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상판결: 대법원 2014. 12. 11. 선고 2012다15602 판결

2. 사실관계

가. 원고는 해상 방제업 등을 영위하는 법인이고, 피고 보조참가인은 유조선 H호의 선박소유자로서 유류운송업을 영위하는 법인이며, 피고 보조참가인 1992년 유류오염손해보상국제기금(이하 '국제기금'이라 한다)은 1992년 유류오염손해보상을 위한 국제기금의 설치에 관한 국제협약에 따라 설치된 국제기관이다.

나. A주식회사가 3,000t급 해상크레인으로 인천대교 건설작업을 마치고 위 해상크레인을 거제시 고현항으로 이동시키기 위해 임차하여 운항 중이던 주예인선과 보조예인선, 해상크레인을 적제한 부선으로 하나의 예인선단을 이루어 항해하던 중 2007. 12. 7. 06:52경 연결되어 있던 예인줄이 끊어져 부선이 H호 방향으로 약 600m 가량 밀려가다가 같은 날 07:06경 충남 ○○군 ○○면신도 남서방 6마일 해상에서 원유 약 263,994t을 적재한 상태로 정박 중이던 H호와 충돌하여 H호 좌현 1, 3, 5번 유류탱크 3곳에 파공이 생기면서 약 12,547㎘(10,900t)의 원유가 해상으로 유출되어 충청남도, 전라북도, 전라남도에 걸친 약 357km의 해안 및 해상이 오염되는 사고(이하 '이 사건 유출사고'라 한다)가 발생하였다.

다. 원고는 이 사건 유출사고 발생일인 2007. 12. 7.부터 2008. 1. 3.까지 8명의 인원을 고용하고 선박 5척과 살수차량 2대를 임차하여 피고 산하 해양경찰청 소속 함정이 해상에서 수집한 유류폐기물을 해안으로 운반하고 해안에서 방제물품을 받아 위 함정에 운반하거나, 항공기 유처리제 살포를 지원하는 등 해양경찰(이하 '해경'이라 한다)의 유류방제작업을 보조하였다.

3. 당사자의 주장

가. 원고는, 피고가 이 사건 유출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원고에게 방제보조작업을 지시하거나 요청하고 원고가 이에 응해 방제보조작업을 함으로써 원고와 피고 사이에 도급계약이 체결되었으므로 피고는 원고에게 도급계약에 따른 작업비용을 지급해야 하고, 설사 도급계약이 체결된 것으로 볼 수 없더라도, 피고는 이 사건 유출사고의 긴급방제조치 의무자로서 원고의 방제보조작업으로 인해 법률상 원인 없이 그 비용 상당의 이익을 얻고 이로 인해 원고에게 손해를 가했으므로 위 비용을 부당이득으로 반환하거나, 원고가 의무 없이 피고를 위해 피고의 긴급방제조치 사무를 관리한 것이므로 그 비용을 상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 이에 대하여 피고는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원고와 피고 사이에 도급계약이 체결된 것으로 볼 수 없고, 원고의 방제보조작업 비용 상당의 부당이득을 한 자는 긴급방제조치 비용 부담자인 H호 선주이며, 이 사건 해양오염의 방제사무는 오염야기자인 선주 측의 사무이지 보충적 지위에 있는 피고의 사무라 할 수 없고, 원고 또한 선주 측의 사무를 처리한다는 의사로 방제작업을 한 것이므로 피고는 도급계약, 부당이득, 사무관리를 근거로 원고에게 방제보조작업 비용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주장하였다(한편 피고 보조참가인 국제기금은, 원고의 방제보조작업 비용을 부담할 사무주체는 H호의 선주라고 보아야 하므로 원고가 피고의 사무를 관리하였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4. 대법원 판결요지

사무관리가 성립하기 위하여는 우선 사무가 타인의 사무이고 타인을 위하여 사무를 처리하는 의사, 즉 관리의 사실상 이익을 타인에게 귀속시키려는 의사가 있어야 하며, 나아가 사무의 처리가 본인에게 불리하거나 본인의 의사에 반한다는 것이 명백하지 아니할 것을 요한다. 다만 타인의 사무가 국가의 사무인 경우, 원칙적으로 사인이 법령상 근거 없이 국가의 사무를 수행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인이 처리한 국가의 사무가 사인이 국가를 대신하여 처리할 수 있는 성질의 것으로서, 사무 처리의 긴급성 등 국가의 사무에 대한 사인의 개입이 정당화되는 경우에 한하여 사무관리가 성립하고, 사인은 그 범위 내에서 국가에 대하여 국가의 사무를 처리하면서 지출된 필요비 내지 유익비의 상환을 청구할 수 있다.

5. 평석

가. 사무관리라고 함은 의무 없이 타인을 위하여 그 사무를 처리하는 행위를 말한다(민법 제734조). 예를 들어, 타인의 잃어버린 물건을 주워서 보관하거나 이웃사람이 주인의 부재 중에 고장 난 수도를 고쳐준다거나 하는 것들을 들 수 있다.

나. 오늘날 우리를 둘러싼 생활공간은 계약이나 법률상의 의무 없이도 타인에 의하여 자기의 지배영역에 속하는 일들이 처리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원칙적으로 각자의 사무는 그 사람의 자유에 맡겨야 하고 함부로 개입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경우에 따라서는 그러한 개입은 타인 영역을 침해하는 것으로서 불법행위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경우를 그렇게 취급한다면 법적인 의무가 없으나 타인을 위하여 희생을 한다거나 돕는 경우에도 어떠한 법적인 지지를 할 수 없게 되고, 그러한 행위를 장려할 수도 없게 된다. 그래서 민법은 사회생활에서의 상부상조의 이념을 기초로 하여 일정한 행위에 대하여 사무관리로서 적법하다고 인정하고, 관리에 들어간 비용 등을 보전 받을 수 있는 장치를 두고 있다.

다. 본건에서 문제가 된 행위는 방제행위이다. 사상 유례가 없었던 허베이스피리트호 사건에서 해상 방제작업을 수행한 방제업자가 국가를 상대로 방제비용 등을 청구하였는데 사무관리가 성립하기 위하여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여야 하므로 방제업무가 국가의 사무인지, 그리고 국가의 사무라면 국가의 사무를 일반 사인이 대신 처리하는 것이 허용될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되었다.

라. 먼저, 방제업무가 국가의 사무에 해당하는 지와 관련하여서는, 오염방제사무가 오염야기자인 선주 측의 사무일 뿐인지 더 나아가 국가의 사무에 해당하는지가 문제되었다. 해양오염방지법은 기름 등 폐기물이 배출되는 경우 배출된 기름 등 폐기물이 적재되어 있거나 적재되어 있던 선박의 소유자는 배출되는 기름 등 폐기물을 신속히 수거ㆍ처리하는 등 필요한 방제조치를 즉시 취하여야 한다고 규정을 두고 있었다. 그러나 더 나아가 선박의 소유자가 위와 같은 조치를 하지 아니하거나 그 조치만으로는 해양오염을 방지하기 곤란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또는 긴급방제조치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해양경찰청장은 관계기관의 협조를 얻어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하며, 기름 등 폐기물의 유출사고 등 해양오염사고로 해양환경의 보전에 현저한 피해가 있거나 피해를 미칠 우려가 있어 긴급방제 등 필요한 조치를 하게 하기 위하여 해양수산부장관 소속 하에 해양오염방제대책위원회를, 해양경찰서장 소속 하에 지역해양오염방제대책협의회를 두며, 해양경찰청장 소속 하에 방제대책본부를 둘 수 있다고 규정을 두고 있었고, 실제로 사고 발생 후 위 규정에 따라 조직이 꾸려져 방제업무를 담당하였다.

원심은 위와 같은 법령의 규정과 실제 조치를 고려하여 선주에게 일차적으로 필요한 방제조치를 취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고 하더라도, 선주의 조치만으로는 이 사건 유출사고로 인한 해양오염을 방지하기 곤란하고 긴급방제조치가 필요하였으므로 이 사건 유출사고 처리를 위한 방제작업은 긴급방제 등 필요한 조치로서 국가의 의무영역과 이익영역에 속하는 피고의 사무라고 보았고 대법원도 이와 같은 판단이 타당하다고 보았다.

마. 한편 국가의 사무는 원칙적으로 국가만이 수행할 수 있으므로 일반 사인이 국가의 사무를 대신 처리할 수 있는지도 문제가 되었는바 사무관리가 타인 사무에 대한 개입에 대하여 예외적으로 적법성을 인정하는 제도라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원래 국가만이 수행할 수 있는 사무를 일반 사인이 아무런 제약 없이 처리할 수 있다고 한다면 국가와 사인의 이분적 구도가 흐트러질 수도 있는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국가가 모든 일을 처리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고 긴급한 상황에 대한 적절한 대응을 위해서는 일반 사인이 개입도 요구된다고 할 것이다. 대상판결은 원칙적으로는 법령상의 근거 없이 국가의 사무를 처리할 수 없는 것이나, 사인이 국가를 대신하여 수행할 수 있는 성질의 것으로서 사무처리의 긴급성 등 국가의 사무에 대한 사인의 개입이 정당화 되는 경우에는 사무관리가 성립할 수 있다고 보아 이와 같은 문제상황에 대해 구체적인 타당성을 기하였다고 할 것이다.

[김 현 법무법인 세창 대표변호사(해양수산부 법률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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