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생 은산해운항공 회장 칼럼] 신공항과 '2등 국민'
앞으로 15년 뒤 김해공항의 모습이다. 이건 단순히 과장된 상상이 아니다. 국토교통부의 의뢰로 파리공항공단(ADP)이 지난해 8월 김해공항 국제선 수요를 조사했다. 그랬더니 2030년 김해공항 이용객은 무려 2162만 명에 달했다. 2013년도 967만 명 대비 124% 급증이다. 17년 만에 배 이상 늘어나는 셈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김해공항의 활주로 혼잡은 2020년대 중·후반이 되면 수용한계에 다다른다. 포화상태는 이보다 더 빨라질 수도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 김해공항 국제선의 항공수요가 2025년이 돼야 1000만 명을 넘어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데 지난해 12월 이미 이용객 1000만 명을 돌파했다. 예측치보다 무려 14년이나 앞당겨졌다.
상황은 이리도 잰걸음인데 정부는 냉담한 표정이다. 부산시민은 2등 국민인가? 정부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서야 어찌 이리 푸대접과 문전박대이겠는가. 인천공항은 거의 5조 원을 들여 3단계 확장공사가 진행 중이다. 여기다가 화물처리 시설 확장과 복합도시까지 조성한단다. 베이징 2공항에 대비한 것이라지만 지나치다. 지난해 인천공항은 환승률이 급감했다. 베이징 2공항이 들어서면 타격이 있을 것이다. 게다가 일본 하네다 공항이 확장되면 중국, 일본의 환승객을 유치하기는 더 힘들어진다. 그런데도 확장일로다. 이건 한마디로 몰빵(집중투자)이다.
동남권 신공항은 나라의 미래를 좌우할 중차대한 사업이다. 그런데도 정부의 2014∼2018년 중기재정계획 속에는 인천과 김포공항에 무게 중심이 주어져 있다. 심지어 울릉도 소형공항 건설사업비 4900여억 원, 흑산도 소형공항 건설사업비 1400여억 원까지 배정돼 있다. 동남권 신공항만 쏙 빠져 있으니 이게 어찌된 일인가. 정부가 최소한의 의지나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동남권신공항은 비단 부산만의 문제가 아니다. 영호남 등 남부권 주민들은 인천공항을 거쳐야만 유럽 미주노선을 이용할 수 있다. 출국하는 데만 거의 한나절이 걸린다. 비용은 물론이고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걸 언제까지 감수해야 하는가. 부산사람을 2등 국민으로 보지 않는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만약 그렇다면, 이건 심각한 헌법 위반이다. 부산사람은 서울사람과 동등한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 그게 헌법적 가치가 아니겠는가.
항공화물의 경쟁력 약화는 지역경제에 치명적이다. 화물의 소형화 추세를 감안하면 직항로는 경쟁력의 핵심적 요소 중 하나다. 기업은 말할 것도 없고 도시의 경쟁력 또한 그러하다. 신공항은 이런 문제를 단번에 해결한다. 지난해 부산항이 처리한 물량은 6m짜리 컨테이너 1850만 개였다. 이 중 45%가 환적화물이다. 신공항이 생기면 부산을 거쳐 중국, 일본으로 수송되는 화물이 러시를 이룰 것이다. 싱가포르공항과 홍콩 첵랍콕공항은 이미 환적화물로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다. 중국 상하이공항도 환적화물 선점 전략을 세워 성공적으로 추진 중이다.
신항만과 철도, 도로의 시·종착점인 부산은 동아시아 허브 공항으로 최적지다. 지정학적으로 극동아시아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지리적 여건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신공항의 제1요소는 24시간 운항이다. 그게 안 되면 중국이나 일본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들다.
서병수 부산시장은 가덕도 신공항에 시장직을 걸겠다고 공약했다. 새해에는 2027년 개항을 목표로 한 '신공항 로드맵'까지 제시했다. 정부가 입지 선정에 대한 결단을 내리지 못하면 민자공항도 불사하겠다고 했다. 서 시장의 로드맵은 올해 입지를 선정한 뒤 기본계획, 실시설계 및 시공사 선정을 거쳐 2027년 준공하는 것으로 돼 있다. 오죽하면 로드맵까지 내놓았겠는가.
정부는 신공항 건설을 더는 미적거려선 안 된다. 400명 이상 타는 747점보기 이착륙이 가능한 국제공항을 건설하려면 10년 내지 15년이 걸린다. 입지선정과 지질조사, 기본설계, 시공사 선정, 건설기간을 포함하면 그렇게 된다. 신공항 건설은 어려운 과제고 그만큼 긴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 시작해도 늦은데 정부의 행보는 나무늘보처럼 느리다. 어차피 신공항은 국책사업이다. 국책사업을 하면서 5개 지자체 간 합의를 요구하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정치색만 빼면 입지 결정은 의외로 간단하다. 공신력 있는 국제기구에 맡겨 결정하면 되는 것이다. 신공항은 대한민국의 미래이기도 하다. 정부는 신공항을 놓고 지자체에 흥정을 붙이는 거간꾼 노릇은 그만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