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순 편집위원
이경순 편집위원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속담이 있다. 한자로 표현하면 경투하사(鯨鬪鰕死)라고도 하는데 역시 같은 말로 이것은 순오지(旬五志)에서 나온 것이다. 어부지리와 반대되는 표현이지만 같은 상황에서 자신이 어떻게 처신하느냐에 따라 정말 백지 한 장 차이다.

남들이 하는 싸움에 상관없는 타인이 피해를 받는다는 뜻이며 이익을 취하기 위해 남들이 다치는 걸 상관하지도 않는 경우가 많다. 더욱이 약소국의 경우에는 많은 피해를 받는다. 세계의 화약고라고 불리 우는 곳들이 이 속담의 새우처럼 되기 딱 좋은 위치다. 한반도를 화약고란 말은 들은 바 전혀 없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아랫사람들의 싸움에 윗사람들이 피해를 보거나 골 아파하는 것을 비꼬는 '새우 싸움에 고래 등 터진다'는 반대말 속담도 있다. 그런데 이것 역시 양측의 싸움에 엉뚱한 사람이 피해를 본다는 뜻으로 쓸 수 있다. 단지 피해를 보는 사람의 지위가 달라질 뿐이다.

우리 한반도를 역사적으로 고찰해 보면 삼국시대의 가야는 삼국의 중앙집권 왕조들이었던 고구려 백제 신라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다가 최종적으로 신라에 합병되어 멸망했다.

그리고 청일전쟁, 러일전쟁, 6.25 전쟁에서 보듯이 이 전쟁들 모두 외세의 개입이 있었던 전쟁인데 결과적으론 항상 한반도가 초토화 되었다. 근데 6.25 전쟁은 대대적인 남침 작전을 주도했던 김일성과 박헌영이 주범이기는 하다.

“한국은 더 이상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가 아니다. 싸움의 승패를 가르는 역할을 할 제3의 고래가 됐다.” 영국 킹스칼리지런던(KCL)국제관계학 교수인 라몬 파체코 파르도 박사가 최근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한 책을 펴냈다. 제목은 ‘새우에서 고래로: 잊힌 전쟁에서 K팝까지의 한국’이다.

이 책은 지난 1000여 년 역사 내내 한국은 열강들 사이에서 눈치껏 운신해야 했다고 배경을 설명한다. 특히 한반도 영토와 주민들을 차지하려고 노리며, 문화를 자기네 것으로 바꿔 버리려던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시달려온 처절한 과거를 소개한다.

그렇게 등이 터졌고, 또 언제 다시 터질지 몰라 노심초사하던 새우가 스스로 고래가 됐고, 열강이 됐다고 파체코 파르도 교수는 말한다. 반도체, 자동차, 선박, 배터리, 휴대폰 등을 발판으로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 됐고, 지난 10년 동안엔 방탄소년단을 앞세운 K팝 음악과 ‘기생충’을 필두로 한 영화 등 놀라운 문화 소프트 파워로 몸집을 키워 거대한 고래가 됐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 역사를 중국·일본에 침탈당했던 시대, 언어·음식·관습·정체성이라는 뿌리를 되찾은 본질적 ‘한국다움’의 시대로 구분한다. 그러면서 현재의 경제·문화적 성공 근간은 일찍이 600여 년 전의 탁월했던 지도자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말한다.

그림 문자인 한자를 버리고 소리를 내는 입 모양을 바탕으로 만든 한글이 한국 문화에 대한 접근성을 뒷받침하고 있다는 설명도 곁들인다. 파체코 파르도 교수는 한국이 경제력·소프트파워·군사력 등 다양한 수단을 결합해 계속 몸집과 근력을 키워나가야 한다며...

앞으로는 미국·중국 사이에서 등이 터지는 게 아니라 양쪽이 서로 눈독을 들이면서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좋은 패’를 쥐게 될 것이라고 역설한다. 그리고 책 말미엔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고 썼다. “밝은 미래가 한국을 기다리고 있다. 한국은 이미 제자리를 찾았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 자리를 다져나갈 것이다.”

나도 웃어보자고 한마디를 더 해본다.

"고래랑 새우랑 싸우면 누가 이기게요?"

"새우요."

"고래는 밥이고 새우는 깡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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