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 실적 우상향 여건 조성, 공정 안정화와 운전자본 관리가 과제-

한국기업평가는 9월 27일 “턴어라운드 허들 넘어선 조선 Big4, 잔존 리스크는? -중기 실적 우상향 여건 조성, 공정 안정화와 운전자본 관리가 과제” 제하의 리포트를 발표해 지대한 관심을 모았다. 이에 따르면 최근 조선사 실적 턴어라운드의 초석은 2021년부터 시작된 선가 상승에 있다. LNG선(174K CBM), 대형컨테이너선(13~14K TEU급), 대형 탱커(VLCC), LPG선(91K) 등 주요 선종들의 선가 장기시계열을 살펴보면, 수년간 낮은 수준에서 횡보하던 선가가 2021년 이후 전 선종에 걸쳐 큰 폭으로 상승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양한 선종·선형들의 선가를 가중평균해 작성되는 Clarksons 신조선가 Index는 2023년 6월말 171, 보고서 공시일 현재 175로 2007년 호황기 선가에 근접해 가고 있다.

본 리포트에서는 2021년 6월말 선가를 기준으로 해 각 프로젝트들의 선가 수준과 조선사 잔고의 질적 수준을 판단한다. 2021년 6월말을 기준으로 그 이전은 저선가기, 이후는 고선가기로 보고 있다.

2021년 6월말을 기준점으로 삼는 이유는, 현 시점 조선사들의 평균적인 원가 구조를 감안할때 2021년 6월 이전 수주된 물량의 상당부분이 이익 확보가 어려운 공사손실충당부채 설정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2021년 상반기 강재가가 이례적으로 가파르게 상승해 이를 전후로 강재가의 절대 수준이 크게 높아졌다. 2022년 이후에는 국내외 높은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인해 강재가 외에도 인건비, 외주비, 기타 원자재가 등 제반 원가 부담이 늘어났다.

원가 상승분이 선가에 반영되지 못한 2021년 6월 이전 저선가기 수주건들은 현재 대부분 발생원가 회수가 어려운 적자 프로젝트로, 공사손실충당부채가 설정되어 있다. 공사손실충당부채 설정 프로젝트들은 공사가 진행되어도 매출총이익이 창출되지 않아 여타 흑자 프로젝트들의 이익 창출만으로 전사 판관비를 회수해야 하는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또 현 시점에서 반영하지 못한 원가 변동요인이 발생하는 경우 손익버퍼가 없이 즉각적인 추가 손실이 인식돼 조선업체 손익구조에 불안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2021년 하반기 이후 수주 물량들의 선가 상승폭은 강재가, 인건비, 외주비 등 제반 원가의 상승을 상회하는 수준으로, 조선사들의 현 원가구조상 대부분 흑자 시현이 가능하다. 최근 수주분 일수록 원가 대비 선가 상승폭이 클 것으로 예상되어 상대적으로 높은 채산성 시현이 가능할 전망이다.

국내 Big4 조선사 잔고의 80% 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LNG선과 대형컨테이너선은 2021년 6월말 이후 2년 동안 선가가 각각 37%, 17% 상승했다. LNG선의 경우 시작은 다소 늦었지만 지속적이고 가속화되는 상승세를 보이면서 주요 선종 중 가장 높은 선가 상승률을 보였다. 선주들의 수요가 꾸준하게 이어지고 있는 점, 건조 가능한 조선소가 국내와 중국 일부 조선소에 제한돼 있고 해당 조선소들의 선표상 LNG선 할당 슬롯이 3년 이상 채워졌다는 점 등이 지속적인 선가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2022년 하반기 이후로는 LNG선의 타선종 대비 가격 우위가 더욱 높아진 상황이다.

선가 상승 시기가 상대적으로 빨랐던 컨테이너선의 경우 2021년 하반기까지 여타 선종 대비 매우 높은 선가를 기록했다. 이후 발주잔고 누적과 운임 하락으로 상승세가 꺾였으나, 2021년 6월말 대비로는 마찬가지로 매우 높은 선가 수준을 보이고 있다.

선박 원가도 지속적인 상승세를 보이고 있지만 선가 대비로는 상승폭이 크지 않았다. 선박 원가의 20% 가량을 차지하는 강재는 가격이 평년보다 여전히 높지만 2021년 6월말 대비로는 소폭 낮아졌다. 인건비도 높은 상승 압력에 놓여있다. 제조업종 전반에 걸쳐 임금이 상승했고 조선업종도 직고용인력과 외주인력에 대한 인건비가 빠르게 상승하고 있으나, 선가를 통해 상쇄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다.

적정 이익 시현이 가능한 프로젝트들이 2년전부터 수주됐지만, 수주 시점과 실적반영 시점 간의 시차로 실제 조선업체들의 수익성 제고까지는 적지 않은 기간이 소요됐다.

본 리포트에서는 조선업체 잔고의 질적 수준을 평가하기 위해 조선업체들이 보유한 개별 수주 프로젝트들에 대해 해당 선종별·수주시점별 평균 시장 신조선가를 맵핑(2021.06 = 100 기준)했다. 이를 기반으로 각 조선업체들이 향후 각 기간 건조를 진행(매출 인식)할 물량들의 평균적인 선가 수준(‘평균 건조물량선가’)을 계산했다. 동 수치가 100인 경우, 해당 프로젝트 또는 해당 기간 건조물량들의 평균 수익성이 현 시점 원가구조상 손익분기 수준(이하 매출 총이익 기준)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

HD현대중공업은 저가 프로젝트(100 미만) 비중이 크지 않은 편이고 경쟁업체 대비 우수한 원가효율성을 보유하고 있어 2022년 하반기 가장 먼저 실적 턴어라운드에 성공하였다. 특정 시점·선가에 치우치지 않은 고른 잔고구성을 갖고 있어, 향후 건조물량들의 선가가 안정적으로 상승하며 중기간 양호한 영업실적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2023년 상반기 건조물량의 절반 가량은 이익 확보가 어려운 저가 프로젝트였던 것으로 보이나, 2023년 하반기에는 저가 프로젝트 비중이 30%대로 감소하고 높은 선가의 프로젝트들이 다수 건조에 들어가며 수익성 개선을 가져올 것이다. 특히 2024년에는 고가 물량들이 건조물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면서 평균 건조물량선가가 큰 폭으로 상승할 것이고, 저가 물량들의 완전한 해소도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

HD현대중공업의 경우 본 분석의 대상이 되는 상선부문 외에도 특수선부문과 해양부문, 채산성 높은 엔진부문 등을 보유하고 있고, 그룹 조선사들과의 통합 조달·수주를 통해 원가경쟁력이 경쟁업체 대비 우위에 있어, 추정된 평균 건조물량선가 지표를 상회하는 실적을 기록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는 것이다.

삼성중공업은 현 시점 건조물량 중 저가 프로젝트의 비중이 작아 적정 이익 창출에 용이한 잔고구성을 갖고 있다. 2023년 상반기 건조물량 내 저가 비중은 약 37%로 현대삼호중공업 다음으로 작은 수준으로, 올 1분기부터 실적 턴어라운드에 성공했다.

2023년 하반기에도 건조물량 평균 선가 수준이 경쟁업체 대비 우위에 있어 양호한 온기 실적 시현이 예상되고, 중기적으로 수익성 개선 추세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2024년에는 본격적인 선가 인상 이전 수주한 시리즈 컨테이너선의 건조가 예정되어 있어 선가 상승폭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을 수 있다. 잔고 축소가 우려되었던 수주 당시 여건에서는 성공적인 수주였지만 이후 선박 원가 상승으로 채산성이 훼손되었다. 예상되는 초과원가는 기반영되어 있지만 판관비 회수 측면에서 기여가 어려워, 해당 프로젝트가 다량 건조되는 2024년의 수익성 상승을 일부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하지만 2025년에는 해당 물량들이 소진되면서 재차 높은 선가 상승률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한화오션의 현 시점 건조물량 내에는 저가 프로젝트들이 여타 업체 대비 다소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파업과 인력 수급 문제로 공정이 일부 지연됨에 따라 2023년 상반기 건조 프로젝트의 약 54%가 저가 물량이었으며, 평균 건조물량선가는 102에 그쳤던 것으로 추산된다.

실적 턴어라운드가 상대적으로 지연되고 있으나 현재 건조 중인 저가 물량 중 다수가 곧 건조를 마칠 것으로 보여, 2023년 하반기, 늦어도 2024년 상반기에는 흑자 전환이 이루어질 것으로 판단된다. 턴어라운드 이후에도 평균 건조물량선가가 지속 상승하며 수익성이 점진적으로 개선될 전망이다.

한화오션의 경우 현재 전반적인 원가효율성이 선두업체 대비 소폭 낮은 수준으로, 수익성이 평균 건조물량선가 지표를 일부 하회할 수 있다. 다만 한화그룹 편입 이후 계열의 선박엔진사업(HSD엔진) 인수 추진, 2조원 규모의 방산·친환경선박·스마트야드 투자 계획 등 그룹 차원의 지원이 진행되고 있어, 중장기적으로 제품경쟁력과 생산효율성이 제고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삼호중공업은 현 시점 Big4 중 가장 고선가의 프로젝트들을 건조 중에 있다. 2023년 상반기 건조물량 중 12%만이 저가 물량이었고, 평균 건조물량선가는 110으로 동종업체들과 격차를 보였다. 2022년 하반기 가장 먼저 실적 턴어라운드에 성공한 현대삼호중공업은 2023년 상반기에도 4%대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했다.

2023년 하반기에도 추가적인 저가 잔고 축소를 통해 수익성이 개선될 것이고, 이후에도 고가 프로젝트 중심의 잔고구성을 기반으로 중기간 양호한 실적 시현이 예상된다. 다만 향후 선가 분포의 변화가 두드러지지 않아 2024년 이후의 수익성 개선폭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을 수 있다. 여타 3개사의 경우 향후 건조물량선가의 분포가 고가 물량 중심으로 이동되는 추세가 뚜렷하게 나타나지만, 현대삼호중공업은 현 건조물량 내 고가 비중이 이미 높은 수준이고 2025년 이후 건조 예정인 컨테이너선의 경우 LNG선 대비로는 채산성이 낮은 편임에 따라 중기적인 수익성 추가 개선 여력은 다른 3개사 대비 다소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업체별로 약간의 시기적 차이는 있지만, 4개사 공히 중기적인 실적 우상향을 위한 필요조건을 만족하고 있다. 잔고구성상 향후 2~3년간 건조물량의 평균 선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구조를 갖고 있고, 선가 상승 수준이 제반 원가의 상승폭을 상회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매크로 여건상 인플레이션 압력은 당분간 지속되겠지만, 국내외 통화당국이 긴축 기조를 강화·유지하며 대응에 나서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기존과 같은 높은 물가상승 압력이 장기간 지속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는 것.

현재 현대삼호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이 건조물량선가 분포상 상대적인 우위를 갖고 있고 2023년 하반기에도 이러한 추세가 이어질 전망이다. 2024년에는 HD현대중공업의 건조물량 선가가 빠르게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며, 2025년 이후로는 4개사 모두 고가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건조 물량이 구성되며 높은 수익성 시현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

조선업계의 공정 부하 정도를 추정하기 위해 먼저 작업량을 확인해보자. 조선업계에서는 선박건조에 소요되는 작업량을 측정하는 지표로 CGT(compensated gross tons)라는 개념을 널리 사용하고 있다. 선박의 GT(gross tons), 선종 및 사이즈가 CGT 계산에 관계되는데, LNG선의 경우 동일 GT 수준에서 여타 선종 대비 매우 높은 가중치를 부여받아 상대적으로 작업량이 많은 소요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조선사들의 합산 CGT 수치를 토대로 추정해 보건대, 현재 국내 조선업계의 작업량 절대규모는 과거 호황기 대비로는 크지 않은 수준으로 보인다.

1인당 작업량을 기준으로 보면 현재 조선업계의 공정 부하가 매우 높은 수준이다. 2014~2015년 20만명에 달하던 조선업 종사자수는 2016~2017년 구조조정 기간 급격히 감소해 현재 10만명 수준에 머무르고 있고, 이에 따라 실질적인 인당 작업량은 인도 지연 이슈가 상당수 발생하였던 호황기 대비로도 높은 수준까지 증가했다. 2010년대에는 표준적인 상선보다 난도가 높은 프로젝트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어 일대일의 단순 비교는 어려우나, 현재 인력 수급이 매우 타이트한 상황임은 분명하다.

인구수가 증가한 반면 20~40대 인구수는 56만명에서 44만명으로 크게 감소하여 연령구조상 노령화도 빠르게 진행됐다. 거제시와 인근지역(거제시, 통영시, 창원시 일부, 부산시 일부 포함)의 경우에도 여건이 크게 다르지 않다. 부산시 강서구 명지신도시 개발로 인근지역 20~59세 총 인구수는 2010년 30만명에서 2023년 8월 32만명으로 소폭 증가했지만, 20~30대의 젊은 인구수는 16만명에서 12만명으로 크게 감소했다.

조선업종이 가졌던 임금 측면의 메리트도 과거 대비 축소됐다. 2016~2017년 업계 구조조정과 2020년 팬데믹 영향으로 조선업계 임금상승률이 크게 둔화된 반면, 여타 제조업종은 임금 상승세가 지속되었다. 특히 유통·물류 등 서비스업계의 경우 최저임금 인상 과정에서 조선업종과의 임금 격차가 크게 줄어들었다. 고용 진입장벽이 상대적으로 낮고 수도권 및 도시인근 근무지가 많은 점도 이들 업종에 대한 선호를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업계의 인력수급이 원활하지 못할 경우 선박건조 초기부터 병목이 나타날 우려가 있다. 선박건조 초기 공정에서는 후판을 절단, 가공, 접합해 선체를 구성하는 조각들을 점점 더 큰 블럭형태 조립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많은 용접 인력의 투입과 넓은 작업공간이 요구된다. 때문에 사내뿐 아니라 야드 밖 협력업체를 통해서도 블럭을 공급받고 있는데, 조선사나 이들 협력업체의 인력수급 문제로 납기가 지연되는 경우 도크스케줄 등 이후 공정에 연쇄적인 영향을 미쳐 부하가 커질 수 있다.

인력수급 문제가 선박공정 초기부터 발생할 수 있는 문제라고 하면, 선박공정 후기에는 LNG선 물량 증가에 따른 안벽 확보 문제가 공정 부하를 가중시킬 우려가 있다. 도크에서 선박의 형태를 갖추고 진수된 선박은 이후 야드내 안벽에 배치되어 의장 공정에 들어가는데, LNG선의 경우 안벽에서 선내 화물창 제작이 진행됨에 따라 여타 선종보다 안벽 대기기간이 매우 긴 특징을 갖는다.

공간적 한계를 단기간내 해소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조선사들은 안벽내 선박의 이중배치, 야드 밖 안벽 확보 등을 통해 이에 대응하고 있지만, 이 경우 작업 효율성이 저하된다는 점에서 문제 해결이 쉽지 않을 수 있다. 이 밖에도 안전사고 발생으로 인한 작업 중단, 조선업 공급망에서 발생할 수 있는 파업 등 공정 부하를 가중시킬 수 있는 많은 요인들이 상존하는 상황이다.

조선업체 실적 향방을 결정지을 하나의 요인을 꼽는다면, 이는 공정 안정화라고 판단한다. 공정 부하가 안정적으로 통제되며 현 계획대로 선박 건조가 순탄히 진행된다면, 중기적인 실적 우상향 가능성은 매우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공정 부하 관리에 실패하는 경우, 조선업체들이 부담하게 될 직간접적 비용은 매우 클 것이고 실적 개선 모멘텀이 약화될 수 있다.

공정 지연시 발생되는 직접적인 비용은 지체상금(liquidated damages)이다. 특정 프로젝트에 대한 공정 문제로 지체상금 이슈가 발생하는 경우 파급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다. 일반적인 프로젝트의 경우 지체상금 발생에 따른 예정원가 상승분을 남은 건조기간동안 분할 반영하며 추후 마진율이 일부 축소되는데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공사손실충당부채가 설정된 저가 프로젝트의 경우, 인도일정 지연시 예정원가 상승분 전액에 대한 즉각적인 공사손실충당부채 추가 설정으로 일거에 큰 손실이 발생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공정 부하 관리 실패시 조선사가 부담해야할 가장 큰 비용은 저가 물량 해소가 지연되는 문제이다. 지체상금 문제는 통상 Grace Period를 통해 영향이 완화되거나 선주와의 협의를 통해 해결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그러나 공정 지연의 가장 큰 문제는 저가 프로젝트들이 건조물량 내 오래 잔존하면서 전사 수익성에 연쇄적으로 그 여파가 미치게 되는 것이다. 저가 프로젝트 뿐아니라 현 시점 이익 창출이 가능한 프로젝트들도 공정 지연시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채산성 저하가 나타날 수 있고, 심한 경우 적자 프로젝트로 전환되어 공사손실충당부채를 설정하게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 한화오션의 경우 2022년 여름 한달간의 도크점거 파업으로 선표 스케줄이 전체적으로 이연됐고, 이후 catch-up도 업계 인력수급 문제로 인해 빠르게 진척되지 못하면서 저가 물량 소진이 상대적으로 늦어지는 결과가 초래되었다. 공정 지연 이슈가 없었다면 한화오션의 실적 턴어라운드는 더 이른 시점에 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

인플레이션, 환율, 금리, 유가, 지정학적 이슈 등 매크로 요인들과 달리 공정 안정화의 문제는 개별 업체들이 상당부분 통제·관리할 수 있는 영역 안에 있다. 현 시점 조선업체들이 실적 가시성을 높이고 수익성을 빠르게 제고하기 위해서는, 원활하게 공정을 진행하여 불확실한 매크로 요인에 노출될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본다. 인플레이션이 변곡점을 지났더라도 당분간은 끈적(sticky)하게 지속되며 수주산업의 원가 부담을 높이는 요인이 될 것이고, 그 밖에 매크로 요인들도 그 방향성을 쉽게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행히 대부분의 프로젝트들은 큰 일정 지연 없이 마무리되고 있다. 과거 난도 높은 해양프로젝트들의 공정 지연으로 대규모 손실이 발생하였던 것과 달리, 현 잔고내 프로젝트들은 표준화된 스펙하에 안정적인 건조가 가능한 물량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추후 작업량이 일부 확대되겠으나 증가폭은 크지 않은 수준이고, 조선사들은 임금 인상, 협력업체들에 대한 단가 인상, 신규 거래선 확보, 외국인 인력 고용, 자동로봇 도입 등을 통해 공정 안정화를 추진하고 있다. 금년도 조선 Big4의 임금 협상도 큰 마찰 없이 완료됐다. 정부도 지난해 ‘조선업 외국 인력 도입애로 해소방안’을 발표하고 신속한 외국인 인력 도입을 지원하고 있다.

다만, 현재의 공정 부하 수준이 과거보다 매우 타이트한 상황인 것은 분명하다. 예상치 못한 요인으로 공정에 일부 차질이 발생하게 되면 큰 타격으로 번질 위험이 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충분한 인력 충원과 공정 효율화, 원활한 협력업체 납품 등을 통해 버퍼를 만들고 공정 부하를 완화하는지에 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한기평은 밝혔다.

조선업체 현 잔고내 프로젝트들의 평균적인 대금수취구조는 선수금 비중이 작고 잔금 비중이 큰 전형적인 헤비테일 형태를 갖고 있다. 계약금은 10~20%, 중도금은 30%에 그치고, 잔금은 50~60%로 절반을 상회한다.

착공 이전 설계기간에는 계약금 수령으로 현금이 유입(net cash flow 흑자, 계약부채 인식)된다. 그러나 강재절단(steel cutting)이 시작되면 원자재 조달 등 원가 투입이 본격화되면서 현금 유출이 가속화된다. 주요 공정 단계별로 중도금이 수취되나 투입되는 원가 대비로는 그 규모가 크지 않은 것이 일반적이다. 평균적으로 기공식(keel laying; 용골거치) 이전에 net cash flow가 적자로 돌아서며 현금 유출(계약자산 인식)이 나타나고, 이후 공정 후기로 갈수록 자금 소요가 빠르게 늘어나는 구조를 갖게 된다.

개별 프로젝트 수준에서 조선업체 수준으로 모델을 확장하면 업체 단위의 수주잔고 추이에 따른 운전자본의 변화 경로를 파악할 수 있다.

신규수주 물량과 건조 물량이 균형을 이루는 ‘잔고 안정기’에는 일정 수준의 운전자본 부담이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현금흐름을 보인다. 헤비테일 결제구조로 인해 운전자본 부담이 해소되기는 어렵지만, 현금흐름의 변동이 작다는 점에서 이 시기 조선사의 운전자본 관리 부담은 크지 않다고 볼 수 있다는 것.

신규수주 규모가 건조 규모를 상회하는 ‘잔고 확충기’의 초기에는 운전자본 부담이 감소하게 된다. 신규수주 프로젝트의 선수금 수령을 통해 건조중 프로젝트의 투입 원가에 대응하는 현금 흐름 구조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정 시간이 지나 늘어난 신규수주 프로젝트들의 건조가 본격화되기 시작하면서 운전자본투자 규모가 빠르게 증가하게 되며, 최종적으로는 잔고 확충 이전보다 운전자본 규모가 높은 수준(잔고 안정기B)으로 수렴하게 된다.

‘잔고 수축기’에는 잔고 확충기와 정반대의 운전자본 추이를 보인다. 초기에는 신규수주 축소로 선수금 수령분이 감소하면서 운전자본 규모가 증가하지만, 이후 일정 시간이 지나게 되면 선수금 감소의 영향보다 인도 물량에 대한 잔금 회수분의 기여가 커지면서 운전자본 규모가 축소된다. 최종적으로는 잔고 수축 이전보다 운전자본 규모가 작은 수준(잔고 안정기C)으로 수렴하게 된다.

여기서 유의해야할 점은 운전자본 현금흐름이 선형적인 추세를 보이지 않고, 초기에 최종 현금흐름의 반대 흐름을 보이다가 급격히 최종 현금흐름으로 수렴하는 추세를 보인다는 점이다. 초기 현금흐름에 기대어 재무정책을 수립하는 경우, 이후 자금 소요가 급격히 변동될 수 있다는 점에서 선제적인 대비가 필요한 지점이다.

Big4 조선업체들은 약 2년간의 잔고 확충기를 거쳐 현재 잔고 안정기(B)로 이행해가는 과정에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2021~2022년 잔고 확충 과정에서 선수금 수령을 통해 운전자본 부담을 통제해왔으나[그림 20], 향후에는 기수주 물량에 대한 원가 투입이 증가하고 신규수주 규모도 안정화되면서 운전자본투자 부담이 가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HD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 양사는 2021~2022년 강재가 등 큰 폭의 원가 상승과 통상임금 패소, 재고평가 손실 등으로 대규모의 순손실을 기록하며 재무구조가 저하되었다. 2021년 각각 1.1조원, 1.3조원의 유상증자를 통해 저하된 재무구조가 보완됐지만, 2022년에도 영업현금 적자를 기록하였고 최근 건조량 확대 과정에서 운전자본투자가 증가하면서 순차입금이 재차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다만 양사는 적자 프로젝트 소진을 통해 2023년 상반기 영업현금흐름(OCF) 흑자 전환에 성공하며 전반적인 현금흐름 구조가 개선되고 있다. 또한 유상증자와 미인도선박 매각 등 지속적인 유동성 확보 노력을 통해 1조원 가량의 현금성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가운데 수조원의 대규모 유형자산을 활용한 대체자금조달능력 등을 감안하면, 향후 소요자금에 대응하기 위한 적정한 재무완충력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한화오션은 2021~2023년 연이은 대규모 손실(2021년 1조 6,731억원, 2022년 1조 7,673억원, 2023년 1분기 1,212억원)로 2023년 3월말 부채비율이 2,224.2%에 달하는 등 재무구조가 크게 저하됐다. 그러나 한화그룹 편입 과정에서 2조원의 유상증자 대금 유입으로 2023년 6월말 부채비율은 507.4%로 하락했고, 순차입금이 크게 축소(2023.03 2.4조원→ 2023.06 0.4조원)되는 등 취약한 재무구조가 보완되고 유동성이 확보됐다. 한편 한화그룹 편입에 따라 그룹신용도에 기반하여 대체자금 조성능력이 제고되었고, 정책금융 지원이 확대(신종자본증권 2.3조원 Step-up 5년 유예/Step-up 경감)됨에 따라 전반적인 재무융통성도 개선됐다.

한화오션은 2023년 11월 약 2조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다시 한번 계획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부채비율이 200%대로 낮아지고 현금성자산이 순차입금 규모를 상회하는 등 재무구조가 재차 개선될 것으로 전망된다. 증자 대금은 사업투자로 소요될 예정이지만, 상반기 유상증자를 통해 기확보한 유동성(2023.06 현금성자산 2조원)과 정책금융을 통해 낮은 금리로 제공받고 있는 2.9조원의 Credit Line 등을 고려하면, 한화오션은 향후 자금소요에 대비한 충분한 재무완충력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는 것이다.

현대삼호중공업의 경우 2021년 강재가 상승에 따른 손실 기록에도 여타 조선소 대비 빠르게 실적이 턴어라운드하며 2022년 온기 흑자전환에 성공하였다. 이에 재무구조 저하폭이 크지 않았고, 영업현금창출로 순차입금이 감소하는 등 전반적으로 재무안정성이 유지되었다. 2023년 상반기에는 신규수주 규모가 빠르게 증가하는 과정에서 선수금 유입으로 부채비율이 다소 상승하였다. 하지만 대규모 현금유입으로 차입금을 대폭 상환(2022.12 1.1조원 → 2023.06 5,600억원)하고 1.6조원의 현금 유동성을 보유하고 있는 등 전반적인 차입부담이 적고 적정한 재무완충력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KR은 상반기 조선업 정기평가를 통해 HD현대중공업(A-/긍정적)과 현대삼호중공업(BBB+/긍정적), 삼성중공업(BBB/긍정적)의 등급전망을 ‘안정적(Stable)’에서 ‘긍정적(Positive)’으로 변경했다. 이는 양호한 수주여건 하에 수주잔고가 양적·질적으로 개선되고, 저가 물량 축소와 건조량 확대로 매출이 증가하고 수익성이 제고될 전망인 점을 반영한 것이다.

또 한화오션의 신용등급은 기존의 ‘BBB-/긍정적 검토’에서 ‘BBB/안정적’으로 상향 조정하였다. 2023년 5월 한화그룹으로의 인수가 완료됨에 따라 그룹의 우수한 신용도에 기반해 유사시 계열의 지원 가능성 제고된 한편, 대규모 유상증자로 재무부담이 경감된 점 등을 감안한 것이다.

한국기업평가는 2023년 하반기 기업어음 정기평가와 내년 상반기 회사채 정기평가를 통해 조선 4사의 공정 안정화 여부와 이를 통한 수익성 개선 추이, 친환경선 시장에서의 선도적 지위 유지 여부 등을 점검해 신용도에 반영할 계획이다.

우호적인 업황 하에 최근 조선업체들의 전반적인 신용도가 상승세를 보이고 있으나, 조선업종의 절대적인 신용도 수준은 여타 업종 대비 높지 않은 수준이다. 조선업이 대표적인 수주산업으로서 갖는 두 가지의 시간적 괴리가, 조선업체 credit profile상의 구조적 리스크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하나는 ‘계약 시점’과 ‘원가투입 시점’ 간의 차이, 또 하나는 ‘원가투입 시점’과 ‘대금수취 시점’ 간의 차이이다.

건조선가가 결정되는 계약 시점과 이후 착공으로 원가투입이 진행되는 시점 간 차이가 길어질수록, 조선업체의 손익가변성은 커지게 된다. 선박 건조기간이 2년 이상 소요되고 특히 공정 중·후반부에 원가투입이 집중되다보니, 계약시점 추정하였던 원가와 실제 투입원가와의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강재가 및 제반 원가의 급격한 상승이 업계 전반의 수익성 훼손으로 이어진 2021년 이후의 사례가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잘 드러내고 있다.

한편 원가투입 시점과 건조대금수취 시점 간의 차이는 Heavy-tail 형태의 대금수취구조에서 기인하고 있다. 선수금 대비 잔금 비중이 높은 수취구조상, 공정 중·후반부로 갈수록 조선업체가 감당해야 할 운전자본투자 부담은 크게 늘어나게 된다.

리스크 완화를 위해 고려될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인 방안은 선박 건조계약에 시간적 미스매치 해소를 위한 조건을 부과하는 것이다. 먼저 기간 경과에 따른 선가 escalation 조항을 삽입할 수 있다. 글로벌 항공기 제조사들은 기간 경과에 따른 원가 부담을 보전받기 위해 항공사에 escalation 조항을 요구하고 있다. 계약시 건조기간내 균등한 대금결제구조를 요구할 수도 있다. 과거 국내 조선사들의 경우 Heavy-tail 계약의 비중이 현재와 같이 크지 않았다. 현재 조선사들의 교섭력 수준에서 계약 조건상의 변화가 단기간내 달성되기는 어렵겠으나, 지속적으로 시도돼야 하고 실행가능한 부분인 것은 분명하다는 지적이다.

또 최근 조선사들은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추진하며 업종 리스크에 대응하고 있다. 한화오션의 경우 그간 업황 부진 장기화와 실질적 대주주의 부재로 인해 중장기적 관점의 투자가 적극 모색·집행되지 못했으나, 한화그룹 편입 이후 경쟁력 강화를 위한 방안들을 활발히 추진하고 있다. 11월 예정된 유상증자를 통해 수요 성장이 예상되는 친환경 선박과 특수선, 해상풍력설비 등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진행할 계획이고, 조선부문 수직계열화를 위해 그룹 차원에서 선박엔진사업 인수를 진행 중에 있다.

HD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은 차세대 친환경 선박에 대한 연구개발 투자를 지속하는 가운데 최근에는 해양사업 안정화를 위한 수주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양사는 다수의 메탄올 추진 선박을 수주하며 친환경 고부가가치 선박에서의 시장지위를 선점해가고 있다. HD현대중공업과 현대삼호중공업은 총 43척의 메탄올 추진 선박을 수주하며 선두에 나섰고, 최근에는 세계 첫 메탄올 추진선을 인도했다. 삼성중공업도 최근 16척의 대형 메탄올 추진 컨테이너선을 일반 선가 대비 15~20% 가량 높은 가격으로 수주하는데 성공했다.

국내 조선업계는 수년만에 다시 우호적인 수급여건을 맞아 실적 턴어라운드를 시작하고 있다.

친환경 추진 선박을 중심으로 당분간 선박 수요가 양호한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되고, 국내 대형 조선사들의 곳간이 3년치 물량으로 채워진 가운데 중국 등 타국 경쟁 조선소들도 잔고가 충분히 확보되어 공급 측면에서의 위험요인도 크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조선사들은 잠재한 리스크 요인들을 면밀히 관리하며 현재의 우호적인 업황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공정 병목 요인들의 통제하에 잔고를 계획대로 신속히 인도하는 것이 수익성 제고를 위한 최우선의 과제이다. 또한 철저한 선별 수주를 통해 공급자 지위를 견고히 하는 한편 기술 우위를 강화하고 포트폴리오 경쟁력을 제고하여, 중장기 조선업계의 신용도 도약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는 시기가 돼야 할 것이라고 한기평은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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