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이후 급등했던 물류비와 관련, 화주와 선사간 쌓여왔던 갈등 본격 터져 나오고 있음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
-금전적 손익 넘어, 앞으로 글로벌 화주와 선사 간 관계에 매우 중요한 선례 남기게 될 것
최근 글로벌 해운업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거대한 소송전에 선화주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27일 글로벌 수출입 물류 플랫폼 트레드링스는 "삼성전자 “2600억 내놔” vs 코스코 “오히려 55억 빚졌다”… 한치 양보 없는 법적 공방" 제하의 리포트를 발표해 지대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삼성전자’와 중국 최대 해운사인 ‘코스코(COSCO)’가 미국에서 수백억 원대 규모의 법적 다툼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현재 단순한 운임 분쟁을 넘어, 양측의 자존심이 걸린 팽팽한 힘겨루기가 이어지고 있다.
대체 두 거대 기업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조용한 바다에 던져진 돌, 분쟁의 시작
모든 사건의 시작은 202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성전자의 미국법인(Samsung Electronics America)이 코스코를 상대로 미국 연방해사위원회(FMC)에 소송을 제기하면서부터다.
삼성전자측의 주장은 명확했다. 미국으로 컨테이너를 수입하는 과정에서 코스코가 부당하고 과도한 ‘체선료(Demurrage)’와 ‘지체료(Detention)’를 부과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체선료와 지체료가 무엇인지 간단히 짚고 넘어가 보자.
체선료(Demurrage)는 수입 화물이 항구 터미널에 도착한 후, 무료 보관 기간을 넘겨 컨테이너를 찾아가지 않을 경우 부과되는 일종의 ‘연체료’이다.
지체료(Detention)는 수입자가 항구에서 컨테이너를 찾아간 뒤, 정해진 기간 내에 빈 컨테이너를 선사에 반납하지 못할 경우 발생하는 ‘연체료’이다.
삼성전자는 코스코가 청구한 이 비용이 부당하다며 무려 2,000만 달러(한화 약 260억 원) 에 달하는 금액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이는 삼성전자가 단지 코스코 한 곳에만 문제를 제기한 것이 아니었다. 기사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코스코의 또 다른 자회사인 OOCL에도 1,250만 달러 규모의 소송을 제기하는 등, 2022년부터 여러 글로벌 선사들을 상대로 부당한 요금에 대한 전방위적인 법적 대응에 나선 상태였다.
예상치 못한 반격, 코스코의 역공
삼성전자의 공세에 코스코가 수세에 몰릴 것이라는 많은 이들의 예상과 달리, 코스코는 정면으로 반격에 나섰다. 지난 5월, 코스코는 삼성전자 미국 법인뿐만 아니라 한국의 본사 및 계열사까지 겨냥한 ‘제3자 소송(third-party complaint)’ 을 제기하며 판을 뒤흔들었다.
코스코의 주장은 충격적이었다. 오히려 삼성전자가 자신들에게 미지급한 체선료와 지체료가 있다며, 그 금액이 420만 달러(한화 약 55억 원) 에 달한다고 맞불을 놓은 것이다.
코스코측 변호인단은 삼성전자가 “기만과 은폐의 계략(a scheme of deception and concealment)”을 통해 운송 비용을 부당하게 낮추려 했다고 주장했는데, 즉 삼성전자가 처음부터 서비스 계약을 체결할 당시에는 요금 규정에 동의하는 척했지만, 실제로는 나중에 분쟁을 일으켜 요금 지불을 회피하려는 숨은 의도(‘concealed disagreement’)를 가지고 있었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는 삼성전자의 소송 자체가 계획된 ‘갑질’이라는 매우 강력한 비판이었다.
다시 맞서는 삼성, “근거 없는 주장”
코스코의 강력한 반격에 삼성전자 역시 즉각 재반격에 나섰다. 삼성전자는 미국 연방해사위원회의 행정법 판사인 린다 해리스 코벨라(Linda Harris Corvella)에게 코스코가 제기한 420만 달러 맞소송을 기각해 달라고 공식적으로 요청했다.
삼성전자측 변호인인 짐 호헨슈타인(Jim Hohenstein)은 코스코의 주장이 아무런 구체적인 사실에 기반하지 않은 ‘일방적인 결론적 진술(conclusory statements)’ 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그는 코스코가 삼성전자가 계약 당시에 ‘숨겨진 이견’을 가지고 있었다고 주장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만한 삼성전자의 정신 상태나 의도를 보여주는 어떠한 사실이나 증거도 제시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한 마디로, 아무런 증거 없이 삼성전자를 ‘사기꾼’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처럼 양측의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이제 공은 판사의 손으로 넘어가게 됐다. 판사가 과연 삼성전자의 손을 들어 코스코의 맞소송을 기각할지, 아니면 코스코의 주장을 받아들여 본격적인 진실 공방을 이어갈지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단순한 분쟁이 아닌, 해운업계의 거대한 흐름
이 사건을 단순히 두 기업 간의 다툼으로만 봐서는 안된다. 기사는 이 싸움이 더 큰 그림의 일부임을 시사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코스코뿐만 아니라, 앞서 언급된 OOCL, 그리고 한국의 HMM(무려 1억 2,000만 달러 규모!) 등 다수의 글로벌 선사를 상대로 유사한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이미 이스라엘 선사 Zim과 SM상선으로 부터 수백만 달러의 배상 판결을 받아내는 성과를 거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물론 이 판결들은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이는 팬데믹 이후 급등했던 물류비와 관련, 화주(화물 주인, 즉 삼성전자와 같은 수출입 기업)와 선사(해운사) 간에 쌓여왔던 갈등이 본격적으로 터져 나오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화주들은 선사들이 시장 지배적 지위를 이용해 부당한 요금을 청구해 왔다고 주장하는 반면, 선사들은 계약에 따른 정당한 요금 청구이며, 오히려 일부 대형 화주들이 힘을 이용해 정당한 비용 지불을 회피하려 한다고 맞서고 있는 것이다.
코스코의 ‘맞소송’ 전략은 이러한 선사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강력한 신호탄으로 볼 수 있다. “더 이상 당하고만 있지 않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끝나지 않은 전쟁, 우리는 무엇을 지켜봐야 할까?
현재 삼성전자와 코스코의 법적 분쟁은 이제 막 본게임에 돌입했다. 삼성전자는 코스코의 맞소송 기각을 요청했고,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 사건의 결과는 단순히 두 기업의 금전적 손익을 넘어, 앞으로 글로벌 화주와 선사 간의 관계에 매우 중요한 선례를 남기게 될 것으로 보인다. 만약 법원이 삼성전자의 주장을 받아들여 코스코의 맞소송을 기각한다면, 다른 선사들을 상대로 한 삼성전자의 소송은 더욱 탄력을 받을 것이다. 반대로 코스코의 주장이 일부라도 인정된다면, 그동안 수세에 몰렸던 선사들이 대대적인 반격에 나서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
과연 수백억 원이 걸린 이 거대한 법정 드라마의 승자는 누가 될까?.
트레드링스는 "앞으로도 이 흥미진진한 소송의 진행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새로운 소식이 들어오는 대로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할 것이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