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상판결: 대법원 1996. 12. 20. 선고 96다23818 판결

2. 사실관계

가. 원고는 1993. 12. 1. 피고와 사이에 원고 소유의 근해 채낚기 어선인 제108 해성호(총톤수 89톤, 등록번호 kn6865 - a1649)에 관하여 피공제자는 원고, 공제대상은 위 선박이 해상에서 해상 고유의 위험인 침몰•좌초•충돌•풍파의 이상한 작용에 의한 손상•구조 등에 의한 사고로 인한 손해, 공제가입금액은 270,000,000원, 공제기간은 1993. 12. 2.부터 1994. 12. 1.까지, 공제료는 금 5,078,700원으로 하되, 계약당일 제1회 공제료로 금 2,031,480원을, 1994. 3. 1.과 그해 6. 1.에 제2, 3회 공제료로 각 금 1,523,610원을 납입하기로 하는 내용의 어선보통공제계약(이하 ‘이 사건 공제계약’이라 한다)을 체결하였다.

나. 위 공제계약 체결 당시 원고는 피고와 사이에 어선보통공제약관에 따라 제2회 이후의 분납공제료에 대하여는 약정 납입기일의 다음날부터 기산하여 14일간의 납입유예기간을 두고, 원고가 그 유예기간의 말일까지 분납공제료를 납입하지 아니하면 유예기간이 끝나는 날의 다음날부터 공제계약은 효력을 상실하되, 공제계약이 실효된 후에도 납입기일이 경과한 미납입공제료를 납입한 때에는 공제계약은 유효하게 계속되고, 다만 피고는 공제계약의 효력이 상실된 때로부터 미납입분납공제료 수납일까지 사이에 발생한 사고에 대하여는 보상책임을 부담하지 아니하기로 약정하였다(이하, 이를 ‘실효약관’이라고 부른다).

다. 원고는 위 공제계약 체결당일 피고에게 제1회 공제료를 납입하였으나 제2회 분납공제료 금 1,523,610원은 그 납입유예기간이 경과한 뒤에도 납입하지 않고 있었는데, 위 제108 해성호는 1994. 5. 12. 12:00경 출항하여 고기잡이를 마치고 구룡포항으로 귀항 도중인 그달 15. 09:55경 경남 울기 등대 동방 약 37마일 해상에서 폭풍으로 인한 기상악화로 인하여 전복되어 침몰(이하 ‘이 사건 보험사고’라 한다)하였다.

라. 이와 관련하여 원고는, 피고가 이 사건 공제계약에 따라 이 사건 보험사고로 인한 공제보험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함에 대하여, 피고는, 원고가 제2회 분납공제료를 그 납입유예기간이 경과할 때까지 납입하지 아니함으로써 위 실효약관에 따라 이 사건 공제계약은 그 효력을 상실하였으므로 공제보험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항변하고, 이에 대하여 원고는 위 실효약관은 위와 같은 상법 제650조 제2항의 계약해지 요건을 완화하여 보험계약자에게 불이익하게 변경하는 것으로 상법 제663조 또는 약관의규제에관한법률(이하 ‘약관법’이라 한다) 제9조 제2호에 의하여 무효라고 재항변하였다.

3. 원심의 판단

이 사건 실효약관이 상법 제650조 제2항의 계약해지 요건을 완화하여 보험계약자에게 불이익하게 변경하는 것으로 상법 제663조에 의하여 무효이다라는 원고의 주장에 대하여, 이 사건 공제계약은 해상사업에 관한 사고로 인하여 생길 손해를 보상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해상보험계약이라고 할 것이고, 해상보험에 관하여는 상법 제663조 단서에 의하여 그 본문의 불이익변경금지 규정이 적용되지 아니하므로 원고의 위 주장은 이유 없다

나아가 다시 이 사건 실효약관이 약관법 제9조 제2호에 따라 무효이다라는 원고의 주장에 대하여 살피기를, 원래 약관법은 사업자가 그 거래상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여 불공정한 내용의 약관을 작성ㆍ통용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보험약관에도 위 법이 적용된다고 할 것인바(다만 해상보험의 경우 상법 제663조 단서에서 그 본문의 불이익변경금지 규정의 적용을 배제한 이유는 해상보험이 기업보험으로 보험가입자가 보험자와 거래상 대등한 지위에 있어 보험계약상 불이익을 당할 우려가 적다는 점을 고려한 것인데, 해상보험이라고 하더라도 이 사건의 경우와 같이 보험가입자가 소형어선 소유자에 불과하여 보험자가 그 거래상 우월한 지위에 있는 경우에는 상법 제663조 본문의 불이익변경금지조항을 적용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약관규제법의 적용을 배제할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 약관법 제9조 제2호는 계약의 해제ㆍ해지에 관하여 정하고 있는 약관의 내용 중 사업자에게 법률에서 규정하고 있지 아니하는 해제권ㆍ해지권을 부여하거나 법률의 규정에 의한 해제권ㆍ해지권의 행사요건을 완화하여 고객에 대하여 부당하게 불이익을 줄 우려가 있는 조항은 이를 무효로 한다고 규정하고, 한편 보험계약상 분납 계속보험료의 미납으로 인한 해제ㆍ해지에 관한 상법 제650조 제2항의 규정 내용은 앞에서 본 바와 같이, 계속보험료가 약정한 시기에 지급되지 아니한 때에는 보험자는 상당한 기간을 정하여 보험계약자에게 최고하고 그 기간 내에 지급되지 아니한 때에는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것인바, 이 사건의 경우 제2회 분납 공제료를 14일간의 납입유예기간의 만료일까지 납입하지 아니한 경우에 위와 같은 상법 제650조 제2항 의 절차를 거치지 아니하고 곧바로 공제계약이 실효되어 공제업자의 공제금지급책임을 면하도록 규정한 실효약관 규정은 위와 같은 상법 제650조 제2항에 규정된 보험자의 해지권의 행사요건을 완화하여 고객에게 부당하게 불이익을 줄 우려가 있는 것이라고 할 것이므로 약관규제법 제9조 제2호의 규정에 위배되어 무효이다

4. 대법원 판결요지

[1] 상법 제663조 단서가 해상보험에 같은 법조 본문 소정의 보험계약자 등의 불이익변경금지원칙이 적용되지 아니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취지는 해상보험이 보험계약자와 보험자가 서로 대등한 경제적 지위에서 계약조건을 정하는 이른바 기업보험의 일종으로 보험계약의 체결에 있어서 보험계약자의 이익보호를 위한 법의 후견적 배려는 필요하지 않고 오히려 어느 정도 당사자 사이의 사적 자치에 맡겨 특약에 의하여 개별적인 이익조정을 꾀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고, 또한 해상보험에 있어서는 그 보험의 성격상 국제적인 유대가 강하고 보험실무상으로도 영국법 준거조항을 둔 영문 보험약관이 이용되고 있는 실정이므로 불이익변경금지원칙을 일률적으로 적용하여 규제하는 것이 반드시 옳다고 할 수 없다는 고려에서 나온 것이다.
[2] 수산업협동조합중앙회에서 실시하는 어선공제사업은 항해에 수반되는 해상위험으로 인하여 피공제자의 어선에 생긴 손해를 담보하는 것인 점에서 해상보험에 유사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나, 그 어선공제는 수산업협동조합중앙회가 실시하는 비영리 공제사업의 하나로 소형 어선을 소유하며 연안어업 또는 근해어업에 종사하는 다수의 영세어민들을 주된 가입대상자로 하고 있어 공제계약 당사자들의 계약교섭력이 대등한 기업보험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고 오히려 공제가입자들의 경제력이 미약하여 공제계약 체결에 있어서 공제가입자들의 이익보호를 위한 법적 배려가 여전히 요구된다 할 것이므로, 상법 제663조 단서의 입법취지에 비추어 그 어선공제에는 불이익변경금지원칙의 적용을 배제하지 아니함이 상당하다.

5. 평석

가. 이 사건의 원심과 대법원 판결은 그 논리를 달리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이 원심 판결의 논거가 타당하지 않다고 보고 있음에도 원심과 대법원 판결의 결론은 피고는 원고에게 공제금을 지급하라는 것으로서 동일하다. 그 이유는 민사소송법 제423조에서 상고는 판결에 영향을 미친 헌법•법률•명령 또는 규칙의 위반이 있다는 것을 이유로 드는 때에만 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어서 비록 원심 판결에 헌법•법률•명령 또는 규칙의 위반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원심 판결이 파기되는 것이 아니고 다른 근거에 의해 동일한 결론에 이른다면 원심의 결론은 그대로 유지가 되기 때문이다.

나. 원심과 대법원의 결론은 이 사건에서 문제되고 있는 실효약관이 무효라고 하는 점에 있어서는 동일하다. 다만 원심은 그 근거를 상법이 아닌 약관법 제9조 제2호를 끌어 들여 무효로 삼은 반면, 대법원은 약관법이라는 특별법을 적용하기에 앞서 상법 제663조 단서가 정하고 있는 불이익변경금지원칙을 적용함으로써 바로 무효로 보았고, 따라서 굳이 약관법 위반 여부를 따져 볼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다. 원심과 대법원이 상법 제663조 단서의 적용에 대해서 견해를 달리 하였던 것은 위 단서 조항의 취지와 단서가 정하고 있는 ‘해상보험’의 범위에 대해 견해를 달리 하였기 때문이다. 원심은 이 사건 공제계약은 해상사업에 관한 사고로 인하여 생길 손해를 보상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해상보험계약이라고 보았고, 해상보험에 관하여는 상법 제663조 단서에 의하여 그 본문의 불이익변경금지 규정이 적용되지 아니한다고 보았다. 반면 대법원은 상법 제663조 단서의 취지를 강조하여 단서상의 ‘해상보험’의 범위를 축소하였던 것이다.

라. 즉 대법원은 상법 제663조 단서가 해상보험을 제외한 이유는, 해상보험은 보험계약자와 보험자가 서로 대등한 경제적 지위에서 계약조건을 정하는 이른바 기업보험의 일종으로 보험계약의 체결에 있어서 보험계약자의 이익보호를 위한 법의 후견적 배려는 필요하지 않고 오히려 어느 정도 당사자 사이의 사적 자치에 맡겨 특약에 의하여 개별적인 이익조정을 꾀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고, 해상보험은 국제적인 유대가 강하며 실무상으로도 영국법 준거조항을 둔 영문 보험약관이 이용되고 있는 등 불이익변경금지원칙을 일률적으로 적용하여 규제할 필요가 없다는 점에 주목하여, 수산업협동조합중앙회에서 실시하는 어선공제사업은 해상위험을 담보하기는 하나, 수산업협동조합중앙회가 실시하는 비영리 공제사업의 하나로 가입자가 보험자와 대등한 지위를 가지는 기업의 성격을 가진다기 보다는 소형 어선을 소유하며 연안어업 또는 근해어업에 종사하는 영세어민들이어서 사적 자치에 맡길 필요보다는 공제가입자들의 이익보호를 위한 법적 배려가 더욱 요구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마. 위와 같이 법 해석에 있어서 그 조항의 의미와 취지를 탐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에 따라 법 적용 범위가 달라지게 되고, 법에 의해서 실현하려는 결과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법의 취지를 실질적으로 파악하여 구체적으로 타당한 결론에 이르렀다고 할 것이다.

김 현 법무법인 세창 대표변호사(해양수산부 법률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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