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남 편집위원
서대남 편집위원

"배를 타다 싫증나면 까짓것 청진항(淸津港) 도선사가가 되는거야" 선장으로 아무리 오래 배를 타도 선장 중의 선장, 국가고시에 합격하는 별따기를 거쳐야지 아무나 도선사가 되는 건 아닌데 그는 30년을 넘어 서른 세 해나 배를 탔으니 자신있고 여유롭게 떳떳이 했음직한 말이란 게 필자 생각이다. 바다에 배를 띄워 짐이나 사람을 실어나르며 돈벌이를 하는 해운 본연에 대한 생각은 잠시 접고 바다를 소재로 한, 이름하여 해양문학 숲속 산책을 위한 오솔길을 걷고픈 만년의 서정에 젖어, 문득 이미 타계한지 21년이 지난 김성식(金盛式) 선장 시인을 다시 떠올려 본다.

아울러, 지금이 바야흐로 ""이 마을 전설이 주절이주절이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육사(陸史), 이활(李活)의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시절"로 시작되는 여름 시 '청포도(靑葡萄)'도 오버랩되어 잠시 문학 노인으로 변신해 본다. 해마다 이맘때면 생각나서 몇 번 김 선장 시인의 이야기를 지면을 통해 잡문 형식이나 에세이로 적어 본 적이 있지만 올 들어서는 그 감회가 더욱 두드러지게 가슴을 적시며 웬 일인지 필자를 숙연하게 한다.

한국 문단에서 해양문학 또는 해양시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김 선장 시인은 함경남도 이원(利原)서 태어난 1942년생으로 필자와 동갑내기다. 평생을 해상직원 주변을 맴돌면서 짝통 해기사란 칭호까지 받으며 살았기에 동 시대의 육해상 뱃사람들을 거의 다 알거나 인사 정도는 나눴는데 그러나 김 선장 시인만은 주로 해상생활을 한 분이라 실은 이름 석자와 지면이나 그의 작품 및 한국해대 16기 입학동기들에게 들은 얘기가 시인에 대한 전부다.

그래서 일면식도 없지만 그래도 한 솥밥, 해운 가족의 일원이란 동질성과 그의 작품 세계를 통해 익히 잘 알기에 이웃이나 절친 이상으로 더 많이 기억하고픈 욕심이 앞서기도 했던 게 사실이었던 것 같다. 1971년 '청진항(淸進港)' 작품으로 한국문단 최고의 등용문,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으로 등단하여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하면서 4권의 시집을 내고 300여편의 주옥같은 작품을 발표하여 해양문학의 선구자적 개척자로 필명을 날렸다.

특히 문단 등단의 지름길로 알려진 중앙 일간지의 신춘 당선이란 아주 힘들고 영광된 고지를 내로라 하는 젊은 문단 지망생들을 제치고 배를 타는 선장이란 열악한 조건에서 등극을 한데다가 선린상고를 졸업, 한국해대에 입학은 했으나 해양대 본과와 전수과를 두루 오가면서도 졸업장은 취득하지 못하고 국가 자격시험을 통해 해기사 면허를 취득, 항해사로 배를 탔던 것으로 알고 있다.

선장으로 활동하는 33년 동안 '세계로 바다로 미래로'란 해양 한국의 슬로건 아래 5대양을 두루 누비며 6~70년대 범양전용선(汎洋專用船) 등 원양 상선을 타고 대양을 항해하면서 겪은, 파도와 싸우며 지내온 망망한 대해 항행 경험을 바탕으로 바다 냄새가 물씬 나는, 이름하여 바다를 소재로 한 해양시 300여편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시는 대부분이 바다 위에서, 알려진대로, 해양도시 부산을 중심으로 한국 문단에 "해양시" 라는 독특한 장르를 정착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은 한국 해양문학의 으뜸이요 선구자다.

그 까닭은 김성식 시인이 마른 뭍에서 활동한 일반 문학인이 아니라 외항선의 선장이란 독특한 직업에 더하여 바다를 항행하는 마도로스라는 상징성과 이미지와 낭만적 요소가 플러스 알파로 작용한 때문이기도 해서 한국문단에 해양시라는 독특한 장르를 정착시킨 독보적 작가로 회자된다. 1962년 월간 '소설계'에 단편소설 '남지나해(南支那海)' 발표로 시작해서 1971년 조선일보 신춘문에 시부문 당선작 '청진항'에 이어 주로 '현대시학'지에 시와 산문을 발표했다. 숱한 세월을 바다와 더불어 호흡한 체험을 바탕으로 바다를 소재로 작품을 썼기에 그의 작품세계 본령은 바다였고 선박과 바다 그 자체와 바다 위의 일상, 항행한 여러 나라와 항구에서의 체험이 모여 그의 시 세계를 이룩했다고 볼 수 있다.

'청진항'에 버금가는 1986년 발표작, '바다는 언제 잠드는가?' 와 1991년 '누이야, 청진의 누이야', 그리고 1999년의 '이 세상 가장 높은 곳에 바다가 있네' 등으로 대표되는 시인의 가장 은유적이며 탁월한 표현의 문장이 집약적으로 표현되어 읽는 이로 하여금 바다에 대한 향수를 자아내고 '겨울날 감자떡을 들고 갯가에 나가노라면 싱싱한 바다 냄새 더불어 정어리 떼들 하얗게 숨쉬는 소리'에서는 누구나 엄마 가슴을 만지작이는 환상을 불러 오는 듯 하다고 손에 잡히는 사실적 시어들을 구사하여 많은 독자들의 환심을 모았다.

우리 문단에서 해양시라는 독특한 분야를 개척해온 그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것은 1970년 말 이후로, 2002년 3월 작고한 김 시인은 33년간의 원양상선 승선활동과 선장직무 수행중 무사고 운항기록과 선원들의 권익보호 및 해운산업 발전을 통해 국가경제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바다의 날'을 맞아 정부로부터 영예로운 은탑 산업훈장을 받기도 한 것은 참으로 의미있는 일이라 하겠다. 그리고 2004년 부산 조도에 위치한 모교 한국해양대 도서관 앞에 김 시인의 유작인 '겨울바다'를 새긴 시비가 건립되어 선후배나 해운계가 오래도록 그를 기리는 표석이 됐다.

아까운 나이에 타계하기까지 줄곧 우리 문단에서 해양시라는 독특한 분야를 개척해온 그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것은 1970년 말 이후다. 간단없이 작품을 써 온 그는 그의 시 쓰기를 일러 "바다보다 큰 허무 속에 잠겨 있는 절망을 길어 올리는 것'이로고 했다. 1977년 첫시집 "청진항"을 출간한 이래 2000년 하선하기까지 4권의 시집을 발간하기 전에 김 선장 시인은 월남 후 서울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부터 바다를 주제로 한 시를 써 백일장에서 수상을 하는가 하면 늘 물결을 타듯 생동감 넘치는 작품으로 일관해 왔다는 게 해양문학을 승계하고 있는 후배 문인들의 일관된 평가다.

그리고 살아생전 그리도 호방하던 김 시인은 배를 타던 중 하선하여 종합검진에서 임파선암 판정을 받고 치료중, 점차 나약해 죽어가면서도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도 시를 쓰겠다며 펜을 놓지 못하던 모습이 무척 안쓰러웠다고 술회하는 미망인 부인의심경을 읽은 적이 있다. 김 시인의 작품을 정리하고 편찬하는 데 큰 역할을 담당했고필자와는 연습선 한바다호를 함께 타고 2개월간 인도양을 거쳐 갠지스강과 캘카타,버마의 랭군항, 나가사키와 키룽항 등지를 승선했던 당시 한국해대 황을문(黃乙文)교수와 젊은 나이에 타계한 목포해대를 졸업, 승선 후 해운전문 기자로 활동하다 한국해기사협회 기관지 편집장을 지낸 김동규(金東圭)수필가 등 동료 문인들이 한결같이 필자에게 전하는 평가였다,

김성식 선장 시인은 험한 파도와 싸우며 배를 타고 전 세계를 누비면서도 생전에 늘 유독 갈 수 없는 항구 고향땅 청진항을 늘 그리워하며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김성식의 시를 깊이있게 연구하는 일부 교수들은 그의 시가 단순하게 바다를 무대로 할 뿐만 아니라 해양 리얼리티를 확보함으로써 해양시의 구체성과 현실성을 담보하고 질적으로 위상을 높혔다고 강조했다. 어느 학자는 시인이 선장으로서 33년 동안 배를 타고 바다를 누비며 쓴 수백편의 시는, 세계적 해양문학을 대표한다고 평가받는 영국의 계관시인, '존 메이스 필드(John Edward Masefield/1878~1967)를 뛰어넘는 해양시이며 해양문학 작품이라는 점을 주장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그러나 배를 타다 싫증이 나면 청진항 도선사가 되겠다던 김선장은 결국 청진항에 되돌아 가 보지도 못하고 2002년 겨우 회갑의 나이에 동아대 병원서 암으로 아깝게타계한바 그 아쉬움은 어찌 필자 한 사람에게 그칠까? 청진항 도선사 꿈을 이루지도못하고 승선 후 오대양과 본선과 타향이 고향이 된 부산에서 일생을 마감했다. 언제고 부산 가면 김 성식 선장 시인 모교에 세워진 시비라도 함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

끝으로 요즘, 국어 문제에 경제 과학 극 고난도 지문을 제시하여 대학의 전공자나 영어 원어민도 혀를 내두르는 대학 수능시험 출제 '킬러 문항'을 두고 학원과 일타 강사의 '이권 카르텔'이라고 나라가 들썩이는 광경을 보며 문득 생각나는 필자의 현대시에 대한 거부감과 소회도 이에 다를 바 없다. 우선 중앙 유력 일간신문의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작에 관심이 많은 필자는 해마다 이를 연거푸 읽고 또 읽어 보고도 한글로 쓴 우리 시의 내용이 무엇을 뜻하는지 도대체 알 길이 없다.

우리 글도 못 깨우치는 필자 스스로의 무능을 탓하기도 하지만 이 역시 현대문학의난해성인지 시어에 담긴 뜻이 너무나 심오한 탓인지 모르지만 영문도 모르고 영문학을 전공한 필자에겐 극, 고 난이도 '킬러 시문항'이란 생각도 들어 다시 김성식 선장 시인의 197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작 '청진항'을 소리내어 읽어 본다.

《 청 진 항(淸津港) 》

배를 타다 싫증나면/까짓것/청진항 도선사가 되는거야

오오츠크해에서 밀려나온/아침 해류와 동지나해에서 기어온 저녁 해류를 손끝으로 만져가며

 

회색의 새벽이 밀물에 씻겨 가기 전/큰 배를/몰고 들어갈 때

신포 차호로 내려가는 명태잡이 배를 피해/나진 웅기로 올라가

석탄 배를 피해 여수 울산에서 실어 나르는/기름 배를 피해

 

멋지게 배를 끌어다 중앙 부두에/계류해 놓는거야

청진만의 물이 무척 차고 곱단다/겨울날

감자떡을 들고 갯가에 나가노라면

싱싱한 바다냄새/더불어

 

정어리 떼들 하얗게 숨쉬는 소리/엄마 가슴에 한아름 안기지만

이따금 들어오는 쇠배를 보느라고/추운 줄 모르고 서 있었단다

잘 익은 능금 한 덩이/기폭에 던져놓고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은 별을 기폭에 따다 넣고

햇살로 머리 빗긴/무지개를 꺾어 달고

 

오고 가는 배들이/저마다 메인 마스트에 태극기를

올 엔진 스탠바이/훠 샷클 인 워터 렛고우 스타보드 엥커

방파제 넘어/닻을 떨어 뜨려 나를 기다리면

 

얼른 찾아가/나는/굿 모닝! 캡틴

새벽별이 지워지기 전/율리시즈의 항로를 접고서

에게해를 넘어온 항해사/태풍 속을 헤쳐 온 키잡이

카리브해를 빠져 온 세일러를 붙잡고

 

주모가 따라주는 텁텁한 막걸리/한 사발을 건네면서

여기 청진항이 어떠냐고/은근히 묻노라면

내 지나온 뱃길을 더듬는 맛/또한/희한하겠지

 

까짓것

배를 타다 싫증 나면

청진항 파이롯이 되는거야

<197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작>

 

<서대남(徐大男) 편집위원>

 

 

 

 

저작권자 © 쉬핑뉴스넷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