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 법무법인 세창 대표변호사(前 대한변협 회장) 칼럼/ 법치주의 위기, 어떻게 극복할까
2021년 신축년 소띠 새해에는 성실하고 참을성 있으며 믿음직한 소의 모습처럼, 우리 모두가 더 큰 희망을 품고 더욱 정의로운 사회, 더 안전하고 풍요로운 사회에서 살 수 있으면 좋겠다. 개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큰 틀에서의 사회제도가 제대로 작동해야 개인은 비로소 행복할 수 있다. 중세 농노 시대를 생각해 보라. 개인이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싶어 한들 영주가 과도한 소작료로 생산물을 거의 다 가져가고 이웃 영주와 불필요한 전쟁을 일으키며 젊은 남자들을 멋대로 징집해간다면 개인의 소소한 행복을 생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인류의 역사는 법치주의 즉 법에 의한 지배가 도입되면서 한 단계 크게 발전했다. 원래 개인이 더 잘 살기 위해서 국가를 만든 것이므로 국가는 늘 겸손하게 자신의 한계를 인식해야 한다. 국가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거나 국민에게 의무를 부과할 때에는 국회가 제정한 법률에 의해야 하고 행정과 사법도 법률에 따라야 한다. 그래야만 개인이 자신의 미래와 활동영역을 예측하고 행동할 수 있다. 형식적 법치주의 만으로는 부족하고 실질적 법치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즉 법률의 내용도 국회가 마음대로 입법해서는 안되며 국민의 자유와 평등을 실현하고 정의에 부합하는 정당한 것이어야 한다. 나아가 법률 제정권자와 행사권자는 분리되어야 한다. 절대권력은 절대부패하는 경향이 있고 견제가 없으면 권력이 남용되어 국민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최근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직무배제와 징계 사건으로 나라가 시끄러웠다. 징계사유를 들여다 보니 그다지 심각한 비리가 있는 것은 아닌 것으로 일응 보이는 반면, 징계위원회는 징계청구권자가 징계위원 다수를 일방적으로 임명할 수 있어 다소 치우친 구조였으며 징계절차도 여러 가지 면에서 빈틈이 있어 보였다. 다행히도 법원이 현명한 결단을 내려 검찰청법이 보장한 2년 검찰총장 임기를 무사히 마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 권력은 달콤한 것이고 역사적 경험으로 보면 권력자들은 통제받지 않는 권력을 남용하려는 유혹을 받게 되므로 행정부의 잘못에 대해 감사원과 검찰이 엄정하게 감시하는 것이 국민의 이익을 위해 바람직하다. 그러한 맥락에서 검찰권을 지나치게 제한하려는 일부의 움직임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된다.
모든 일에는 균형과 조화가 무엇보다 중요한데, 국회에서 여야의 균형이 깨진 것이 예상대로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낳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당이 압도적인 다수의 권한을 행사해 충분한 검토 없이 법률을 많이 통과시키고 있다. 특히 518 왜곡처벌법이나 대북전단법 같이 개인의 표현의 자유와 비판할 자유를 아예 봉쇄하는 법은 개인의 기본권 제한이 과도하여 헌법위반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전반적으로 필요 이상으로 지나치게 법률이 많이 제정되고 있어 과잉입법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의원들의 발의건수를 의원평가의 긍정적인 기준으로 하는 것도 재고할 필요가 있다. 꼭 필요한 법안만 발의해야 하고, 불필요한 악법을 발의하는 것은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것이 합리적이다. 특히 창의적이고 다양한 기업활동을 장려해 국가경쟁력을 강화시키고 장래의 먹거리를 창출하는데 지혜를 모아야 하는데, 오히려 국가의 규제를 늘리고 가뜩이나 친노동으로 기울어져 있는 기업환경을 더욱 불리하게 하는 일련의 입법은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면 안타까운 일이다.
국회의원은 한 사람 한 사람이 헌법기관이다. 자유롭게 자신의 소신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당론에 배치되는 발언과 생각을 한다고 하여 비난하고 내친다면 집단지성이 발붙일 자리를 잃게 되고 견제 없는 한 가지 외골수 생각만이 극단적으로 나아가다가 생각지 않은 커다란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높다. 민주주의는 원래 다소 시끄러운 것이다. 인내심을 가지고 다른 사람의 주장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이견을 가진 사람에게 문자 폭탄을 퍼붓거나 인터넷 댓글로 욕하는 것은 성숙한 민주 시민의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새로 탄생하는 공수처에 우려의 시선이 집중된다. 헌법에 근거도 없고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하며 판사와 검찰을 위축시킬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공수처가 과연 순기능을 잘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는 대통령도 공수처 수사대상으로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도 석연치 않다. 선진국에는 공수처같은 기관을 둔 예가 없고 인권 후진국인 중국의 제도로 알려져 있는데, 공수처를 왜 도입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많다.
결국 사회의 마지막 보루이자 양심인 법원에 큰 기대를 걸게 된다. 법치주의는 법치행정에 그치지 않고 국가에 의해 국민의 자유와 권리가 침해된 경우 법원이 정당한 손해배상과 구제를 해주어야 한다. 법조인들은 그동안 상당히 좋은 대접을 받아왔고, 특히 사법연수원이 있던 시절엔 국민이 낸 세금으로 월급을 받으며 법조인으로 키워져 왔으므로 사회에 대해 빚진 것을 갚아야 한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의식을 법조인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의견 불합치나 분쟁은 결국은 법원에서 해결되므로 판사들이 더욱 무거운 책임감과 소명의식을 가지고 더 정의롭게 판단해 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