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상판결: 대법원 2017. 10. 26 선고 2015다42599 판결

2. 사실관계

가. 원고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석유화학업을 영위하는 법인이고, 제1심 공동피고 B해운주식회사는 대한민국법인으로 2007. 5. 23. 이 사건 선박에 관하여 선주인 소외 C사와 사이에 정기용선계약을 체결하였고, 피고는 역시 대한민국 법인으로 B해운과 보험계약을 체결한 보험자이다.

나. B해운은 2007. 6. 21.경 원고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건설 중인 정유공장 내의 보일러 설치공사와 관련하여 위 공사를 담당한 소외 D산업 주식회사와 사이에,위 공사에 필요한 설비 및 자재들 89패키지(543,013kg, 2,961.20CBM, 이하 ‘이 사건 화물’이라고 한다)를 태국 램차방 항에서 사우디아라비아까지 운송하기로 하는 내용의 계약을 체결한 후, D산업에게 송하인 D산업, 수하인 원고, 선적항 태국 램차방 항, 양하항 알 주◇일 항으로 된 선하증권을 발행하였다.

다. 한편 B해운은 2007. 5. 30. D산업으로부터 이 사건 화물의 해상운송에 관하여 위임을 받은 H주식회사와 사이에, 일부 화물은 겹쳐서 적재될 수 있고, 갑판 선적이 허용되는 내용의 용선계약을 체결하였다.

라. 피고는 2007. 6. 21. B해운과 사이에, 부보 위험 및 보상내용에 대하여 “선창 내 적재조건으로 선하증권이 발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갑판상에 적재됨으로써 화물에 손상이 발생하고 그로 인해 피보험자인 선주가 화물소유자에게 손해배상책임을 이행한 경우, 보험자는 선주가 지불한 손해배상금액에서 적하의 송장금액에 10%를 가산한 금액에 대한 보험금액의 비율로 선주에게 보상한다”는 내용의 해상적하책임보험계약을 체결하였다.

마. 이 사건 화물은 이 사건 선박의 갑판에 적재된 채 운송되었고, 이 사건 선박은 2007. 7. 20. 사우디아라비아에 도착하였는데, 위와 같은 운송 과정 중에 이 사건 선박이 황천을 만나 일부 화물이 바다에 떨어져 멸실되거나 손상되는 등의 사고가 발생하였다.

바. 원고는 이 사건 사고로 인하여 이 사건 화물의 일부가 멸실 또는 손상되자 D산업으로부터 2007. 9. 22.경 13패키지의 화물을 다시 인도받고, 2007. 10. 5.경 14패키지의 화물을 다시 인도받았는데, 당시 발행된 선하증권은 모두 갑판에 화물을 적재하는 것을 조건으로 하여 발행되었다.

3. 당사자의 주장

한국회사인 운송인은 태국에서 사우디아라비아까지 운송계약을 체결하면서 갑판적 화물의 운송 중 손해배상의 책임을 부담하게 되는 경우 그 손해를 전보 받을 수 있는 책임보험을 한국의 보험회사와 체결하였다. 한편 보험계약의 준거법은 영국법으로 약정되었는데 운송 중 사고가 발생하자 화주는 책임보험자에게 손해배상청구를 하였다.

피고는 피해자인 화주가 행사하는 직접청구권은 영국법이 준거법이 되어야 하고, 영국법에 따르면 피보험자인 운송인이 도산된 경우에만 직접 청구가 허용되는데 이 사건에서 운송인은 도산이 된 상황이 아니므로 피해자의 직접청구권은 허용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원고는 직접청구권 행사의 문제는 보험계약의 책임 및 결제에 관한 사항이 아니므로, 영국법이 아닌 대한민국법을 적용하여 판단해야 하고, 더욱이 제3자의 직접청구권을 정한 대한민국 상법 제724조 제2항은 국제사법 제7조에서 말하는 ‘준거법에 관계없이 적용되어야 하는 강행규정’에 해당하므로, 이 사건에는 준거법과 관계없이 상법 제724조 제2항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4. 판결요지

국제사법 제34조는 채권양도 및 채무인수의 법률관계를 동일하게 취급하여, 채권의 양도가능성, 채무자 및 제3자에 대한 채권양도의 효력은 양도되는 채권의 준거법에 의하도록 규정하고(제1항), 채무인수에 대하여도 이를 준용하고 있다(제2항). 또한 국제사법 제35조는 법률에 의한 채권의 이전에 관하여, 그 이전의 원인이 된 구채권자와 신채권자 사이의 법률관계의 준거법에 의하지만, 만약 이러한 법률관계가 존재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채권양도 및 채무인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전되는 채권의 준거법에 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비추어 보면, 채무인수 및 법률에 의한 채권의 이전에 관하여 이전되는 채무ㆍ채권의 준거법에 의하도록 한 국제사법 제34조 및 제35조의 기준은 법률에 의한 채무의 인수의 경우에도 참작함이 타당하다.

그런데 보험자가 피보험자의 손해배상채무를 병존적으로 인수하게 되는 원인은, 피보험자가 제3자에 대하여 손해배상채무를 부담하는 것과는 별개로, 그 기초가 되는 보험자와 피보험자 사이의 법률관계인 책임보험계약에 관하여 제3자의 보험자에 대한 직접청구권을 인정하는 법 규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3자 직접청구권이 인정되는 경우에 보험자가 제3자에 대하여 부담하는 구체적인 책임의 범위와 내용은 책임보험계약에 따라 정해질 수밖에 없고, 책임보험계약에 따라 보험자와 피보험자가 부담하는 권리의무도 변경된다. 위와 같은 사정들을 종합하여 보면, 외국적 요소가 있는 책임보험계약에서 제3자 직접청구권의 행사에 관한 법률관계에 대하여는 그 기초가 되는 책임보험계약에 적용되는 국가의 법이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보이므로, 그 국가의 법이 준거법으로 된다고 해석함이 타당하다.

5. 평석

가. 책임보험에 있어 피해를 입은 제3자는 보험계약의 당사자가 아니고 피보험자도 아니다. 따라서 보험자와 피해자인 제3자 사이에는 원칙적으로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 책임보험계약에서 보험자가 지급하는 보험금은 종국적으로는 피해자에게 귀속하므로 피해자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취지에서 상법 제724조 제2항은 “3자는 피보험자가 책임을 질 사고로 입은 손해에 대하여 보험금액의 한도 내에서 보험자에게 직접 보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여 피해자의 직접청구를 인정하고 있고, 이에 특별한 제한을 두지 않고 있다.

나. 그런데 영국법은 우리 상법과 달리 피해자의 보험자에 대한 직접청구권을 일반적으로 허용하지 아니하고 예외적인 경우에만 허용하고 있다. 즉 ‘제3자 권리법[Third Parties(Rights against Insurers) Act 1930]’ 제1조는 직접청구권이 허용되는 경우에 관하여 ‘피보험자가 개인인 경우는 파산하였거나 채권자들과의 화의가 이루어진 경우’, ‘피보험자가 법인인 경우는 해산명령이 이미 내려졌거나, 임의 해산에 대한 승인이 이루어졌거나 파산관재인 등이 적법하게 임명되는 등 도산절차가 개시된 경우’에 한하여 직접청구권이 인정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 따라서 직접청구권의 허용여부 및 요건에 대하여 우리법이 적용되는지 영국법이 적용되는지 여부에 따라 이 사건에서 원고의 직접 청구에 대한 판단이 달라질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우리 국제사법에는 이 사건과 같이 피해자가 보험자에 대하여 직접청구권을 주장하는 경우에 관한 규정은 존재하지 아니하므로, 불법행위 등의 피해자가 보험계약에 기하여 보험자에게 직접청구권을 행사하는 경우 보험계약에 관한 준거법이 적용될 것인지 여부가 결국 이 사건의 준거법 결정에 있어서의 핵심이 된다.

라. 결론적으로 대상판결은 제3자 직접청구권이 인정되는 경우에 보험자가 제3자에 대하여 부담하는 구체적인 책임의 범위와 내용은 책임보험계약에 따라 정해질 수밖에 없고, 책임보험계약에 따라 보험자와 피보험자가 부담하는 권리의무도 변경되므로 외국적 요소가 있는 책임보험계약에서 제3자 직접청구권의 행사에 관한 법률관계에 대하여는 그 기초가 되는 책임보험계약에 적용되는 국가의 법이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으므로 그 국가의 법이 준거법으로 된다고 해석되어야 한다고 보아, 이 사건에서는 보험계약의 준거법인 영국법이 준거법이 되고, 따라서 우리나라와 같이 직접청구가 제한 없이 허용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김 현 법무법인 세창 대표변호사(해양수산부 법률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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