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현 대표변호사
카를로스 곤 전 르노닛산 회장의 일본 탈출을 일컬어 언론은 비비안리 주연의 고전 영화 제목에 빗대어 그가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고 평하고 있다. 곤 전 회장은 보수를 축소 신고해 2018년 11월 금융상품 거래법 위반 혐의로 체포됐다가 보석 석방된 뒤 자금 유용 혐의로 지난해 4월 또 체포되어 다시 보석 석방된 상태였다. 도쿄지방법원이 내건 보석 조건은 곤 전 회장이 도쿄 미나토구 단독주택에 거주할 것과 해외로의 도항(渡航바다를 건너는 것, 출국) 금지였다.

보석 기간 중 곤 전 회장의 여권은 변호사가 보관하도록 했으며 3일 이상 여행은 재판소에 허가를 받아야 했다. 부인과의 접촉도 금지됐으며, 주거지 현관에는 감시카메라가 설치됐고, 녹화 내용은 정기적으로 법원에 제출됐다. 휴대전화도 변호사가 제공한 인터넷에 접속할 수 없는 것 만을 사용할 수 있었으며 통화 기록조차 법원에 제출됐다. 곤 전 회장은 일본 형법상 징역•금고 3년 이상에 해당하는 죄로 기소된 피고인에 해당해 출입국관리 당국의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돼 있었고, 출국하고자 할 경우 입국 심사관이 곧바로 수사기관에 통보하고 출국수속 절차를 24시간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지난 달 31일 곤 전 회장은 성명을 내고 "나는 레바논에 있다"며, 레바논에 도착한 사실을 밝혔다. 그는 자신이 더 이상 부정한 일본 사법제도 인질이 아니게 됐다며 "정치적 박해로부터 도망쳤다"고 주장했다. 곤 전 회장은 브라질에서 태어났지만 레바논에서 자랐으며 레바논에는 아직도 그의 친지들이 있다고 한다.

곤 전 회장이 어떻게 일본에서 출국 했는지는 아직 미스터리다. 소위 ‘영화에나 나올 법한 대탈출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곤 전 회장의 탈출 직후에는 크리스마스 파티를 이용한 악기 케이스 은닉설이 언론을 통하여 보도되었지만, 탈출 전날 유유히 자택을 걸어 나가는 곤 전 회장의 모습이 감시카메라에 포착되었음이 밝혀 지면서, 정확한 탈출 방법은 미궁에 빠져 있는 형국이다.

한편, 곤 전 회장의 탈출로 인하여 일본 사법체계의 특징도 주목을 받고 있다. 변호사 입회 없이 이뤄지는 피의자 신문, 장기간의 인신 구속을 통하여 수사가 이뤄지는 일본의 사법체계가 세계적 기준에 비추어보면 상당히 낙후되어 있다는 것이다. 수사 기간에는 구속 기간을 최소화하도록 하고, 수사기관의 신문시에는 원칙적으로 변호사의 입회를 불허할 수 없도록 한 우리의 형사소송법보다도 상당히 낙후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곤 회장은 8일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면서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법정에 설 준비가 됐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레바논과 일본은 범죄인 인도조약이 체결되어 있지 않아 곤 전회장이 설 법정이 일본이 될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은 출입국관리의 허술함 때문에 국가적 체면이 상하게 되었다. 우리에게도 그러한 허점이 없는지에 대해 살펴봐야 할 필요가 있다.


 

저작권자 © 쉬핑뉴스넷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