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커 발주는 Suezmax 급 이하에 집중, 한국 조선소 수혜는 아직
-향후 2 년간 VLCC 운임 상승가능성 높아, 높은 운임이 지속되면 발주 여력 생길 것

사진 출처:EURONAV 홈페이지
사진 출처:EURONAV 홈페이지

하이투자증권 변용진 애널리스트가 최근 발표한 “Frontline의 VLCC(초대형 유조선) 대량 매입으로 살펴보는 대형 탱커시장 전망” 리포트가 큰 관심을 모았다. 이에 따르면 지난 10월 9일 탱커 시장에서 대형 Deal 이 발표되었다. VLCC 3위 선사인 Euronav가 9위 선사인 Fredrikson Group(Frontline)에 자사의 VLCC 24척을 23.5억달러(약 3조 1,725억원)에 매각하기로 했다. 해당 거래가 종결되면 Fredrikson Group은 COSCO를 제치고 2위 VLCC 선사로 단숨에 올라서게 된다.

양선사는 모두 Suezmax급 이상의 대형 원유운반선을 중점으로 운용하는 선사이며 한국 조선소에도 많은 발주이력이 있는 회사다. 특히 Euronav는 현존 선대의 81%를 한국에서 건조할 정도로 한국 조선소를 선호하는 선사라 더욱 눈길이 쏠리는 거래였다. 선대 매입을 위해 Frontline 은 동사가 보유한 Euronav 의 지분 26.1%를 CMB N.V.(Caribbean Mercantile Bank)에 매각해 10억 달러를 조달했지만 그래도 13.5억달러 상당의 현금을 추가로 투입했다.

VLCC 운임이 아직 크게 회복세를 보이지 않는 현 상황에서 이런 대규모 거래는 VLCC 시장 회복에 대한 Fredriksen Group의 수장 John Fredriksen의 강한 자신감이 없었다면 성사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논란이 있는 인물이지만 탱커회사인 Frontline, 해양 LNG업체인 Golar LNG, 해양시추업체인 Seadrill 등 여러 굵직한 회사를 성공적으로 경영해 온 John Fredriksen의 안목은 이번에는 VLCC 시장의 상승에 베팅하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사태로 더욱더 불거진 지정학적 긴장 상태, 늦춰지고 있는 금리 인하 전망 등 매크로 불확실성은 여전하지만 역사상 최저점 수준인 현재의 수주잔고를 감안할 때 향후 1~2년 이내 VLCC 운임 상승은 기정사실이다. 관건은 이러한 운임 상승이 한국 조선소의 수주로 이어질 것인가 하는 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발주 증가를 전망하지만, 본격적인 증가 시점은 내년 상반기 이후를 내다보며, 선가는 현재의 시장 선가보다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 대량의 발주 증가를 기대하기에 현재 시장선가는 선주들에게 너무 높아 보이며, 한국 조선소는 당장 가격을 낮출 이유가 많지 않다. 한국 조선소들은 아직은 LNG 운반선으로 가득 찬 슬롯(slot) 상황이 아쉬울 것이 없으며, 선주 입장에서는 최근 3 년간의 운임 약세로 발주 여력이 크지 않은데 고금리 상황이 더욱 발주를 어렵게 하고 있다.

이러한 교착 상태는 선주들이 현재의 보유 선단으로 공급자 우위의 운임 상승 시기를 거쳐 현금을 확보하고, 조선소들은 LNG 운반선과 컨테이너선 등 다른 주력선종의 발주가 감소해 서로의 이해 관계가 맞아떨어질 때 조금씩 풀려 발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이며, 이는 최소한 지금부터 6개월 이후를 전망하고 있다.

탱커 발주는 2022년 바닥을 보인 후 서서히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VLCC 발주는 아직 저조한 상황이나 Suezmax급 이하의 발주는 이미 대부분 2020년 이상으로 회복됐다.

현대미포조선의 주력선종인 MR P/C(중소형 제품운반선)의 발주 역시 2020년 이상의 회복세를 기록하고 있다.

VLCC 발주는 6월까지 2척으로 저조하다가 3분기 들어 발주량이 서서히 늘어나 9월까지 14척을 기록했으나 이는 아직 2021년 42척은 물론 2020년 31척에 한참 못 미치는 실적이다. Suezmax는 4월에 이미 2020년 발주량을 넘어섰고 9월 현재 44척으로 최근 4년 중 가장 많은 발주 척수를 기록했다. MR P/C는 연초인 2월부터 발주 회복세를 보였으며 9월 현재 누적 발주 90척으로 지난 3년 연평균 52척보다 54% 증가했다.

VLCC와 Suezmax 등 대형 탱커의 발주 회복은 예견된 수순이다. 지난 수년간 저조했던 발주로 수주잔고/선대 비율은 역대 최저 수준이며, 두 선종 공히 3%이하를 기록 중이다. 2023년에는 두 선종 모두 폐선조차도 전혀 보고되지 않을 정도로 배가 모자란 상황이다. 다만 가장 비싸고 파나마 운하는 물론 수에즈 운하도 통과할 수 없는 초대형인 VLCC와 달리 조금 더 가격이 낮아 발주 부담이 적고 수에즈 운하를 통과할 수 있어 범용성이 좋은 Suezmax부터 발주가 조금 빨리 회복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컨테이너만큼은 아니지만 탱커 역시 대형화 추세가 뚜렷하며, VLCC와 Suezmax가 전체 탱커 선대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탱커 중 VLCC의 비율은 DWT 기준으로 2011년 36.7%에서 2023년 40.5%로 증가했고, Suezmax 역시 2009년 13.2%에서 2023년 15.2%로 증가했다. 두 선종을 합치면 전체 탱커시장에서의 점유율은 55.7%로 절반을 초과한다. 향후 탱커시장의 회복은 두 선종에 달려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

다만 아직까지 대부분의 발주는 중국에 집중되고 있다. 발주 자체가 많지는 않으나 올해 발주된 VLCC는 전량 중국 야드가 수주했으며, Suezmax는 44척 중 21척을 중국이 수주했다. MR P/C에서도 중국은 대량 수주를 거듭하고 있다. 이는 크게 두 가지 원인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데, 1)한국 조선소의 LNG 운반선 집중으로 인한 낙수효과 2)중국의 적극적 조선업 회복의지가 그것이다.

첫번째 이유는 이미 LNG 운반선으로 3년 이상의 수주잔고를 확보한 한국 조선소가 굳이 탱커 수주를 서두르지 않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가 보다 중요한데, 중국이 한동안 소외됐던 조선업에 다시금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는 판단이다. 다만 이번에는 탱커 및 컨테이너선 등 기존 선종에 더해 LNG 운반선으로까지 그 의지가 확장되고 있으며 이는 향후 한국 조선업에 리스크로 작용할 전망이다.

올해 VLCC를 수주한 중국 조선소들(New Times, CSSC Tianjin, Qingdao, Hengli 등)은 기존 건조 실적이 거의 전무한 조선소라는 점을 들 수 있다. 중국은 슈퍼사이클의 정점인 2008 년 이후 지속 구조조정을 진행해 2023년 현재 164개의 가동 조선소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는 2008년의 36%에 해당하는 숫자이다. 그러나 거대한 설비를 보유한 조선소의 특성상 가동중인 조선소가 줄었더라도 그 설비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수백만평의 부지에 수백, 수천억원의 투자가 필요한 드라이 도크와 골리앗 크레인을 보유한 조선소는 설사 폐쇄하더라도 쉽게 설비 및 부지를 다른 용도로 변경하기 어려우며 최소한의 유지보수 상태로 방치하는 것이 차라리 이득이다. 가동 조선소로 분류된 곳이더라도 전체 설비를 가동하지 않고 일부 설비만 유지하고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설비는 유지되고 사람만 떠난 이러한 상태에서 시장이 회복되면, 다시 떠난 사람을 불러들여 고용을 창출하고 산업에 새 숨결을 불어넣으려고 할 개연성은 충분하며, 그 마중물은 신규 수주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대형 탱커 발주가 저조한 이유는 간단하다. 너무 비싸고, 선사는 돈이 없기 때문이다.

VLCC 시장선가는 2020년말~2021년초 8,500만달러보다 50.6%가 상승한 1억 2800만달러를 기록 중이며, Suezmax 시장 선가 역시 2020년 8월 5,600만달러보다 51.8% 상승한 8,500 만 달러를 형성하고 있다. 운송 능력이 절반인 Suezmax의 선가가 3년 전 VLCC의 선가에 육박하는 것이다. 그에 반해 운임은 2020년 하반기부터 2022년 상반기까지 2년간 저점을 기록했으며, 2022년 하반기~2023년 초 반짝 상승했지만 다시금 하락해 2022년 상반기 수준으로 되돌아간 상황이다. 대부분의 탱커 선사는 2021년 제로 혹은 마이너스 영업이익을 기록했으며 아직 그 여파에서 회복중인 상황이다. 발주 여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선주들은 무리한 신규발주보다는 기존 선대를 최대한 활용해 다가올 운임 상승기를 준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VLCC 매매 계약 이전인 9월 Frontline과 Euronav는 “We are not buying”이라며 현재의 신조선가가 너무 비싸다고 일갈한 바 있다.

이후 Frontline의 수장인 John Fredriksen은 시간이 걸리는 신조발주 대신 당장 돈을 벌 수 있는 중고선 대량 매입을 택했다. 2025년 인도될 VLCC가 불과 3척에 불과해 VLCC 선대는 역사상 최초로 감소가 전망되고 있는 바, 운임 상승은 향후 2년간 기정사실인 가운데 지금 당장 발주해도 VLCC는 2026년 이후에나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평균 선령 4.8년의 VLCC 총 24척을 23.5억달러, 평균 선가 9,791만달러에 거래했는데 현재 5년물 중고선의 시장선가가 9,800만 달러이므로 시장가 그대로 거래했다. 통상 대량 구매에 대부분 수반되는 가격 디스카운트 없이 제 값을 다 주고 매입했다는 것은 그만큼 해당 선대로 얻을 수 있는 부가가치가 크다는 판단이었다고 볼 수 있으며, 전세계 선대에 더해질 신규 인도 VLCC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향후 2년간 운임 상승세를 자신하는 것이다. 일단 보유한 선대로 최소한 6 개월 이상 상승된 운임을 즐기고, 여유가 생긴 선주들은 다시금 발주를 재개할 것이란 전망이다. 나쁘지 않은 기다림이라고 변 애널리스트는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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