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황태자의 첫사랑'에서 하이델베르그대학 신입생 '에드먼드 퍼돔'이 술잔을 높이 들고 신고식을 하고 있다.

 

서대남 편집위원
서대남 편집위원

여든이 넘어서도 철이 들지 않고 남녀노소 지위고하, 업종에 관계없이 온갖 지인과 인사들을 두루 만나며 쏘다니다 보니 혹자들은 가끔 '안(非)해운 소재'의 세속적인 삶의 단상도 써보라고 이른다. 해운ㆍ물류관련 매체에 종사한다고 한결같이 해운만 언급해서 식상하니 더러 딴 얘기 좀 해보란 것. 그래서 우선 손쉽게 생각나는 것이 술 얘기라 낙서 삼아 이번엔 술에 관해 겪고 읽고 듣고 생각나는 얘기를 엮어 술타령(?)을 해 볼까 한다. 품팔이가 사람을 만나고 마시고 해결해야 하는  직종이고 보니 젊을 때부터 술과 친하고 친해야 했기에 술이 자랑거릴 수는 없지만 술 마실 일도 잦았고 또 자주도 마셔 누구 못잖게 화제도 참 많았다.  

50년대, 중졸후 보리타작하던 도리깨를 팽개치고 부산으로 내려가 빈둥대며 한해를 놀다 뒤늦게 야간 고교에 편입, 떠돌이 끝 졸업반 시절, 기억도 희미한 5.16후 최초로 실시된 대입 예비 수능시험 국가고시 전날밤 과음으로 시험 당일 고사장을 못찾아 헤매다 겨우 응시한 일은 약과였다. 상경 진학후 신입생 환영회 과음으로 자취방을 못 찾아 누나뻘들 낯 선 방에서 하룻밤 신세를 진 일 하며, 재학중에 자원 입대하여 육군 신병으로 최전방 근무시절 음주 후 탄약고 보초 근무 중 심야 하극상 사건,또 샐러리맨 때 진로를 변경, 옮긴 직장서 철야 회식 끝에 MLD(최소치사랑) 상태로 실신하여 사망 직전에 ​경찰 백차로 국립중앙의료원(메디컬센터) 응급실에 실려가 2박3일 실종신고 끝에 살아난 적도 있었으니.

그러다 보니 술과 관련된 대소 사건과 화제가 많아 그 누구보다 술이라면 할 말이 많은 사람이 필자다. 첫 품팔이를 시작한 60년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50년을 샐러맨으로 살고 있고 그간 술로 입은 피해도 컸지만, 술 잘 마시는 능력(?)으로 자식노릇, 가장과 부모 역할 해 낸 것도 사실이다. ​60년대부터 경제개발과 산업사회로의 발전 배경에 한국적인 음주문화가 한 몫을 했다는 논리에 공감하며 힘든 시련을 "먹고 죽자"로 극복하고 "술 잘 마시는 사람이 일도 잘 한다" 란 유행어도 사실이었던 것 같다.

70년대, 업무상 접대나 점잖은 술자리의 주법으로 엄격한 11개 수칙, '놓틀카찡떼오 안돌사콜물'이 유행한바 1.(놓)술을 대작하다가 중간에 잔을 놓지 말고  2.(틀)음주중 목을 좌우로 틀지 말고 꼿꼿이 하고 마실것이며 3.(카)독한 술도 카~하고 소리를 내지 말고 4.(찡)절대 얼굴을 찡그리며 마시지도 말것이며 5.(떼)술을 마시다가 중간에 술잔을 입에서 떼서도​ 안되고 6.(오)술잔을 받고서 너무 오래 마셔도 안되며 7.(안)술을 마​시는 도중에 안주는 절대금물이고 8.(돌)잔을 완전히 비우지 않고 옆으로 잔을 돌려서도 안되며 9.(사)마시는 도중에 사이다를 마시거나 10.(콜)콜라를 마시는 것도 절대 금물이며 11.(물)술잔을 내린후 물로 입을 가셔도 안된다. 고 규정한 철저한 음주수칙의 준수가 '부총(釜總/부산 근무땐 모두가 총각)'이란 말과 함께 일대 유행이었다. 

한편 비싼 돈 들여 취해 곧은 것을 굽히고, 바른 심성을 비뚤게 하고, 맑은 정신을 흐리게 만드는 술. 하지만 사람들의 근심과 불안을 없애고 자아성찰과 죄의식을 무디게 하며 창의적 사고나 의심 등이 의식 속에 자리잡을 틈을 없애는데 술이 필요했기에 술을 시적으로 포에틱하게 미화하기도 했다. '술이란 뼈저린 아픔을 간직한 사람들에게는 일시적인 쾌락을 담보로 해주는 악마의 독액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사랑을 불 붙게 만드는 묘약이 되기도 하며, 메마른 정서를 적셔주는 감로수가 되기도 하고가난한 자가 누리는 복이요 절망한 자의 희망이며 고독한 자의 행복이라' 고도 했다.

또 '술은 슬픔의 연인이요, 아픔의 치료제며 이별한 자의 사랑이요, 사랑한 자의 기쁨이기도 하고, 그들의 하나님이기도 하기에 잔 속에 행복과 아픔이 있고 잔 속에 눈물이 있으며 잔 속에 만인의 행복이 흘러간다' 고 읊었기에 주신(酒神) 박카스는 참으로 위대한 존재였다는 생각이다. 밀밭만 지나도 취하는 조부와 가친, 가문의 종손으로 태어나 일흔 중반의 이 나이를 살아오는 동안 "내 인생의 반은 술 마시는데 보냈고, 나머지 반은 술 깨는데 보냈다'는 버전에 필자를 대입하며 살았다. 

허나, 술도 음식이란 말이 있긴 하지만 세가지를 경계하라 했으니, 마시되 때를 구별할 줄 알며(酉時戒), 매너 좋게 깨끗하게 마셔야 하고(水洗戒), 석잔 이상 과음하지 말라는 교훈(三杯戒)이 그것이었다. 또 술, 안주, 밥, 세가지(三食)를 같이 먹어라 했고, 삼락(三樂)으로  ​안주와 대화와 분위기를 함께 즐기며, 마땅한 ​삼금(三禁)이라 해서 ​정치 이야기와, 종교를 논쟁하거나, 돈 자랑을 하지 말랬고 삼예(三禮)가 있어 술은 적당히 권하고, 말을 조심하며, 상대방 기분을 생각하며 마시라고도 했다.

어릴 때부터 듣고 배운 얘기로는 마시는 때(何時)와 장소(何處)와 그리고 누구(何人)와 얼마(何量)를 마시며 거리(遠近)와 주종(淸濁) 등 술마실 때는 이상 여섯가지를 묻지 말라(六不問)는 말이 있는가 하면 주망(酒亡) 주절(酒節) 주객(酒客) 주당(酒堂) 주학(酒學) 주선(酒仙) 등 일곱가지 계급(七階)으로 술 마시는 품격을 나누기도 했고 마시는 품위와 주량에 따라 다섯가지 귀족등급(五等爵)에 비유, 구분하기도 했는데 공작(公爵/攻爵) 후작(侯爵/厚爵) 백작(佰爵/百爵) 자작(子爵/姿爵) 남작(남男爵/濫爵)이 그것으로 공격적으로, 죽기살기로, 백 잔까지에, ​맵시있게, 넘치도록 마시는 사람으로 나눠 작위에 따라 비유도 했다.

알려진 얘기지만 찰리 채플린은 "인간의 진짜 성격(True Character)은 술에 취했을 때 드러난다" 했고 보들레르는 "술과 인간은 끊임없이 싸우고 화해한다" 했으며, 문제는 인간이 술에게 져서 본성을 드러내고 말며 '패색이 짙어지면 술에 취한 또다른 자아의 모습을 흘린다(Drunk After-Ego)' 는 로직인 셈이다. 최근 조선일보 뉴스프레스 윤희영 부장의 미주리대 연구 결과의 인용보도에 따르면 그 네가지 유형은, 첫째, 아무리 마셔도 성격변화를 안보이고 지적 능력과 판단을 유지, 끄떡없이 주량이 세고 무난한 '헤밍웨이형' 둘째, 마실수록 더욱 친절 상냥, 무분별하지 않고 외향성이 더 커져 주변을 즐겁게 하는 여성취향 '메리포핀스형' 셋째, 맨정신엔 수줍고 내성적이나 취하면 억제를 폭발시켜 고성에 춤추고 노래하며 옷도 벗는 '너티 프로페서형' 넷째, 취하면 또다른 자아로 돌변, 지적능력 양심을 잃고 폭력도 불사하며 주사(酒邪)있는 지킬박사와 '하이드형'

그리고 옛부터 술에는 장사가 없다 했으니 연말의 각종 접대나 회식과 송년 모임에서 분위기를 깨지 않고 술자리서 비교우위에 서는 요령 터득이 자기방어의 첩경이라며 이를 야구경기에 비유도 한다. 1.최소한 3~5차전을 각오한다면 초장부터 '완샷' 강속구에 절대 승부수를 걸지 말고 체력안배에 신경쓰고 2.가급적 한술하는 막강 술고래들 강타선 옆 자리는 피해 앉는 등 포인트 선정을 잘 하며 3. 비교적 하위타선 ​여직원 및 비주류(非酒類) 사이에 끼어 경기흐름을 자기쪽으로 유도하고 4.건배 후 입에 대기전에 대화를 꺼내는 등 잔을 내리며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아 헛 스윙을 유도 5.​오버페이스로 생각되면 약자에게 잔을 돌려 술잔이 되돌아 올 때까지 견제구를 던지며 시간을 벌고 6.위험시엔 화장실을 자주 찾으며 적절한 타이밍에 작전타임을 부르는 것도 일종의 요령 7.최악의 순간은 술잔을 매만지며 폭탄주를 만드는 척 ​고의 사구를 던지되 9회말까지 완투는 자살행위 금물.

온천보다 뜨겁고, 노래보다 신나고, 별보다 반짝이며,  보석보다 값지다는 사랑보다 더 좋은게 술이라 했고 비록 물에 빠져 죽은 사람보다 술에 빠져 죽은 사람이 훨신 더 많다는고들 하지만 피하기가 힘들고 어느 시인은  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고 포도주가 있으면 길과 사랑이 없더라도 황야가 천국이라 했지만 아버지는 죽고 나서야 그리운 사람, 아버지가 마시는 술잔의 반은 눈물이란 말에 필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해도 달도 별도 다 노숙하는데 집 한간 있고 친구 벗하여 술 한잔 하면 누구나 성공한 삶이 아닐까다.

 

< 서대남(徐大男) 편집위원 >

 

 

  

 

저작권자 © 쉬핑뉴스넷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