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인현 교수
우리 원양정기선사의 대표 격인 현대상선이 대형 컨테이너선 20척을 발주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총 3조원 규모로 국내 단일 선사 발주량으로는 역대 최대다. 현대상선이 2021년에 이들 선박을 인수받아 선복량(화물 적재능력)이 약 80만TEU(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개)에 이르면 비로소 글로벌 선사들과 경쟁할 수 있는 규모가 된다. 단 한 척도 외국으로 나가지 않고 모두 우리 조선소에서 건조하게 됐다는 소식 또한 반갑다. 이번 현대상선의 대형 컨테이너선 발주는 국책은행을 통해 국민의 세금을 지원받아 이뤄지는 것이므로 해운·조선 관련 연관산업에도 혜택이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

우리 선사 소유의 선박이라도 외국 국적을 얻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편의치적선(便宜置籍船)이라고 한다. 금융을 이용하는 경우 저당권자가 되는 금융권이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선적(船籍)을 파나마 등에 두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 선사는 국적취득조건부 나용선(BBCHP)이라는 이름의 용선자(傭船者)가 되고, 용선기간 종료 시 소유권을 취득해 이 선박은 우리 선적이 된다. 파나마에 선적을 두면 그 선박에 대한 관할권은 기국(旗國)인 파나마가 갖게 되며 많은 법률관계에 파나마법이 적용된다. 외국 금융의 개입 없이 건조되는 선박은 처음부터 우리 선적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래야 우리의 안전관련 법률을 일괄 적용할 수 있으며, 유사시 해당 선박을 징발해 전쟁물자 수송에 사용할 수 있다.

선박의 안전성을 검사해 등급을 매기고 관계자에게 공시하는 검사기관을 선급(船級)협회라고 한다. 우리도 1960년 설립된 국제적 수준의 한국선급(KR)이 있다. 선박안전법에 의하면 우리 외항 국적선(BBCHP 포함)의 경우 정부안전검사는 선주가 한국선급이나 프랑스선급 중 선택하도록 돼 있다. 또 보험을 목적으로 실시하는 고유의 선급검사도 선주들이 선택할 수 있다. 이렇게 선택된 한국선급의 선박검사 수입은 연간 1500억원인데, 일본선급(NK)은 3800억원, 영국 로이드선급은 1조5000억원에 이른다.

해상보험 중에서도 선주책임보험은 경쟁이 치열하다. 우리 선사들은 유럽계 선주책임보험자들에 운항선박 대부분을 가입시키고 있다. 우리 한국선주상호보험조합(Korea P&I)은 2000년 발족한 후발주자로 아직 걸음마 단계에 있다. 이 조합의 연간 보험료 수입은 350억원인데, 일본 P&I는 2500억원, 노르웨이 가르드 P&I는 8500억원이다. 새롭게 건조되는 선박은 우리 선급과 우리 책임보험자에 가입해 이들의 국제경쟁력을 키워준다면 청년일자리도 늘어나게 될 것이다.

해운, 조선, 금융 관련 분쟁에 적용할 법률을 영국법으로 정해 런던해사중재에서 해결하는 것이 우리 업계의 관행이다. 선박건조계약, 금융계약, 용선계약상 관련자가 모두 우리나라 당사자인 경우는 한국법으로 대한상사중재원이나 서울해사중재협회의 중재를 이용하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해운·조선분야의 만성적인 법률비용 해외유출을 막고 우리 해상법 발전을 꾀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상선이 대형 컨테이너선 20척을 우리 조선소에 발주한 것은 ‘한국해운재건 5개년 계획’ 실천의 첫걸음으로 해운·조선의 상생모델이란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선급, 선주책임보험, 분쟁해결 등 다른 연관산업 분야에서도 이런 상생의 행보가 실천되기를 기대한다.
 

*본 칼럼은 9일자 한국경제에 실린 내용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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