업은행이 80%를 총액인수(신속인수)하여 차환해주는 제도이다. 이를 통해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은 산업은행과 자구계획 이행 관련 약정을 체결하고 합계 약 2조원 가량(2016년까지)의 회사채를 차환발행할 수 있었다.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회사채 신속인수제는 두 선사의 부활로 이어지지 못했다. 유동성 확보를 통해 당장의 위기는 이연됐으나, 자구계획이 핵심 영업자산을 매각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짐에 따라 주요 사업부(현대상선의 LNG 사업, 한진해운의 벌크전용선 사업)와 항만 터미널, 컨테이너 박스 등의 매각으로 양사의 사업경쟁력은 더욱 훼손됐다.
2013년부터 3년 동안 이어진 원양선사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채권단 주도의 지원방식은 유동성 확보에 방점을 찍고 있었다. 유동성 위기의 심각성을 고려할 때 불가피한 측면이 분명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본원적 경쟁력 강화에 필요한 구조조정과 지원이 제대로 고려되지 못했다.

해운 재건을 위해서는 정부 주도의 정책적 지원의지를 기반으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업경쟁력을 제고하고 수익성 정상화를 이루어내는 방안에 대한 구상이 필요하다. 정부는 금번 해운재건 5개년 계획에서 이러한 변화된 접근법을 제시하고 있다.
정부는 먼저, 7월 설립이 예정된 한국해양진흥공사를 통하여 선사들의 경쟁력 있는 선박확충을 지원할 예정이다. 선박 신조 시 후순위 금융지원과 금리 인하, 선순위 보증 등을 통하여 선사들이 적시에 경쟁력 있는 선박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건실한 중소선사에 대한 선박금융 지원과 노후선을 친환경 선박으로 대체하는 선사에 대한 보조금 지급도 제시하고 있다.
해양진흥공사와 캠코펀드를 통한 Sale & Lease Back 프로그램은 선사들의 원가경쟁력 제고를 도모한다. 선사들은 중고선 매각을 통한 일시적 유동성 확보와 더불어 향후 낮은 용선료를 통해 선박조달 비용을 낮추어 중장기적으로 원가경쟁력을 제고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특히 해외매각 시 유출될 수 있는 선복을 국내 선사가 그대로 활용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산업경쟁력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러한 선박확충 및 재무적 지원에 더하여 선사들의 취약한 신용을 보강할 수 있는 추가적인 방안들에 대한 모색이 필요하다. 특히 Korea Discount로 고용선료를 감수하고 있는 국내 선사들의 용선료 부담을 경감시켜주는 방안을 검토해 볼만 하다.
예컨대, 공사에 흡수통합되는 한국선박해양의 선박은행(Tonnage Bank) 기능을 더욱 강화·확대하여, 선사들의 용선 확보 과정에서 공사가 용선료 지급보증(계약 이행보증)을 제공할 수 있다. 직접 용선한 선박을 재용선해 주어 고용선료 부담을 경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선사-화주-항만-조선 등 유관산업 네트워크를 아우르는 통합적인 접근은, 금번 계획의 근간을 이루는 핵심적인 요소이다. 정부는 선·화주·조선 상생펀드 마련 등 이들 산업 간의 공생적인 선순환 체계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는 수출 중심의 경제구조하에서 해운업의 쇠퇴가 단순히 해운선사들의 문제로만 귀속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매우 타당한 방향설정이다. 해운 네트워크의 부재는 국내 수출산업 전반의 교섭력 저하로 이어져 가격경쟁력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무역인프라로서 갖는 일종의 외부 효과다. 해운업 문제에 대한 통합적범산업적 대응이 필요한 이유이다.
통합적 대응의 연장선 상에서 추진되고 있는 컨테이너 장기운송계약 모델 개발, 전략화물의 자국선 이용률 제고 등 정부의 화주 유치 지원방안은 선사들의 집하력 강화에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국내 화주뿐 아니라 해외 화주 개발에 대한 지원도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정부가 최근 적극적으로 추진 중인 신남방정책과 해운 재건 계획을 연계하여 동남아 시장의 새로운 화주를 개발하고 네트워크를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글로벌 터미널운영사(K-GTO) 육성을 통한 부산신항 터미널 인수 등 터미널 네트워크 강화 방안은 국내 원양선사의 원가경쟁력 제고에 기여할 것이다. 자영터미널을 확보하지 못한 선사는 필연적으로 화물비 부담이 높아지게 되며, 서비스의 정시성 확보 등에도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현대상선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부산신항 터미널을 매각해야 했으며 이를 통해 높아진 화물비 부담은 선사의 원가경쟁력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국내 근해선사들의 항만터미널 인프라 활용에 대한 지원책도 필요하다. 최근 부산항만공사는 기존의 부산신항 다목적부두를 피더부두로 전환해 직접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국내 근해선사들은 이를 통해 안정적으로 선석을 확보하고 체선문제를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는 이를 모델로 하여 주요 컨테이너 항만과의 협력하에서 근해선사에 대한 인프라 지원을 확대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대규모 초대형선 투자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정부와 현대상선은 20,000 TEU이상 급 초대형 컨테이너선 12척과 14,000 TEU급 대형선 8척을 신규 발주하겠다는 계획을 진행해나가고 있다. 정부와 선사는 늦은 타이밍을 만회하기 위해 더욱 공격적으로 투자에 나서고 있다. 총 35만TEU에 달하는 신조 발주 규모는 현대상선의 현재 운용선복량과 동일한 규모이며, 사선에 대비해서는 3배가 넘는 규모이다. 한국해양진흥공사를 통해 발주될 이 선박들은 2M과의 전략적 협력(Strategic Cooperation)이 종료되는 2020년 인도될 예정이다.

초대형선의 부재는 원가경쟁력의 하락으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초대형선 확보는 반드시 필요하다. 다만 현재 선복규모와 집하력 대비 단기간 내 투자규모가 너무 크다는 점은 부담요인이다. 인수합병과 신조발주는 다르다. 글로벌 선사들은 인수합병을 통해 선대와 집하력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었지만, 대규모 신조발주는 화물 확보를 위해 운임 경쟁에 나설 수 밖에 없어 수익성 악화를 초래할 수 있다.
가장 큰 리스크는 치킨게임 재발의 가능성이다. 공격적인 신조선 투자를 통해 원가경쟁력을 제고하고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는 전략은 현 시점의 운임수준이 유지된다는 가정 하에서 최적의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현재 발주잔고(Orderbook)상 초대형선박들이 2018~2020년 다수 인도되면, 유럽, 미주 등 동서 기간항로에 배치되면서 운임을 압박할 것이다.
글로벌 선사들의 전략도 현대상선 등 경쟁사의 대규모 투자에 대응하여 변화할 수 있다. Maersk는 언제든 전략을 변경하여 공격적인 투자에 나설 수 있는 자본을 준비하고 있다. 상대가 우리와 같은 전략으로 대응한다면 상대적인 약체이자 후발주자에게 더 치명적인 결과가 초래될 것이다.

황산화물 환경규제4가 2020년 이후 컨테이너 정기선 시장 수급에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시장의 시각도 있다. 그러나 그 효과는 제한적일 것으로 본다. 선령분포 구조를 감안할 때, 폐선은 노후화된 중소형선을 중심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아, 전체 선복량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와 선사는 시장상황에 대한 더욱 냉정한 평가와 보수적 전망, 그리고 시장리더들의 전략에 대한 면밀한 예측을 바탕으로 정책과 대응방안을 구상해야 한다. 자욱한 안개로 앞이 보이지 않는 지름길보다는, 조금 더 멀고 험해 보이더라도 실각의 위험이 적은 길을 가야만 한다.

해운 재건을 위한 길은 여전히 멀다  금번 5개년 계획 공표를 통해 정부는 명확한 방향성 제시와 더불어 해운업 지원에 대한 의지를 전달(signaling)하였다. 한국 해운에 대한 신뢰가 크게 약화된 현 시점에서 정부 차원의 강력한 지원 의사 표명은 산업의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정부의 이러한 노력들이 한국 해운 재건의 마중물이 되기 위해서는 선사들의 체질 개선을 위한 노력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철저한 비용분석을 통해 수익구조를 효율화하여 정상적 경영성과를 회복하고, 신용도 관리와 재무건전성 개선을 통해 시장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정부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선사들의 본원적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5개년 계획에 그치지 않고 일관된 기조 하에서 2차, 3차로 거듭 진행하면서, 해운이 국가기간산업으로서 재도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개별회사의 경영성과와 정부의 정책집행 과정에서 투명성을 확보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략 수행과정에서 구체적인 단계별 실천 계획을 제시하고, 이에 대한 성과를 시장과 공유하고 피드백을 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투박하고 공격적인 접근이 아닌, 섬세하고 장기적인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 해운의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다. 반면 글로벌 해운시장은 매우 빠른 보폭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들과 같은 보폭의 성장을 이루기에는 자본력과 영업경쟁력, 글로벌 인프라 등 모든 측면에서 열세이다. 회복이 완전치 않은 상태에서 단번에 그 차이를 따라잡으려는 도전은 자칫 성급한 모험이 돼 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한국 해운은 긴 호흡으로 먼 길에 나설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이는 비단 개별 해운선사들의 생존만이 아니라 한국 해운의 재도약을 위해 반드시 가야만 하는 길이다. 선사들의 현명한 선택과 정부-유관산업의 하나된 노력이 한국 해운 재건의 분수령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한국기업평가는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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