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의 채권 회수' 차원이 아닌 韓 해운업 발전이 최우선 돼야

전준수 명예교수
전준수 명예교수

HMM(옛 현대상선) 매각에서 대우조선해양 매각 때 그 시기를 놓친 데 따른 시행착오를 또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많은 사람이 조선과 해운을 구별하지 못한다. 대우조선해양은 제조업이고 대우조선해양을 대체할 세계적 조선기업이 우리나라에는 둘 이상 존재한다. 따라서 대우조선해양이 파산해 다른 조선업 기업들이 분할 인수했어도 한국 조선업의 위상은 크게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해운업의 HMM은 2017년 2월 한진해운이 파산한 이후 유일하게 남아 있는 한국 국적 원양해운기업이다. 과거 한진해운이 세계 7위 해운기업이었지만 지금은 HMM이 세계 8위다. 컨테이너 선복량 79만TEU로 세계시장 점유율은 2.9%다. 반면 세계 1위 선사인 스위스의 MSC는 컨테이너 선복량이 540만TEU에 세계시장 점유율은 19.5%다. 이렇게 많은 격차가 있다.

한국은 섬나라다. 많은 분이 애써 이 사실을 외면하지만 우리나라는 실제적으로 섬나라다. 삼면이 바다고 북한이 위협적으로 북에 존재하고 있어 모든 육로 통행이 막혀 있으니 섬인 것이다. 우리나라는 수출입 물동량의 99.7%를 바다를 통해 운송한다. 0.3%를 항공이 담당하고 있다. 특히 국가 비상시 우리의 생존을 지탱하는 생명선을 유지해주는 것이 해운이다. 그럼에도 해운의 이런 전략적 중요성이 너무 가볍게 다뤄지고 있다. 현재 해운인들이 HMM 매각 방식에 분노하는 것은 매각 당사자인 산업은행이 너무 ‘은행의 채권 회수’라는 시각으로만 이 문제를 조속히 처리하려고 한다는 점 때문이다.

HMM 매각의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나라 유일한 원양해운선사인 HMM이 매각 후에도 건전하게 발전하고 세계 해운시장에서 당당히 경쟁해 나가는 것이다. 만일 HMM이 다시 부실화한다면 당연히 국가가 나서서 다시 도와줘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나라는 섬나라이기 때문이다. 섬나라치고 자국 해운을 이렇게 홀대하는 나라도 없다. 일본은 조선업은 포기하더라도 해운은 계속 유지·발전시키고 있고 영국도 해운에 대한 지원은 예외적으로 지속하고 있다.

국가 비상시 외국 선사에 우리의 물자수송을 의존할 경우 비상 전쟁보험료를 운임에 부과할 것이다. 이로 인해 운임은 몇 배 상승하고 운송 횟수도 현저히 줄어 결국은 일본 항구로부터의 환적에 의존할 것이다. 이때 환적료와 운송 시간 지연은 전략물자의 적시 수송에 큰 장애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현재 인수자로 하림, 동원 중 한 개 회사가 후보로 선정된다고 한다. HMM이 보유한 10조원 이상의 현금 유보금을 5년 동안 동결하는 문제로 타결이 안 되고 있고 영구채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한다. 이게 논의 대상이 돼선 안 된다. 그 유보금은 수출입업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 HMM의 경쟁력 강화에 쓰여야 한다. 인수기업이 HMM에 비해 자산 규모가 작고 현금성 자산도 부족하다. 따라서 5조원 내지 7조원까지 예상되는 인수자금을 위해 사모펀드 등 재무적 투자자와 제휴해 자금을 조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산업은행의 영구채도 인수자에게는 큰 부담이 될 것이다.

만약 현재 인수 후보에 매각하는 게 여의치 않을 경우 산업은행이 보유한 지분을 우선 해양진흥공사에 매각 후, 국내 자금 여력이 있는 국적선사들로 컨소시엄을 구성해 20~30% 정도의 지분을 인수하도록 하고 점차 지분을 늘려가면서 거버넌스를 구축해 나가는 방안도 고려해봐야 한다. 산업은행은 이번 HMM 매각이 한국 해운의 운명을 결정짓는다는 큰 사명감을 갖고 적극적 노력을 통해 적정 인수자를 선정해야 할 것이다.

*12월 14일자 한국경제 '시론'에 실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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