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    석

1. 대상판결: 대법원 2006. 10. 26. 선고 2004추58 판결

2. 사실관계

가. A 주식회사 소유의 B호는 2002. 10. 25. 20:00경 일본국 모지항에서 컨테이너 81teu와 잡화 374ton을 적재하여 선수 약 3.9m, 선미 약 4.9m의 흘수(吃水) 상태로 부산항으로 출항하여 같은 해 10월 26일 07:25경 약 11.1노트의 속력으로 부산항 외항 방파제 입구를 지나 부산항 제1항로를 따라 진침로(眞針路) 약 307도로 정침(定針)하고 같은 날 07:29경 10.4노트의 속력으로 제1번 및 제2번 등부표 사이를 항해하였다.

나. 당시 부산항 제1항로 제2번 등부표의 동측 제1항로 밖에서는 증심(增深)준설공사를 시행하는 C 주식회사가 임차한 원고 소유의 준설선인 D호가 작업위치를 고정시키기 위하여 위 준설선의 양현 측에 각각 위치조정용 닻(positioning anchor)을 투하하고 있었다.

다. D호는 위치조정용 닻의 위치를 표시하기 위하여 두께 약 8mm의 연강판으로 제작된 직경 약 1m, 길이 약 1m의 소형원통(anchor buoy, 이하 ‘이 사건 닻부표’라 한다)을 직경 30mm, 길이 약 25m의 강색(鋼索, anchor wire)으로 연결하여 설치하였다. 이 사건 위치조정용 닻이 투하된 장소는 수심이 약 15m이므로 이 사건 닻부표는 위치조정용 닻의 수면 위를 기준으로 반경 약 20m 안에서 떠다니고 있었다.

라. B호의 추진기는 직경이 2.85m, 피치(pitch, 1회전시 진행 거리)가 1.92m, 중량이 18.1kg이고, 재질은 인장강도가 높고 연신율(延伸率)이 낮아 충격에 의하여 절손되기 쉬운 알루미늄 청동주물(ralbc₃)이며, 4개의 날개(blade)를 가진 우선회(右旋回) 추진기이다.

마. 중앙해양안전심판원은 2004. 2. 24. 제1항로 동쪽 경계선으로부터 약 30m 거리에서 부산항 내항 쪽으로 항해하던 B호의 추진기 날개가 제1항로 동쪽 경계선으로부터 약 40m 침범하여 부침하던 이 사건 닻부표에 부딪쳐 손상된 것임을 이유로 법 제5조의2에 의하여 원고에게 ‘준설선의 위치조정용 닻을 투하할 때 준설선의 위치결정방법 정도의 정확도를 유지하도록 할 것과 닻부표는 파랑계급 4급 정도의 해상을 항해하는 선박이 약 500m 거리에서 레이더 및 육안으로 쉽게 식별이 가능한 크기 또는 이와 동일한 성능을 갖는(레이더반사기의 설치 등) 형상이 되도록 할 것’이라는 내용의 이 사건 재결을 하였다.

바. 원고는 이 사건 닻부표가 부산항 제1항로를 침범하거나 B호의 추진기에 부딪쳐 추진기를 손상한 사실이 없으므로 이 사건 닻부표가 부산항 제1항로 동쪽 경계선으로부터 약 40m 침범하여 B호의 추진기에 부딪쳐 추진기를 손상시켰음을 전제로 한 이 사건 재결은 위법하여 취소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피고는 이 사건 재결은 해양사고의 조사 및 심판에 관한 법률(이하 ‘법’이라 한다) 제5조의2에 기하여 한 ‘시정 등 요청’에 불과하고, 법 제5조 제3항의 ‘시정 등 권고 재결’에 해당되지 아니하며, 따라서 이는 행정처분이라고 할 수 없고 원고는 소의 이익이 없어 이 사건 소는 부적법하므로 각하되어야 한다고 항변하였다.

3. 대법원 판결요지

각급 해양안전심판원은 해기사 또는 도선사 외의 자로서 해양사고의 원인에 관계있는 자에 대하여 시정 또는 개선을 권고하거나 명하는 재결을 할 수 있는바, 이때 시정 또는 개선할 사항은 해양사고의 원인과 관련이 있어야 하지만, 한편 해양사고의 조사 및 심판에 관한 법률이 자유심증주의를 채택하고 있고 형사소송절차와 유사한 심리 구조를 택하면서도 증거능력에 관한 규정을 두지 않은 점, 해양사고의 원인과의 관련성은 불확정 개념으로서 중앙해양안전심판원에 판단의 여지가 인정될 수밖에 없는 점, 특히 시정이나 개선의 권고 재결의 경우 그에 따르지 않더라도 이를 강제할 법적 수단이 없어 법적 구속력에 한계가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시정•개선을 권고할 사항과 해양사고 사이의 관련성은 반드시 엄격한 인과관계의 틀에 구속될 것이 아니라, 당해 해양사고가 남긴 교훈을 살려 향후 유사한 해양사고의 방지 및 안전 확보를 도모한다는 관점에서 시정이나 개선 권고 등이 해양사고 관련자에게 객관적으로 귀속할 수 있는지의 규범적•법적 문제로 파악함이 상당하다.
(중앙해양안전심판원이 유사한 해양사고의 방지 및 안전 확보를 도모한다는 관점에서 그 필요성을 인정하여 한 개선 권고 재결이 적법하다고 본 사례)

4. 평석

가. 해양사고의조사및심판에관한법률 제5조는 심판원은 해양사고의 원인에 관하여 규명을 하고 재결로써 그 결과를 명백하게 하여야 하고, 해양사고가 해기사 또는 도선사의 직무상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하여 발생한 것으로 인정할 때에는 재결로써 이를 징계하여야 하며, 필요할 때에는 해기사 또는 도선사 외의 자로서 해양사고의 원인에 관계 있는 자에 대하여 시정 또는 개선을 권고하거나 명하는 재결을 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더 나아가 제5조의2는 심판원이 심판의 결과 해양사고의 방지를 위하여 시정 또는 개선할 사항이 있다고 인정할 때에는 해양사고관련자가 아닌 행정기관이나 단체에 대하여도 해양사고의 방지를 위한 시정 또는 개선조치를 요청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나. 해기사 또는 도선사 외의 자로서 해양사고의 원인에 관계 있는 자에 대하여 시정 또는 개선을 권고하거나 명하는 재결을 할 경우 해당되는 해기사 또는 도선사 외의 자의 범위는 해양사고 원인과의 관련성에 의하여 좌우될 것인바 대법원은 자유심증주의, 증거능력 규정의 부존재, 판단여지의 불가피성, 법적 구속력의 한계와 함께 ‘시정’이나 ‘권고’는 향후의 사고 방지를 도모하기 위한 것이므로 위와 같은 규범적 관점에서 엄격한 인과관계에 구속되지 아니하고 넓게 보고 있는 것이다.

다. 이 사건에서도 대법원은 위와 같은 일반적인 기준을 적용하여, 2002. 10. 26. 07:29 부산항 제1항로 북위 35도 05분 25초ㆍ동경 129도 05분 37초 지점을 반대 방향에서 항해하던 선박과 교행하기 위해 제1항로 동쪽 경계선에 근접하여 부산항 내항 쪽으로 항해하던 B호의 선체 우현측 외판 일부와 추진기 날개가 제1항로 동쪽 경계선 안쪽에 들어와 제2번 등부표로부터 평행거리 약 130m, 직선거리 약 150m의 지점에서 부침하던 이 사건 닻부표와 닻부표 쪽의 강색(鋼索, anchor wire) 부분에 부딪쳐 1개의 날개는 74cm × 16cm가 절손 탈락되고, 두 개의 날개는 부분적으로 금이 간 채 각각 40cm × 15cm, 88cm × 16cm의 굴곡 손상을 입었으며, 나머지 한 개의 날개는 330cm × 120cm의 굴곡 손상을 입은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준설선의 위치는 자체에 설치된 지피에스(gps) 및 유지관리프로그램 등에 의하여 정밀하게 관리되나 위치조정용 닻의 투하 위치는 목측으로 결정되므로 항로 침범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운 사실, 닻부표는 대부분 직경 약 1m, 길이 약 1m의 소형원통이면서 침수율이 약 50%에 달하므로 작은 파랑에 의하여 부침을 반복하면 항로를 항해하는 선박이 레이더나 육안으로 이를 발견하기 어려워 항해에 위험을 초래할 우려가 많아 이의 개선 조치가 필요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보아 이 사건 권고된 개선 조치의 내용에 비추어, 법 제5조 에 의하여 중앙해양안전심판원이 이 사건 해양사고가 남긴 교훈을 살려 향후 유사한 해양사고의 방지 및 안전 확보를 도모한다는 관점에서 필요하다고 인정하여 한 이 사건 개선 권고 재결에 위법이 없다고 판단하였다.

라. 참고로 종전에는 해양사고 사건은 해양수산부장관 소속 지방해양안전심판원과 중앙해양안전심판원의 심판을 거쳐 대법원이 사실심리와 법률판단을 단심으로 처리하는 심급체계로 운영되고 있었는데, 고등법원이 사실심을 담당하고 그에 불복이 있을 경우 대법원이 최종심으로서 법률심을 담당하는 심급체계를 갖추어 보다 충실한 사실심리와 신중한 법률판단을 통해 국민의 기본권을 더욱 공고히 보장하고 해양사고의 적정한 처리를 도모하고자 중앙해양안전심판원 소재지 관할 고등법원으로 변경되어 2014. 5. 21.부터 시행되고 있다. 

<김 현 법무법인 세창 대표변호사(해양수산부 법률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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