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 법무법인 세창 대표변호사(前 대한변협 회장) 칼럼/법관 정기인사, 너무 빈번하다
변호사들은 연말이 되면 ‘이 사건은 내년에나 재판기일이 열리겠구나’ 싶은 사건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2월에 있는 법관 정기인사로 인해 매년 법관 전체의 1/3가량이 법원을 옮기고, 대부분의 사건들이 새로운 재판부에 재배당되어 사건이 전면적으로 새로이 검토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매년 정기인사철을 앞둔 연말이 되면 많은 재판부가 사건 재배당을 염두에 두다 보니 재판 진행에 소극적인 태도로 임하고, 그런 재판부의 의향을 아는 사건 당사자들도 이에 따라 적극적으로 진행하고자 하는 의지를 잃어버리기 쉽다.
2000년에 개정된 법관 등의 사무분담 및 사건배당에 관한 예규에 따르면 재판장인 법관의 최소 사무분담기간은 2년, 재판장이 아닌 법관의 최소 사무분담기간은 1년으로 규정되어 있다. 민사 1심 합의부 사건이 접수되어 첫 기일이 정해지기까지 평균 141.9일, 소장 접수부터 판결이 내려지기까지 평균 353.7일이 걸리는 점을 고려하면 1~2년은 지나치게 짧은 기간이다. 게다가 근래에는 코로나의 영향까지 더해져서 법원 재판절차가 지나치게 지연되고 있다는 불만이 높다.
민사소송절차의 관행상 수 차례의 재판기일이 장기간에 걸쳐 열리면서 그 때 그때 재판부의 의중을 보며 증거를 신청하고 확보하게 되는데, 그러다가 재판부가 변경되면 사실상 소송을 처음부터 다시 하는 것과 같은 결과가 되곤 한다. 예컨대 소송 당사자들은 사건의 핵심에 대해 공방이 장기간에 걸쳐 충분히 이뤄졌다고 생각하고 재판부가 심리를 종결하는데 동의했는데, 사건을 배당받은지 얼마 안 된 새 재판부가 충분한 검토 없이 예상치 못한 판결을 내리거나, 재판의 쟁점이나 방향을 처음부터 다시 검토하게 되어 사건이 종결되지 않는 경우도 발생한다. 애당초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빈번한 인사이동이 오히려 공판중심주의, 구술변론주의, 집중심리주의를 실현하는 것에 지장을 주고 효율적인 재판진행을 막아 결과적으로 국민에게 불편을 주는 모양새이다.
이렇게 잦은 사무분담 변경이 이루어지는 것은 재판부와 당사자 간의 유착을 배제하고 재판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인데, 한편 올해 정기인사에서는 서울중앙지법 법관들 중 정부 및 여당 관련 중요 사건들을 담당하는 판사들이 이례적으로 장기간 유임되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다른 재판부는 2년만에 바뀌는데 특정 재판부가 무려 6년 동안 한 자리에 유임하면서 여론의 주목을 받는 사건들을 재판하니 모양이 좋지 않고, 의도적인 것이 아닌가 하는 불필요한 의혹을 받게 된다. 이런 것들이 쌓여 사법불신을 초래하는 것이니 매우 안타깝다.
미국법제에서는 증거개시절차를 충분히 거친 후 정식소송절차로 넘어가고 재판 변론기일이 열리기 며칠 전에 재판부가 배정된다. 이미 증거개시절차에서 소송의 행방이 결정되어 있으므로 정식소송으로 진행되지 않는 경우도 많고, 판사는 변호사들이 사전에 제출한 서면을 검토한 후 법정에서의 변론을 듣고 변론 당일 구두로 주문을 결정하므로 구술변론기일은 1~2회에 그친다. 이렇게 재판 직전에 재판부가 결정되므로 재판부에 맞춰 변호사를 선임하는 일도 없다. 이와 비교하면 현재 우리 법원의 사무분담 관행은 기준이 불명확한 인사로 불공정성을 가중하고, 지나치게 잦은 법관의 이동으로 소송절차의 비효율을 야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개인이 당사자인 소액 사건에서는 의뢰인들이 평생 한번 겪을까 말까 하는 소송에 휘말려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원래 이렇게 소송이 오래 걸리는 것이냐고 묻곤 하는데 변호사로서 의뢰인들을 달래다 보면 좌절감을 느낄 때도 많다. 민사사건도 그렇지만 형사사건의 재판 장기화가 당사자에게 끼치는 고통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 와중에 사회적으로 주목도가 높은 사건이나, 판결하기 어렵고 복잡한 사건의 경우 재판부가 재배당을 기다리며 다음 재판부에 미루는 행태를 보이는 것을 보면 답답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지난 12월 3일 열린 전국법원장회의에서는 최소 사무분담기간을 재판장은 3년, 배석판사는 2년으로 늘리는 안이 논의되었다고 한다. 비록 6일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안건이 통과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이나, 사무분담위원회 개선안이 통과되는 등 관련 논의가 이루어지는 것만으로도 긍정적인 방향이라고 생각된다. 사견으로는 재판장은 4년, 배석판사는 3년 동안 한 재판부에서 재판하는 것이 어떨까 한다. 재판부가 자신의 임기 동안 책임을 지고 효율적인 재판 진행을 도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진정으로 공정한 사법정의를 실현하는 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