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세 제동 건 미국, LNG로 가닥 잡는 글로벌 해운업계

탄소세 도입 연기에도 전세계적 LNG 전환 가속, 한국 조선업에 전략적 기회

2025-11-12     쉬핑뉴스넷

KOTRA(로스앤젤레스무역관 Chris Kim)는 12일 "탄소세 제동 건 미국, LNG로 가닥 잡는 글로벌 해운업계" 제하의 리포트를 발표해 관심을 모았다. 이에 따르면 2025년 10월, 국제해사기구(International Maritime Organization, IMO)는 글로벌 해운업계가 오랫동안 기대해 왔던 글로벌 탄소세(Global Carbon Tax) 도입을 1년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탄소세는 선박 연료의 탄소 배출량에 비례해 일정 금액을 부과하기로 한 제도로, 해운 탈탄소화를 촉진하기 위한 핵심 수단으로 평가돼 왔다.

이번 결정으로 인해 해운업계의 탈탄소 로드맵엔 차질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이번 결정의 배경엔 미국 측의 강한 반대가 있었으며, 연기 결정에 대해 국제항만협회(IAPH)의 Patrick Verhoeven 상무이사는 “해운 산업의 넷제로(Net Zero) 목표의 심각한 후퇴”라고 지적했다. 그만큼 IMO의 이번 결정은 단순한 정책 일정 조정이 아니라, 산업 전체의 전략 방향을 흔드는 결정으로 평가된다.

IMO는 2023년부터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목표로 한 세부 로드맵을 마련해 왔으며, 탄소세를 통해 선사들의 연료 전환을 유도하려 했다. 그러나 이번 논의 중단으로 시장은 예기치 않게 ‘규제 공백의 1년’을 맞게 됐고, 다수 선사들은 완전한 무탄소 연료(그린 메탄올, 암모니아, 수소)로의 전환 계획을 일시 보류하고 있다. 이로 인해 단기간 내 탄소 배출을 줄이면서도 기존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는 LNG의 전략적 가치가 부각되고 있다.

정책 공백 속 LNG가 해운업의 ‘현실적 정답’으로 부상

IMO의 탄소세 도입이 연기되면서, 선사들은 현시점에서 당장 실현 가능한 탈탄소 전략을 찾기 시작했다. 메탄올, 암모니아, 수소 등 차세대 무탄소 연료는 아직 공급망 구축 초기 단계에 있으며, 생산·저장·인프라 전반이 불완전하다. 특히 메탄올의 친환경 생산 방식인 ‘그린 메탄올’의 경우 전 세계 생산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가격도 높아, 선사들이 새로운 선박을 발주해도 운항 중 연료 확보가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LNG가 시장의 중심 무대에 등장하게 된 것이다.

LNG는 기존 벙커유 대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 있으면서도 이미 주요 항만에서 인프라가 구축돼 있어 연료 공급이 비교적 안정적이다. 글로벌 리서치기관 S&P에 따르면, LNG 추진 컨테이너선(LNG-fueled ship) 발주량은 2023년 말 194척에서 2024년 10월 기준 362척으로 급증했다. 전체 신조 선박 중 LNG 추진 가능 선박의 비중은 23%에서 40%로 상승했으며, LNG는 더 이상 대체재가 아니라 신조 발주 시장에서 주류 연료가 돼가고 있다. 현재 운항 중인 LNG 컨테이너선은 218척으로 전체의 3.5% 비중에 그치지만, 이 발주 추세가 이어질 경우 향후 10년 내 LNG 컨테이너선의 비중은 급격히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LNG의 부상은 단순히 탄소세 연기의 반사이익이 아니다. 시장은 이미 LNG를 현실적인 투자 대상으로 보고 있었고, 오히려 규제가 늦춰지자 선사들은 ‘지금 당장 쓸 수 있는 연료’인 LNG로 더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선사들이 LNG를 택하는 이유

선사들이 LNG를 선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즉시 실행 가능한 감축 효과, 공급 안정성, 그리고 운항 유연성 때문이다. 국제선급협회(ABS)의 자료에 따르면, LNG는 기존 벙커유 대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최대 20% 줄일 수 있다. 이는 ESG 요구가 높아진 화주(Shipper)와 규제당국에 탈탄소 노력을 보여줄 수 있는 명확한 근거가 된다. 특히 컨테이너선사들은 해운업종 중 가장 소비자와 가까운 산업으로, 사회적 압력과 ESG 요구에 더 민감하게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

공급 측면에서도 LNG는 전 세계적으로 인프라가 이미 구축된 유일한 대체 연료이기도 하다. 반면 메탄올이나 암모니아는 지속가능한 생산공정이 거의 없고, 생산 가격 또한 LNG 대비 크게 높다.

이러한 현실 때문에 글로벌 해운 대기업 머스크(Maersk)는 최근 신조 선박 50~60척에 대해 기존의 ‘그린 메탄올 계획’을 철회하고, 듀얼연료 LNG 추진 선박으로 전환했다. 듀얼연료 엔진은 LNG와 기존 벙커유를 모두 사용할 수 있어 연료 가격이나 공급 여건에 따라 즉시 전환이 가능하다. 실제 운항 데이터를 보면 일부 선사는 LNG를 5~10%만 사용하는 반면, LNG 가격이 유리하거나 공급 여건이 좋은 항로에서는 최대 50% 이상 사용하는 사례도 나타난다. 즉, LNG는 ‘전환 연료’를 넘어 운항 전략에 따라 비중을 조절할 수 있는 리스크 관리 도구가 된 것이다.

LNG의 한계와 부담

그럼에도 LNG는 완벽한 해답은 아니다. LNG는 영하 162도라는 극저온 상태로 저장 및 유지돼야 하기 때문에, 일단 선박에 채워 넣은 LNG의 양이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재냉각 작업이 필요하다. 재냉각 과정에서 선박은 최대 3일 동안 운항할 수 없으며, 부두 사용료와 기회비용까지 고려하면 수십만 달러에서 수백만 달러의 손실이 발생한다.

또한 LNG 공급 프로세스 역시 기존 벙커유보다 복잡하다. LNG 벙커링은 최소 한 달 전에 확정해야 하고, 일정이 변경될 경우 높은 위약금을 지급해야 한다. 대형 선사는 항로 조정이 빈번하기 때문에 이러한 제약은 실제 운영에 상당한 부담을 준다.

나아가, LNG 가격은 계절 요인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특히 겨울철에는 발전 및 난방 수요가 증가해 LNG 가격이 크게 상승한다. 이 때문에 선사들은 겨울 시즌에는 LNG 사용을 줄이고, 다시 벙커유로 전환하는 경우가 많다. 즉, LNG는 분명 효과적인 전환 연료이지만 동시에 복잡성과 비용 리스크를 내포한 연료이며, 선사들은 운항 전략을 수시로 조정하며 이를 관리하고 있다.

LNG 추진 선박 수요 확대 속 한국 조선업의 전략적 우위

LNG 추진 컨테이너선 발주가 빠르게 증가하는 가운데, 한국 조선업은 이 흐름의 가장 큰 수혜자로 부상하고 있다. 한국의 조선 3사 (HD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한화오션)은 LNG 연료 추진 및 저장 시스템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확보한 덕분에 고부가가치 LNG 추진 선박 수주를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실제로 영국 기반 해운·조선 전문 미디어 Riviera Maritime Media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 조선업의 전체 수주량 중 LNG 관련 선박이 52% 이상을 차지하며, LNG 추진 선박은 한국 조선소들의 수주잔량(orderbook) 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분야로 집계됐다.

또한 글로벌 선사들이 규제 대응과 연료 전환을 위해 LNG 추진 컨테이너선을 주문하면서 시장은 더 확대되고 있다. HMM의 경우 최근 HD 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에 12척의 LNG 추진 컨테이너선을 발주했다.

조선 전문 매체들은 한국 조선소들은 고난도 기술이 필요한 LNG 추진 선박 건조 능력을 통해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더 확대하고 있으며, 실제로 올해 들어 한국 조선업의 시장 점유율이 크게 상승했다고 분석한다. LNG 추진 시장이 글로벌 선박 발주의 핵심이 되는 상황에서, LNG-ready 및 이중 연료 엔진 중심의 선박 기술을 선도하는 한국 조선업은 향후 IMO 탈탄소 규제가 강화될수록 경쟁력을 높여갈 가능성이 크다.

시사점

IMO의 글로벌 탄소세 도입 연기로 해운업계의 탈탄소 전략은 일시적인 불확실성에 직면했지만, 오히려 시장 스스로가 규제보다 앞서 대응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선사들은 정책을 기다리기보다 즉시 실행 가능한 현실적 해법인 LNG 추진 선박 중심으로 발주와 운항을 확대하며 탄소 배출 감축과 운영 유연성을 동시에 확보하고 있다. 

특히 LNG 공급망과 이중 연료 기술을 선제적으로 확보한 한국 조선업은 글로벌 LNG 추진 선박 시장에서 확실한 경쟁 우위를 확보하고 있어, 향후 IMO 규제가 강화되거나 무탄소 연료 전환이 본격화할 경우에도 안정적인 수주와 기술적 우위를 유지할 수 있는 전략적 위치에 있다. KOTRA 로스앤젤레스무역관이 인터뷰한 롱비치 기반 물류기업 대표 Y는 "해운업계는 단순히 정책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과 기술을 통해 자율적으로 탈탄소 전환을 주도할 수 있다"라고 의견을 밝혔다. 글로벌 해운업계의 이러한 흐름은 다른 조선국이나 신진 선사들에게도 LNG 및 대체 연료 투자 전략이 향후 경쟁력의 핵심 변수가 될 것임을 시사한다. 

 

자료: GCaptain, S&P Global Market Intelligence, Riviera Maritime Media, Baird Maritime, KOTRA 로스앤젤레스무역관 자료 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