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 말의 힘, 그리고 해양어젠다!!

2024-11-01     쉬핑뉴스넷

해양연맹 세미나 “해양력 강화"

해운협회 기금 “바다의품”

주경철 해양역사 “바다인류”

미국해운의 후회 “해양무지”

역사 속에서 ‘한마디 말’은 때로는 그 자체로 시대를 정의하고 사회의 흐름을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다. 공자의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는 개인의 수양이 곧 가정을 다스리고 나라를 세우는 기초임을 강조하며, 그 당대의 사회적 가치와 이상을 담고 있다. 예수님의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Give back to Caesar what is Caesar’s)"라는 말씀은 세속과 영적 영역의 구분을 통해 종교와 정치의 관계를 생각하게 만들었으며, 이후 종교적·사회적 논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또한, 부처님의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는 인생의 무상함과 욕망에서 벗어난 삶의 지혜를 일깨워 주었고, 이는 불교 철학의 근간이 돼 왔다.

이처럼 강력한 표현 하나가 하나의 어젠다를 제시하고 시대를 초월해 사회적 가치와 관념을 확산시킨 예시는 수없이 많다. 오늘날 해양산업과 관련된 중요한 주제 역시 이와 같은 힘 있는 ‘한마디 말’을 필요로 한다. ‘해양력’,  ‘해양영토’,  ‘바다의품’ 등 해양과 관련된 키워드들은 앞으로의 해양 어젠다를 선점하고, 해양산업의 미래를 열어갈 강력한 메시지가 될 수 있다.

3년전, 대한민국해양연맹(R.O.K SEAPOWER LEAGUE)에 최윤희 전 합참의장이 제10대 총재로 선출됐다. 창군 이래 최초로 해군에서 합참의장에 발탁됐던 최윤희 신임총재는 “대한민국해양연맹을 명실공히 우리나라 해양력 발전을 위한 핵심단체로 일으켜 세우겠다”고 포부를 밝히면서, 이를 위해 민ㆍ관ㆍ군ㆍ경은 물론 해양관련 모든 기관과 활발한 협의를 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소수의 조직과 미미한 예산으로 해양연맹이 해양분야 핵심단체가 된다는 것은 허망한 수사에 지나지 않을 것임은 모두가 잘 알고 있었다.

그 해 연말에, 정례 심포지엄을 준비하면서 최윤희 총재는 승부수(?)를 준비한다.
“해양력(SEAPOWER) 강화”라는 주제를 내걸고, 해운 원로(신태범 회장), 수산 원로(김재철 회장), 조선 원로(신동식 회장)를 비롯해 바다에 관련된 민ㆍ관ㆍ군ㆍ경 모두가 한자리에 모이게 한 것이다.

이후, ‘해양력(SEAPOWER)’이라는 말 한마디로, 해양연맹이 이제 해양분야 핵심 역할을 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됐으며, 많은 국민과 해군ㆍ해병대ㆍ해경으로 까지 해양산업의 중요성을 알린 것은 지대한 공적으로 남을 만 하다. 마침 오는 11월 14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패러다임 전환, 그리고 상생”이라는 주제로 해양력 강화 심포지엄을 개최한다고 하니,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2년전, 한국해운협회에서는 해운업계가 그 동안 성장을 통해 쌓아 온 이익과 혜택을 사회에 환원하고 해운 및 해양분야의 발전을 지원하고자 공익재단을 설립하게 된다. 정태순 이사장(한국해운협회 회장)은 “우리 재단은 우리 사회 그늘진 곳에 있는 어려운 이웃들을 돌보고, 이들이 희망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따뜻한 손길을 먼저 내밀 것”이라고 창립기념식에서 재단의 의미를 밝혔다.

후일담에 따르면, 설립준비 시기에 기금에 대한 명칭을 공모하고 해운협회 회장단 회의에 몇 개의 후보작이 상정됐다고 한다. ‘한국해운기금’, ‘해양기금재단’ 등 보편적인 명칭이 선호되는 분위기에서, 정태순 회장이 ‘바다의품’이라는 후보를 추천했으나 반응이 미온적이자, “저녁을 크게 사겠다”는 약속으로 만장일치 동의를 받았다고 한다.

“바다의품(KOREA MARINE FOUNDATION)” 명칭은 해운계에서 사고의 전환을 이룬 명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바다’에 ‘받아-준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듯이, 해운계의 제일 큰 형님단체로서 모든 단체를 품고, 사회적 약자를 품고, 따뜻한 손으로 감싸 안는다는 의미를 “바다의품” 한마디에 다 담은 것이다.

2022년 초, 서울대학교 해양사학자 주경철 교수가 역저 <대항해 시대> 이후 10여년만에 <바다인류>라는 해양에 대한 빅히스토리북을 출간했다. 인류 역사의 첫 출발부터 21세기 미래 바다의 도전과 기회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바다와 맺은 모든 인연을 기술하고 있다.

연대기적 해양국가의 흥망성쇠 서술에서 탈피, 바다를 통해 세계가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를 설명하며, 바다를 어떻게 다루느냐가 국가의 미래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고 강조한다. 주경철 교수는 책에서 “바다는 아무에게나 열린 게 아니라 깊이 공감하고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들에게만 허락됐다”고 하면서, 미래 바다는 세계 열강들이 충돌하는 불안요소인 동시에 미래식량 미래자원의 기회공간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이 책의 영문 원제는 “A MARITIME HISTORY’이다. 여기에 주경철 교수는 “바다인류”라는 다소 엉뚱한 제목을 붙이면서 독자들의 시각을 ‘검푸른 장벽의 바다’에서 ‘인류역사발전의 원동력이 된 바다’로 전환시킨 것이다. “바다인류”라는 강력한 말 한마디가 우리 모두를 바다와 연결된 사람으로 초대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5월, ‘미국해운의 후회’라는 기사를 게재한 바 있다.
“왜 미국적 선박이 전쟁에 대비하지 못할 만큼 취약해 졌는가?”라는 질문과 함께, 미국의 다수 해사전문가들이 미국적 상선대의 고갈에 대해 근원적인 의문을 제기한다는 내용이었다. 2024년 1월 기준으로 미국 깃발을 단 1,000톤급 이상 상선이 185척에 불과하다는 깜짝 놀랄만한 사실을 전하면서, 전 미연방해사청장의 “정말 걱정됩니다”라는 인터뷰 내용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미국이 포괄적인 국가해양전략이 부족하다고 지적하면서 이러한 전략을 개발하라는 지시는 백악관 또는 국가안보회의에서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한 전문가는 “대중과 많은 의회 의원들은 우리의 상품과 에너지의 90%가 해상운송에 의존하고 있다는 관계의 의존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호소하면서, 미국은 “해양무지(SEA BLINDNESS)”로 고통받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해양무지”라는 이 말 한마디에는, 세계 최강의 해군력에 미스매칭되는 해운력에 대한 안타까움과 영원할 것 같은 제국의 초조함이 함께 묻어 난다. 그러나 ‘미국해운의 후회’는 “해양무지(SEA BLINDNESS)”를 깨닫는 순간 미래바다의 원동력으로 변모할 것임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이처럼, 강력한 ‘한마디 말’은 해양 어젠다를 형성하고, 사회에 해양의 중요성과 미래 방향성을 심어줄 수 있다. 오늘날, “해양력 강화” “바다의품” “바다인류” 그리고 “해양무지”와 같은 표현들은 단순한 일개 단어를 넘어, 해양 산업이 나아갈 길과 우리 사회가 해양을 바라보아야 할 시각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해양을 새로운 관점에서 이해하고 그 가치를 깨달을 때, 해양은 자원을 넘어 우리 삶과 경제, 그리고 국가 안보의 필수 요소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산업적 성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미래 세대가 공유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미래 바다를 보존하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의미이다.

앞으로도 다양한 해양 관련 단체와 협회들이 이러한 강력한 구호와 비전을 통해 해양 어젠다를 선점하고, 해양국가로서의 대한민국의 미래를 열어나가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