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 법무법인 세창 대표변호사, 해양수산부 법률고문 칼럼]우리의 자존심은 10억엔 짜리가 아니다
주한 일본대사와 부산 총영사는 9일 소녀상 설치에 항의하는 뜻으로 일시 귀국하였고,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주한대사 본국 소환 등의 조치를 발표한 6일 사전 녹화한 NHK 프로그램을 통해 "10억엔을 냈으니 한국이 제대로 성의를 보여야 한다"고 말하는 등 강공 모드를 이어가고 있다. 또한 일본 정부는 양국간 진행 중인 한•일 통화스와프 협상 중단과 고위급 경제협의 연기 등의 제재성 조치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를 길들여보겠다고 단단히 작정한 듯하다.
일본의 이러한 태도는 마치 10억 엔을 주었으니 우리는 조용히 입다물고 있으라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 일각에서는 소녀상 설치를 빗대어 '10억엔 출연 입금 사기', 또는 '보이스피싱'이라고 까지 하며, 자신들의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위안부 합의의 핵심은 일본의 10억엔 지급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대한 진정한 사과에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던 것이었다. 일본이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겨우 10억엔에 사려고 했다면 그것은 큰 착각이다. 합의를 진행한 우리 정부도 착각 속에 일을 진행한 것은 마찬가지이다.
일본은 합의 시점부터 지금까지 위안부 합의 상의 '최종적 불가역적 합의'만을 강조하고, 그 전제가 되는 '마음으로부터 사죄와 반성'은 무시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합의문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오히려 “사죄할 마음이 전혀 없다”고 뻔뻔스럽게 밝혀 합의의 진정성이 없음을 드러냈다. 위안부 합의 체결 당시의 비판과 같이, 위반부 합의는 합의될 수 없는 사안을 억지로 나서서 봉합한 것에 불과하다. 당사자의 의사 확인도 없이 굴욕적인 합의를 해 놓고, 역사적인 합의라며 자랑스럽게 말하던 우리 정부에도 비판이 가해져야 마땅하다.
이 사안에서 도덕적으로 우리는 일본보다 훨씬 우위에 있다. 그런데도, 피해자인 우리가 왜 가해자에게 끌려 다니면서 '보이스피싱'이라느니 '돈을 받았으면 성의를 보이라느니'하는 말을 들으면서 무시 당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할 말은 제대로 해야 한다. 여러가지 일로 나라가 엉망이지만, 자존심까지 버려가며 비굴한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된다. 당당하게 진정한 사과와 사죄를 지속적으로 요구해야 한다. 그 전제에서 미래를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