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포커스/김인현 고려대 명예교수(고려대 해상법연구센터 소장)...동남아 정기선사 과징금 소송

2025-04-25     쉬핑뉴스넷

에버그린 공정거래 사건 대법원의 파기환송 소식을 듣고

 

김인현 교수

2024,2, 에버그린 측은 공정거래위원회가 제기한 과징금 부과취소소송에서 승소한바 있다. 이는 전체 동남아 정기선사와 같은 맥락의 사건이므로 해운업계에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런데, 오늘 대법원(2025.4.24.선고 2024두35446판결)은 위 고등법원의 판결이 잘못이므로 다시 판단하라고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동남아정기선사의 공동행위에 대해 과징금을 부과할 권한이 해양수산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공정거래위원회에게도 있다고 보았다. 소송의 쟁점은 해양수산부와 공정거래위원회 어느 쪽이 공동행위에 대한 행정처분을 할 권한이 있는 것이냐 이었고 최종적으로 공정거래위원회도 가진다는 것으로 결론이 났었다. 대법원은 이를 부인하고 공정거래위원회가 규제권한이 있다고 보았다. 고등법원은 이에 맞추어 판결을 해야 한다.

고등법원은 명시적으로 기술하지는 않았지만, 해운법에 있는 정기선사의 공동행위 규정은 공정거래법의 공동행위규정과 병행적으로 독립적인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해양수산부 장관만이 규제권한을 갖는다고 보았다. 이에 반해 대법원은 정기선사의 공동행위중에서도 신고되지않은 것이나 은폐되는 것은 구 공정거래법 제49조상의 “법령이 정한 정당한 행위” 인지 심사를 거쳐야하는 것으로 보았다. 결국 해운법의 독립성을 인정하지않고 공정거래법의 우산아래 넣은 것이다(신고된 것은 해수부장관의 독립성을 인정한 것으로 보임).

위 쟁점은 과징금을 부과할 권한이 누구에게 있는가였다. 과징금부과가 잘 못되었는지 판단에 대한 관문 하나를 통과한 셈이다. 과징금의 부과는 공동행위가 위법한 경우에만 부과하는 것이므로 다음단계로 과연 에버그린을 포함한 동남아 정기선사들의 공동행위가 위법해서 과징금을 부과할 정도였는지 다투게 될 것이다. 여전히 동남아 정기선사들이 승소할 기회는 있다고 할 것이다. 동남아 정기선사들의 공동행위가 운임의 인상을 가져와서 화주들이 피해를 입었는지는 그 행위가 오히려 산업에 유리한 측면도 있었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해운법에 위반한 일이 없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이 소송을 지켜보면서 아쉬운 점은 사건 처리에 대한 소송담당자들의 접근방법이다. 대법원의 판결에 이르기까지 많은 학자와 연구기관이 의견이 법원에 제출된다. 법원의 판사들의 판결은 많은 경우 법조문과 법률용어의 해석에 의하고, 그 해석은 1차적으로 관련 학자와 전문가의 의견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판사들은 이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이에 영향을 받는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 업계를 대변하고 이론을 구성할 해상법 학자, 경쟁법 학자수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업계는 항상 불리한 지위에 놓이게 된다. 업계에 제기된 쟁점을 꾸준하게 다루고 미리 연구를 해둔 학자들이 두텁게 형성되어야 업계가 보호받는 힘이 있게 된다. 고등법원의 판결후 공정거래위원회측에 유리한 논문이 3-4편 나온 반면, 정기선사에 유리한 논문은 1편정도만 보인다. 소송에 임하면서 너무 변호사들의 변론에만 의존되는 것이 아닌지?

해운법(1962년 제정)이 공정거래법(1980년) 이전에 존재하면서 공정거래법적인 요소들을 이미 다루어왔으므로 공정거래법과 별개의 법제도가 해운분야에 존재해왔음을 강조하고 대법원이 이를 받아들여야 승소할 수 있는 사안이었다고 본다. 그렇다면 법리뿐만아니라 해운에 정통한 학자들의 논문이나 의견서가 대법원에 제출되었어야한다(선박안전법의 감항성 신고의무와 관련하여 대법원 판단을 받는 과정에서도 업계는 미리 준비된 학자들의 논문을 제시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업계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법률적 쟁점이 발생하면, 전공교수나 전문연구원들이 평소에 연구하여오던 것에 더하여 외국의 사례등을 추가하여 훌륭한 논문이나 보고서가 여러편 법원에 제출되어야한다. 최근 법원은 전문심리위원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법원의 판사는 특정한 주제에 대하여 원고나 피고의 제안 혹은 직권으로 전문가를 불러서 의견을 구한다.

이런 다양한 제도를 충분히 활용해서 소송을 진행해야 한다.

이러한 큰 소송이 있을 때마다 아쉬운 것이 “민간 해운연구원”이다. 해상법이나 해운물류, 조선업의 오래된 쟁점이나 새로운 쟁점을 깊숙하게 연구하여 축적하는 민간연구원들이 우리나라에는 극히 드물다. 학자들에게 의존하지만 해상법이나 해운물류 교수들의 숫자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국책연구기관인 KMI는 이런 연구를 주로 하는 기관이 아니다. 지금이라도 민간 해운연구원을 설립해서 업계의 공통으로 적용되는 쟁점이 연구되어 소송 등에 도움이 되도록 할 것을 제언한다.

보험분야는 민간 보험회사들이 자금을 갹출하여 운영하는 보험연구원이 있다. 일본도 선주협회와 도선사 협회가 공동으로 운영하여 박사 5명 규모의 일본해사센터가 있다. 우리 해운업계도 박사 5명 규모의 민간 해운연구원을 설립할 것을 제안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업계의 쟁점을 유리하게 이끌어갈 해상법이나 해운경영의 민간 싱크 탱크를 만들어 업계를 보호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