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에 인간의 나이는 과연 "숫자에 불과"한 것일까, 아님 이는 몸은 늙어도 마음은 젊다는 나마니들의 자위나 자기 기만에서 비롯된 푸념일까? 가치는 가격에 두지않고 그 의미에 둔다 했고 인간은 사랑에 빠질 수 없을 때 비로소 늙기 시작한다고 갈파했던 아흔살 노인과 어린 소녀와의 사랑의 열병과 그리고 고독을 그린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가르시아 메르게스'의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Memories of My Melancholy Whores)"을 회상하며 90이 돼서야 알게되는 인간군상 그 육체의 욕망에 대해 깊은 이해와 연민과 동정을 보내고도 싶다.

서대남 편집위원
서대남 편집위원

그리고 근년 필자는 막역하게 친히 지내는 한 여류작가의 작품세계를 통해 자주 이를 실감한다.  필자와 알고 지내는 소설가나 시인이나 작가 그리고 글 잘 쓰는 논객이나 문필가가 숱하지만 90세에 이른 나이, 게다가 목하 중증 질환에 시달리면서도 만년의 창작열을 불태우며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는 여류 문인이 있어 주위의 작은 화제거리다. 망백(望百)을 앞둔 졸수(卒壽), 아흔을 맞고도 상상을 초월하는 문학에 대한 열정으로 삶의 정리단계를 필설로 마감하며 대 단원의 막을 내리려는 듯 실버타운으로 거처를 옮기고도 젊은이 못지않게 장르에 상관않고 붓 가는대로 글을 써 문집을 내고 있는 이전애(李田愛) 여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근간 작품으로 펴낸 시집《아흔에도 언어의 계단을 오르다》에 이어 연작으로 새로 발간한 작품을 필자에게 전해주겠다는 전갈을 받고 서로가 바쁘다 보니 며칠 전에도 3호선 전철역 벤치에서 잠시 회동했다, 모처럼 만났으나 아직도 서로가 바쁜터라 안부도 제대로 못 나누고 책만 두 권을 받아올 정도로 할 일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망구(望九)를 맞은 필자와 망백을 앞둔 두 사람은 그래도 15, 6년 전 일산노인복지관에서 '실버타임즈'라는 8면짜리 노인신문을 사명감 넘치게 만들었었다. 해박한 석학의 교장 출신, 이순원(李順遠) 편집국장을 중심으로 7~8명이 매월 5,000부를 제작하여 전국의 각계 요로에 배부하던 자원봉사활동 시절부터 알아온 터다. 

그래서 예절과 체면을 접은 채로 서스럼 없는 사이고 보니 우선 갓 나온 신간《아흔에도 언어의 불길이 타오른다》란 시집을 받아 들고 냅다 집으로 뛰었고 밤을 꼬박 새며 일독을 했다.  마적단 두목 쌍놈같은 모습의 한량((閑良), 43세 아버지와 미모가 출중한 귀부인, 41세 어머니의 재혼으로 1933년 인천에서 무남독녀 외딸로 태어났다고 스스로 밝혔다. 이 작가는 본인도 70대 중반에 재혼을 했지만 새로운 사랑을 만나 깨알 쏟아지는 신혼의 꿈을 만끽한다고 귀띔했고 실버타임즈 편집회의가 있는 날마다 자랑하며 만년을 행복에 겨워했지만 다시 돌싱(?)이 됐다. 

뜻밖에 부군의 노환으로 인한 병 수발로 힘들어 하다가 끝내는 먼저 보낸 뒤 고양시 원당 소재 실버타운에 들어가 운동삼아 당구를 즐기며 모름지기 글 쓰기에 전념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창작에 전념하며 인생 삼모작의 기쁨을 누리는 지금도 즐겁고 유쾌하고 행복하다며 지인 몇이 만나는 소모임에서도 늘 소녀다운 풍모를 잃지 않고 명랑하게 웃으며 질병에 시달리면서도  그까짓 게 대수나며 전혀 내색하지 않고 어울리는 모습이 가히 초인적이란 게 필자 생각이다.  그녀는 초등학교 때 바이론을 읽으면서도 진짜인지는 모르지만 줄반장 한번 못 해 봤다고 했다. 

그렇지만 친구들은 항상 그녀를 따랐고 또 동무들을 모아놓고 동화얘기를 자주 해 줘 말 잘하는 학생으로 인기가 많았으며 글쓰기에도 능했기에 문학과 예술은 어린 시절부터 싹을 키워야 한다는 소신을 갖게 됐다고 2021년 출간 창작 시집 권두언 '지은이의 말'에서 소회를 밝혔다. 또 그동안 소설, 단편, 수필 등을 다수 발표했지만 나이 90이 돼서도 "이제 겨우 아흔"이라며 종전의 장편 위주 소설에서 장르를 바꿔 운문의 매력에 빠져 시를 쓸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큰 축복이라고 여기며 시문학의 황홀경을 음미하고 있다고도 했다.

늦은 나이에 시문학을 접한다는 게 비록 사치일 수도 있지만 사치를 누리며 시를 쓰고 싶고 또 노년에 세월이 흐르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면 참 아름답기도 하지만 한편 측은한 생각이 들기도 하나 현재의 실버타운 생활이 "나를 위한 시스템 같다"며 만족하고 스스로가 주인공으로 살 수 있다는 것과 직업적인 보살핌으로 출발하는 친절과 사랑이 오히려 더 편하고 부담 없어 좋다고 했다. 그리고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다 보니 창 밖 자동차들의 소음도 생명의 소리로, 또 경제가 굴러가는 모습으로 여겨지고 그동안 생각해 보지도 못한 시상이 넘치며 뜻밖의 시들이 졸작으로 겁도 없이 줄줄 엮어져 나온다고도 했다.

그리고 필자에게도 속삭이듯, 지금 한껏 오른 90세이지만 "나의 마지막까지 내가 성장하고 있음을 측근에게 표현하고 싶다"고도 했다. 최후의 성장의 힘, 몰입의 힘을, 그것이 그 어떤 행복보다 귀하다고 생각하며 생명은 성장하는 것이며 나이의 의미가 없어져 가고 있는 이 시대에 살아남으려면 호기심과 성장의 끝을 절대로 멈추지 않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스스로를 '참으로 어설픈 시인'으로 적기도 한 이전애 작가는 시작품 《영육의 차이》에서 -트롯트 육신을 즐겁게 하지. 클래식 영혼을 흥분시킨다. 수다 육신의 재미를 주지. 기도는 영혼의 진동을 준다 - 로 읊어 자아의 존재적 의미를 폭넓게 성찰했다.

한편 《기지개》란 제하의 글에서는 - 아침 기지개를 편다. 잠자고 있던 세포들 일직선으로 일어난다. 세포가 줄음을 편다. 주인이 일어나셨다고 일어서서 경례를 한다. 눈동자 힘을 주어 기지개를 편다. 온 세상이 보이는 것마다 맑고 주름이 활짝 편다 - 며 지금 서있는 자리에서 당당히 자신만의 감정의 소리를 소박하고 진솔하게 표현하며 독자에게 사실적인 친근감을 주는 운문적 매력을 듬뿍 담아 누구에게나 쉽게 다가가는 시어들로 정열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기들만의 내부거래로 군림하며 시문학을 지배하려는 현대시의 난해성을 특권으로 삼는 유명 시인들의 시작품이 인문학의 몰락을 자초하며 왜 읽히지 않는지 경종을 주는 것  같아 필자는 늘 그렇듯 쉽게 읽히는 시를 보니 흐뭇했다.

《아흔에도 언어의 계단을 오르다》시집에 추천의 글을 쓴 이정숙 철학박사는 이 작가의 소설로, 필자도 교열에 참여했던, 경기도 문학상의 우수상을 탄《보이지 않는 목소리》와《당신 왜 그때》 작품 교정 시절을 회상하며 당시 80세에 소설을 쓰는 열정에 놀랐는데 지금 90세에도 시인으로 왕성한 창작력을 보일 수 있는 이유는 한마디로 작가의 꾸준한 언어의 연마에 있다고 피력했다. 이전애의 시는 진솔한 감정들에서 출발, 나이를 뛰어넘은 순수한 감정의 언어들이 작가 특유의 열정과 어우러져 한바탕 춤을 추고 있는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최근 연달아 이같이 두 권의 시집을 발간, 소설에서 시문학으로 진입한 작가에게 이 박사는 특히 맑은 정신의 추를 끝까지 놓지 않으려는 끊임없는 작가정신의 긴장감이 자신을 객관화하려고 지금 서있는 자리에서 당당히 자신의 감정의 소리를 표현, 서사시에 가까운 형식을 통해 자기 특유의 낙천성으로 본인의 실존감을 담담히 열어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젠  삶의 겨울철, 시인으로서의 출발이 곧 풍성한 시작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더하여 나이를 뛰어넘어 언어의 날개로 피어나는 작가의 문학정신은 독자의 귀감과 용기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문장 구성에서 특별히 글 내용을 돋보이게 하는 요소는 다른 이가 미쳐 생각하지 않는 기발한 발상과 독특한 소재을 택하여 자기화한 문장으로 글을 쓸 때, 생명있는 글이 된다고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특장 하나쯤은 개발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전문가가 아니라 여느 글과 차별화 내지는 특성화 하기 위해서는 어느 한 방면에 남다른 소양을 지님을 말하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그래서 이 작가의 경우도 나이 듦이 아름답고 생명 또한 유한하기에 살아 생존하는 시간은 더욱 값지고 멋지며 소중하고도 귀중하다는 생각으로 세상만상을 보석같이 여기며 이를 자기 문학세계에 이입시켜 글과 시와 문장으로 어휘화 하는데 탁월한 기능을 지녔다는 평가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어떤 이는 늙는 것이 슬프다고 하지만 이 작가는 "우울할 때 행복한 척 하라(Pretend you're happy when you're blue)"는 올드팝이나, "그대 늙어가는 게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란 가요처럼 노년이 아름답고 생명은 유한하기에 삶의 존재만으로도 감사하다고 했다. 더 성숙하며 관조하는 시선을 갖게 되고 남은 삶을 더 열정적으로 살 수 있기 때문에 그는 아흔의 나이에도 진솔하고 자유로운 언어로 창작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작년 말 제1집 시집  '언어의 계단'에 이어 이번에 두번째 시집 '언어의 불길'을 펴내고도 곧 제3집 발간을 집필중이라며 '아흔 시리즈'를 계속하겠다는 각오를 보였다. 필자로선 그저 놀랍기만 할 따름이다.

사실 그는 오래 전부터 주로 기자생활을 하며 기사쓰기와 소설 문학에 전념했으나 근년에 시문학 분야로 새로운 장르에도 넘나들며 현직 문학의 리베로 역을 다하고 있는 셈이다. 1933년 태어난 그는 '월간 사상계(思想界)' 편집부 기자로 시작, '월간 전망(展望)' 국회 출입기자로 활동했으며 곁들여 문학활동을 하면서 YWCA 문맥회 제2대와 9대 회장을 역임했다. 이어 한국소설가협회의 회원, 실버타임즈 편집국 취재기자를 역임했고 바로 이때 맺은 필자와의 인연도 20년 가까이 된 셈이다. 그후 이 작가는 자유기고가로 각종 잡지사 등의 출판매체에 글을 써 오기도 했다.  

그리고 장편소설 '보이지 않는 목소리'와 '당신 왜 그때' 수상작품 외에 에세이《누군가 미워질 때 읽는 책》, 소설《유리가루》,《별빛이 그리워서》등 다수를 펴낸 바 있다. 또 아람누리에서 시를 배우고 동호회 활동도 했지만 "이번 연달아 시집을 낸 계기는 절박함이라고 생각한다"는 그는 현재 직장암 말기로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상태다. 이젠 인생 터미널, 삶의 종착역을 앞두고 얼마 남지 않은 이승의 시간을 카운트다운하며 갖는 절박함이 그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감정들과 핵융합을 거쳐, 피맺힌 절규로 승화한 뮤즈와 시어들이 어쩌면 광신자의 방언처럼 주체할 수 없이 터져 나오다는 것 같다는 게 작가 스스로의 고백이다. 

이같이 "매일 매순간 나 자신도 놀랄 정도로 언어들이 마구 튀어나온다" 할 정도로 밤마다 구순 할머니 시인 머리맡에 원고가 쌓이는 요즘이다. 어릴 적부터 책과 가까운 환경에서 자란 소녀 이전애는 무남독녀로 유복하게 자랐다. 당시는 드문 가정교사 덕분에 책을 가까이 하게 되었고 인천 배다리에 있는 서점을 드나들며 많은 책을 읽었다. 그렇게 문학적 소양을 쌓은 그는 문학지 기자를 지냈고 그 결과 다수의 소설과 에세이집을 펴내게 되었다고 회상했다. 그 시대에 여성이 오랫동안 사회활동을 했다는 것도 그렇지만 그는 생각도 생활도 평범하지 않은 선구자적 삶을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란 게 그를 아는 주위 지인들의 한결같은 평가다.

"나이가 든다는 건 몸이 쇠퇴할 뿐 생각이나 감정이 늙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하는 그는 자식들에게 폐가 되지 않게 부군 타계 후 곧장 상배의 슬픔도 추스를 겸 의식주를 잊고 창작에 열중하기 위해 실버타운에 입주키로 작정했다고 바로 필자에게 전했고 필자도 탁월한 선택이라고 이에 무턱대고 맞장구를 쳤던 것 같다. "삶이 유한하다는 것이 감사하다. 그래서 생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더욱 더 뜨겁게 마음 속 언어들이 터져 나오고 한 사람이라도 내 시에 공감과 위로를 얻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는 구순의 이전애 시인은. 매일 밤 통증에 시달리다가도 종이와 펜을 놓지 않고 글을 쓰며 아직 포켓볼을 즐기고 당구 키를 잡는 이름하여 '로컬 톰보이 같은 멋진 여성'이란게 필자의 주석이다.

그리고 갈길을 빤히 바라보는 듯,《아흔에도 언어의 불길이 타오른다》'두 번째 시집을 내면서' 머릿말에서 - 부끄럽고 송구하고 염치가 없습니다. 가슴 속에서 뿜어 나오는 실타래를 연상시키는 언어를 잠 재울 수가 없습니다. 고령이 되면 얼굴도 두터워지듯이 용기가 가상합니다. 늙어서 참 좋습니다. 사방을 두리번거리지 않아도 내 의사대로 행동할 수 있다는 것. 이제는 깜박깜박하는 기억이 나를 슬프게 합니다. 끈을 놓지 않으려고 나의 사고를 자꾸 훈련시킵니다. 계속 열정의 행진을 지속하겠습니다. 이 순간 산다는, 살고 있다는 자각이 이토록 살 맛을 줄 수가 없습니다.- 를 읽는 이 순간 어쩌면 이전애는 '잔 다르크' 같고 유관순 같다는 생각에 필자는 처연하기까지 하다.

다시 한번 "나의 마지막까지 내가 성장하고 있음을 측근에게 표현하고 싶다. 성장의 힘을, 몰입의 힘을 !" 그것이 그 어떤 행복보다 귀하다고 생각하며 생명은 성장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이의 의미가 없어져 가고 있는 이 시대에 살아남으려면 호기심과 성장의 끈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고 소리없는 함성으로 외치는 그에게 "인생은 끊임없는 선택과 결정의 연속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항상 용기와 책임이 뒤따른다."는 도스도예스키의 말을 빌어 "영원한 추구, 우리는 이것을 인생이라 부른다"며 이정숙 박사는 90에 오른 언어의 계단에 선 작가를 격려했다. 

마지막 페이지에 적은 '특별히 이 시집은 손자 형석, 형열에게 바칩니다. 손자들에게 가문의 문집으로 이어지도록 부탁한다'는 글에 언젠가 이 세상 마지막 떠날 때 자식이나 손자 손녀에게 전하는 부탁 치고는 너무나 값지고 고귀한 유언이자 멋진 유산같아 그간 신문을 만들며 함께 했던 지나간 날들을 영원히 가슴 속 깊이 묻고 오래 기리고픈 추억으로 남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끝으로 깜쪽같이 작가의 건강 회복의 기적을 기도하는 필자는 이전애 당신을 기자, 소설가, 시인 그리고 글벗, 이웃, 누나, 친구, 동지, 등 무엇으로 부를까 정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현재 그의 목표와 당면 과제가 아직 시집에 담지 못한 더 많은 이야기들을 담은 세번째, 네번재 시집을 내는 것이라니, 그의 창작 열정은 정신적 무한대, 현재진행형으로 억겁을 불타는영원한 활화산에 피닉스이기 때문이리라. 

<서대남(徐大男)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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