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상판결: 대법원 2015. 7. 9. 선고 2014다6442 판결

2. 사실관계

가. A와 B는 선박건조계약을 체결하였는데 A는 선박건조계약에 따라 B에게 선박건조를 위한 선수금을 공정진행에 따라 제공하여야 하였다. A는 이 경우 미리 지급한 선수금을 B로부터 돌려받아야 할 상황을 대비하여 2007. 9. 은행 C가 발급한 선수금환급보증서를 수령하였다.

나. A가 수령한 보증서의 내용은 ① 취소불가능하고 무조건적으로 매수인에 대하여 선수금의 반환을 보증한다, ② 매수인이 건조자에게 계약에 따른 환급청구를 하였다는 점 및 건조자가 환급하지 못하였다는 점을 내용으로 하는 매수인의 단순한 서면진술서에 기하여 지급이 가능하다, ③ 건조자와 매수인 사이의 계약의 해제 혹은 선수금 반환청구의 분쟁이 중재절차에 회부된 경우는 예외로 한다는 것과 ④ 건조자와 매수자는 자신들 사이의 분쟁이나 불일치를 이유로 이 조항에 따른 지급을 지체하거나 유보할 수 없음에 합의한다는 내용을 주된 골자로 하고 있었다.

다. B는 A가 약정된 선수금을 제때에 지급하지 않자 2009. 10. 계약을 해제하였다. 그 후 A는 2011. 8. B회사가 채무를 불이행하였다면서 계약을 해제하고 B에게 기 지급된 선수금의 반환을 요구하였으나 B는 그 반환을 거부하였다. 이에 A는 보증인인 은행 C에게 2011. 11. 선수금반환 청구의 소를 제기하였다.

라. 피고 C은행은 원고 A가 선수금을 제때에 주지 않은 이유로 B에 의해 계약이 이미 해제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원고들이 C에 대하여 선수금반환을 요구할 권리가 없음이 명백함에도 이 사건 보증서에 기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주장하였다. 한편, A는 B가 건조할 의사나 능력도 없이 선수금을 유용할 목적으로 형식적으로 강재절단 및 용골거치를 한 것이기 때문에 B는 계약상 적법한 선수금청구를 한 것이 아니고, 따라서 자신들에게 선수금지급의무 역시 발생하지 않았으므로 이를 이유로 한 B의 계약해제는 부적법하여 무효이며, 뒤에 A가 행한 계약해제가 적법하고 이는 보증서에 기재된 선수금반환 사유라고 주장하였다.

3. 판결요지

은행이 보증을 하면서 보증금 지급조건과 일치하는 청구서 및 보증서에서 명시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서류가 제시되는 경우에는 그 보증이 기초하고 있는 계약이나 이행제공의 조건과 상관없이 그에 의하여 어떠한 구속도 받지 않고 즉시 수익자가 청구하는 보증금을 지급하겠다고 약정하였다면, 이는 주채무에 대한 관계에서 부종성을 지니는 통상의 보증이 아니라, 주채무자인 보증의뢰인과 채권자인 수익자 사이의 원인관계와는 독립되어 원인관계에 기한 사유로는 수익자에게 대항하지 못하고 수익자의 청구가 있기만 하면 은행의 무조건적인 지급의무가 발생하게 되는 이른바 독립적 은행보증이다. 이러한 독립적 은행보증의 보증인으로서는 수익자의 청구가 있기만 하면 보증의뢰인이 수익자에 대한 관계에서 채무불이행책임을 부담하게 되는지를 불문하고 보증서에 기재된 금액을 지급할 의무가 있으며, 이 점에서 독립적 은행보증에서는 수익자와 보증의뢰인 사이의 원인관계와는 단절되는 추상성 및 무인성이 있다.

다만 독립적 은행보증의 경우에도 신의성실 원칙이나 권리남용금지 원칙의 적용까지 완전히 배제되는 것은 아니므로, 수익자가 실제로는 보증의뢰인에게 아무런 권리를 가지고 있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은행보증의 추상성과 무인성을 악용하여 보증인에게 청구를 하는 것임이 객관적으로 명백할 때에는 권리남용에 해당하여 허용될 수 없고, 이와 같은 경우에는 보증인으로서도 수익자의 청구에 따른 보증금의 지급을 거절할 수 있으나, 원인관계와 단절된 추상성 및 무인성이라는 독립적 은행보증의 본질적 특성을 고려하면, 수익자가 보증금을 청구할 당시 보증의뢰인에게 아무런 권리가 없음이 객관적으로 명백하여 수익자의 형식적인 법적 지위의 남용이 별다른 의심 없이 인정될 수 있는 경우가 아닌 한 권리남용을 쉽게 인정하여서는 아니 된다.

4. 평석

가. 선박건조계약은 그 대금의 액수가 매우 크기에 조선사가 그 대금을 먼저 모두 부담하여 선박을 건조한 후 인도하면서 그 대금을 회수한다면 조선사로서는 건조과정에서 비용부담의 압박과 또 추후 그 대금을 회수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어려움에 처하게 되고, 또 발주자 입장에서도 선박대금을 모두 미리 지급하여야 한다면 쉽게 발주를 할 수 없는 입장이어서 통상 선박건조계약의 경우에는 공정에 따라 몇 단계로 나누어 선수금의 형태로 대금이 지급되게 된다. 그런데 선박건조가 계약에 맞게 제대로 진행이 되면 특별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나 선박건조는 장시간이 요구되고 또 다양한 법률관계가 얽혀 있기에 건조 과정에서 분쟁이 생겨서 계약이 해제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고, 해제의 효과로서 기 지급된 선수금은 다시 이를 지급했던 선주에게 반환되어야 한다.

나. 선수금을 확실하게 반환 받기 위해서 선주는 조선사에게 은행으로부터 선수금을 반환하겠다는 보증을 받아 오라고 요구하는데 이것이 바로 선수금환급보증이고, 통상 이 사건 보증서와 마찬가지로 보증금 지급조건과 일치하는 청구서 및 보증서에서 명시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서류가 제시되는 경우에는 그 보증이 기초하고 있는 계약이나 이행제공의 조건과 상관없이 그에 의하여 어떠한 구속도 받지 않고 즉시 수익자가 청구하는 보증금을 지급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와 같은 보증은 그 문구에도 불구하고 통상의 보증과는 달리 주채무에 대한 부종성이 없는바 이를 통상 독립적 은행보증이라고 한다. 독립적 은행보증의 경우 선주로서는 보증서 기재와 같이 보증금 지급조건과 일치하는 청구서 및 보증서에서 명시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서류를 제시하기만 하면 그 보증이 기초하고 있는 계약이나 이행제공의 조건과 상관없이 그에 의하여 어떠한 구속도 받지 않고 즉시 보증금을 지급 받을 수 있으므로 선수금의 환급을 확실하게 할 수 있다.

다. 그러나 위와 같은 독립성과 무인성만을 강조하다 보면 수익자가 실제로는 보증의뢰인에게 아무런 권리를 가지고 있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보증금 지급조건과 일치하는 청구서 및 보증서에서 명시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서류를 제시하기만 하면 선수금을 환급해 주어야 하는 불합리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이와 같은 불합리를 배제하기 위해서 권리남용 내지 신의성실의 원칙이 개입하게 되는바, 대상판결에서도 신의성실 원칙이나 권리남용금지 원칙의 적용까지 완전히 배제되는 것은 아니라는 전제 하에, 수익자가 실제로는 보증의뢰인에게 아무런 권리를 가지고 있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은행보증의 추상성과 무인성을 악용하여 보증인에게 청구를 하는 것임이 객관적으로 명백할 때에는 권리남용에 해당하여 허용될 수 없고, 이와 같은 경우에는 보증인으로서도 수익자의 청구에 따른 보증금의 지급을 거절할 수 있다고 보았다. 다만 이와 같은 권리남용이나 신의성실의 원칙을 폭 넓게 인정하면 법적 안정성이 훼손될 수 있고, 또 원칙과 예외가 전도될 수도 있기에, 대상판결은 독립적 은행보증의 본질적 특성을 고려하여, 수익자가 보증금을 청구할 당시 보증의뢰인에게 아무런 권리가 없음이 객관적으로 명백하여 수익자의 형식적인 법적 지위의 남용이 별다른 의심 없이 인정될 수 있는 경우가 아닌 한 권리남용을 쉽게 인정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판시를 하였다.

라. 원심도 선수급환급보증서는 독립적 은행보증에 해당하고, 다만 독립적 은행보증의 경우에도 수익자의 청구가 권리남용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보증인이 수익자의 청구에 따른 보증금의 지급을 거절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대법원과 입장을 같이 하였으나, 구체적인 판단에 있어서는 조선사가 선박에 관한 용골거치, 강재절단을 시행하였음에도 원고가 선수금을 지급하지 아니함에 따라, 이 사건 선박건조계약을 적법하게 해제하고 기왕에 지급받은 선수금을 손해의 전보에 충당한 이상 원고들로서는 선수금의 환급을 청구할 권리가 없다는 점 등을 들어 원고의 청구를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마. 그러나 대법원은 권리남용의 요건을 엄격하게 제한하여, 수익자가 보증금을 청구할 당시 보증의뢰인에게 아무런 권리가 없음이 객관적으로 명백하여 수익자의 형식적인 법적 지위의 남용이 별다른 의심 없이 인정될 수 있는 경우에만 권리남용으로 볼 수 있다고 본 후, 이 사건에 있어서는 특히 보증금 청구 당시의 사정, 즉 이 사건 소 제기 전에 이루어진 회생채권조사확정재판에서도 계약 해제가 적법한지 여부가 쟁점이 되어 1년여에 걸쳐 심문절차가 이루어졌음에도 결론이 내려지지 못한 채 회생절차폐지로 종결된 점 등을 고려하면, 이 사건 소 제기 당시 원고들이 선수금환급청구권이 없음에도 이 사건 보증금을 청구하는 것임이 피고에게 객관적으로 명백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려워 권리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는바, 독립적 보증의 의미, 권리남용의 엄격해석의 원칙에 비추어 볼 때 타당한 판결이라고 할 것이다.

김 현 법무법인 세창 대표변호사(해양수산부 법률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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