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     석

1. 대상판결 : 대법원 2002. 6. 14. 선고 2001다2112 판결

2. 사실관계

피고는 리베리아 선적의 유조선인 아틀란타호의 소유자인데, 원고의 아들인 A가 1995. 3. 22. 피고 회사를 위하여 인사관리업무를 대행하는 선원관리사업자인 원심 공동피고 해외선박 주식회사(이하 '해외선박'이라고 한다)와 사이에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위 아틀란타호에 3등 기관사로 승무하였고, 월 평균 임금은 미화 2,049.65$였다.

아틀란타호는 1996. 1. 28. 베네수엘라에서 원유를 적재하고 미국 루이지애나 머독스항으로 항해중이었는데, A는 1996. 1. 31. 22:00경 조타실에서 커피를 마시고 c 갑판에 있는 자신의 침실로 돌아간 후 다음날인 1996. 2. 1. 06:15경 d 갑판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부검 결과 A는 이마 뼈, 관자놀이, 두정부까지 두개골이 골절되어 있고, 양 쪽 광대뼈와 턱뼈도 골절되어 있었으며, 목 앞 부분과 쇄골 윗부분의 넓은 부위에 걸쳐 찰과상이 있었고, 왼쪽 손에 칼로 베인 길이 5㎝ 정도의 깊은 열상이 있었다.

A의 침실이 있는 c 갑판과 그의 시체가 발견된 d 갑판은 그 높이가 9.75m이고, c 갑판의 4등 기관사용 빈방에 A의 안경과 슬리퍼, 물에 적셔진 수건이 있었으며, 그 곳 바닥과 침대, d 갑판으로 통하는 통로와 계단에 많은 피가 흘러 있었고, d 갑판의 시체의 위치는 c 갑판의 피를 흘린 난간의 지점에서 자유낙하한 지점과 일치하였으며, A의 시체 옆에서 피 묻은 칼이 발견되었는데 그 칼은 선원들이 평소 과일을 깎을 때 사용하는 것이었고, A의 방이나 위 4등 기관사용 방은 흐트러지지 않았으며, 선원들은 다투거나 소란을 피우는 소리를 듣지 못하였다.

한편 사고 직전 A가 선원들과 다툰 바도 없고, A는 유서를 남기지 않았다

3. 소송의 경과

가. 이 사건 1심은 A의 사망은 직무상 사망에 해당하지 아니하고, 직무외 사망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선원법 제90조 제2항 소정의 유족보상금과 이 사건 보상규정 제3조 제2항 소정의 특별보상금 청구를 인용하였다.

나. 한편 2심은 선원법 제90조 제2항 소정의 유족보상청구에 관하여는 제1심과 견해를 같이 하였으나 특별보상금청구에 대하여는 보상규정 제1조에 의하면 선원법 제103조 및 동시행령 제38조 제2항의 규정에 의하며 선원관리사업자가 외국 선주로부터 위탁받은 사항 중 재해보상에 관한 사항을 정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바, 선원법 제103조나 동법시행령 제38조 제2항은 선원관리사업자의 업무범위에 관한 규정이지 선박소유자의 재해보상에 관한 규정이 아닌 점, 또한 이 사건 보상규정에서 정한 특별보상금과 같이 선박소유자에게 재산상의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입법사항이라고 할 것이므로 법률로 그 요건 및 금액을 정하든가 이를 구체적으로 정할 수 있는 객관적 기준을 명시하여 대통령령이나 규칙에 위임하여야 할 것인데, 선원법의 제 규정을 살펴보아도 이사건 보상규정에서 정한 특별보상금에 대하여 그 근거를 찾아볼 수 없는 점 등을 들어 특별보상에 관한 이 사건 보상규정 제3조 제 2항은 위임입법의 한계를 일탈한 무효의 규정이고, 이를 근거로 한 원고의 특별보상금 청구는 이유 없다고 판시하였다. 또한, 선원관리사업자인 피고 C 주식회사에 대한 재해보상책임에 대하여는 선원의 사망에 대한 선원법상의 보상의무자는 선박소유자에 한정되고, 선원관리사업자가 선원의 사망에 대하여 유족보상 등을 하는 업무를 수행한다고 하더라도 이는 선박소유자와의 계약관계에 기하여 선박소유자가 이행할 채무를 대행하는데 불과하다고 할 것이므로, 사망한 선원의 유족은 선원관리사업자에 대하여 직접 유족보상 등의 지급을 청구할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

다. 원심 판결에 대하여 원고는 재해보상은 무엇보다 선원근로계약에 의하고, 선원법은 보충하는 의미에서 최저 기준으로의 역할을 하는데 그친다고 보아야 하는데, 원고의 아들이 피고와 체결한 선원근로계약에 따르면 재해보상에 대하여 해운항만청 규정에 의하도록 되어 있으므로, 위 규정은 선원근로계약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할 것이어서, 선원근로계약서에 따라 위 규정에 의한 재해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며 상고를 하였고, 피고는 원고가 1997. 1. 22. 선박소유자의 과실로 인하여 A가 사망하였다고 주장하면서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의 소와 선박이 안전한 항해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구비하지 못했다고 주장하면서 불감항성을 이유로 한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한 점을 들면서 불감항성에 기인한 청구는 피고의 무과실책임에 근거한 것으로서 선원법상 재해보상청구와 이름만 다를 뿐 실질적으로 소송물이 동일하므로 원고의 이 사건 소는 중복제소에 해당하여 부적법하다는 이유로 상고를 제기하였다.

4. 대법원 판결요지

가. 선원법상의 재해보상청구권과 민법상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은 청구권경합의 관계에 있는 것으로서 소송물을 달리 한다 할 것이며, 선박이 안전한 항해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구비하지 못하였다는 이른바 불감항성을 이유로 한 손해배상 청구소송도 손해배상 청구소송이라는 점에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소송과 동일한 성격을 가진다 할 것이므로 그 소송과 선원법상의 재해보상 청구소송은 소송물을 달리 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나. 선원법 제90조 제2항 에서, "선박소유자는 선원이 승무( 제85조 제2항 의 규정에 의한 요양을 포함한다.) 중 직무 외의 원인으로 사망한 경우에는 지체 없이 대통령령이 정하는 유족에게 승선평균임금의 1천일분에 상당하는 금액의 유족보상을 행하여야 한다. 다만, 사망의 원인이 선원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한 경우에 선박소유자가 선원노동위원회의 인정을 받은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규정하고 있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선원의 사망의 원인이 선원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한 것이라는 사실의 입증책임은 승무 중 사망한 선원에게 지급하여야 할 유족보상 책임의 면책을 주장하는 선박소유자가 진다.

다. 선원법 제5조 제1항 에 의하여 적용되는 근로기준법 제2조에 따르면 근로기준법 및 선원법에서 정하고 있는 근로조건은 최저기준임을 알 수 있다 하겠으므로, 근로기준법 및 선원법 소정의 재해보상에 관한 규정도 최저기준을 정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고 할 것이어서, 계약자유의 원칙상 근로계약 당사자는 근로기준법이나 선원법 소정의 재해보상금 이외에 별도의 재해보상금을 지급하기로 약정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고, 그러한 약정을 한 이상 근로자의 재해 발생시 사용자는 그 약정에 따른 별도의 재해보상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므로, 그 약정이 선원법에 근거 규정이 없는 별도의 재해보상금인 특별보상금을 지급할 것을 규정하고 있는 해운항만청의 해외취업선원재해보상에관한규정에 의한 것이라 할지라도, 근로계약 당사자가 위 해운항만청의 규정에서 정하고 있는 특별보상금을 재해보상금으로 추가로 지급하기로 약정하였다면 이에 따라 사용자는 위 특별보상금을 지급하여야 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할 것이다.

5. 평석

가. 민사소송법 제259조에 의하면 법원에 계속되어 있는 사건에 대하여 당사자는 다시 소를 제기하지 못하는바 이를 중복제소의 금지라고 합니다. 이 사건에서는 원고가 이 사건 이전에 선박소유자의 과실로 인하여 A가 사망하였다고 주장하면서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의 소와 선박이 안전한 항해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구비하지 못했다고 주장하면서 불감항성을 이유로 한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하였기에 이 사건 소를 제기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가 쟁점이 되었습니다. 결국 이전에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의 소송과 이 사건에서 제기한 재해보상금청구소송의 성질이 동일한 것인지 여부에 따라 중복제소 여부가 판단되는데 대법원은 양자가 동일하다는 피고의 주장을 배척하고 이 사건 소송의 본안 판단에 들어갔습니다.

나. 본안과 관련하여서는 피고 측에서 A가 사망한 것이 A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한 것이므로 면책을 주장하였으나 그 입증책임은 이를 주장하는 선박소유자가 지고, 따라서 그 증거가 불충분할 경우 불이익은 입증책임을 지는 선박소유자가 지게 됩니다. 한편 원고는 선원법 소정의 재해보상금 이외의 재해보상금 지급약정에 따라 보상금을 지급할 것을 주장하였는바 이와 같은 약정이 유효한지가 문제가 되었고, 대법원은 근로기준법 및 선원법에서 정하고 있는 근로조건은 최저기준이고, 근로기준법 및 선원법 소정의 재해보상에 관한 규정도 최저기준을 정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며, 계약자유의 원칙상 근로계약 당사자는 근로기준법이나 선원법 소정의 재해보상금 이외에 별도의 재해보상금을 지급하기로 약정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므로 그와 같은 약정이 가능하고, 이는 약정에 따른 보상금을 구하는 것이므로 선원법에 근거가 없더라도 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다. 고의 과실을 요건으로 하는 손해배상과 이를 요구하지 않는 재해보상금청구권의 성질이 동일하다고 할 수 없고, 이를 동일하게 본다면 재해보상금을 따로 인정한 취지에도 맞지 않다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근로기준법 및 선원법의 규정을 최저기준으로 보고 이를 초과하는 약정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근로기준법 및 선원법의 취지에 부합하고, 또 계약자유의 원칙상 당연하다고 할 것이며, 그로 인해 재해자에 대한 두터운 보호가 될 것이므로 위와 같은 대법원의 판시는 정당하다고 판단됩니다. 

<김 현 법무법인 세창 대표변호사(해양수산부 법률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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