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인현 교수
브라질 발레사(社)는 세계 최대 철광석 공급업체다. 대형 벌크선에 철광석을 실어 세계 각국으로 수출한다. 발레사의 철광석 수출계약은 통상 25년 이상 장기간으로 이뤄진다. 해상운송계약도 이에 맞춰 장기계약을 하는 게 보통이다. 지난해 11월 발레사의 철광석 운송계약 입찰에 들어간 폴라리스쉬핑, 팬오션, 대한해운, SK해운, H라인 같은 국내 선사들이 외국 경쟁 선사를 제치고 대부분 낙찰받았다. 이로써 향후 25년에 걸쳐 브라질에서 한국, 중국 등으로 운송되는 철광석을 실어나를 대형 철광석 운반선(32만DWT·화물적재중량) 27척이 필요하게 됐다.

이들 선사는 은행에서 선박건조대금을 융자받아 철광석 운반선을 짓는다. 은행은 장기운송계약에서 발생하는 장래운임채권을 융자금에 대한 담보로 선호한다. 이를 통해 국내 조선소에 19척의 발주계약이 이뤄졌다. 나머지 8척은 중국으로 넘어갔다. 중국 조선소의 건조 가격(척당 약 7500만달러)이 한국(약 8200만달러)보다 8% 정도 싸기 때문에 중국이 그만큼 가격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결과는 대형 벌크선 건조에서 국내 조선소가 경쟁력이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어서 고무적이다. 이로써 국내 조선소는 약 2조원의 매출을 확보하게 됐다. 이는 국내 대형 조선소 연간 매출의 20~25%에 해당하는 규모다. 국내 선사들이 대단한 선박 건조 물량을 국내 조선소에 가져다준 것이다. 국내 선사들은 높은 선가(船價)에도 불구하고 중국 조선소 대신 우리 조선소를 택했다. 해운·조선 상생의 좋은 예라고 할 것이다.

지난달 5일 나온 ‘해운재건 5개년 계획’도 조선사엔 커다란 호재다. 정부는 향후 5년간 국내 선사들이 200척의 선박을 건조할 수 있도록 돕는다. 대형 컨테이너선 60척, 벌크선 140척이다. 국내 선주들이 보유한 선박이 1000척 정도니 이의 20%를 새로 건조한다는 것이다.

컨테이너선 60척의 건조가를 척당 평균 1200억원으로 보면 7조원에 이른다. 벌크선도 140척의 척당 선가를 평균 500억원으로 잡으면 7조원 규모다. 국내 조선사들이 14조원에 달하는 일감을 확보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국내 대형 조선소 매출의 1년6개월치에 해당한다. 물론 발주 예상 선박 모두를 국내 조선소에서 건조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컨테이너선, 대형 유조선 및 액화천연가스(LNG)선은 국내 대형 조선소의 주력 종목이므로 대부분 국내에서 건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소형 벌크선은 그렇지 못하다. 국내 대형 조선소들이 고부가가치 선박에 치중하느라 중소형 벌크선을 건조하지 않았고, 중형 벌크선 건조를 주력업종으로 해온 중형 조선소는 법정관리 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작년 한·중 카페리 재건조 계약 경쟁에서 중국에 완패한 경험이 있다. 한·중 카페리는 한국과 중국 선주가 50%씩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교체 수요가 발생해 2015년부터 14척의 신조(新造)계약을 체결하고 있는데 국내 조선소는 1척(약 7000만달러)만 수주했고 나머지는 건조가가 낮은 중국으로 넘어가고 있다.

19척의 대형 철광석 운반선 건조 소식에 뒤이어 나온 향후 5년간 200척 건조 계획은 국내 조선소에는 희소식이다. 국내 조선소는 가능한 한 많은 건조계약을 따내야 한다. 국내 조선소에서 해양플랜트, 대형 컨테이너선, 대형 벌크선, 중형 벌크선, 카페리 등 다양한 선종을 건조할 수 있도록 경영을 다각화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할 것이다. 국내 조선소에서 건조되는 선박은 중고(中古)선 가격이 중국에서 건조된 선박보다 높다는 장점을 내세울 수 있다. 이 외에도 건조계약상 선주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다양한 이점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5년 뒤 다른 선박을 추가로 건조할 때는 시장가격보다 할인된 가격으로 건조해준다는 약정을 선주와 미리 체결하는 것은 어떨까.

이렇게 건조되는 선박은 국내 해운사들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의 핵심은 60척의 컨테이너선 건조에 있다. 현재 국내 선사의 선복량(배에 실을 수 있는 화물의 총량)은 현대상선 42만TEU(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개), SM라인 12만TEU로 알려져 있다. 국내 외항정기선사는 해외 정기선사에 비해 선대(船隊) 규모가 작기 때문에 경쟁력이 떨어지고, 운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항로가 다양하지 못하다는 단점이 있다. 이런 이유로 화주로부터 선택받지 못해 수익을 창출하지 못한 채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5개년 계획에 따른 건조 예상 컨테이너선 60척 중 확정된 현대상선의 약 40만TEU 건조 선복량(2만3000TEU급 12척, 1만4000TEU급 8척)을 두 회사의 기존 선복에 합하면 약 100만TEU가 돼 규모 면에서 통합일본 3사(144만TEU)와의 경쟁이 가능해진다. 경쟁력 있는 선박을 확보한 대형화된 국내 선사는 운송원가를 낮출 수 있고, 미국 서부에 국한된 서비스망을 미국 동부 및 유럽과 남미로도 넓혀 화주들이 만족하는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매출을 증대시킬 수 있다.

현재 선주들은 2020년부터 적용되는 ‘친환경연료유 사용의무’를 어떻게 이행할지 고심하고 있다. ‘스크러버’라는 고가의 탈황(脫黃)장치를 기존 선박에 설치할 수밖에 없는 선박은 그렇지 않은 선박에 비해 원가구조가 높아지게 된다. 5~10년 된 선박을 폐선할 수는 없으므로 어쩔 수 없이 고가의 탈황장치를 달 것이고 그러면 운송원가가 높아진다. 저황장치가 내장된 신조선을 확보하는 선사는 그렇지 않은 선사에 비해 큰 경쟁력을 갖추게 되는 셈이다. 그동안 신조선을 짓지 못한 국내 정기선사들이 이번 재건계획을 통해 60척의 친환경 선박을 보유하면 그렇지 않은 해외 정기선사들에 비해 경쟁력에서 비교우위에 서게 될 것이다.

다만 국내 정기선사의 선복량이 현재보다 2배가 늘어나게 되므로 국적선 적취율(화주가 보유한 화물 중 국적 선사로 수송하는 비율)을 크게 높여야 정상영업이 가능해진다. 미주 컨테이너 화물 적취율을 현재 12%에서 50%로 끌어올려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1997년 이를 달성한 적이 있다.

선주, 선박금융업계, 조선소 모두 힘을 합쳐 가능한 한 많은 선박을 국내 조선소에서 건조하도록 해야 한다. 선주와 화주의 상생도 필요하다. 국내에서 발생하는 수출입 화물만큼은 국내 선사에 싣도록 해야 선사의 안정적인 영업이 가능해진다. 이것이 적절한 내수에 기반하는 선주·화주·조선·금융 상생 모델의 실천 방안이며 ‘제2 한진 사태’를 막는 지름길이다.

*본 칼럼은 5월 8일자 한국경제에 실린 내용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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