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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남 편집위원 칼럼]울며 헤진 부산항, '1990년대 '부산해양포럼' 재구성과 회상의 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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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1.29  17:3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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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대남 편집위원
60년대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개발 계획과 수출입국을 뒷받침하기 위해 한국 해운이 급속도로 도약하던 시절, 일선 출입기자로 정부 각 부처를 돌며 밥벌이를 시작하고부터 일터는 여러 차례 바뀌었지만 50년이 훨씬 넘게 오로지 해운업계 안팎을 서성대며 살아온 필자는 가끔 그 숱한 나날 중 3년이란 짧은 시간을 보낸 1990년대 중반에 생각이 멈춘다. 그래서 1995~97년까지 3년간 귀양가듯 쫓겨 부산 근무를 해야했던 시절, 그 중에서도 일원으로 활약했던 '부산해양포럼'을 회상하며 이를 재구성해보고 요즘도 그와 유사한 조직이나 기구가 기능하고 있다면 업계 발전에 도움이 되겠단 막연한 생각을 추억삼아 전한다.

숨가쁘게 붐비는 90년대 부산항, 100만을 간신히 넘기고 200만 TEU 달성에 올인하던 시절, 끝내 이를 지켜보지 못하고 필자는 급기야 IMF 사태로 서울 재탈환이란 금의환향은 고사하고 퇴직이란 철퇴를 맞고 퇴직금을 받고 '울며 헤진 부산항'을 부르며 그래도 뜻밖에 군산항업이란 항내 기업으로 모심을 받던 추억도 한결 새롭다. 돌이켜 보면 때론 암울했던 비극적 종장으로, 한편으론 그 시절이 50대 중반의 삶을 다양하고 풍요롭게 살찌운 너무나 그리운 노스탈지어로 떠올라 향수 어린 회상의 여로를 향해 닻을 올린다.
한많은(?) 부산을 떠나며 자연스레 생각나는 유행가, '울며 헤진 부산항'이 저절로 목청을 충동질 하던 때였다.

울며 헤진 부산항을 돌아다 보는 / 연락선 난간 머리 흘러온 달빛
이별만은 어렵더라 이별만은 슬프더라 / 더구나 정 들인 사람끼리 음~
달빛 아랜 허허 바다 파도만 치고 / 부산항 간 곳 없는 검은 수평선
이별만은 무정터라 이별만은 야속터라 / 더구나 못 잊을 사람끼리 음~

조명암(趙鳴岩/1913~1993)이 지은 노랫말에 박시춘(朴是春/1914~1996)이 곡을 붙여 남인수(南仁樹/1918~1962)가 불러 약 80년 전 1940년부터 유행했던 노래라 6~70대 시니어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즐겨 불렀던 노래다. 회고컨데 필자가 25년 전 1995년 1월 부산지부 담당 상무이사로 부임하던 해는, 김철용(金徹容) 해운항만청장, 조상욱(趙商郁/두양상선 사장) 한국선주협회장, 그리고 민병성(閔丙盛) 부산지방청장, 선주협회 지부장과 함께 부산지구 업무를 총괄하는 정책 의결기구로 박을생(朴乙生/고려해운 부산지점장) 부산지구협의 위원장이 맡아 수시로 항만 현장에서 발생하는 각종 업무를 수행하고 부산항이나 세관 등에서 발생하는 현장 애로사항을 처리하는 시스템으로 업무 조직이 운영되던 때다.

   
 
필자가 부산으로 내려간 1995년 1월 들어 난항을 걷던 WTO(세계무역기구)가 출범했고 그해 9.30일, 100만톤 달성을 자축한지 30년만에 한국 상선대가 1,000만톤을 기록하는 역사적 한 해이기도 했기에 기억이 짠하다. 서울 본사가 부산 현장을 당일치기로 오가며 업무를 처리할 수도 있지만 당시 느낌으로는 역시 지방은 단순히 모항에서 발생하는 애로사항의 현장 처리 및 해결 기능 외에는 크게 기대할 수도 없었기에 필자는 부임 후에 업무 처리 범위를 한결 더 업그레이드 시켜 전임들과는 다른 뭔가를 보이려고 여러모로 애썼던 것으로 기억된다. 더러는 골프 모임을 운영하고 체육대회도 가지며 재부 선사 본 점소들의 친목 도모에도 신경 써야 했다. 또 하나 중요 기능은 출입 기자들의 취재나 질의에 응답해야 하는 문제가 어려웠고 해운이나 선박 입출항과 관련, 해난 사고시에는 큰 곤혹을 치르던 끔찍한 장면도 지울 수가 없다.

또 가끔 제2함대 해상훈련 시범행사에 초대받아 함상에 올라 당시 함대사령관 서영길 제독과 만나면 우스개로 필자가 "상선은 선주협회 서 상무, 군함은 함사 서 제독, 우리 두 서씨(徐氏)의 임무가 크다"며 악수를 나눈 기억도 생생하다. 한 해를 힘들게 넘기고 나니 선협 조 회장의 별세로 박재익(朴載益/조양상선 사장) 회장이 총회를 거쳐 뒤를 이었다. 1996년에는 부산/나진간 정기항로가 개설되고 OECD에 29번째 정회원 가입이 확정됐다. 오사카에서는 APEC 정상회의가 열리는가 하면 무엇보다 업계가 수십년간 고대하던 해운전담 장관부처가, 해양수산부로 출범, 산하에 해양경찰청이 따라오고 신상우(辛相佑) 7선의원이 초대 장관으로 취임했다.

1997년을 맞자 업계 숙원이던 선박도임 관세가 철폐되는 등 낭보에 이어 선주협회 조 회장에 이어 박 회장이 또 별세하여 조수호(趙秀鎬/한진해운 사장) 회장이 뒤를 잇게 됐다. 그러나 3년 뒤 조 회장마저 별세, 10년 앞서 합리화 여파로 박건석(朴健碩/범양상선 회장) 회장 투신자살과 함께 네명의 회장이 임기 중 사망하자 선주협회 회장직은 죽음을 부르는 자리란 얘기가 떠돌게 된 계기가 됐다. 이 해엔 부산신항만 설립, 해양문화재단 출범, 해운산업개발원이 해양수산개발원(KMI)으로 기능이 확대 개편되고 해수부 차관으로 영전한 홍승용(洪承湧) 박사가 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8월에는 제2대 해수부 장관으로 조정제(趙正濟) 박사가 취임했다. 11월에는 해양오염방제조합이 확대 개편되고 부산 가덕 신항만이 기공식을 첫 삽을 떴다.

모두에 밝힌 당시 부산 근무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사전에 전 회원의 의견 수렴후 회칙과 임원 선임, 사업계획 및 회비 최종안을 확정하여 1997년 5월 21일에 창립총회를 열고 발족한 '부산해양포럼'이었다. 비록 필자가 당시 창립에 참여 후 퇴직을 했기 때문에 그 후의 운영이나 효과적 결과를 알 수 없지만 관심 갖고 참여했던 이 포럼의 기구표나 회원구성을 보면 상당히 면밀하게 작성던 것으로 기억된다. 조직이나 기구가 일하는 건 아니지만 지금 돌이켜 봐도 중지를 모은다는 점에서 부산해양포럼은 업계를 총망라한 대표적 케이스로 기억에 오래 남는다.

온고이지신, 참고로 부산해양포럼의 기구를 상세히 살펴보면 포럼회장(한국컨테이너부두공단 이사장: 변상경) 아래, 고문(국립수산진흥원 원장 배평암/부산지방해양수산청장 김광수). 감사(부산콘테이어부두운영공사 사장 이학구), 그리고 부회장(신선대컨테이너터미널사장 서재국/한국선주협회 부산지부장 서대남/한국원양어업협회 부산지부장 선규식/부산해양경찰서장 조재현)을 중심으로 총무(부산항만운송협회이사장 이희중/한국해운조합부산지부장 권곤/수산협동조합 부산지회장 어춘택), 간사(한국컨테이너부두공단 관리본부장 박효성)로 임원단을 구성하여 정기 및 수시로 포럼을 소집하여 현안 문제를 처리키로 한 실무 조직이었다.

항만 관련 단체 및 업체(25명)로는 고려예선(대표이사 심상호), 고려종합운수(사장 이승은), 국제통운(대표이사 김유엽), 대한통운(지사장 박충남), 동방(지사장 강칠봉), 동광공사(대표이사 박신국), 동부고속(이사 한성구), 동성실업(대표이사 이민환), 부산항만운송협회(이사장 이희중), 부산콘테이너부두운영공사(사장 이학구). 부산항부두관리협회(이사장 윤정환), 삼주항운(대표이사 김중섭), 삼창기업(대표이사 박인태), 선진종합(사장 정인영), 세방기업(지사장 최인식), 신선대컨테이너터미널(사장 서재국), 양산ICD(사장 진영일), 우성산업(대표이사 한태희), 우암터미널(저누 박철환), 천양항운(대표이사 이달승), 한진(본부장 이선식), 한국검수검정협회부산지부(지부장 김옥기), 한국컨테이너부두공단(이사장 변상경), 협성해운(회장 왕상은), 효동선반(대표이사 김원율)

해운 관련 단체 및 업체(18명)로는 고려해운부산사무소(소장 박기진), 동남아해운부산사무소(소장 이영윤), 범양상선부산지점(지점장 박간배), 부관훼리(이사 조재원), 부산경남골재도매업협동조합(이사장 유소부), 부산항업협회(회장 이헌탁), 삼현(대표이사 박주천), 서경(대표이사 박흥진), 조양상선부산사무소(소장 홍원유), 천경해운부산사무소(소장 오우평), 한국도선사협회부산지회(지회장 이윤규), 한국선급부산지부(지부장 박무창), 한국선주협회부산지부(지부장 서대남), 한국해기사협회(회장 이병건), 한국해기연수원(원장 송동은), 한국해운조합부산지부(지부장 권곤), 한진해운(부사장 권훈), 현대상선(상무 장병윤)

수산 관련 단체 및 업계(14명)는 경일수산(대표이사 양경섭), 남경물산(대표이사 김재훈), 대형기선저인망협동조합(조합장 이수인), 대형선망수산업협동조합(조합장 천금석), 동남(대표이사 윤명길), 두성수산(대표이사 장지환), 부산공동어시장(조합장 류기춘), 부산수산업협동조합(조합장 임상봉), 성경수산(대표이사 박희섭), 수협부산시지회(대표이사 구인석), 한국어선협회부산지부(지부장 김종대), 한국어업기술훈련소(소장 김홍철), 한국원양어업협회부산지부(지부장 선규식)

끝으로 특별회원(22명)으로는 국립동물검역소부산지소(소장 이홍길), 국립부산검역소(소장 엄은식), 국립수산물검사부산지소(소장 손부일), 국립수산진흥원(원장 배평암), 국립식물검역소부산지소(소장 이남복), 부산광역시청도시계획국(국장 이재오), 부산광역시청(수산관리관 정충양), 부산본부세관(감시국장 이종인), 부산상공회의소(사무국장 윤중걸), 부산지방식품의약청(청장 김행진), 부산지방해양수산청(청장 김광수), 부산지방해양수산청 (부두건설소장 이종천), 부산지방해양수산청(항무과장 한상배), 부산지방해양수산청(해무과장 유상정), 부산지방해양수산청(운영과장 김용학), 부산지방해난심판원(원장 박신규), 부산출입국관리사무소(소장 박기식), 부산해양경찰서(서장 조재현), 제3함대사령부 사령관 한상기), 한국컨테이너부두공단(관리본부장 박효성), 해양수산공무원(원장 박희도)

이같이 업계 전체를 총망라한 광범위한 해양포럼 회원은 현직 대표 또는 부산지역 상주 책임자가 당연직으로 승계함을 원칙으로 형식적인 조직이나 기구가 갖는 폐단을 최소화하기로 규정했다. 참고로 필자가 지금도 기억하는 당시 해양수산부에 재직했던 관료들의 면모를 보면, 신상우 장관, 이재균 장관비서관, 전승규 1차관보, 박욱종 공보관, 김영성 공보담당, 주재환 감사담당, 김성규 총무과장, 박재영 국제협력관, 송성호 국제기구담당, 이동원 신항만기회관, 백옥인 기획관리실장, 서정호 기획예산담당, 김덕일 행정관리담당, 양병관 범무담당, 이정환 해양정책실장, 김성수 해양심의관, 신평식 정책총괄과, 우예종 해양개발과, 정유섭 연안관리과, 안태환 안전심의관, 임기택 안전정책과, 이종석 선박기준과, 이은 선박안전과, 허영구 항로표지과 등명단을 지금 보니 온통 옛 친구들을 다시 만난 듯 당시 명단만 보고도 반가움이 앞선다.

또 고인이 된 민병성 해운선원국장, 신길웅 항만정책국장도 눈에 띄고 김하진 해운정책과, 한준규 국제해운과, 이광로 연안해운과, 김창남 선원과, 김형남 항만정책과, 박정천 항만운영과, 강무현 항만유통과, 나승렬 항만장비과 및 조남일 항만정책국장, 이인수 무역진흥과, 최낙정 어촌개발국장, 서상범 어업인육성과, 이차환 해난심판원장 등이 4반세기 전 당시 해양수산부에 근무하던 시절이었으니 해항회 명단을 보고 전화라도 한번씩 해야겠단 생각이다. 그 밖에도 무엇보다 부산 근무 시절에 기억에 남는 일은 지금도 남아 있는지 모르지만 서울서 내려와 부산서 근무하는 기관장이나 점소장들을 단골로 하숙을 치던 초백회(草白會) 라는 초량동 소재 하숙집이 주로 해운계 종사자들을 단골로 해서 당시 십수년을 두고 유명해서 인구에 회자됐던 기억이 너무나 새롭다.

그리고 지금도 있으려나, '부총(釜總)' 또는 '울총(蔚總)'이란 우스개 슬랭. 얘긴즉슨 서울에 배우자나 가족을 두고서도 당시 부산이나 울산에 와서 근무를 하게 되면 모두가 '부산총각' 또는 '울산총각'으로 변신한다는 이유있는 농담 시쳇말이었다. 또 지방 근무를 하고 주말에 아내를 만나러 가는 행차를 "화분에 물주러 간다"던 우스개도 그때는 너무나 널리 유행했던 것 같다. 지방에서 엉뚱한 곳에 소비를 한 탓에 서울가서 재고부족(?)으로 부인에게 혼이 났다는 얘기도 당시 산업전사란 작위(?)와 함께 가정과 아내를 두고 홀아비 생활을 해야하는 샐러리맨들의 애환이 서린 조크나 유머는 8~90년대는 크게 유행했었다.
마지막, 부산총각(?)으로 극진히 대접해 주던 중앙동 일원의 횟집이나 식당 아지매들과 산성 막걸리도 부산 추억으로 오래 남는다.

 

<서대남(徐大男)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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