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 대표변호사
김현 대표변호사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1월 18일 12개 국적선사와 11개 외국선사를 포함한 총 23개 선사에 대하여 동남아노선의 운임 담합행위를 시정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962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하였으며, 동남아정기선사협의회(동정협)에도 시정명령과 함께 1억 650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하였다.

공정위는 동남아정기선사들이 지난 15년간 한국~동남아 수출입 항로에서 총 120여 차례의 부당공동행위를 했다고 판단했다. 위 선사들이 19건의 운임인상(RR)에 대해서는 해양수산부에 보고하였으나 이러한 운임인상을 달성하기 위한 최소운임협의(AMR) 122건을 신고하지 아니한 부분이 공정거래법에 위반된다는 것이다.

쟁점 중 하나는 해운업계의 공동행위에 해운법이 아닌 공정거래법이 적용되는지이다. 해운법상 공동행위의 요건으로 운임인상에 대한 보고와 화주와의 협의를 규정하고 있으나 본건 최소운임협의에 대한 보고의무가 없다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해수부는 유권해석을 통해 이 사건 공동행위에 해운법이 적용되어야 하고 공정거래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음에도 공정위는 이번 제재처분을 강행하였다. 이는 해운업계가 해운법과 관계 행정청의 지도에 위반한 바 없음에도 법률상 미비로 공정거래법상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결과가 된 것과 다름이 없다.

공정위 결정의 법리적 모순점은 차치하더라도 이번 제재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 알 수 없어 아쉽다. 해운업계의 소위 “운임 담합행위”는 선사들의 가격경쟁이 과도해짐으로써 업계가 다 함께 손해를 보는 것을 막기 위한 자체적인 규제행위이고, 이는 궁극적으로 국내 해운업계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공정위는 이번 결정을 내리기에 앞서 일본의 3대 선사 NYK, K-LINE, MOL이나 프랑스의 CMA-CGM 등을 포함한 20개 해외선사에 대해서는 조사조차 하지 아니하였다. 이번 과징금 부과가 국내 선사에 대한 차별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국내 해운업계는 한진해운의 파산 이후 세계 선복량 점유율이 계속 줄어드는 등 국제적 경쟁력을 회복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해운산업은 사실상의 무한경쟁시장으로서 규모의 경제가 지배하는 분야이다. 그런데 이렇게 국내 선사들의 운임 규제를 담합으로 매도하여 징계할 경우 결과적으로 과도한 경쟁 속에서 해외선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영세한 국내선사들만 피해를 보고 시장에서 사라질 위험이 높다. 국내 해운산업의 침체는 우리 수출기업들의 운임 부담 증가로 이어지고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 악화를 야기한다.

법률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닌 수단이다. 사법 및 행정당국은 수범자에게 법률의 준수를 요구함으로써 법률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달성하도록 하기 위해 그 권한을 행사해야 하는 것이지, 제재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여서는 안 된다. 그런데 이번 공정위의 결정은 국가의 경제질서를 유지한다는 목적을 망각한 전형적인 탁상행정의 결과라고 볼 수밖에 없다.

해운업계는 이번 결정에 대해 행정소송과 해운법 개정 추진의 방법으로 다툴 예정이어서 판단의 권한은 법원과 입법부로 넘어간 상황이다. 공정위의 결정은 매우 아쉽지만 이러한 점을 잘 소명한다면 그 부당성을 설득하기 어렵지 않다고 믿는다. 이 기회에 진정으로 국내 해운산업과 국익에 도움이 되는 정책이 무엇인지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거치는 것도 바람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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