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를 타다 싫증나면, 청진항 도선사가가 되는거야"
197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선장시인 김성식의 '청진항'


 

 
"배를 타다 싫증나면 까짓것 청진항(淸津港) 도선사가가 되는거야"

바다에 배를 띄워 짐이나 사람을 실어나르며 돈벌이를 하는 해운 본연에 대한 생각은 잠시 접고 바다를 소재로 한, 이름하여 해양문학 동산의 산책을 위한 오솔길을 걷고픈 만년의 서정에 젖어, 문득 이미 타계한지 17년이 지난 김성식(金盛式) 선장시인을 다시 떠올리며 샌드페블옹도 잠시 문학 노인으로 변신해 본다.

가끔이면 생각나서 몇 번 김선장 시인의 이야기를 지면을 통해 잡문형식이나 에세이로 적어 본 적이 있지만 올 들어서는 그 감회가 더욱 두드러지게 가슴을 적시며 웬 일인지 필자를 숙연하게 한다. 한국 문단에서 해양문학 또는 해양시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김선장 시인은 함경남도 이원서 태어난 1942년생으로 필자와 동갑이며 평생을 해상직원 주변을 맴돌면서 짝통해기사란 칭호까지 받으며 살았기에 동시대의 뱃사람들 한국해대 16기 입학동기들에게 들은 얘기가 시인에 대한 전부로, 일면식도 없지만 그래도 한 솥밥, 해운 가족의 일원이란 동질성으로 해서 아는 것 이상으로 더 많이 기억하고픈 욕심이 앞서기도 한다.

1971년 '청진항(淸進港)' 작품으로 한국문단 최고의 등용문,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으로 등단하여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하면서 4권의 시집을 내고 300여편의 주옥같은 작품을 발표하여 해양문학의 선구자적 개척자로 필명을 날렸으며 문단 등단의 지름길로 알려진 중앙 일간지의 신춘 당선이란 힘들고 영광된 고지를 내로라 하는 젊은 문단 지망생들을 제치고 배를 타는 선장이란 열악한 조건에서 등극을 한데다가 한국해대에 입학은 했었으나 해양대 본과와 전수과를 두루 오가면서도 졸업장은 취득하지 못하고 국가 자격시험을 통해 해기사 면허를 취득, 항해사로 배를 타고 선장으로 활동하는 33년 동안 세계로 바다로 미래로란 해양한국의 슬로건 아래 5대양을 두루 누비며 범양상선 등 원양 상선을 타고 대양을 항해하면서 겪은, 파도와 싸우며 지내온 망망한 대해 항행 경험을 바탕으로 바다 냄새가 물씬 나는, 이름하여 바다를 소재로한 해양시 300여편을 남긴 시인으로 유명하다.

그의 시는 대부분이 바다 위에서, 알려진대로, 해양도시 부산을 중심으로 한국문단에 "해양시" 라는 독특한 장르를 정착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칭송받은 것은 김성식 시인이 마른 뭍에서 외는 일반 문학인이 아니라 외항선의 선장이란 독특한 직업에 더하여 바다를 항행하는 마도로스라는 상징성과 이미지와 낭만적 요소가 플러스 알파로 작용한 때문이기도 하다. '청진항'에 버금가는 1986년 발표작, '바다는 언제 잠드는가?' 와 1999년의 '이 세상 가장 높은 곳에 바다가 있네' 등으로 대표되는 시인의 가장 은유적이며 탁월한 표현의 문장이 집약적으로 표현되어 읽는 이로 하여금 바다에 대한 향수를 자아내고 '겨울날 감자떡을 들고 갯가에 나가노라면 싱싱한 바다 냄새 더불어 정어리 떼들 하얗게 숨쉬는 소리'에서는 누구나 엄마 가슴을 만지작이는 환상을 불러 오는 듯 하다.

2002년 3월 작고한 김 시인은 33년간의 원양상선 승선활동과 선장직무 수행중 무사고 운항기록과 선원들의 권익보호 및 해운산업 발전을 통해 국가경제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몇 해전 '바다의 날' 을 맞아 정부로 부터 은탑 산업훈장을 받기도 한 것은 참으로 의미있는 일이라 하겠다. 아까운 나이에 타계하기까지 줄곧 우리 문단에서 해양시라는 독특한 분야를 개척해온 그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것은 물론 1970년말 승선중에 투고한 시 '청진항' 이 조선일보 신춘서 당선작으로 뽑히고 난 이후부터다. '77년 첫시집 "청진항"을 출간한 이래 2000년 하선하기까지 4권의 시집을 발간하기 전에 김시인은 월남 후 서울에서 중학교를 다닐 때부터 바다를 주제로 한 시를 써 백일장에서 수상을 하는가 하면 늘 물결을 타틋 생동감 넘치는 작품으로 일관해 왔다는게 해양문학을 승계하고 있는 후배 문인들의 일관된 평가다.

그리고 살아생전 그리도 호방하던 김시인은 배를 타던 중 하선하여 종합검진에서 임파선암 판정을 받고 치료중 점차 나약해 죽어가면서도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도 시를 쓰겠다며 펜을 놓지 못하던 모습이 무척안스러웠다고 술회하는 미망인 부인의 심경을 읽은 적이 있고 김 시인의 작품을 정리하고 편찬하는데 큰 역할을 담당했고 필자와는 연습선 한바다호를 함께 타고 2개월간 인도양을 거쳐 갠지스강과 캘카타, 버마의 랭군항, 나가사키와 키룽항 등지를 승선했던 한국해대 황을문(黃乙文)교수와 몇 수년전 타계한 목포해대를 졸업, 승선 후 해운전문 기자를 거쳐 해기사협회 기관지 편집장을 지낸 김동규(金東圭)수필가 등 동료 문인들의 한결같은 평가였다,

김성식 선장 시인은 험한 파도와 싸우며 배를 타고 전 세계를 누비면서도 생전에 늘 유독 갈수 없는 항구고향땅 청진항을 그리워하며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김성식의 시를 깊이있게 연구하는 일부 교수들은 그의 시가 단순하게 바다를 무대로 할 뿐만 아니라 해양 리얼리티를 확보함으로써 해양시의 구체성과 현실성을 담보하고 질적으로 위상을 높혔다고 강조했다. 어느 학자는 시인이 선장으로서 33년 동안 배를 타고 바다를 누비며 쓴 230여편의 시는 해양문학을 대표한다고 평가되는 영국의 계관시인 존 메이스 필드를 뛰어넘는 해양시이며 해양문학 작품이라는 점을 주장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그러나 배를 타다 싫증이 나면 청진항 도선사가 되겠다던 김선장은 결국 청진항에 되돌아 가 보지도 못하고 2002년 겨우 회갑의 나이에 동아대 병원서 암으로 아깝게 타계한바 그 아쉬움은 어찌 필자 샌드페블 한 사람에게 그칠까, 담 달에 부산가면 한국해대에 세워진 시비라도 함 찾아야겠다.

 

청 진 항(淸津港)

배를 타다 싫증나면
까짓것
청진항 도선사가 되는거야

오오츠크해에서 밀려나온
아침 해류와
동지나해에서 기어온
저녁 해류를
손끝으로 만져가며

회색의 새벽이 밀물에 씻겨 가기 전
큰 배를
몰고 들어갈 때

신포 차호로 내려가는
명태잡이 배를 피해
나진 웅기로 올라가는
석탄 배를 피해
여수 울산에서 실어 나르는
기름 배를 피해

멋지게 배를 끌어다
중앙 부두에
계류해 놓는거야

청진만의 물이 무척 차고 곱단다
겨울날
감자떡을 들고 갯가에 나가노라면
싱싱한 바다냄새
더불어
정어리 떼들 하얗게 숨쉬는 소리
엄마 가슴에 한아름 안기지만
이따금 들어오는 쇠배를 보느라고
추운 줄 모르고 서 있었단다

잘 익은 능금 한 덩이
기폭에 던져놓고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은 별을
기폭에 따다 넣고
햇살로 머리 빗긴
무지개를 꺾어 달고

오고 가는 배들이
저마다 메인 마스트에
태극기를

올 엔진 스탠바이
훠 샷클 인 워터
렛고우 스타보드 엥커

방파제 넘어
닻을 떨어 뜨려
나를 기다리면

얼른 찾아가
나는
굿 모닝! 캡틴

새벽별이 지워지기 전
율리시즈의 항로를 접고서
에게해를 넘어온 항해사
태풍 속을 헤쳐 온 키잡이
카리브해를 빠져 온 세일러를 붙잡고

주모가 따라주는 텁텁한 막걸리
한 사발을 건네면서
여기 청진항이 어떠냐고
은근히 묻노라면

내 지나온 뱃길을 더듬는 맛
또한
희한하겠지

까짓것
배를 타다 싫증 나면
청진항 파이롯이 되는거야

<197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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