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함부르크항 전경. 사진출처:인천항만공사
독일 함부르크항 전경. 사진출처:인천항만공사

KOTRA(브뤼셀무역관 윤웅희)는 15일 "대외관계 변화에 따른 EU정책 변화의 주요 키워드" 제하의 리포트를 발표했다. 미-중 간의 경쟁 심화와 러-우 사태 등 잇따른 대외 상황의 변화가 EU 정책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례로 미국은 2022년 10월, 중국에 대한 특정 첨단 반도체 장비의 수출 규제를 확대하며 EU 및 회원국에도 관련 규제 동참을 요청하고 있다. 이에 네덜란드 정부는 2019년부터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장비를 공급하는 네덜란드 기업 ASML에 극자외선(EUV) 장비의 중국 수출을 제한해 왔으나 2023년 1월 해당 조치를 심자외선(DUV) 노광 장비까지 확대하기로 미국 정부와 합의했다. 이 합의는 3월 8일 네덜란드 외교통상개발협력부 장관이 의회에 보내는 '고급 반도체 제조장비에 대한 수출통제조치' 서한을 통해 공식적으로 확인됐다.

한편, 러-우 사태 이후 EU에서는 에너지를 비롯한 주요 공급망의 안정이 안보 개념으로 떠오르며 화석에너지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기존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이에 더해 EU는 재생에너지뿐만 아니라 관련 산업 원자재의 안정적인 조달을 위해 역내 원자재 공급망을 구축하고자 하는 핵심 원자재법 초안을 3월 중 발표할 예정이다. 해당 법안은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대한 EU 대응 정책으로 알려지며 법안 내용 및 향후 재생에너지 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역외 보조금

EU는 2023년 1월 12일부터 역외 보조금 규정(Regulation on distortive foreign subsidies)을 발효했다. 법안의 주요 내용으로는 일정 요건 하에 역외 기업이 1) EU 기업을 인수(M&A), 2) 공공조달(public procurement)에 참여하는 경우 사전에 집행위에 신고하고 심사를 거치도록 의무를 부여, 3) 신고 요건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보조금 지원을 받은 역외 기업이 유럽연합 시장의 경쟁을 왜곡하고 있다고 의심되는 경우 집행위의 직권 조사를 할 계획이다.

해당 법안은 기존 EU가 단일시장의 공정 경쟁을 보장하기 위해 역내 회원국의 보조금 지급을 기능 조약(TFEU) 107조를 통해 규제하고 있어 역외국으로부터 지원을 받은 기업과 역내 기업 간의 형평성을 마련하기 위한 조치로 알려졌다. 특정국이 아닌 모든 역외국에 적용되는 이 법안 성격상 본격적인 시행을 앞두고 기존 산업 보조금 정책을 시행 중인 국가들을 중심으로 법안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관련해 2021년 EU역내 기업의 해외 인수의 경우 미국과 영국이 각각 32%와 26%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게다가 미국의 경우 2022년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Inflation Reduction Act)을 발표해 재생에너지 및 청정기술 산업 육성을 위한 보조금 지원을 예고하고 있어 관련 보조금 지급 내역 및 투명성 요건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역외 보조금 규제는 7월 12일부로 시행될 예정으로 신규 법안이 안정적으로 시행될 때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규제로 인한 기업 결합 및 공공조달 사전신고 기준이 되는 재정적 기여의 범위가 넓고 기여액 산정 시 자회사는 물론 주요 계열사도 고려해야 하는 바, 관련 기업들의 규제 대비를 위한 부담이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역내 진출했거나 진출을 앞두고 있는 우리 기업 역시 사전 신고 기준을 숙지하고 정부로부터 받은 모든 재정적 기여에 대한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수집해 관련 증빙 자료 요구에 미리 대비할 수 있도록 철저한 준비가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는 것이다. 

원자재

원자재는 2022년 러-우 사태 이후 에너지를 비롯한 주요 공급망 안정이 안보 개념으로 떠오르면서 EU의 향후 산업정책 방향과 기후 대응 노력이 모두 반영되는 정책 분야이다. 앞서 EU는 러-우 사태 발발 후 러시아 가스 의존도를 탈피하고 재생에너지 비중을 강화하기 위해 REPower EU를 추진하는 한편, 관련 녹색 전환 산업에 사용되는 원자재의 안정적인 공급망을 구축하고자 3월 중으로 핵심원자재법의 초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금속의 종류마다 75~100%를 역외국에 의존하고 있는 EU는 이 법안을 통해 핵심 원자재 수입에 대한 특정국 의존도를 낮추고 공급망을 다변화하는 한편 역내 공급망을 구축할 계획이다. 언론에 유출된 초안에 의하면 핵심원자재법은 2030년까지 추출, 중간 처리 및 정제, 재활용을 통한 2차 원자재 공급 등 원자재 공급망 별로 역내 생산 목표를 설정하고 관련 공급망에 대한 모니터링 및 관리 개선을 추진하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공급망 안정에 기여하는 전략적 프로젝트를 선별해 허가 절차 간소화 및 자금 조달을 지원하고 지속가능성 요건을 마련해 원자재의 재활용 및 순환성을 강화할 전망이다.

또한, 이와 같은 노력의 한 방편으로 EU는 역외국과의 FTA 체결 시 원자재 관련 지속가능성 요건을 도입하는 한편, 현재 추진 중인 FTA 체결도 가속화할 계획이다. 또한 글로벌 공급망의 안정성을 위해 집행위는 핵심 원자재의 주요 소비국과 관련 원자재의 주요 생산국 및 향후 생산 잠재력이 높은 국가들을 연결하는 핵심 원자재 클럽에 대해서도 언급한 바 있다. 따라서 관련 협정 및 국제 협력 동향에 대해서도 핵심 원자재를 다루는 우리 기업들의 주의 깊은 관심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무역

앞서 원자재 정책에서 EU가 원자재 공급망을 다각화하기 위해 자유무역협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처럼 EU는 2021년부터 개방된 전략적 자율성(Open strategic Autonomy)을 강조하는 신통상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여기서 개방이란 WTO의 다자무역 체제에 대한 지지를 의미하며 전략적 자율성이란 EU가 위기 상황에서도 역외국이나 특정국에 의지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역량을 의미한다. 즉 EU는 에너지 및 원자재 공급망에서 자유무역을 통한 원자재 조달을 확대하는 한편 전략적 자율성을 강조하며 공급망을 다변화해 EU의 경쟁력을 강화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한편, EU의 적극적인 무역 정책은 상대국과 무역 갈등으로부터 역내 시장을 보호하고자하는 별도의 법안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2022년 11월 EU 이사회, 유럽의회, 집행위는 통상위협 대응조치(Anti-coercion Instrument) 채택을 위한 입법 기관 간 논의를 시작했다. 이 법안은 제3국의 경제적 위협이 있을 경우, EU가 이에 대해 판단하고 WTO의 개입 없이 자체적으로 해당 국가 기업의 통상, 투자 등의 경제 활동에 제재를 가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법이다. 현재 입법 기관 간 통상 위협의 판단 및 제재 조치 권한을 EU 이사회의 가중 다수결 표결이 필요한지, 집행위가 단독으로 수행할지 등을 논의 중이다.

또한, 향후 무역 관계에 있어서 인권 관련 사안도 EU에서 보다 중요하게 작용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2022년 9월 집행위가 발의하고, 현재 입법 과정 중에 있는 강제노동제품 수입금지 규정(EU Regulation on prohibiting products made with forced labor on the Union market)은 원재료 수확, 채굴, 상품의 제조와 유통 등 역내외 모든 공급망에서 강제노동이 기여한 제품을 역내 시장에 판매하는 것을 금지하는 조항이 포함돼 있다.

항만 인프라

EU는 27개 회원국 간의 물리적, 제도적 국경의 통합을 확대해나가고 있으며 그 결과로 EU의 단일시장은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큰 경제 규모를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EU의 단일 시장에 접근하기 위해서 노르웨이, 중국, 아랍에미리트, 미국 등 역외 여러 국가들이 EU의 항만시설에 투자하고 있으며 EU 역시 자본 집약적인 항만 시설의 개발을 위해 개방적인 투자 정책을 고수해 왔다.

참고: 중국의 EU 항만 투자 현황과 항구별 소유 지분
참고: 중국의 EU 항만 투자 현황과 항구별 소유 지분

하지만, 러-우 사태 이후 에너지 및 원자재 공급망의 안정이 국가의 안보와도 직결된 문제로 떠오르며 주요 경제적, 군사적 인프라인 항만 시설에 대한 보안문제가 EU 회원국들과 유럽의회 사이에서 떠오르고 있다. 특히 가장 최근에 협상이 진행된 중국의 독일 함부르크 항구 터미널 협상의 경우, 당초 COSCO와 35% 지분 인수가 논의되고 있었으나 독일 국내 및 다른 회원국들로부터의 우려로 2022년 10월 독일 정부는 최종적으로 24.9% 인수를 승인했다. 현재 함부르크 항구 운송부(HHLA), 독일 연방경제부, COSCO(CSPL) 간의 구체적인 조건을 합의 중인 것으로 밝혀졌다.

협상이 이와 같이 축소된 데에는 역외국의 역내 항만시설 및 주요 인프라 투자가 확대에 대한 EU의 경계가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중국의 경우 중국 해운·항만업계를 대표하는‘COSCO’와 ‘CMP’ 양대 기업을 중심으로 꾸준히 EU 항만시설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왔다. 독일 함부르크 항구 협상이 완료될 경우 COSCO와 CMP가 투자한 EU 역내 항구 및 터미널은 총 14개로 EU 전체 항만 용량의 10% 규모를 중국이 소유하게 될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같이 특정국의 EU 항만 투자 비중이 확대에 대해 EU 회원국을 비롯해 유럽의회의 특정국 의존도 확대에 대한 경계가 강화되고 있다. 일부 의원들은 집행위에 주요 인프라 특히 항만시설에 대한 역외국 의존을 경계하기 위한 EU 전략 마련을 촉구하는 서한을 제출한 바 있다.

시사점

EU는 러-우 사태 이전부터 전략적 자율성과 녹색, 디지털 전환을 주요 정책방향으로 삼고있다. 다만 대외관계 변화로 인해 역외 보조금 규제, 핵심원자재법, 통상 위협 대응 조치 등의 법안 등의 추진이 가속화되고 있다. 한편, EU는 이와 같은 조치들을 단순히 특정국을 대상으로 하는 조치가 아닌 역내외 공정한 경쟁의 장을 마련하고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글로벌 스탠다드로 기능할 수 있도록 입법 과정에서 보편성을 추구하고 있다. 따라서 이미 EU에 진출했거나 관련 공급망이 연결된 우리 기업 역시 해당 산업별 신규 규정 및 입법 동향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자료: EU 집행위, 유럽의회, EU 이사회, Eurostat, Merics, Euractiv, Politico 등 현지언론 종합 및 KOTRA 브뤼셀 무역관 보유자료 종합

 

저작권자 © 쉬핑뉴스넷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