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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남 편집위원 칼럼]"나는 예술 남은 외설, 그럼 마광수의 '즐거운 사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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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2.23  04:3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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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대남 편집위원
세상이 정신 없이 변하고 IoT에 AI, 4차산업혁명 시대를 맞은 이때 최근 방통위가 불법 음란물 사이트를 새로운 방식으로 차단하자 이에 맞서 "야동 볼 권리를 달라"고 촛불집회 시위를 벌였단 흥미로운 보도를 봤다. 이를 차단한 근거로는 '과도한 성적 욕구를 자극하거나 수치심을 유발할 때'란 기준이 적용됐다는 것. 그래서 필자는 우선 생각나는 게 예술과 외설의 구별은 무의미하다며 "내가 보면 예술이고, 남이 보면 외설이다"라고 했던 프랑스 평론가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1915~1980) 교수가 당시 외설로 핍박받고 멸시받던 예술계 문제작들을 두둔하며 옹호했던 일이다.

예나 지금이나 많은 작가들이 예술과 외설의 경계선상에서 혼란스러워 하고 그 기준이 애매모호한 것 또한 사실이다. 노출수위가 높다고 반드시 외설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을 기준으로 외설과 예술을 나눌 수 있을까. '내 눈엔 예술, 남 눈엔 외설'을 주창한 기호학자이기도 한 롤랑 바르트 교수의 말을 빌지 않아도 실제 예술과 외설 시비에 가장 자주 휘말리는 장르는 단연 영상물이다. 소설이 상상에 의존하는 픽션 및 창작 예술이라면 영화는 보다 직접 시각적으로 반영되기 때문일지 모른다. 실제 외설시비 영화로 가장 유명한 것 중 하나가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Last Tango in Paris)’다.

낯선 남녀가 다짜고짜 격렬한 정사를 벌이는데, 영화평에 ‘소외된 현대인의 파행적인 인간관계를 변태적이고 충격적인 성행위 묘사를 통해 그려냈다’며 여러 평론가들이 불후의 명작으로 손꼽았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이토록 야한 영화가 명작으로 분류된다는 사실이 의아하고 그래서 더욱 예술과 외설의 경계란 어느 선인지가가 궁금하기 짝이 없다. 또 하나 가까운 얘기는 그의 문학 작품이 외설이란 뭇매를 맞으며 예술계의 이단자로 지목, 불우하게 작고한 마광수(馬光洙/1951~2017/대광고.연세대) 작가 겸 교수다.

필자는 해운계 인사들과 북한산 등산길에서 복직 후 정신적 트라우마를 벗어나지 못한 마 교수를 우연히 만나 잠시 독자로서의 위로와 격려를 보내며 대화를 나눈 게 만남의 전부지만 당시 우리나라처럼 밤문화가 발달한 나라에서 젊은 작가가 외설 소설을 썼다고 실형을 받고 수감되는 처사는 작품 보다 훨씬 더한 코미디란 생각이 들었다. 그는 '즐거운 사라', '가자, 장미여관으로',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등등 관능적 상상의 모험을 솔직한 에로티시즘으로 표현한 아포리즘(Aphorism)적인 작품이 '마광쉬즘'이란 키워드로 각광을 받기도 한 스포트 라이트를 받기에 충분한 인물이었다.

마 교수는 성에 관한 시회의 위선과 이중잣대에 도전하는 비판적 작가라는 찬사와 비난을 엇갈리게 받아 오다 끝내 음란죄로 법정 구속으로 실형을 받은 것이었다. 이어 해직과 복직을 거듭한 끝에 그간 작품 속 '로라'를 통해 프리섹스를 성적 박애주의로까지 묘사했던 그는 외설이란 주홍글씨(Scarlet Letter)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예술가는 증오와 분노로 가득한 사회에서 사람들의 배설 욕망을 대신 풀어줌으로써 사회를 정화해야 한다던 그는 도덕적 독재의 지배이념에 무참히 희생당했단 생각이다.

그리고 필자도 작다면 아주 작지만 그래도 무척 답답했던 외설 피해가 있었다. 여든을 바라보는 이 나이를 살아내면서 늘 "나이는 들어도 철은 들지 말자"며 살아 왔고 "평생의 절반은 술 마시는데. 나머지 절반은 술 깨는데 보내며 산다"는 농담을 자주 해서 주위를 웃기곤 한다. 그리고 취미가 늘상 우스개나 유머, 또는 영화배우들 및 그들의 영상작품에 관심이 많다 보니 자연히 섹시하고 에로틱하다 못해 포르노틱한 영상물을 자주 접하고 그런 아류의 화제에 관심이 많기에 그 쪽을 집중적으로 살펴 온 게 사실이다.

그래서 흔히 논쟁의 대상으로 흥미를 끄는 예술과 외설의 차이와 경계선은 어디까지고 그 기준은 무엇이며 존경받는 예술성이 폄훼대상 외설로 굴절되는 임계각과 탄성치와 그 내, 외재적 적확한 차이를 선명하고 분명히 극명하게 구별짓는 판단에 과연 누가 내로라 하고 자신있게 객관적 잣대로 들이댈 수 있을까 의문을 금치 못하며 산다. 문학이나 연극이나 미술이나 음악이나 그리고 무용이나 스포츠나 잡기나 섹스 등, 이 모두가 우선 재미, 가급적이면 건전하고 유익하며 감동 감격적인 재미가 기본이요 생명이라면 더욱 그렇단 생각이다.

심지어 농담성으로 아무리 야해도 남녀가 함께 보며 감상하면 예술이고 혼자 숨어서 숨소리를 줄이고 보면 외설이요, 영상물의 경우는 대사가 많으면 예술이고 신음소리가 많으면 외설이란 우스개가 나돌기도 한다. 또 감상후 줄거리가 분명하게 생각나면 예술성이 있고 보고 나서 찐한 장면들만 기억나면 외설로 분류되기 십상이고 에로틱 영화도 공개적으로 여럿이 함께 보면 예술작품이지만 어두운 밤이나 밀폐된 공간서 혼자 보면 외설 취급을 받는다고도 했다. 프리섹스를 실천하는 상징으로 만들어진 로라가 국가란 도덕적 독재에 저항하는 반기를 든 잔 다르크란 생각이 드는 이유들이다.

그런데 필자가 외설 시비에 휘말려 다음 카페에서 한때 영구 격리됐던 단초는 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7년전, 2002년 제17회 FIFA(국제축구연맹) 월드컵이 한국과 일본에서 나누어 개최될 때 우리나라는 2만명의 자원봉사자(Official Volunter)를 선발해서 그중에서 1만명은 조직위원회, 1만명은 10개 경기장에 배치해서 6개월간의 현장교육 및 봉사훈련을 거쳐 각자 필요한 요소에 배치되어 리허설과 시물레이션을 거듭했다. 제법 높은 경쟁율을 거쳐 활자매체 (신문)와 전파매체(방송) 투 톱제로 분류되는 미디어 분야에서 필자는 신문 분야 총책으로 전 세계 기자들 뒷바라지의 한 축을 맡아 활동한 경력을 가문의 영광으로 여기며 이 나이를 맞았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직장의 현역에 근무를 해도 여직원들이 주로 타이프를 치듯 컴퓨터에 대해선 부서별로 전담자가 있거나 관심있는 사람들만 이용하는 정도로 일반화 되지를 않았고 필자는 맹탕 컴 잼뱅이었다. 그러나 자원봉사 선발자는 교육자료를 인터넷으로 보내기에 필자는 아예 접근이 불가해 급기야 컴의 좌판을 두드리며 회갑나이, 61세에 컴맹 탈출 작전 전선에 뛰어들었으나 그게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휘하 젊은 조직원들은 이미 제법 할 줄을 알았고 재미있게 이를 익히는 방법은 카페라는 곳에 가입을 하게 되면 온라인으로 인사도 나누고 글도 쓰며 서로 친해질 수도 있고 번개니 정모라는 이름으로 모임도 잦다고 했다.

더불어 남녀 친구 사귀기도 용이하고 함께 여행도 즐길 수 있대서 천지도 모르고 한 두 곳을 가입, 활동한지가 어언 20년이 가깝다. 그러던 몇 년 전 어느날 필자가 가입한 포털사이트에 청소년에게 유해한 음란물을 카페에 올렸다고 접근 금지를 시키는 게 아닌가. 눈꼽만한 아가씨가 등을 보이며 누워서 발목을 구르는 나체 사진을, 그것도 유머란에 올렸는데 라이벌 의식을 가진 그 어느 누가 찬스로 여기고 외설물 게재 신고를 한 것이었다. 까짓껏 하고 두어 번을 연속으로 올렸더니 드디어 필자의 닉은 영구 정지 조치란 철퇴를 맞았다. 가깝하게 지내다가 갖은 방법을 동원, 곧 다시 살아난 과정은 불문에 붙인다.

마 교수의 야한 정신이 도덕과 법과 통념으로 무장한 지배 이념에 맞섰고 또 도덕적 일탈을 통한 관능적 배설만이 인간을 폭력에서 구원한다고 강조한 논리를 비롯하여 '자유가 너희를 진리케 하리라'는 글에서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고 성적 감정을 솔직하고 자유롭게 표현하는 게 창작의 본질이자 원동력이라는 주장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그를 지금에사 다시 생각하는 이유인즉슨 필자의 포털사이트 금지도, 이는 단순한 당해 사이트의 기준이 아니라 이를 규제하는 금지 만능식의 제도적 문제라는 데 생각이 꽂혔다.

어쨓든 마 교수의 문학적 의식 수준은 시대를 크게 앞서 갔고 한국 문학의 도덕과 윤리관에 맞서 질적 향상과 창작의 자유를 향상시키는데 크게 기여했기에 그의 문학관 마광쉬즘은 긍정적으로 재평가 받아야 할 것이란 평가가 필자뿐만 아니라 그가 타계한 지금에도 더욱 지배적이다. 문학은 허구성으로 창조되는 상상력의 모험이며 금지 영역에 대한 도전이라 했다. 도덕적 훈화나 종교적 설교나 대중을 향한 계몽서는 더욱 아니고 기성의 율법에 대한 도전이요 기존의 가치관에 대한 창조적 반항이어야 한다는 일반적 논리에 근거한다.

무대에 오를 때마다 장기 공연기록의 아리스토파네스의 '리시트라타', 아라비안나이트로 알려진 작가 불명의 '천일야화', 정숙한 부인의 음란 얘기 모음집 보카치오의 '데카메론' 등이 문학과 예술로 남을 수 있었던 배경은 독자를 자극할 목적으로 성을 묘사만 했을 뿐, 작품에 깃든 도덕적, 미학적, 철학적인 면이 면죄부를 받은 이유 때문이라고 알려졌다. 따라서 당시 마 교수의 '즐거운 사라'의 음란성 여부를 판별하는 검찰측과 변호인측, 전문가 민 및 하 모 씨의 토론을 거친 감정서의 공통된 점은 "성의 해방을 옹호하고 현대인의 소외를 성문제를 통해 다루고자 한 소설"로 결론지었단 것이다.

그들은 즐거운 사라에서의 성 묘사는 '춘향전'에 비해서도 결코 니나치지 않으며 국내외의 다른 많은 문학작품과 비교해도 오히려 추상적 관념적이며 상투적임에 불과한 것으로 의견을 냈었다고 한다. 그러나 검찰은 독자의 의식수준과 전문가의 판단을 무시했다는 것이다. 최근 보도에 의하면 성인인형(Real Doll)이 국내에서도 제작 판매되는 마당에 지금은 예술과 외설의 차이를 어떻게 구분하며 특히 불법음란물의 경우 그 대상과 행위자에 대해 무슨 기준을 어떻게 적용, 처리할지 궁금하다. 여러 남성에게 차별없이 사랑을 주는 로라가 마교수가 종국적으로 도달하고 싶어했던 허무주의의 종착역에서 재후하기를 바랄뿐이다.

필자가 읽은 역사학자 겸 영화평론가 연동원 교수는 '포르노 영화 역사를 만나다'라는 저서 표지에서 '포르노가 아무리 범람한다고 해도 우리 사회 전체가 퇴폐적인 방향으로 흘러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왜냐하면 포르노물 역시 시대의 산물이며, 결국에는 어느 적정 수준의 여과장치를 거칠 것이 들림없기 때문이다. 더불어 포르노는 결코 살아질 수 없는 바, 매춘과 같은 선상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만일 포르노와 매춘이 이 땅에서 사라진다면, 아마도 그 날 인류의 역사도 종지부를 찍을 것이다'라고 쓰고 있다. 필자도 공감이다.

<서대남(徐大男)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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