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 법무법인 세창 대표변호사, 해양수산부 법률고문 칼럼] 가습기 살균제 피해, 더 일찍 막을 수는 없었을까

2016-05-18     쉬핑뉴스넷

 
가습기 살균제가 시판되어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은 2000년 대 초반이다. 가습기에 물을 받아 쓰다 보면, 물탱크 안에 이끼가 생기게 되는데 이를 세척해 내는 것은 여간 귀찮고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가습기 살균제는 물탱크에 조금만 넣으면 청소를 하지 않아도 청결이 유지되고, 더하여 향긋한 향기까지 퍼지게 되어 참 세상 편리하고 좋아졌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가사를 돌보는 주부들이 좋아했다.

그러던 중 원인을 알 수 없는 신종 폐질환이 2006년에 보고되고, 2011년 임산부 4명의 원인 불명의 폐질환 사망으로 인한 역학조사 결과 가습기 살균제의 위해성이 알려졌다. 정부가 지난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조사한 결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는 530명으로 이 가운데 143명이 사망했다. 한 시민단체의 조사 결과에서는 피해자가 1500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여기의 피해자는 어디까지나 산모들의 사망 원인이었던 폐섬유화 증상 등 폐질환을 보인 환자를 말한다. 기관지염이나 급성 편도염 등 경증 환자들까지 포함하면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자 규모는 수백만명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임산부와 어린 아이들이 죽어나가면서 가습기 살균제가 인체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이 인정되었고, 정부는 가습기 살균제 판매를 중지시켰다. 그렇다면, 가습기 살균제를 만들고 판매한 업체들은 이러한 위해성을 미리 알고도 판매를 강행한 것인지 여부가 책임소재를 판단하는 데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다.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 업체에 대한 검찰 수사가 한창이다. 업체가 가습기 살균제 판매를 하면서 필수적인 흡입 독성 검사를 거치지 않았고, 심지어는 검사 결과를 왜곡한 정황이 밝혀지고 있다. 독성이 있는지 모르고 판 것이 아니라, 독성이 있음을 알 수 있는 자료들이 있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판매를 강행한 것이다. 문제가 된 다국적 업체는 해외 여러 곳에서 판매를 시도했으나, 흡입 독성 검사를 요구하는 각국 정부의 조치에 우리 나라 말고는 판매를 단념했다고 한다. 유독 우리 나라에서만 피해자들이 발생한 이유다.

일련의 피해에 대한 일차적 책임은 유해성을 알고도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한 파렴치한 제조 판매 업체에 있다고 할 것이다. 그들의 비인간적인 행태는 비난 받아 마땅하고, 그에 상응하는 처벌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제품이 시장에서 팔리도록 방치한 정부 당국의 조치에도 문제가 있다. 국민의 안전을 보장해야 하는 정부가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너무 늦은 반응을 보인 것이 피해를 확산시킨 또다른 원인이 아닌가 생각한다. 애초에 적정한 감시 시스템이 작동했더라면, 부모가 자식을 제 손으로 죽였다며 절규하는 작금의 안타까운 상황은 미리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