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선주의 95% 이상 저유황유 사용 예정
엄경아 신영증권 애널리스트에 따르면 2017년 하반기 이후 수주한 물량이 매출로 인식되면서 조선업체들의 매출액이 본격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한국조선해양,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의 연결매출 합산금액은 전분기대비 15.4% 증가했다. 당사 커버 조선기자재 업체 5개사(한국카본, 동성화인텍, 세진중공업, HSD엔진, 삼강엠앤티)의 매출액은 전년동기대비 41.8%, 전분기대비 47.3% 증가했다.
조선 불황 장기화로 조선기자재 업체 수는 줄고, 선박 부품 납품이 늘어나다보니조선기자재업체들의 매출 증가세가 조선업체를 뛰어넘었다. 당사가 커버하고 있는 5개 기업의 합산 매출 성장률이 조선업체 성장률의 3배수를 기록했다. 개별업체 중 전분기대비 매출 증가가 두드러지는 업체는 HSD엔진으로 무려 70% 가까이 증가했다. 차츰차츰 영업적자폭을 줄이던 기자재 업체들은 드디어 영업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여전히 5개 업체 중 2개 업체는 적자에 머물러 있지만, 지금처럼 매출이 늘어나는 기조가 유지된다면, 하반기에는 모두 흑자전환할 것으로 예상된다. 2018년과 2019년 상반기까지 신규수주 물량은 2020년 매출과 이익에도 지속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판단되어 실적개선에 연속성이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2019년 2분기부터 최근까지 업계 내 가장 큰 고민은 수주 감소이다. 완성 선박건조업체대비 기자재업체의 경우 그 영향이 더욱 클 수 밖에 없다. 작년에 수주한 물량을 제조하기 위해 재료구매비 등 운영자금이 늘어나는 가운데, 신규수주 감소에 따른 선수금 감소가 동시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특히나 기자재 업체는 조선업체대비 매출 증가폭이 커서 초기에 늘려야 하는 운영자금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근 전세계 신조선 시장은 개점휴업이라고 표현할 만큼 조용했다. 일주일에 3척 또는 5척 또는 6척 정도만 발주되는 시기가 이어졌다. 연간 1,500~1,800척 가량의 선박이 만들어지는 시장에서 일주일에 10척도 안 되는 선박이 발주된다는 것은 연간 1천척 가까이 수주잔량이 감소할 위험을 갖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처럼 ‘역대급’이라고 표현될 만한 관망세가 이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2020년부터 강화되는 공해상 황산화물 배출 저감규제를 4개월 남짓 남겨놓은 상황이다. 규제대응을 위한 회피책(스크러버 장착, LNG 추진선 발주) 선택 투자의 골든 타임은 지나갔다고 볼 수 있다. 스크러버를 장착한 신조선을 발주해도 2021년 하반기 이후에 인도받게 될 것이며, 중고선에 대한 스크러버 장착 스케줄도 잡을 수 없다. LNG 추진엔진을 활용하는 화물운송선을 발주하려고 해도 어차피 인도받을 시기가 2021~22년이다.
2018년 825척에 불과하던 스크러버 장착선은 2019년을 기준으로 2,467척까지 늘어난다. 2019년 연중 건조되는 선박 중 많은 수가 스크러버 장착을 선택했으며, 다수의 선박 수리가 이루어질 예정이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이같은 급한 변화는 2019년까지만이다. 2020년 이후에 인도될 선박 중 스크러버 장착을 선택한 신조선박은 많지 않다.
시장 참여자들은 저유황유와 벙커-C유의 가격차이에 따른 스크러버 장착선 수혜 기간이 2021년 이후까지 이어질 것으로 해석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스크러버 장착 선택에 따른 설비투자비용(Capex) 지불보다는 유가에 대한 관망을 선택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선주들의 관망은 계속될 수 없다. 어차피 4개월 뒤부터는 사용 유류 변경에 따른 비용 증가를 몸소 체험하게 되기 때문이다. 2020년 전까지 스크러버 장착에 성공했거나, LNG 추진 엔진을 장착한 약 3천척 가량의 선박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선박이 저유황유를 사용하게 될 것이다. 전세계 약 9만5천척(비화물선 포함)의 선박이 있는 것을 감안해 보면 95% 이상의 선박이 저유황유를 사용하게 된다.
최근 유가 변동은 이와 같은 큰 틀의 변화를 제품 가격에 반영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원유 가격 하락대비 견조한 가격대를 유지하고 있던 벙커C유의 가격이 하락하여 MGO(Marine Gas Oil)와의 가격차이가 크게 벌어졌다. 30% 차이까지 축소되었던 두 유류가격은 최근에 60%까지 가격차가 벌어졌다.
19일 삼성중공업이 발표한 원유 운반선 10척 신규수주 뉴스도 이러한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번 발주건은 아프라막스급 원유수송선 10척 모두 이중연료엔진(DF: Dual Fuel)을 사용하도록 발주되었다. 대형 화주가 전용선 운영에 사용할 여러 선박 중 1~2척을 LNG 추진선으로 발주한 사례는 있었으나, 대규모 선주가 전체 신조선 투자를 이중연료선으로 발주한 사례는 대형 컨테이너선 이후 처음이다. 한시적 회피책에 해당하는 스크러버 장착이 아니라 지속적 회피책인 LNG 추진선 사양을 선택했고, 실행에 옮겼다는 점이 가장 주의깊게 봐야 할 점이다.
LNG 추진선도 2019년에 단기적으로 많이 늘어난다는 점에서 스크러버 장착선과 유사한 패턴을 보이는데, 2020년 이후 증가 추세는 좀 다른 모습을 보인다. 한시적 회피책이 아닌 LNG 추진선의 경우 2020년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연료유가 상승에 따른 비용 부담이 과도해질수록 LNG 추진선을 선택하는 선주 비중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