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20일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제45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그는 미국 대선 기간 내내 세계적인 비웃음을 샀지만, 공화당 내 후보들을 물리치더니, 민주당 대선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까지 누르고 결국 당선되었다. 취임식에서는 'America First', 즉 미국 우선주의를 강조하면서 기존의 세계질서에 변화가 생길 것을 예견케 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일주일 후인 지난 달 27일 이라크, 시리아, 리비아, 이란, 예멘, 수단, 소말리아 등 중동과 아프리카 무슬림 7개국을 미국입국금지 국가로 선언하는 이른바 반이민 행정명령에 서명하였다. 이들 국가 출신 국민들은 미국 영주권자라고 하더라도 미국 입국이 금지됐으며, 입국 금지대상국이 아닌 나라의 국적을 이중으로 취득한 경우에도 미국 입국이 거부되었다. 이로 인하여 해당 국가 국민들에 대한 미국의 비자발급은 중단되었고, 미국에 도착한 시리아 난민들이 공항에 억류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러나, 헌법 위반 소지가 있는 트럼프의 이와 같은 행정명령에 대해서 반대 여론이 들끓었고, 공무원들도 나서서 행정명령의 이행을 반대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샐리 예이츠 법무장관 대행은 이러한 행정명령의 이행을 거부하다가 배신자라는 말까지 들으며 해임되었다. 한편, 행정명령의 위법성은 법원에서도 주장되었고, 이번 달 4일 시애틀 연방지방법원에서 트럼프의 반이민 행정명령을 미국 전역에서 집행금지하는 가처분명령을 내렸으며, 이에 대한 항소심이 열린 제9연방항소법원에서도 3명의 판사가 만장일치로 행정명령의 법적 효력을 중단시키는 판결을 9일 내려 트럼프의 패배를 선언하였다. 이제 대법원의 판단만 남겨 둔 상태이다.

미국이나 우리나라나 대통령 중심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이다. 그런데, 미국의 경우는 취임한지 얼마 안 된 떠오르는 권력을 향해서도 헌법과 법률이 정한 견제장치가 신속하게 작동하는 것이 우리와는 다른 점으로 보인다. 트럼프의 행정명령의 정당성 여부는 우리와는 큰 상관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발한 행정명령에 대해 소신껏 자신의 직을 걸고 부당하다고 경고를 한 고위공무원이 있었고, 대통령이 수반으로 있는 행정부를 견제하는 임무를 맡은 사법부는 단 며칠 만에 위법 소지가 있는 행정명령의 효력을 정지시키는 판결을 내렸다. 이런 견제 시스템이 살아있고, 이를 수행하는 구성원이 있기 때문에 누가 미국 대통령이 되더라도 법치가 계속 이뤄지는 것이다.

반면 우리는 대통령을 견제하는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다. 집권세력의 부정에 대하여 소리 내어 반대하는 사람은 찾기 어려웠고, 오히려 그에 굴종하여 자신의 이익을 채우려는 자들에 의해 수년간 농단된 국정을 뒤늦게 바로잡는 작업을 수개월째 지루하게 하고 있다. 대통령의 행정명령에 공식적으로 반기를 들고 명예롭게 해임된 법무장관 대행과 행정명령의 효력을 정지시키는 신속한 판결을 내리는 미국의 법원을 보면서 우리도 더 높은 차원의 법치가 행해져서 작금과 같은 비극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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