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상판결: 대법원 2014. 6. 26. 선고 2013다45716 판결

2. 사실관계

가. 창고업을 영위하는 피고는 소외 B와 물류서비스공급계약을 체결하여 B가 보관을 의뢰한 진단시약을 냉동창고에 보관하기로 하였는데, B는 진단시약을 소외 SMSD에게 양도하고 계약관계도 모두 SMSD에게 이전하였다.

나. 전세계적인 재보험자인 Z사는 SM사를 포함한 전세계에 존재하는 SM의 계열회사 등을 피보험자로 정하여, 피보험자들이 보관하는 진단시약 등을 담보하는 보험계약(Global Property Policy: GPP)을 체결하는 한편, 한국에 있는 H보험사(원고)를 원보험자로 한 재산종합보험계약을 체결하였다. 원고가 발행한 보험증권에는 피보험자로 SM의 계열회사 등이 다수 기재되어 있었으나, SMSD는 피보험자로 기재되어 있지 않았다.

다. 피고는 SMSD가 의뢰한 진단시약을 보관하던 중 2007. 6. 11. 냉동창고의 온도조절기와 전자밸브의 오작동으로 추정되는 사고로 온도가 영하 15 도로 내려가 진단시약이 손상되는 사고(“이 사건 사고”)가 발생하자, SMSD가 창고에 파견하여 진단시약의 보관을 감독하던 직원에게 이를 알렸다.

라. 그 후 진단시약은 전손처리 되고 2007. 12. 10. 모두 폐기되었으며, 이에 따라 원고는 원보험자로서 2011. 11. 22. 보험금 12억원 상당을 SMSD에 지급하고 재보험사인 Z사로부터 전액 재보험금을 수령한 바 있으며, 이 사건 사고 발생일로부터 1년이 지나기 전인 2008. 4. 28. 이 사건 사고로 인하여 피고에 대해 물류서비스공급계약에 기한 손해배상청구권을 가진 SMSD의 보험자로서 대위권을 행사한다는 취지로 소를 제기하였다.

마. 원고는 1심에서는 전부 승소하였으나, 피고가 항소한 항소심에서는 보험자대위권은 재보험자인 Z가 가질 뿐이고, 원고는 재보험금을 모두 Z로부터 수령하였기 때문에, 상법 제 682조에 기한 보험자대위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 한편 원고는 2010. 4. 경 SMSD로부터 SMSD가 원고에게 가지는 손해배상채권을 양도받은 후, 항소심 진행 중 2010. 6. 9. 양수금 청구를 선택적 청구로 추가하였다.

바. 상고심에서 대법원은 SMSD가 원고의 피보험자가 아니라고 명시하면서 아울러 항소심에서 추가된 채권양도를 근거한 청구원인에 대해 판단유탈이 있다는 이유로 항소심을 파기하였고, 파기환송심에서는 SMSD의 과실을 참작하여 청구액의 50%인 6억원 상당의 손해배상을 인정하였다. 이에 피고는 항소심에서 추가한 청구원인은 계약책임에 기한 창고업자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으로서 1년의 단기소멸시효가 적용된다고 주장하며 다시 상고하였다.

3. 대법원 판결요지

재판상의 청구가 시효중단의 사유가 되려면 그 청구가 채권자 또는 그 채권을 행사할 권능을 가진 자에 의하여 이루어져야 한다(대법원 1963. 11. 28. 선고 63다654 판결 등 참조). 그리고 채권자가 동일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복수의 채권을 가지고 있는 경우 채권자로서는 그 선택에 따라 권리를 행사할 수 있으나, 그 중 어느 하나의 청구를 한 것만으로는 다른 채권 그 자체를 행사한 것으로 볼 수는 없으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다른 채권에 대한 소멸시효 중단의 효력은 없다(대법원 2002. 6. 14. 선고 2002다11441 판결 등 참조).

A가 원고와의 보험계약상 피보험자가 아닌 이상 원고가 A에게 보험금을 지급하였더라도 보험자로서 A의 손해배상채권을 대위 행사할 수 없으므로, 원고가 당초 보험자대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한 것은 이를 청구할 아무런 권리나 권능이 없는 자의 권리행사에 불과하여 이로써 A의 손해배상채권이 행사되었다고 할 수 없고, 보험자대위청구와 채권양수금청구가 동일한 소송물이라고 볼 수도 없으므로, 원고가 피고에 대하여 보험자대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하였더라도 이로써 원고가 A로부터 양수한 손해배상채권의 소멸시효가 중단될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

4. 평석

가. 일정한 기간의 경과로 인하여 권리를 취득하거나 권리가 소멸되기도 하는데 전자와 관련된 것이 취득시효이고 후자와 관련된 것이 소멸시효와 제척기간 이다. 소멸시효란 시효의 일종으로서 권리불행사의 상태가 일정한 기간 계속된 경우에 권리의 소멸을 인정하는 것을 말하고, 제척기간은 일정한 권리에 대해 법률이 예정하는 존속기간 또는 한정기간을 말한다. 소멸시효와 제척기간의 구별은 통상 조문의 문구에 의하여 결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즉, 조문에 ‘시효로 인하여’라고 규정하고 있는 경우에는 소멸시효로 보며, 시효임을 표시하지 않은 경우에는 제척기간으로 본다. 다만, 이러한 문구는 구별의 중요한 기준이 되지만 그 외에도 규정의 취지와 성질 등 제반 사정을 고려하여 판단하게 된다.

나. 원래 시효는 법률이 권리 위에 잠자는 자의 보호를 거부하고 사회생활상 영속되는 사실상태를 존중하여 여기에 일정한 법적 효과를 부여하는 제도이므로, 권리의 불행사를 중단케 하는 권리자 또는 의무자의 일정한 행위가 있는 경우에는 이미 경과한 시효기간을 소멸하게 하고 그 때부터 다시 소멸시효를 진행하게 하는바 이를 시효의 중단이라 한다. 시효의 중단사유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이 사건에서 문제된 재판상 청구에 대하여 보면, 재판상 청구는 통상 소송물인 권리를 소의 형식으로 주장하는 경우를 가리키지만, 피고로서 응소하여 적극적으로 권리를 주장하는 경우도 포함된다. 소유권침해에 있어서 방해배제, 손해배상, 부당이득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하는 것도 취득시효를 중단하는 재판상 청구로 인정될 수 있고, 이행청구와 확인청구는 물론이고 상황에 따라서는 그 권리가 발생한 기본적 권리관계에 관한 확인청구도 시효중단의 사유가 될 수도 있다.

다. 이 사건에서 원고는 피보험자가 아닌 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한 후 보험금 대위를 청구원인으로 하여 피고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하였다. 그런데 보험자 대위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보험금이 적법하게 지급되어야 하는바 피보험자가 아닌 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했다고 해서 보험자대위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원고의 보험자 대위를 원인으로 하는 손해배상청구는 인용되기가 어려웠다.

라. 나중에 이런 사실을 알고 원고는 보험금을 지급 받은 자로부터 채권양도를 받아 이를 추가적인 청구원인으로 하여 소송을 진행하였다. 그런데 채권양수를 원인으로 한 소송은 단기소멸시효 기간이 경과한 후에 제기되었으므로 이것만 본다면 원고의 주장은 인정될 수 없다. 따라서 원고는 이전에 보험자대위를 원인으로 해서 소송을 제기했으므로 이미 그 때 권리행사로 인해 소멸시효가 중단되었고, 그러므로 채권양수를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청구도 적법하다고 주장을 하였던 것이다.

마. 본건에서는 원고의 주장과 같이 적법하지 않은 보험자 대위에 의한 권리행사를 적법한 권리의 행사로 볼 수 있는지 여부가 문제되었는바 존재하지도 않는 권리에 기한 대위권 행사를 적법한 권리의 행사와 동일시 할 수는 없으므로 양자의 동일성이 인정되지 아니하고 따라서 보험자대위 청구에 의해 양수금 청구의 소멸시효가 중단되었다고 볼 수 없다고 본 대상판결의 취지는 타당하다고 할 것이다.

김 현 법무법인 세창 대표변호사(해양수산부 법률고문)

 

 

저작권자 © 쉬핑뉴스넷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