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상판결: 대법원 2016. 6. 23. 선고 2015다5194 판결

2. 사실관계

가. 대한민국 법인인 원고는 2012. 6. 14. 터키의 A에게 이 사건 화물을 미화 350만 달러에 매도한 다음, 2012. 6. 22. 미합중국 법인인 피고와 사이에, 이 사건 화물에 관하여 부보금액 미화 385만 달러로 하는 적하보험계약(이하 ‘이 사건 보험계약’이라고 한다)을 영국 런던 보험자협회(Institute of London Underwriters)의 적하약관(Institute Cargo Clause, 이하 ‘영국 적하약관’이라고 한다)에서 규정하고 있는 WAIOP 조건(With Average Irrespective Of Percentage,일정한 해상고유의 위험을 해손의 종류나 규모와 상관없이 보상하는 조건)으로 체결하였다.

나. 피고는 대한민국에 영업소를 설치하고 따로 대표자를 두면서 이를 등기한 후 대한민국에서 영업행위를 하고 있고, 이 사건 보험계약도 대한민국에 있는 피고의 대리점을 통하여 대한민국에서 체결되었다.

다. 이 사건 보험계약에는 ① “본 보험증권에 따라 발생하는 책임에 관한 모든 문제는 영국의 법률과 관습이 적용된다(All questions of liability arising underthispolicy are to be governed by the laws and customs of England).”라는 내용의 준거법 약관(이하 ‘이 사건 준거법 약관’이라고 한다)과 ② 원고가 피고에게 부보화물의 갑판적재 사실을 고지하지 않은 경우 이 사건 보험계약의 담보범위는 ‘투하(投下, Jettison)와 갑판유실(甲板流失, Washing Overboard)’ 이외의 일반 분손(分損)은 담보하지 않는 분손부담보[分損不擔保, Free from Particular Average (F.P.A.)]조건으로 축소된다는 내용의 ‘갑판적재(甲板積載) 약관’(On-Deck Clause, 이하 ‘이 사건 갑판적재 약관’이라고 한다)이 포함되어 있었다.

라. 원고는 중국 상하이 항부터 터키의 이스켄데룬 항까지 이 사건 화물의 해상운송을 주식회사 B에 의뢰한 다음, 2012. 6. 14. 위 회사로부터 이 사건 화물에 관한 선하증권을 교부 받았는데, 위 선하증권에는 ‘이 사건 화물은 송하인ㆍ수하인의 위험부담으로 갑판에 적재되는데, 그 손실ㆍ손상에 대하여 이 사건 선박 또는 선주는 어떠한 경우에도 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운송인 면책약관(이하 ‘이 사건 운송인 면책특약’이라고 한다)이 기재되어 있었다.

마. 이 사건 화물은 2012. 6. 14. 중국의 상하이 항에서 선박 C호의 갑판 위에 선적되어 운송되던 중 2012. 7. 7. 오만 앞바다에서 이 사건 화물 4포장 중 한 포장인 보일러 1대(이하 ‘이 사건 보일러’라고 한다)가 해상으로 떨어지는 사고(이하 ‘이 사건 사고’라고 한다)가 발생하였다.

바. A는 원고에게 이 사건 보험계약에 기한 보험금청구권을 양도하고 2013. 4. 3.
이를 피고에게 통지하였다.

3. 판결의 요지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 제3조 제3항이 사업자에 대하여 약관에 정하여져 있는 중요한 내용을 고객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할 의무를 부과하고, 제4항이 이를 위반하여 계약을 체결한 경우에는 해당 약관을 계약의 내용으로 주장할 수 없도록 한 것은, 고객으로 하여금 약관을 내용으로 하는 계약이 성립되는 경우에 각 당사자를 구속하게 될 내용을 미리 알고 약관에 의한 계약을 체결하도록 함으로써 예측하지 못한 불이익을 받게 되는 것을 방지하여 고객을 보호하려는 데 입법 취지가 있다. 따라서 고객이 약관의 내용을 충분히 잘 알고 있는 경우에는 약관이 바로 계약내용이 되어 당사자에 대하여 구속력을 가지므로, 사업자로서는 고객에게 약관의 내용을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

4. 평석

가. 국제사법 제25조는 제1항 본문 및 제2항에서, “계약은 당사자가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선택한 법에 의한다.”, “당사자는 계약의 일부에 관하여도 준거법을 선택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제26조 제1항에서 “당사자가 준거법을 선택하지 아니한 경우에 계약은 그 계약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국가의 법에 의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외국적 요소가 있는 계약에서 당사자가 계약의 일부에 관하여만 준거법을 선택한 경우에 해당 부분에 관하여는 당사자가 선택한 법이 준거법이 되지만, 준거법 선택이 없는 부분에 관하여는 계약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국가의 법이 준거법이 된다.

나. 이 사건의 준거법 약관은 이 사건 보험계약 전부에 대한 준거법을 지정한 것이 아니라 보험자의 ‘책임’문제에 한정하여 영국의 법률과 관습에 따르기로 한 것이다. 따라서 보험자의 책임에 관한 것이 아닌 사항에 관하여는 이 사건 보험계약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우리나라의 법이 적용된다. 그런데 약관의 설명의무에 관한 사항은 약관의 내용이 계약내용이 되는지 여부에 관한 문제로서 보험자의 책임에 관한 것이라고 볼 수 없으므로, 이에 관하여는 영국법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약관규제법이 적용된다.

다. 약관규제법상의 설명의무에 있어 설명을 요하는 사항인 ‘중요한 내용’이란 고객의 이해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항으로서 사회통념상 그 사항을 보험계약자가 알았는지 여부가 계약체결 여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항을 말한다. 한편 보험자에게 약관의 설명의무가 인정되는 것은 어디까지나 보험계약자가 알지 못하는 가운데 약관에 정하여진 중요한 사항이 계약 내용으로 되어 보험계약자가 예측하지 못한 불이익을 받게 되는 것을 피하고자 하는 데 그 근거가 있는 것이므로, 해상보험계약에서 사용하고 있는 약관이라 할지라도 개별적으로 그 내용이 거래상 일반적이고 공통된 것이어서 보험계약자가 별도의 설명 없이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사항이거나 혹은 이미 법령에 의하여 정하여진 것을 되풀이하거나 부연하는 정도에 불과한 사항인지 등을 판별하여 그 경우에 한하여 설명의무의 대상이 아니라고 하여야 한다.

라. 이 사건에서 원고는 갑판적재 약관의 내용을 피고가 설명하지 않았으므로 이를 계약의 내용으로 주장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는바 우리나라 약관규제법에 의할 때 이 사건 갑판적재 약관의 내용이 설명을 하여야 할 사항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문제되었다. 이에 대하여 대상판결은 이 사건 보험계약 체결 당시 원고가 이 사건 갑판적재 약관의 내용을 잘 알고 있었다고 보이므로, 피고가 그 내용을 설명하지 않았더라도 이 사건 갑판적재 약관은 이 사건 보험계약의 내용이 된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보았는바 설명의무에 관한 약관규제법의 법리에 부합하는 판결이라고 할 것이다.

마. 참고로 이 사건의 원심판결은 애초에 이 사건에는 보험계약에 약관규제법이 적용되지 아니한다는 잘못된 전제에 기초하고 있었으나, 원고가 이 사건 갑판적재 약관의 내용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이 사건 갑판적재 약관은 약관규제법이 정하는 설명의무의 대상이 되지 아니하고, 따라서 피고가 그 내용을 설명하지 않았더라도 이 사건 보험계약의 내용이 된다고 보아 결론에 있어서는 대상판결과 결론을 같이 하여 파기되지 아니하였고, 대상판결에는 영국법의 적용을 받는 영국 적하약관에서 규정하고 있는 ‘갑판유실(甲板流失, Washing Overboard)’이란, 해수의 직접적인 작용으로 인하여 갑판 위에 적재된 화물이 휩쓸려 배 밖으로 유실되는 경우를 의미하는 제한적인 개념이므로, 악천후로 인한 배의 흔들림이나 기울어짐 등으로 인하여 갑판 위에 적재된 화물이 멸실되는 이른바 ‘갑판멸실(甲板滅失, Loss Overboard)’은 갑판적재 약관의 담보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설시도 포함되어 있다.
 

김 현 법무법인 세창 대표변호사(해양수산부 법률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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