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     석

1. 대상판결: 대법원 2004. 4. 28. 선고 2001다36733 판결

2. 사실관계

가. 피고는 1971. ‘유류오염손해보상을위한국제기금의설치에관한국제협약’에 따라 설립된 기관으로서 유류운송용 선박으로부터 유류가 유출 또는 배출되어 초래된 오염에 의하여 선박외부에 발생한 손해에 관하여 당해 오염손해의 피해자가 선박소유자 또는 보험자 등으로부터 배상을 받지 못하는 경우 유류오염손해배상보장법에 따라 그 손해를 보상해 줄 책임이 있는 자이고, 원고들은 묘도를 비롯한 광양만과 여수해만 서쪽 지역의 각 지역주민들을 구성원으로 한 여수수산업협동조합 관내 어촌계 및 부락들로서, 이 사건 사고 당시 각 인근해역에서 양식어업 또는 공동어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나. 1993. 9. 27. 19:12경 광양시 광양제철소로부터 남동쪽으로 수킬로미터 떨어진 해상에서 철강 화물을 실은 중국 선적 화물선 비지아샨호와 약 2,100톤의 벙커씨유를 적재한 한국 선적의 유류운송용 부선(barge) 제5금동호가 충돌하여 이 사건 선박으로부터 대략 1,228톤으로 추정되는 벙커씨유가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다. 이 사건 사고 직후인 1993. 9. 28.부터 1993. 10. 3.까지 해양경찰대는 수면에 번지고 있던 유출 기름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하여 오일펜스(oil fence)를 설치하고, 바람과 해수에 따라 이동하는 기름띠를 중심으로 묘도에서 노량수로에 이르는 지역과 여수해만 북쪽지역에 유화제를 살포하였고, 해상에서 표류하는 기름띠가 사라지자, 인근 해안에 표착한 기름띠를 제거하기 위하여 최장 100일까지 해안방제작업을 실시하였는데, 해상 및 해안에서 사용된 유화제의 양은 약 20만 리터이다.

라. 이 사건 사고 직후 영국의 법생태학자인 더글라스 크로스(douglas cross)는 광양만, 여수해만, 진주만, 강진만 등 현장을 방문하여 어업관계자들과 면담하고, 피해가 신고된 지역에서 견본을 검사하는 방법으로 이 사건 사고로 인한 피해를 조사하였는데, 이 사건 사고 직후 대상지역에서 광범위한 종류의 해양생물들이 비슷한 시점에 자연적 폐사율을 넘어 이례적으로 폐사하였음을 확인하였다.

마. 유류오염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원고들은 유류오염손해보상을 위한 국제기금을 피고로 하여 유류오염으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면서, 유류오염손해배상보장법에 의하여 국제기금에 유류오염손해에 대한 보상을 청구하는 경우 정신적 고통으로 인한 위자료도 청구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3. 고등법원의 판시내용

정신적 손해의 배상에 대하여 영미법계와 대륙법계 사이에 통일된 법리가 존재하지 아니하고, 그 배상에 대한 국제적인 기준이나 범위 등이 마련되어 있지 아니한 상황에서, 위와 같은 각국의 입법례 및 국제법상의 의견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유류오염으로 인한 배상의 범위에 관한 해석은 유류오염배상에 관한 민사책임협약과 국제기금협약의 체약국과의 사이에 법적용에 있어서 최대한 불균형이 초래되지 않도록 하여야 하며, 여기에 피고 기금의 설치가 가지는 국제적인 특수성을 참작하면, 우리의 유류오염손해배상보장법상 오염손해에는 그 규정이 열거하고 있는 바와 같은 경제적, 재산적 손해만이 포함되고, 손해를 입은 자는 이에 한정하여 피고에게 배상을 구할 수 있으며, 피고가 국제기금으로서 배상할 수 있는 유류오염손해의 개념에는 정신적 고통으로 인한 손해는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상당하다고 보여진다. 따라서, 이 사건 위 원고들 주장의 위자료 청구는 이유 없다.

4. 대법원의 판단

1969년 유류오염손해에대한민사책임에관한국제협약에서는 제1조 제6호에서 유류오염손해를 "유출 또는 배출의 발생 장소에 관계없이 선박으로부터의 유류의 유출 또는 배출로 인한 오염에 의하여 유류를 운송하는 선박의 외부에서 발생한 손실 및 손해를 말하며, 예방조치의 비용 및 예방조치에 의하여 야기된 그 밖의 손실 및 손해를 포함한다."고 정의하고 있으나 유류오염손해의 배상범위에 관하여는 따로 규정을 하지 않고, 1971년 유류오염손해보상을위한국제기금의설치에관한국제협약에서는 유류오염손해에 관한 정의나 그 배상범위에 관한 규정을 두지 않고, 위 민사책임협약상의 유류오염손해를 원용하여 제4조 제1항에서 "유류오염손해를 입은 자가 다음의 사유로 인하여 손해에 대하여 충분하고 적절한 보상을 받을 수 없는 경우에는 기금은 그 오염손해의 피해자에게 보상금을 지급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이므로, 위 조약상 유류오염손해와 그 배상범위에 관하여는 법정지법인 우리 나라의 일반 손해배상법리에 따를 수밖에 없다 할 것인데, 우리 민법은 제751조와 제752조에서 정신적 손해를 규정하고 있으나, 위 조항에 열거된 사항에 한하지 않고 정신적 손해가 있는 경우에는 민법 제750조 에 의하여 위자료청구권이 발생한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 법리이므로 위 협약 및 유류오염손해배상보장법에 규정된 유류오염손해를 경제적, 재산상 손해로 제한하여 해석할 이유는 없다.

5. 평석

가. 선박으로부터 유출 또는 배출된 유류에 의하여 유류오염손해가 발생한 경우에 선박소유자의 책임을 명확히 하고 유류오염손해의 배상을 보장하는 제도를 확립함으로써 피해자의 보호와 선박에 의한 유류운송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하기 위하여 1992년 유류오염손해배상보장법이 제정되었다. 이 법은 대한민국의 영역(영해를 포함한다) 및 대한민국의 배타적 경제수역에서 발생한 유류오염손해에 대하여 적용되는바(제3조), 이 법에 의하여 피해자는 선박소유자 또는 보험자 등으로부터 배상을 받지 못한 유류오염손해금액에 관하여 국제기금협약이 정하는 바에 따라 국제기금에 대하여 국제기금협약 제4조제1항의 규정에 의한 보상을 청구할 수 있다(제23조). 이 사건의 원고들도 위 조항에 근거하여 유류오염손해보상을위한국제기금을 피고로 삼아 이 사건 청구를 하였다.

나. 이 사건에서는 동법에 규정된 유류오염손해를 경제적, 재산상 손해로 제한하여 해석해야 하는지 여부에 대하여 다툼이 있었다. 원고들은 이 사건 사고로 인한 재산상 손해의 소송상 보전이 불가능한 부분에 대하여는 최소한 위자료 명목으로라도 그 보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고 1심에서 이를 받아들여 일정한 범위에서 정신적 고통으로 인한 위자료의 지급을 명하였다. 그러나 2심에서는 피고가 국가기금으로서 배상할 수 있는 유류오염손해의 개념에는 정신적 고통으로 인한 손해는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상당하다고 판단하여 이를 기각하였다. 이에 대하여 대법원은 조약상 유류오염손해와 그 배상범위에 관하여 특별한 규정이 없으므로 법정지법인 우리 나라의 일반 손해배상법리에 따를 수밖에 없다 할 것인데, 우리 민법은 제751조와 제752조에서 정신적 손해를 규정하고 있으나, 위 조항에 열거된 사항에 한하지 않고 정신적 손해가 있는 경우에는 민법 제750조에 의하여 위자료청구권이 발생한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 법리이므로 유류오염손해배상보장법에 규정된 유류오염손해를 경제적, 재산상 손해로 제한하여 해석할 이유는 없다고 판단하였다.

다. 이 사건의 2심에서는 다른 나라의 입법례와의 균형을 고려하여 유류오염손해배상보장법상 오염손해에는 경제적, 재산적 손해만이 포함되는 것으로 보았으나,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민법에서 보장된 손해배상청구권은 온전히 보장되어야 할 것이어서 위와 같이 제한적으로 해석할 이유가 없다 할 것이므로 민법 제750조와 같이 동법상의 손해에는 위자료청구권도 포함된다고 본 대법원의 태도는 지극히 타당하다고 판단된다.

라. 다만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자신이 경영하는 어장이 유류로 오염되었다는 사정만으로는 정신적 손해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이유로 원고들의 위자료 청구를 기각하여 결과적으로는 2심과 동일한 결론에 이르렀는바, 그 이유는 재산적 법익에 대한 침해와 관련하여 정신적 손해의 배상이 가능한가라는 점에 대하여, 대법원은 재산적 손해의 배상을 받는 경우의 정신적 손해에 대한 배상이 가능하나 그 손해는 특별손해로서 사정을 가해자가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음을 입증할 경우에만 인정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데 기인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특별한 사정의 입증이 결코 용이하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위자료를 인정하지 않는 고등법원의 입장과 대법원 판결 사이의 간극은 그리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마. 한편 이 사건 판결에서는 수산업법상의 무면허 어업행위에 의한 수입을 위법소득으로 볼 수 있는지 여부도 쟁점이 되었는바, 대법원은 어촌계가 특별한 시설 등을 갖출 필요 없이 면허를 받아 어업행위를 할 수 있었음에도 절차상의 이유 등으로 면허를 받지 못한 채 무면허 공동어업을 해 온 경우와는 달리, 애초에 면허를 받을 수 없는 공단지정지역 내에서의 무면허 어업행위는 위법성의 정도가 강하므로 그로 인한 수입은 위법소득으로서 일실손해 산정의 기초가 될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 

<김 현 법무법인 세창 대표변호사(해양수산부 법률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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