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 해운시장은 관세 효과 소멸 따른 수요 절벽, 역대급 신조선 인도 따른 공급 과잉, 글로벌 경기 둔화 삼중고 직면
글로벌 수출입 물류 플랫폼 트레드링스는 7일 "해상 운임 하락, 2028년까지 이어진다?" 제하의 리포트를 발표해 선화주 관심이 지대하다. 트레드링스에 따르면 2025년 2분기, 미국의 관세 정책 변화를 앞두고 일시적으로 불타올랐던 해상운임 시장이 빠르게 식어가고 있다.
8월 초 현재, 대표적인 운임 지표인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8주 연속 하락하며 연일 암울한 소식을 전하고 있다. 단기적인 반등을 이끌었던 ‘관세 밀어내기’ 효과가 소멸되고, 구조적인 공급 과잉과 글로벌 경기 둔화라는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면서 하반기 해운 시황에 적신호가 켜졌다.
1. ‘관세 파티’는 끝났다: 수요 절벽에 직면한 시장
올해 2분기 운임 상승의 가장 큰 동력이었던 ‘사전 선적(Front-loading)’ 수요가 사실상 종료됐다. 미국과 중국의 관세 유예 기간 동안 화주들은 관세를 피하기 위해 물량을 미리 실어 날랐고, 이는 단기적인 물동량 급증과 운임 상승으로 이어졌다. 특히 중국발 미주항로 물동량이 급증하며 시장을 견인했다.
하지만 이는 미래의 수요를 앞당겨 쓴 것에 불과했다. 8월 관세 부과 마감시한이 다가왔음에도 시장은 과거와 달리 잠잠한 모습을 보였다. 반복된 관세 이슈에 지친 화주들이 재고 확보에 소극적으로 변했고, 이미 높아진 관세율에 부담을 느낀 중소기업들은 수입을 포기하는 사례까지 나오면서 수요는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주요 항로 운임 현황:
◇미주 항로: 하락세가 지속되며 관망세가 짙어지고 있다. 수요 둔화로 인해 선사들이 예고한 8월 운임 인상(GRI)은 사실상 실패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유럽 항로: 반짝 상승세를 보였으나, 성수기 효과가 약화되고 공급 과잉 우려가 커지면서 재차 하락세로 전환했다.
◇동남아 항로: 6주 연속 하락하며 수급 불균형이 지속되고 있다.
이처럼 주요 항로 전반에 걸쳐 수요 약세가 뚜렷해지면서, 업계에서는 ‘성수기 조기 종료’ 가능성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2. 예고된 재앙: 심각한 공급 과잉의 현실화
수요가 줄어드는 동안, 공급은 역대 최고 수준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올해에만 약 210만TEU의 신규 선박이 인도될 예정이며, 이는 전체 선복량을 6.5%나 증가시키는 물량이다.
문제는 이러한 공급확대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영국의 해운 분석기관 MSI(Maritime Strategies International)에 따르면 신규 선박 인도는 2026년 160만TEU, 2027년 265만TEU, 2028년 340만TEU로 계속해서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선사들은 운임 방어를 위해 항차를 건너뛰는 ‘블랭크 세일링(Blank Sailing)’을 확대하고 노후 선박 해체를 늘리는 등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쏟아져 나오는 대형 신조선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이러한 구조적인 수급 불균형은 향후 몇 년간 운임 시장에 지속적인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3. 식어가는 세계 경제: 중국발 경기 둔화와 무역 다변화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을 더욱 악화시키는 건 글로벌 거시 경제의 불확실성이다. 특히 ‘세계의 공장’인 중국의 경기 둔화는 심상치 않다.
지난 7월 중국의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49.3으로 넉 달 연속 위축 국면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는 중국 내수 부진과 디플레이션 압력이 여전하며, 하반기 경기 회복이 쉽지 않음을 시사한다. 최대 수출국인 중국의 생산 및 소비가 둔화하면서 전 세계 해상 물동량 역시 동력을 잃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글로벌 교역 지형도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고율 관세를 피하기 위한 움직임이 본격화되면서, 전통적인 미주항로의 중요성은 감소하고 있다.
◇중국의 수출 다변화: 중국은 미국 대신 아세안(ASEAN) 등 동남아시아로의 수출을 빠르게 늘리고 있다. 이미 지난 3월부터 중국-아세안 수출 물동량은 전통적인 최중요 항로였던 중국-미국 물동량의 두 배를 넘어섰다.
◇항로 재편: 선사들은 관세를 피하기 위해 중국에서 건조된 선박을 미주 항로가 아닌 비(非)미주 항로로 재배치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는 과거 미주 항로 시황이 전체 시장을 좌우하던 패턴에서 벗어나, 역내 항로와 다변화된 교역 루트가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음을 의미한다.
전망: 2028년까지 이어질 수 있는 긴 하락 사이클
각종 분석기관들은 해운시장이 일시적 조정을 넘어 근본적인 하락 사이클(Cyclical Downturn)에 진입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MSI는 미국의 관세 부과 여파로 2026년 북미 컨테이너 물동량이 올해 대비 7.8%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다. 또한, 북미와 유럽 항로 운임 모두 2028년까지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여기에 중동 정세 변화로 수에즈 운하 운항이 재개될 경우는 또 다른 변수이다. 희망봉 우회로 묶여 있던 선박들이 항로에 복귀하면 실질적인 선복 공급이 급증해 운임 하락을 더욱 부채질할 수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2025년 하반기 해운 시장은 ①관세 효과 소멸에 따른 수요 절벽, ②역대급 신조선 인도에 따른 공급 과잉, ③글로벌 경기 둔화라는 삼중고에 직면해 있다. 단기적인 변수에 의한 일시적 등락은 있을 수 있겠으나, 근본적인 수급 불균형이 해소되지 않는 한 운임 약세는 장기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해운업계는 이제 본격적인 ‘보릿고개’를 넘기 위한 치열한 생존 전략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