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대남 편집위원
몇 년전 늦깍이로 칠순에 우리글을 겨우 익힌 어느 할머니의 '한글'이란 제목의 작문을 읽었다. 많이들 기억하고 있겠지만 화제로 지상에 오르내리며 여러 사람들의 가슴을 적셨던 글이다. 제571회 한글날을 보내며 당시 숙연했던 사념들이 다시 떠올라 짧은 그 글을 다시 회상해 본다. 심금을 울린 작문은 필자 기억으로 대충 - '많이 배우고 싶지만/나이가 많아서/머리 속으로 기억되지 않는다/그래도 열심히 계속 배울 것이다.'로 된 내용으로 기억된다.

필자는 아직도 컴퓨터나 스마트폰 사용이 초보라 평소 생각을 몇 자 끼적이는 수준이 전부다. 그간 최신형으로 바꾸면 이를 잘 다룰 자신이 없기도 했지만 출근길 전철안에서 조간신문을 필독해야만 사무실에 가서 관련 업무들을 처리할 수 있기 때문에 그때 여기 저기서 공짜 폰과 교환해 주겠단 전화가 하루에도 몇 통화씩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쇄도 했지만 막무가내로 재래식 핸드폰을 그대로 고집하며 사용하다가 새로 나온 것으로 바꾼지가 얼마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요즘 한창 뛰어 놀아야 할 초등학교나 중고교생 모두가 옛날과는 달리 휴식시간만 되면 교과 예습과 복습보다 작금은 스마트폰으로 문자를 보내거나 검색 또는 게임을 하느라 쥐죽은 듯 교실이 조용하단 믿기 어려운 얘기를 자주 듣곤 한 적이 있는데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신문이나 책을 들고 독서하는 사람은 아주 드문 건 사실이라 하겠다.

필자는 아침 출근 1시간 정도를 유용히 쓰는 방법은 신문 정독을 통해서 유일하게 지식을 습득하는 일인데 스마트폰은 내 유일한 면학시간(?)을 박탁할 게 틀림없으리라 우려했던 건 분명했다. 그러던 6, 7년 전쯤 어느 아침도 예외없이 출근길 전철서 아침 신문을 펴 읽으며 필요한 부분엔 밑줄을 치거나 메모도 하는데 갑자기 경로석 옆자리에 함께 앉은 할머니 한 분이 말을 건다.

"할아버지 조간신문 읽는 모습이 너무나 보기 좋습니다"
필자 대답이 "저는 전철안이 아니면 아침 신문을 읽을 시간이 없기 때문이랍니다."
"옆자리를 보세요. 스마트폰하는 학생 어른 노인 외엔 모두가 그냥 잠자코 가잖아요."
옆을 둘러보니 하긴 그날따라 신문을 든 사람이 필자밖에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문득 생각나는 그 할머니는 아침 전철서 조간신문 읽는 사람을 보면 왠지 기분이 좋다고 했다. "그럼 할머니, NIE(Newspaper in Education/신문 이용 교육)란 말 들어보신 적 있으세요?"란 필자 물음에 "학생과 사회인 거의가 대개 속보성 정보와 단편지식 취득은 전파나 영상매체를 통해서 얻고, 체계적 이론과 지식은 그래도 활자나 출판매체를 통해 얻는다." 고 미리 준비라도 한듯 의견을 피력하는 여유도 보이며 당시 희수(喜壽)라고 했으니 이젠 족히 여든은 넘었겠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듯 '사람은 신문을 만들고 신문은 사람을 교육한다'로 들렸고 할머니는 필자 양해를 구한 뒤 즉각 핸드백서 A4 용지에 적은 뭔가를 꺼내 낭송하겠단다. 얼떨결에 놀랍기도 하고 긴장이 되기도 했으나 취재하는 기분으로 읽고 있던 신문의 여백에 받아쓰기를 했고 그녀는 일제히 집중되는 주위 시선 아랑곳 않고 낭낭한 목소리로 차분히 읊었다. 이른 아침 전철안은 갑자기 시 낭송회장이 됐고 드디어 이곳 저곳에서 박수가 나오기도 했다.

'조간신문'이란 시제로 안순례(安順禮) 할머니 작가님이 그날 전철안에서 읽은 시는 이랬다.

"아침마다 찾아오는 조간신문/무슨 사연 가지고 왔니?
대한민국 올림픽 게임/금메달 소식 가지고 왔구나

온 국민이 기뻐하는 금메달/기쁜 일 슬픈 일 너를 통해 알고 있지
천안함 사건에는 모든 국민 슬퍼하고/하늘도 슬퍼 눈물비를 내렸지

우리집 영감님은 나보다도 너를 더 좋아해/아침식사 식탁의 국, 날마다 식는단다
3호선 전철에서 너를 만나면/일행들은 저마다 너를 보고 있지

최대의 베스트셀러 책이라해도/너를 따라갈 책은 없을 거야
전 세계소식 다 전해주고/품격 있는 교양을 너를 통해 배우지

안국역에 내리면 다시 너를 만나 /재활용 아저씨 손수레에 실려
엘리베이터 안에서 사람들과 마주치면사람들이 다 너를 괄세해
그러면 나는 너를 감싸주지.

인생은 한번가면 다시 못 오지만/너희들은 다시 재활용 돼서
또 다시 태어나는 네가 나는 부럽기만 하구나."

자신은 역사의 고장 강화도서 태어나 감수성 많은 유년기를 산과 바다를 누비며 자연에서 보냈고 초등학교 2년 중퇴가 최종학력이고 4남매를 키워내며 독학으로 희수까지 혼자 글공부를 했단다. 첫 눈에 요즘 우후죽순 결성되는 어느 문단 등단 무슨 작가니 하는 겉멋 작가가 아님이 확연했다. 끊임없이 아주 소박한 문학정신으로 향기로운 생활주변의 일상을 소재로 한 글들이라 정겨웠다.

이순이 넘어서야 사회교육센터서 본격적인 수업에 들어가 홀로 줄곧 시와 수필을 써 왔다는 것. <이 보다 행복할 수는 없다.> 를 첫 단행본 작품으로 시작해서 <물푸레골 연정>을 공저로 펴냈고 첫 수필집으로 <안순례 수필집 '원양 화문석'>을 출간했다고 자랑하며 내용도 요약 소개했다. 불현듯 '조간신문' 안순례 수필가의 최근 작품과 안부가 궁금, 전화를 해도 신호만 가고 안 받으니 필자 절친 수필가 이경순(李炅淳) 교우가 글공부 같이 했다니 순대국집서라도 같이 함 봬야겠다.

<서대남(徐大男) 편집위원>

 

 

저작권자 © 쉬핑뉴스넷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