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대남 편집위원
해운 한국의 원조 조선우선(1912)에 이어 대한해운공사(1949)가 민영화 후 대한선주(1980)를 거쳐 한진해운(1977)으로 발전하다가 최근, 드디어 우리 해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참으로 애석하다. 광복 직후 1945년말 우리나라의 총톤수 1,000톤 이상의 선박은 1920년에 건조되어 조선의 서해안 인천항과 중국 산동반도 청도항 간을 운항하던 1,625톤급 부산호 한 척뿐이었지만 그간 70년이란 세월이 흐르는 동안 우리의 해운세력은 세계 5위로 G-5라는 영예와 긍지로 작금에 이르렀다.

그러나 지난 2008년을 피크로 우리 해운이 하향곡선을 그으며 오늘에 이른 요즘 해운에 몸담은 그 누구도 따가운 시선으로부터 예외일 수 없고 이 나이에 이르기까지 꼬박 50년을 지켜 본 입장에서 갖가지 애환을 함께 했다는 애정에서 필자도 관심이 크지만 긴 불황 끝에 온다던 짧은 호황도 이젠 기대가 어려워 시황이니 운임이니 흑자니 적자니 하며 해운을 경제적 측면에서 보던 시각을 한 눈돌려 그동안 국제교역 주역으로 한국경제의 젖줄이요 생명선으로 갖던 해운의 자긍심은 잠시 접고 바다와 뱃길과 항구와 부두와 선박, 그 옛날 신파조의 추상적 낭만 공간으로 돌아가고 싶다.

짐배가 드나드는 항만과 부두를 로맨스 현장으로 탈바꿈 시켜 보고픈 망상에 젖어 보는 것도 바다와 항구의 미화작업이란 생각을 해본다. 1962년 개봉, 프랑스 작가 '장 라신느'가 희랍 신화에서 소재를 얻어 작품화한 것으로 알려진 ‘페드라(Phaedra)’란 영화는 아테네왕 테제우스의 젊은 왕비 페드라가 전실 자식인 히폴리투스에게 연정을 품고 불륜의 애정행각을 벌이다가 운명에 항거,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적 종말의 이 작품이 영화로 각색, 상영됐을 때도 19금이었으나 인기가 있었다.

‘죽어도 좋아’란 이름으로 국내에 상영되자, 이는 낭만이 잉태하여 낳은 일탈된 불륜성 로맨스의 극치로 평가돼 상당 기간 인구에 회자된 바 있다. 시름없이 궂은 비 내리는 낯 선 항구에서 하룻밤 풋사랑 인연으로 긴 밤을 지새우고 정만을 남겨둔 채 울리고 떠나간 마도로스와의 첫사랑 추억을 잊지 못해 애태우는 선술집 아가씨의 하염없는 연정은 뭇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신파극의 단골 주제로 재판을 거듭하는 장수를 누린 것만 봐도 5~60년대엔 영화나 신파극 테마가 로맨스렸다.

그러나 이제는 고도화된 기계설비의 매머드 부두와 대형화, 고속화된 선박의 빈번한 입출항, 거대한 하역장비의 간단없는 조작과 굉음에 압도돼 바다와 항구에서 고전적, 전통적이며 운치있는 낭만과 로맨스 현장은 도심지대로 이전되고 변형되었으며 더 이상 확대 재생산이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렀다. 그래서 바다와 항구는 교역상품의 운송 현장이지 이제 더 이상 낭만과 로맨스의 대상에서 밀려났다.

항구는 여객이나 화물을 싣고 내리는 해상물류의 거점이요 바다는 오직 이를 옮기는 선박들이 오가는 물길일 뿐인가? 요즈음 바다와 항구를 벗 삼아 평생을 살아 온 뜻있는 해운계 원로들은 그 옛날의 정감어린 추억담을 나누며, 바다와 항구와 부두의 신고전주의적인 작금의 상업주의에 반기를 들고 실종된 낭만을 되찾자고 언성을 높인다. 특히 컨테이너 부두 야드는 장갑부대나 포대의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항구와 부두와 배를 돈벌이 수단에서 낭만이 교차하는 포구와 뱃전으로 승화시켜 보자는 제안이다.

시, 소설, 수필, 희곡 등 언어를 매체로 하는 문학 작품의 소재를 제공하는 낭만의 무한정 보고, 바다와 항구. 윌리엄 워즈워드는 해질 무렵 칼레 해변의 고요와 적막 속에서의 다정한 님의 입김을 서정적으로 노래했고 알프렛 테니슨은 산산조각 바윗돌이 부서지도록 휘몰아치라고 성난 파도의 노여움을 부채질 했으며, 존 메이스 필드는 출항하는 뱃머리에서 다시 흘러간 옛날의 추억을 찾아 문득 떠나고 싶은 바다에의 향수를 섬세한 감정으로 읊조려 성난 파도에서 포에틱한 시심을 엿보게 한 바 있지 않은가.

푸른 파도를 가르는 뱃고동 소리를 뒤로 하며 님 떠난 밤 부두에서 홀로 우는 여인의 흐느낌이 멎은지 오래고, 굳은 약속 남기며 다시 오마던 파이프담배 입에 문 첫사랑 마도로스는 함흥차사 된 지 오래다. 신도 죽고 니체도 죽을 때 항구의 낭만도 부두의 로맨스도 같이 따라 죽었단 말인가. 필자는 저물면서 더욱 찬란히 빛나는 해넘이와 바다에서 인간 삶의 원형질을 발견하기를 원한다. 비록 궂은비가 항구에서만 내리란 법은 없지 않지만 어둠이 짙어오는 부두의 음산함은 눈물 같은 것.

근대화에 밀려 포구를 서성대던 선술집 아낙들의 입술 짙은 옛 모습들은 이제 항구의 티켓다방서 카톡이나 핸폰 문자 메시지를 날리는 마돈나로 변했고, 양은 주전자로 기울이던 동동주 주안상은 캔맥주나 인스턴트 자판기에 밀려 옛 흔적 찾기도 힘들고 오색등 찬란한 샹들리에 불빛과 헤비메탈 뮤직 테크노 댄스 음악이 판치는 항구의 밤 풍경은 심야를 유혹하는 에레나의 무도장이 된 지 오래다.  세상 곳곳서 낭만과 로맨스는 시들고 사랑과 정서는 메마르고 그래서 ‘술 한 잔에 시 한 수’의 김삿갓식 목가적인 운치와 풍경은 오랜 가뭄을 견디다 못해 ‘빈사의 백조’ 가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긴 낭만과 로맨스, 이별의 무대와 서정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 양상이 옮겨지고 변한 건 사실이다. 그 옛날 토담집 앞 싸리문이나 돌담 모퉁이가 아니면 신작로 어귀서 행주치마에 눈물 닦으며 아스라이 손 흔들어 임 보내던 정경이나, 밀밭 너머 미루나무 줄 지어 선 강나룻길 지나 갯바람 몰아치는 포구서 설운 사람 훌쩍 떠나보내며 옷고름 말아 물고 한숨짓던 뫼별 모습은 그 얼마나 낭만어린 서정시였던가.

이제 여든이 코 앞, 먼 길을 돌아 마지막 항해를 접고 상륙전야를 맞았다. 그래서 뭍으로 오르면서 뇌리 속에 부각되는 다양한 형태의 사념들을 적하목록처럼 정리해 본다. 고독한 자아를 달래는 마법의 묘약처럼 가슴 속에 여울지는 낭만의 티끌들을 감미로운 환상으로 패러다임하여 허구적 로맨스를 엮어간다. 바다와 항구, 배와 여인들로 이어지는 작은 인연들을 곱게 다듬어 소중한 추억의 실타래를 만든다.  생각날 때마다 몰래 꺼내보는 사진첩같이 퇴색한 낭만의 편린을 꿰어 풍성한 회억의 잔치상을 준비한다.

생의 근원과 본질에 대한 현학적 문제가 될지는 몰라도, 인간이란 엄격히 말해 종족의 번성이나 승계의 본능보다 원초적 낭만에서 잉태된 로맨스의 산물이며, 존재의 의미를 부여받은 실존적 개체임에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시적 정서가 고사 위기를 맞아 시인도 죽고 선비도 죽은 사회에서 사포우의 서정적 시상과 밀턴의 실락원 페이소스를 접목시켜 죽은 시인의 사회에 새론 낭만파 시인이 탄생하는 역사의 재구성을 서둘러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임 보내던 나룻배가 짐 나르는 지게꾼이면 드라이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지능지수(IQ), 정서지수(EQ)보다 낭만지수(RQ)로 회원의 합격여부를 결정하는 낭만협회가 생겼단다. 낭만 속에서 쌀이 나오느냐. 낭만이 밥 먹이더냐. 뭐 말라 죽은 게 낭만이냐. 낭만 같은 소리하고 있네.” 하던 낭만에 대한 조롱이나 멸시적인 폄하는 다소 수그러들 것 같기도 하고 낭만, 낭만파와 낭만주의가 대접 받는 시대가 올 법도 하다. 무한한 자연에의 동경을 표출하던 18-19세기 낭만주의는 이제 새로운 문예 사조보다 음유시인이 부르던 서정적 서사적 노래와 감미로운 로맨스와 사랑얘기로 다가 올 것이다.

메마른 우리 가슴에도 뮤즈의 밀알과 시심을 심어 싹 틔우고 시상의 화단을 가꾸며 죽은자의 무덤서나 찾아볼 수 있던 해운계의 낭만파들을 불러 모으자. 잠시 돈벌이를 잊고 낭만의 소낙비를 흠뿍 맞으며 망각이라는 우유빛 강물과 영겁이라는 어둠의 숲 속으로 마지막 정배의 길을 떠나기 전에 우리 모두가 배금주의자 보다 아직은 살아있는 해운 물류계 최후의 낭만주의자가 되어보자. 최후의 로맨티시스트!!


<서대남(徐大男)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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