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상판결: 대법원 2017. 5. 30 선고 2014다233176, 233183 판결

2. 사실관계

가. 조선회사인 주식회사 A는 원심 공동피고 B리미티드와 이 사건 각 선박에 관한 선박건조계약을 체결하였다. 원고 보조참가인은 이 사건 각 선박에 대하여 선수금 환급보증서(Refund Guarantee, 이하 ‘R/G’라 한다)를 발급하였다. 피고는 B와 이 사건 각 선박건조계약의 1차 분할금(미합중국 통화 각 250만 달러)에 관한 대출계약과 담보이전계약을 체결하여, 이 사건 각 선박건조계약에서 발생하는 B의 A조선에 대한 권리를 독자적인 지위에서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 받았다.

나. B는 1차 분할금만 지급한 후 인수자를 물색하여 이 사건 각 선박건조계약을 양도할 계획이었고, A조선과 피고도 이러한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2008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금융위기로 선박 수주가 감소하여 인수자를 찾지 못한 상황에서 B가 자금마련에 어려움을 겪게 되자, A조선과 B는 2009. 11. 10. 매매대금과 인도일을 조정하는 변경합의를 하였다.

다. 위 변경합의 직후인 2009. 12. 28. A조선에 대한 구 기업구조조정 촉진법상 채권금융기관의 공동관리절차(이하 ‘워크아웃’이라 한다)가 개시되었다. 워크아웃 절차에서 작성된 회계법인 실사보고서의 경영정상화 방안에는 B가 자금마련에 곤란을 겪는다는 점을 들어 이 사건 각 선박의 건조를 제외하였다.

라. A조선은 2010. 5. 3. 이 사건 각 선박건조 일정이 포함된 실행선표(안)을 확정하고 이 계획을 적어도 2010. 7. 1.까지는 유지하여 이 사건 각 선박의 건조를 준비하면서도, 2010. 5. 7. 이 사건 각 선박을 건조하기 위하여 체결한 자재공급계약 중 일부를 취소한다는 통지를 공급회사에 발송하였다.

마. A조선은 2010. 7. 15. B에 선체번호 CSN-267 선박에 대한 강재절단(steel cutting)을 실시하겠다고 통지하고, 2010. 7. 30. B의 참여 없이 강재절단을 실시한 후 미국선급협회(American Bureau of Shipping, 이하 ‘ABS'라 한다) 선박검사관의 서명이 기재된 확인서를 첨부하여 강재절단 시행 사실을 B에 통지한 것을 비롯하여 몇 차례에 걸쳐 이 사건 각 선박에 대한 강재절단을 실시하고 B에 이를 통지하였다.

바. 이 사건 각 선박건조계약에 따르면, 2차 분할금은 선박의 강재절단 시 지급하기로 되어 있다. B는 그 지급기일까지 2차 분할금을 지급하지 않았고, 이에 A조선은 이 사건 각 선박건조계약을 해제한다고 통지하였다.

사. 피고는 2010. 8. 25. A조선에 이 사건 각 선박건조계약상의 선박인도일이 지났거나 임박하였는데도 선박을 건조하지 않은 것은 A조선이 이 사건 각 선박건조계약에 따른 의무를 거절하였기 때문이고, 그 의무 이행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이 사건 각 선박건조계약을 해제한다고 통지하였다. 그 후로도 피고는 이 사건 각 선박의 인도 지연을 이유로 다시 해제를 통지하였다.

아. A조선은 2013. 6. 17. 파산선고를 받고 소외 1이 파산관재인으로 선임되었다가 그 후 원고로 파산관재인이 변경되어 이 사건 소송절차를 수계하였다.

3. 판결요지

영국 계약법에서는 이행기 전 계약위반의 법리(doctrine of anticipatory breach of contract)를 인정하고 있다. 계약이 성립한 후 이행기 전에 당사자 일방이 부당하게 이행거절(repudiation)의 의사를 표시하고 상대방이 이를 받아들이면, 상대방은 즉시 장래의 이행의무에서 벗어나 계약을 해소(termination, 이는 우리 민법상 해제와 해지를 포괄하는 개념이다)하고 계약위반을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이행거절은 계약이 성립한 후 이행기 전에 당사자 일방이 계약상 중요한 의무를 이행할 의사와 능력이 없음을 표명하는 말이나 행위를 함으로써 상대방으로 하여금 채무자의 계약상 의무 이행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행거절의 의사를 표시했는지 여부는 객관적으로 판단하여야 할 사실확정 문제로서,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계약 상대방의 입장에서 볼 때 채무자가 자신의 계약상 채무의 이행을 완전히 거절하고 이를 저버리려는 의도를 표명하였다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는 경우에 인정할 수 있다. 이행거절의 의사표시는 반드시 명시적으로 하거나 특정 행위나 말로 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외부적으로 드러나는 행위나 일련의 행동을 통하여 묵시적으로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행거절은 명확하고 분명하며 확정적이어야 한다. 당사자가 계약의 이행에 부정적이거나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고 하더라도, 전체적인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이를 명백하고 확정적인 거절의 의사표시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 .

4. 평석

가. 이 사건 각 선박건조계약은 외국적 요소가 있어 국제사법에 따라 준거법을 정해야 하는데 국제사법 제25조는 계약의 준거법을 당사자가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선택한 법으로 규정하고 있고, 이 사건 각 선박건조계약에서 준거법을 영국법으로 정하였으므로 이 사건 각 선박건조계약에 관한 준거법은 영국법이다

나. 이 사건의 주된 쟁점은 이 사건 각 선박건조계약이 건조자인 A와 매수자의 계약상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 받은 피고 중에 누구에 의하여 적법하게 해제되었는지 여부인데, 피고는 2010. 8. 25. A조선에 이 사건 각 선박건조계약상의 선박인도일이 지났거나 임박하였는데도 선박을 건조하지 않은 것은 A조선이 이 사건 각 선박건조계약에 따른 의무를 거절하였기 때문이고, 그 의무 이행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이 사건 각 선박건조계약을 해제하면서 그 근거로 영국법상 이행거절의 법리를 들었다.

다. 그런데 이행거절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채무자의 계약상 의무 이행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하는 것을 의미하므로 계약 상대방의 입장에서 볼 때 채무자가 자신의 계약상 채무의 이행을 완전히 거절하고 이를 저버리려는 의도를 표명하였다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는 경우에 인정할 수 있고, 이행거절의 의사표시가 반드시 명시적으로 하거나 특정 행위나 말로 해야 하는 것은 아니나 이행거절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명확하고 분명하며 확정적이어야 한다.

라. 이와 같은 법리는 우리나라 법리에서도 발견된다. 대법원은 채무자가 채무를 이행하지 아니할 의사를 명백히 표시한 경우에 채권자는 신의성실의 원칙상 이행기 전이라도 이행의 최고 없이 채무자의 이행거절을 이유로 계약을 해제하거나 채무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지만, 이러한 이행거절이라는 채무불이행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채무를 이행하지 아니할 채무자의 명백한 의사표시가 위법한 것으로 평가되어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다(대법원 2015. 2. 12 선고 2014다227225 판결).

마. 본건의 원심은 이 사건 각 선박건조계약이 체결되고 약 3년이 경과한 시점까지 강재절단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 사건 각 선박의 인도예정일이 상당히 경과하거나 얼마 남지 않았으나, A조선이 계약 체결 전후로 엔진을 포함하여 자재공급계약을 체결하였고, 선박의 인도 지연은 B가 인수자를 찾지 못하여 건조대금을 제때 지급하지 않은 사정이 있고, 선박의 강재절단이 부속합의에 기초한 설계도면에 따라 이루어졌으며 선박건조를 위한 강재가 준비되어 있었다는 등의 사정을 종합하면 영국법상 이행거절을 이유로 한 해제요건이 갖추어지지 않았다고 보았고, 대법원은 위와 같은 원심의 판단을 지지하였다. 

김 현 법무법인 세창 대표변호사(해양수산부 법률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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