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 법무법인 세창 대표변호사(前 대한변협 회장) 칼럼/위안부 문제, 슬기롭게 해결하자

2021-05-11     쉬핑뉴스넷

위안부 문제를 다룬 영화 <눈길>을 보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 위안부 문제는 우리의 영원한 아픔이다. 그런데 최근 두 개의 상반된 판결이 나와 우리를 혼란하게 한다.

2021년 1월 8일 서울중앙지법 민사34부는 일제강점기에 강제동원되어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한 12인의 여성이 일본국을 상대로 위자료 지급을 구한 사건에서, 일본제국은 계획적, 조직적으로 조선 여성들에 대하여 광범위하게 반인도적 범죄행위를 자행했다고 선포했다. 그리고 당시 일본제국이 불법점령 중이었던 한반도 내에서 대한민국 국민에 대해 자행된 그러한 행위가 국가의 주권적 행위라 할지라도 국가면제를 적용할 수 없고, 일본국은 일본제국의 불법행위로 조선 여성들이 입은 정신적 고통을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선언했다.

이 통쾌한 판결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 국가면제의 법리 (국가의 주권적 행위는 다른 국가의 재판권으로부터 면제된다는 국제법상 원칙)에 의하더라도 국가의 모든 행위에 대하여 예외 없이 타국의 재판권 행사에서 면제되지 않으며 예외가 인정된다. 일본제국은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의 수행과정에서 군인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민원 발생을 줄이기 위해 위안부를 관리하는 방법을 고안해 내고 군과 국가기관이 조직적으로 인력을 동원하고 확보해 위안소를 운영했다. 당시 10대 초중반 내지 20세에 불과한 원고들은 위안부로 동원된 이후 일본제국의 조직적인 통제 하에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강제로 군인들의 성적 행위의 대상이 되었다. 이 같은 행위는 일본제국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반인도적인 불법행위였고 그로 인하여 원고들은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입었다. 일본제국의 후신으로서 일본국은 원고들이 입은 정신적 고통을 배상할 의무가 있다. 또 이러한 원고들의 일본국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은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 및 ‘2015년 일본국 위안부 피해자 문제 관련 합의’의 적용 대상에 포함되지 않으므로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아직 소멸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법원은 피고가 원고에게 1억원씩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런데, 서울중앙지법 민사15부는 2021년 4월 21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0인의 여성이 일본국을 상대로 낸 위자료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판결의 주된 근거는 '국가면제' 법리였다. 즉, 법원은 대한민국과 일본국 사이에 상호간의 민사재판권 인정 여부에 관한 조약을 체결한 적이 없으므로 일본국에 대한 국가면제 인정 여부는 오로지 국제관습법에 따라 판단돼야 한다고 보았다. 설령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권리구제의 필요성 등 국가면제의 예외를 인정해야 할 현실적인 필요성이 있더라도 새로운 예외의 창설 문제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며, 법원이 위 법리에 추상적인 기준으로써 예외를 인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봤다. 원고들은 이에 불복해 5월 초에 항소장을 제출하였고, 2심 절차는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았다.

바로 수개월 전 같은 법원의 타 재판부가 원고 승소판결을 하였음에도 민사15부가 원고 패소 판결을 한 것은 일본과의 외교적 마찰을 고려한 때문으로 보인다. 국제정세상 미,중 간 무역이슈, 북핵 문제 해결 등을 위해 한,미,일 간의 동맹을 강화하고 외교적 단합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지금 한일 관계의 악화를 가져올 원고 승소판결이 과연 국익에 도움이 될까를 재판부는 진지하게 고민하였을 것이다.

이미 수 년 전 일제 강제징용자들의 일본제철,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한 승소 판결의 집행 과정에서 한일 관계는 외교 수립 이래 최악의 상태에 있다. 이로 인해 한일 간의 기존의 안보협력 (지소미아)는 물론 꼭 필요한 민간교류까지 지나치게 냉각되어 있다. 일본은 대한 반도체 관련 품목에 관한 사실상 수출규제로 맞서고 있어 한국의 관련업체는 타격을 받고 있다. 사실 원고들이 구하는 액수는 우리 정부의 재정능력에 비춰 정부가 대신 변제하지 못할 액수는 결코 아니다. 대승적으로 대한민국 정부가 판결금에 상당하는 금액을 몇 분 안되는 생존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대신 지급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뜻있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나서서 십시일반 성금을 모아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전달함으로써 승소판결을 얻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거두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다. 성금을 모은다면 필자도 적극 참여하고 싶다.

무엇보다도, 외교적으로 해결할 사안에 법원이 선제적으로 나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위 판결에 대한 항소심 재판부의 재판 진행을 주목하면서, 우리가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방안을 추진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