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 러시아의 왕실을 조종했던 요승 라스푸틴은 서시베리아 농민의 아들로서 첫 자녀 3명이 가난과 질병으로 죽는 것을 지켜본 뒤 러시아 정교회 계열 신비주의 종파 수도승이 되었다. 그 후 약초를 캐며 도를 닦던 라스푸틴은 질병 치료로 명성을 얻게 된다. 그 명성은 황태자 알렉세이의 혈우병 문제로 절망하고 있던 황후에게 소개되기까지 이르고, 라스푸틴은 황태자의 병세를 호전된 것으로 믿게 만드는 데 성공한다. 그 뒤 라스푸틴은 황실의 권력을 등에 업고, 고위직 인사권을 주무르며, 궁중 귀부인들을 농락하는 등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게 되었다. 라스푸틴은 황후를 비롯한 러시아 왕실을 현혹시켜 자신의 의지대로 조종하였다고 평가받고 있다.

이른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온 나라가 어지럽다. 주한 미국대사관은 지난 2007년 보고서에서 최순실의 아버지인 최태민을 한국의 라스푸틴으로 비유하는 견해를 소개하면서 최태민이 인격 형성기에 박 후보의 심신을 완전히 지배했다는 소문을 보고하기도 하였다. 소문의 영역에서 회자되던 일들이 최근에 들어 사실일 수도 있다는 증거들이 드러나면서 국민들은 아연실색하고 있다. 최태민•최순실 부녀는 한국판 라스푸틴으로 비유되고 있다. 국가의 지도자를 현혹시켜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일련의 과정이 유사하기 때문이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의 직무 수행을 헌법과 법률이 정한 참모진이 아닌 아무런 자격이 없는 사람, 그것도 종교적인 배경이 매우 의심스러운 사람에게 기대어 왔다는 데에서 국민은 분노하고 있다. 국민의 분노는 직접적으로는 최순실의 비리와 비행에 기인하는 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그러한 대통령을 자기 손으로 선출했다는 데에 대한 배신감과 상처 입은 자존심으로부터 원인을 찾아야 할 것이다. 국민의 커다란 실망감도 문제지만, 이러한 사태를 낱낱이 보도한 외신에 의해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그 권위가 나라 밖에서도 급격히 상실된 것으로 보인다. 나라를 대표할 리더가 실종된 상태이다.

라스푸틴이 권력을 휘두르던 제정 러시아는 라스푸틴이 사라진 이후 혁명에 휩쓸려 무너져 갔다. 라스푸틴이 권력을 사유화하면서 국가 체제를 약화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최순실이 라스푸틴으로 비유될 만하다고 해도, 라스푸틴이 제정 러시아에 가져다 준 결과까지 우리가 답습하여서는 안 된다. 어서 충격을 추스리고, 그 동안 약화된 부분을 보수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대체 왜 이런 일이 가능했는지에 대한 원인 조사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철저하고 성역 없는 조사가 필요한 시점이다. 국정이 농단되었더라도, 대한민국은 존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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