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상판결: 대법원 2013. 10. 31. 선고 2011다16431 판결

2. 사실관계

가. 원고는 강관제조업 등을 목적으로 하는 우리나라 법인으로서 2008. 9. 15.경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K사와 스틸파이프 59,785피트를 수출하기로 하는 계약을 체결하였다. 이 사건 수출계약에서는 원고가 위 스틸파이프의 대금을 신용장에 의하여 지급받기로 약정하였고, 이에 K가 미국의 웰스파고은행에 신용장 개설을 의뢰하였다. 웰스파고은행은 2009. 2. 13. 원고를 수익자로 하여 취소불능 신용장을 개설하였는데 그 조건의 하나로 “운송인에 의하여 서명된 무사고 선적 선하증권”을 요구하였다.

나. 피고 C는 운송주선업 등을 목적으로 하는 우리나라 법인이고, 피고 O는 해운대리점업 등을 목적으로 하는 우리나라 법인으로서 ‘사가 포레스트 캐리어즈’(SAGA FOREST CARRIERS INT'L A/S, 이하 ‘사가포레스트’라 한다)의 국내 대리점이다. 원고는 2009. 2. 중순경 위와 같이 K에게 수출할 스틸파이프 가운데 377.142메트릭톤을 울산항으로부터 미국 로스엔젤레스 또는 미국 워싱턴주 벤쿠버까지 운송하는 계약의 주선을 피고 C에게 의뢰하였고, 이에 피고 C가 사가포레스트에게 위와 같은 운송을 의뢰하였다.

다. 피고 O는 2009. 2. 23. 사가포레스트의 대리인으로서 이 사건 화물이 선적되었다는 내용의 선하증권 4통을 발행하여 이를 피고 C에게 교부하였고, 피고 C가 이를 원고에게 전달하였다. 이 사건 선하증권은 좌측 상단에 사가포레스트의 상호가 기재되어 있고, 우측 하단의 ‘운송인을 위한 서명’(SIGNED FOR THE CARRIER) 란에는 ‘ORION SHIPPING CO., LTD. AS AGENTS(775-9191)'라고 기재되어 피고 O의 상호가 기재되어 있으며, 그 아래 피고 O의 서명이 되어 있다.

라. 한편으로 원고는 이 사건 수출계약 이전인 2008. 6.경부터 2009. 2.경까지 사이에 수차에 걸쳐 K에게 스틸파이프 등을 수출하면서 그 대금을 신용장에 의하여 지급받기로 하여, 그 수출에 관하여 위에서 본 웰스파고은행이 수차에 걸쳐 원고를 수익자로 하는 신용장을 개설하고, 피고 O가 수차에 걸쳐 원고에게 선하증권 76통을 발행한 바가 있었고, 이 사건 화물의 수출에 있어서는 앞서 본 바와 같이 웰스파고은행이 이 사건 신용장을 개설하면서 '운송인에 의하여 서명된 선하증권'(bills of lading signed by the carrier)을 요구서류로 하여 이를 신용장조건으로 하였는데, 원고가 위와 같이 이 사건 수출계약 이전에 수차에 걸쳐 K에게 수출하였을 당시에는 웰스파고은행이 신용장을 개설하면서 위와 같이 ‘운송인에 의하여 서명된 선하증권’을 요구서류로 하지 아니하였다. 피고 O는 위와 같이 이 사건 수출계약 이전에 수차에 걸쳐 원고에게 선하증권 76통을 발행하였을 당시 이 사건 선하증권과 같이 운송인의 대리인에 의하여 서명된 선하증권을 원고에게 발행하였고, 그 선하증권에 기하여 웰스파고은행이 아무런 이의 없이 신용장대금을 모두 지급하였다.

마. 원고는 2009. 2. 26. 한국외환은행 선릉역지점(이하 ‘외환은행’이라 한다)에 이 사건 선하증권 등 선적서류의 매입을 의뢰하였고, 외환은행은 2009. 3. 6. 원고에게 미화 373,205.15달러를 지급하고 이를 매입하였다. 그 후 외환은행이 2009. 3. 6. 웰스파고은행에게 이 사건 선하증권 등 위 선적서류를 제시하며 이 사건 신용장 대금 373,205.15달러의 지급을 요청하였으나 웰스파고은행은 2009. 3. 9. 이 사건 선하증권이 ‘운송인에 의하여 서명되지 않았고 운송인의 이름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불일치(discrepancies)를 이유로 이 사건 신용장 대금의 지급을 거절하였다. 외환은행은 위와 같이 웰스파고은행으로부터 신용장대금을 지급받지 못하게 되자 원고에게 위 매입대금의 반환을 요구하였고, 원고가 2009. 4. 15. 외환은행에게 위 매입대금 373,205.15달러를 반환하였다.

바. 원고는 피고 C는 이 사건 화물의 운송주선인으로서, 피고 O는 이 사건 선하증권의 발행인으로서, 원고의 요청에 따라 선하증권을 발행하는 경우 원고가 선하증권을 이용하여 물품대금을 지급받음에 있어 지장이 없도록 상법 제852조에 따라 운송인, 선장 또는 기타의 대리인으로 하여금 선하증권을 발행하도록 할 의무가 있음에도 이 사건 각 선하증권을 발행함에 있어서 운송인이 누구인지를 표시하지 아니하고, 선하증권을 발행할 권한이 없는 자로 하여금 선하증권을 발행하도록 하여 운송주선계약 상의 의무 및 상법 제852조를 위반하였으므로 운송주선계약에 기한 채무불이행 또는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으로 이 사건 신용장 대금 및 이 사건 화물의 통관비, 운송비, 창고비 등에 해당하는 금액을 연대하여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하며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다.

3. 대법원 판결요지

제6차 개정 신용장통일규칙은 제14조 a항에서 '지정에 따라 행동하는 지정은행, 확인은행이 있는 경우의 확인은행 그리고 개설은행은 서류에 대하여 문면상 일치하는 제시가 있는지 여부를 단지 서류만에 의해서 심사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같은 조 d항에서 '신용장, 서류 그 자체 그리고 국제표준은행관행의 문맥에 따라 읽을 때의 서류상의 정보는 그 서류나 다른 적시된 서류 또는 신용장상의 정보와 반드시 일치될 필요는 없으나, 그들과 저촉되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신용장조건이 운송인의 서명이 있는 선하증권을 운송서류로 요구하고 있는 경우, 신용장개설은행은 앞서 본 신용장통일규칙 제20조 a항 i호 및 국제표준은행관행 제94조의 규정에서 정한 요건을 충족하는 서류만을 신용장조건에 합치하는 서류로서 수리하여야 하고, 선하증권이 위와 같은 요건을 충족하고 있는지는 신용장 관련 다른 서류의 기재를 참고하지 아니하고 해당 선하증권의 문언만을 기준으로 하여 형식적으로 엄격하게 판단하여야 한다. 그런데 신용장의 요구서류로 제시된 선하증권에 운송인 본인을 나타내는 명칭이 기재되어 있고, 대리인이 그 본인을 실제로 대리하여 선하증권에 대리인으로서 서명하였더라도, 선하증권의 문면에 그 본인이 운송인의 지위에 있음이 명시적으로 표시되지 아니한 경우에는, 신용장개설은행의 입장에서는 신용장 관련 다른 서류의 기재를 참고하지 아니하고 해당 선하증권의 문언만을 기준으로 하여 형식적으로 엄격하게 판단하여야 하므로, 그 본인이 운송인의 지위에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러한 선하증권은 제6차 개정 신용장통일규칙(UCP 600)제20조 a항 i호 및 국제표준은행 관행 제94조의 규정에 따른 서명 요건을 형식적으로 엄격하게 갖추었다고 보기 어렵다.

4. 평석

가. 무역거래의 신용장 거래에서 서류를 검토하는 기준으로, 신용장 상의 수익자가 은행에 제시한 서류가 신용장 조건과 완전히 일치해야 대금이 지급된다는 원칙을 엄격일치의 원칙이라 한다. 따라서 신용장조건이 운송인의 서명이 있는 선하증권을 운송서류로 요구하고 있는 경우, 신용장개설은행은 선하증권이 위와 같은 요건을 충족하고 있는지 신용장 관련 다른 서류의 기재를 참고하지 아니하고 해당 선하증권의 문언만을 기준으로 하여 형식적으로 엄격하게 판단하여야 한다.

나. 이 사건에서는 먼저 신용장조건이 오로지 운송인 본인에 의하여 서명된 선하증권을 요구하는 것으로 볼 것인지가 문제되었다. 원심에서는 이 사건 신용장조건이 오로지 운송인 본인에 의하여 서명된 선하증권을 요구하는 것으로 해석하였으나, 대법원은 이 사건 신용장조건이 그 문언상 운송인(CARRIER)이 선하증권에 서명할 것을 요구할 뿐, 운송인 본인(CARRIER ITSELF)이 서명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 아니하고, 이 사건 신용장거래에 적용되는 제6차 개정 신용장통일규칙과 국제표준은행관행은 운송인의 대리인이 서명하여 선하증권을 대리 발행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으며, 운송인이 특정되어 선하증권이 발행되는 한 운송인의 대리인이 선하증권을 발행하더라도 법률관계에 어떠한 문제가 생기거나 선하증권의 소지인이 운송인을 상대로 운송물 인도청구권을 행사하는 데 어떠한 장애가 생기지 아니하고, 일반적인 신용장거래에서 특별히 운송인 본인만이 선하증권을 발행하도록 요구할만한 합리적인 이유를 찾아볼 수 없으므로 이 사건 신용장조건의 문언만으로 오로지 운송인 본인만이 선하증권에 서명하여야 하고, 운송인의 대리인이 서명한 선하증권은 신용장 개설은행이 수리할 수 없다는 취지가 명확하게 나타나 있다고 할 수 없다고 보았다.

다. 다음으로, 선하증권 우측 하단의 ‘운송인을 위한 서명’(SIGNED FOR THE CARRIER) 란에는 ‘ORION SHIPPING CO., LTD. AS AGENTS(775-9191)'라고 기재된 것만으로 신용장조건에서 요구하고 있는 운송인의 기재가 있는 것으로 볼 것인지 문제되었는바, 대법원은 이 사건 선하증권의 좌측 상단에는 사가포레스트의 상호가 인쇄되어 있기는 하나, 그가 운송인의 지위에 있음을 나타내는 표시가 없으므로, 이 사건 신용장개설은행인 웰스파고은행으로서는 이 사건 선하증권의 문언만으로 사가포레스트가 운송인이라고 단정하기 어렵고, 따라서 이 사건 선하증권은 위 신용장통일규칙 제20조 a항 i호 및 국제표준은행관행 제94조의 규정에 따른 서명 요건을 형식적으로 엄격하게 갖추었다고 할 수 없으므로 웰스파고은행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 사건 선하증권이 이 사건 신용장조건과 불일치한다는 이유로 신용장대금의 지급을 거절할 수 있다고 보았다.

라. 한편 이와 같이 신용장대금 지급 거절이 발생한 경우 송하인이 운송인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는 지도 문제되었는바, 신용장거래는 운송계약과는 별개이므로 선하증권의 서명 부분이 신용장통일규칙 및 국제표준은행관행 등에 부합하는지 여부는 원칙적으로 신용장거래의 당사자인 송하인이 스스로의 책임하에 점검하고, 불일치하는 사항이 있으면 운송인 등에게 그 보정을 요구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여야 하는 것이지 운송인의 책임을 전제로 하여 손해배상을 구할 수는 없다고 보았는바 타당한 판시라고 여겨진다. 이와 같이 신용장거래에서는 엄격일치의 원칙이 적용되므로 신용장에서 요구하는 조건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그 일치 여부에 대한 검토를 게을리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

김 현 법무법인 세창 대표변호사(해양수산부 법률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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